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로 안 살겠다"... 말 잘 듣던 아이의 변신

[도전하는 청년을 응원합니다 ④] 오늘공작소 대표 신지예

등록 2016.12.11 15:17수정 2016.12.1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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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꼴이 엉망이다. 이 나라는 개선이 아니라 밑동부터 다시 쌓아야 할지 모른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세대가 앞장서야 한다.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과 <오마이뉴스>는 헬조선의 현실에서도 꿈을 찾아 도전하는 청년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펀딩을 시작한다. [편집자말]
소녀는 자타가 공인하는 모범생이었다. 반장을 놓치지 않았고 어른 말씀도 잘 들었다. 점심시간이면 교무실로 달려가 선생님의 컵을 닦았다. '어른'의 눈에 들려고 부단히도 노력했던 아이는 그 어른들의 칭찬을 들으며 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생이 되자 교복이 입혀졌다. 머리 길이도 규정됐다. 소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의무적으로 교복을 입고 머리 길이를 단속받아야 하지?' 이 물음에 어른들은 '여성은 단정해야 한다'거나 '말 잘듣고 착해야 한다', '안전을 위해 어디서나 눈에 띄어야 한다', '머리가 길면 공부를 할 수 없다'고 답했다.

납득할 수 없었다. 인터넷을 검색했다. 알고 보니 두발단속의 뿌리는 일제 강점기에 있었다. 화가 났다. 모범생이었던 소녀가 하루아침에 문제아가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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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문제아가 되기를 선택한 모범생 '어른 말 잘 듣는 아이'였던 신지예씨는 중학교에 입학해 두발단속에 항의하면서 문제아로 낙인찍힌다. 정해진 룰을 거부하고 대안적인 삶을 찾게 만든 계기였다. ⓒ 신지예


혼자 뚝딱 만든 '문제 단체'의 대표

신지예(25세). 지난 총선에서 녹색당 비례후보로 출마해 낙선한 오늘공작소 대표다. 중학생이 된 이후 '어른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했던' 과거와 결별했다. 그 계기는 '두발단속'에 품었던 작은 의문이었다.

"우리는 월드컵세대여서 상당히 자유롭고 개방적인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어요. 아이들이 거의 다 귀 뚫어보고 그랬으니까...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오니까 한 살 더 먹었다고 갑자기 강제로 머리 길이 단속하고... 인터넷 검색해 보니까 이게 일제 시대의 잔재더라고요. 너무 화가 났는데 더 찾아보니 두발 자유화 운동의 역사가 길더라고요. 단체도 많이 있고. 그래서 '이건 뭐냐? 나도 만들어야지' 해서 단체 하나 뚝딱 만들었죠.(웃음)"

단체를 만들었다고 해서 '동지'들을 규합하거나 거창한 발족식을 연 것은 아니었다. 그냥 포털 사이트에 카페 하나를 만들었다. 회원은 당연히 한 명. 자동으로 대표가 됐다. 그러나 이름을 잘 지었다. '한국청소년모임'. 마치 국가기관 같은 곳에서 인증하고 한국 청소년이면 다 회원일 것만 같은 이 단체의 대표가 된 신지예는 여기저기 인터뷰도 하고 문의도 많이 받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중고등학생 운동을 하는 이들과 인연이 만들어졌다. 


"예전에 중고등학교 운동하던 분들이 대학에 가서 약간 공백이 생겼을 때여서 제가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다양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생각도 많이 정리되고 넓어진 것 같아요. 사회가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룰 말고도 다른 룰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할까요?"

이 깨달음은 표준적인 해답을 향해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만들어내려는 우리 교육의 현실과 어울리지 못했다. 염색하거나 머리를 기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학교 안에서 개인의 권리를 지키고자 했던 신지예는 차츰 고집불통 말썽쟁이로 불려졌다. 그래서 결심했다. 더 이상 표준적인 삶의 노예로 살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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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고바이크 오늘공작소의 멋진 실험작품이나 사고가 날까봐 차마 상용화는 못한 카고바이크. ⓒ 신지예


대안적인 삶을 찾는 여정

보통의 학교에 적응할 수 없었던 신지예는 의무출석 기간만 채우고 더 이상 학교에 가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하자 대안학교인 '하자작업장 학교'에 입학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돌아보면 '가장 잘했던 선택' 중 하나였다. 고집불통 말썽쟁이는 이곳에서 본인의 감수성을 어떻게 문화·예술적인 매체를 활용해 표현하는지 배웠다.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를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건 쉽지 않아요. 제가 들어간 대안학교는 문화, 예술, 인문학을 중심으로 가르쳐요. 여기서 내가 느끼는 감수성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지를 배운 것 같아요. 아이들이 이 사회에서 느끼는 것을 문화예술적인 매체를 가지고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이요."

졸업이 다가오자 기로에 놓였다.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방법을 배운 대안학교에서도 70% 정도의 학생들은 대학에 간다. 나도 갈까? 오랜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은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여전히, 계속, 다른 삶을 살아보는 것이었다.

대학 대신 선택한 사회적 기업은 아이들에게 책 내용을 연극이나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로 제가공해 만드는 곳이었다. 그런데 생각과 꼭 같지는 않았다. 사회적 기업이기는 하나 기업이었다. 수익이 있어야 하니 일도 많았고, 정부 지원을 받으니 집회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다. 살펴보니 주위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래서 '책읽기 모임'을 만들었다.

책읽기 모임은 빡빡했던 '사회생활'의 탈출구를 만들어 줬다. 결정적 계기는 후지무라 야스유키가 쓴 <3만엔 비즈니스>라는 책이었다. '아, 좋다. 우리도 해보자!'

"현대 사회를 사는 사람들이 본업에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책이에요. 결국 본업으로 번 돈은 그 본업을 유지하는데 쓰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잖아요? 일하느라 애를 못 보니까 보육시설에 맞기고, 일하다가 몸이 아파지니까 치료를 받거나 쉬는 날 마사지 받으러 다니고, 이걸 위에 또 더 일해야 하고... 이 책은 예를 들어 한달에 3만엔 정도를 벌 수 있고 자기가 관리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만들어 보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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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주택 리모델링 오늘공작소가 진행한 부흥주택 리모델링 사업은 세대 간 교류와 지역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 신지예


대안적인 삶. 4년 동안 일했던 첫 직장을 그만뒀다. 그리고 만든 것이 오늘공작소. 첫 번째 프로젝트가 한달에 50만 원을 벌면서 적게 일하고 친구들과 놀거나 새로운 것을 배우자는 50만 원 비즈니스였다. 만들어 놓고 보니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친구들이 모였다. 그래서 공동 사무실도 만들었다. 이글루 망원이다.

"북극에 있는 이글루는 독점으로 사용하는 곳이 아니에요. 사냥을 하는 이누이트들이 공유하는 곳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 이런 저런 도구들을 남겨놓고 떠나요. 이글루 망원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부엌, 서재, 회의실, 작업 공구들이 있고 각자가 자기 집에 필요 없는 것들을 가져다 놓기도 해요."

오늘공작소에서 주력하고 있는 사업은 자전거 만들기, 낡은 주택 리모델링, 그리고 3D프린터다. 용접기술 없이도 자전거를 만들어보기 위해 볼트와 너트를 활용해 자전거를 만들었다. 성공! 그러나 사고가 날까봐 상용화는 못했다. 재개발로 쫓겨 날 위기에 처한 부흥주택을 리모델링하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돈독한 관계도 만들어졌다. 3D프린터를 활용해 부속품을 만들어 쉽게 버리는 물건을 재활용하거나 소량생산이 가능한 방법을 시도 중이다.  

"정치를 우회하면 대안적인 삶은 불가능해요"

착실하게 '표준적인 삶'을 벗어나 대안적인 삶을 살아보려 했던 신지예는 올해 별안간 정치인이 됐다.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 것이다. 왜일까?

"3만엔 비즈니스처럼 살아보려면 안정적인 주거와 커뮤니티 내에서의 화폐교환이 중요해요. 그런데 대한민국, 특히 서울에서는 거의 불가능하죠. 우리 전체의 삶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개인들이 노력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어요. 힘을 모아서 부흥주택 재생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진행해도 할머니들이 재개발로 쫓겨나면 다 물거품이 되잖아요? 결국 정치를 바꾸지 않으면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자체가 불가능해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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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출마 정치를 바꾸지 않고서는 대안적인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다른 신지예는 지난 총선에서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 KBS화면 캡쳐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애초 신지예가 꿈꿨던 '적게 일하고 많이 노는 삶'은 멀어져 간다. 그는 녹색당 서울시당공동위원장이자 서울시 청년정책위원회 주거분과위원장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다양한 모임과 회의에 불려 다닌다. 대안적인 삶을 찾는 노력이 오히려 그가 벗어나고자 했던 '지독스럽게 바쁜 삶'에 종속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그런 고민은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해야겠더라고요. 처음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의 어려움이 좀 있는 것 같아요. 3만엔 비즈니스도 기존의 삶과 다른 방식의 삶이고, 녹색당도 기성정당이 아니라 풀뿌리 정당, 대안 정당으로 막 자리 잡고 있는 당이에요. 누군가는 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좀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건 불가피한 것 같아요."

누군가는 걸어야 할 불가피한 바쁨. 여유 있는 삶을 추구하지만 여유 없는 삶. 이 가운데서 신지예가 꿈꾸는 미래는 뭘까?

"당장은 좀 쉬고 싶어요.(웃음) 거의 4년 동안 쉬지를 못했어요. 한 달 정도 쉴 수 있으면 여행을 가고 싶어요. 그렇지만 그 외에 먼 계획은 잘 세우지 않아요. 구체적인 꿈을 그려놓는다고 그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또 그 꿈에 저당 잡혀서 이것저것 불필요한 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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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길을 걷는 사람의 책임 '적게 일하고 많이 노는 삶'을 추구했던 신지예는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면서 무척 많은 활동을 한다. 그는 이것이 '처음 길을 걷는 사람'들이 감수해야할 어려움이라고 말한다. ⓒ 신지예


모순이다. 구체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에게는 꿈이 있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적게 일하고 더 많이 노는 삶'을 유보하고 나날이 바쁜 삶을 보내고 있다. 아마도 이런 모순은 새로운 어떤 것을 만들기 위해 도전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에게 조그마한 숨통이 있다면, 이런 '모순적인 사람들'이 뚫어준 공간일 것이다.

신지예가 꾸려가는 오늘공작소는 그래서 '오늘만 생각하는 공작소'를 표방하지만, 사실은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내일 공작소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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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다음 스토리펀딩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바꿈 #청년 #신지예 #녹색당 #오늘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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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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