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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차 사과한 윤복희... 계속 십자가에 못 박을 건가

[하성태의 사이드뷰] 한 70대 노가수의 잘못, 그리고 광장의 언어

16.12.03 16:22최종업데이트16.12.0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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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복희씨의 SNS 계정.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합니다. 내 사랑하는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억울한 분들의 기도를 들으소서. 빨갱이들이 날뛰는 사탄의 세력을 물리쳐주소서"라고 적혀있다. ⓒ 윤복희sns계정


"죄송합니다. 제가 트윗에 쓴 빨갱이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저희 세대는 나쁜 것을 말할 때 습관적으로 쓰곤 합니다. 레드 콤플렉스라고 하는 그게 잘못된 습관이며 특히 이번처럼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는 잘못된 이번 일 반대하기 위해 광장에 갔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아름다운 국민들과 마음을 함께 합니다. 하나님께 이 나라에 평화를 달라고 기도합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복희."

가수 윤복희가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라며 진심어린 사과 글을 남겼다. 6차 촛불집회가 예고된 3일 하루 전인 2일 오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서다. 지난 1일 남긴 사과 글에 이어 재차 촛불을 들고 광화문광장에 나간 국민들에게 사과를 전한 것이다.

사탄, 빨갱이, 그리고 광장의 윤복희

가수 윤복희가 자신의 트위터에 게시한 사진. ⓒ 윤복희트위터갈무리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합니다. 내 사랑하는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억울한 분들의 기도를 들으소서. 빨갱이들이 날뛰는 사탄의 세력을 물리쳐주소서."

지난달 29일 밤 윤복희가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이다. '빨갱이'와 '사탄의 세력'은 당연히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구속을 촉구하는 촛불집회 참가자들로 여겨졌고, 다수 트위터 사용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논란이 됐다.

이후 글은 삭제됐지만, 비난 여론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급기야 지난 1일 윤복희가 사과 글을 게재했지만, 악화되는 정국과 연일 촛불집회가 이어지면서 윤복희에 대한 비판 일색의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저 역시 촛불 들고 나라를 위해 시위에 나간 사람입니다. 우리들보고 이상한 말을 올린 글을 보고 전 정중히 올린 글입니다. 촛불을 들고 나온 우리를 얼마 받고 나온 사람들이라는 글에 전 그 사람을 사탄이라 말했고 빨갱이라고 불렀어요."

윤복희의 해명에 의하면, '사탄'과 '빨갱이'는 촛불 집회 참가자에게 돈을 받고 참가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지칭한 셈이 된다. 광장에 나간 자신을 이른바 '종북 세력'이라 몰아붙이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그 언어를 돌려줬다는 것이다.

"저 역시 촛불 들고 나라를 위해 시위에 나간 사람입니다"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5차 범국민행동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는 알렉스 퍼거슨 축구 감독의 오래된 트위터 명언(?)은 이 사안에서 무의미하다. 오히려 언어가 공동의 장에서 수용되고 전파되는 과정과 그 언어가 발화된 맥락을 곱씹는 것이 더 유의미해 보인다. 

'빨갱이'나 '사탄'이란 용어를 별다른 설명 없이, 주어로 사용한 것은 윤복희의 명백한 잘못이다. 하지만, 윤복희가 비교적 빠르게 자신의 잘못을 복기하고, 반성하며, 사과글을 올렸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도 촛불집회 참가자를 동원된 인력으로, '종북좌파'로 단정하고 낙인찍는 일부 국회의원들과 적지 않은 수의 국민들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사실, 윤복희가 '레드 콤플렉스'를 언급한 것은 한국사회의 아물지 않은 상처와도 연결되며, 오히려 현재 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윤복희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어떤 교단에서 어떤 설교나 어떤 교리를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국의 주류 개신교가 그 '레드 콤플렉스'를,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종파의 세를 불리고 있다는 점을 말이다.

물론 그것이 면죄부가 될 순 없다. 하지만 잘못된 언어 습관과 세대 차이에서 온 인식의 차이에 대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라고 하는 70대라면, 무턱대고 험한 말로 인신공격을 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윤복희는 스스로 인용한 트위터 글에서 볼 수 있듯, 자신에게 쏟아진 여러 비판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윤복희가 좋은 사람이 아닐 순 있다. 또 기독교와 '레드 콤플렉스'와의 불행한 상관관계에 눈을 감고 살아 왔던 것이 잘못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100만이, 200만이, 300만을 향해 가는 이번 촛불집회는 대통령의 퇴진을 염원하는 전무후무한 참여 인원만큼이나 다양한 계층, 계급, 목소리를 가진 이들이 참여하는 공론장이 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안에서 이 1946년생 가수를 계속해서 십자가에 못 박고 세워 두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인다.

그런 점에서, 한 방송 작가가 트위터에 적은 간결하고 선명한 의견은 경청할 만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충분히 이 정도의 관용을 보여 줄 여유를 갖추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부지불식간에 작금의 분노과 적개심을 누구에게든 표출해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하이에나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윤복희님에 대한 글, 본인 사과 글을 보았다. 이미 본인의 잘못에 대해, 그 세대 잘못된 언어습관에 대해서도 인지하고 사과하셨고 자신의 말이 미칠 안 좋은 영향에 대해서도 사과하셨으니 더는 심한 말, 반말로 공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윤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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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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