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후, 국민들은 무관심하지 않았다

[7차 촛불 범국민대회 참가기] 촛불 현장에서 발견한 시민공동체성

등록 2016.12.11 14:48수정 2016.12.1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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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연합'이나 '어무이부대' 소속 분들이 보실까 봐 미리 분명히 해두고 갈 일이 있다. 내가 사는 안성에서도 광화문 촛불이 벌어질 때마다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올라간다. 10일도 올라갔다.


버스 안에는 4살 꼬마와 가족들을 비롯해서 조그만 아이들이 10여 명이나 된다. 초등학생은 부지기수고, 수능 마친 고3과 주부들도 있다. 지난번엔 돌도 안 된 갓난아기와 부모도 함께 했다.  

요즘 떠도는 말로 '전문시위꾼'을 가리는 기준이 있단다. 그건 가방에 '바닥깔개'를 들고 다니면 '전문시위꾼'이란다. 그렇게 이야기 하고 보니, 어느 분이 우리 국민들 대부분을 '전문시위꾼(?)'으로 만드셨다. 앞에서 말한 안성 사람들, 특히 초등학생 가방에도 '바닥깔개'가 들어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그 관광버스를 무슨 돈으로 마련할까. 그렇다. 함께 하는 시민들이 1인당 1만 원을 내어 마련한다. 식사비용, 간식비용 등 기타 일체비용은 개인이 부담한다. 우리만 이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촛불버스들이 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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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버스 1차 광화문광장 촛불부터 오늘 6차까지 우리 안성사람들도 1인당 만원을 내어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올라가고 있다. 일체 모든 비용은 각자 개인이 부담한다. ⓒ 송상호


'행복사탕' 나눠주는 아저씨는 나눔의 시작에 불과했다

이렇게 우리는 '청와대 100m 앞'에 도착했다. 조그만 아이들은 소풍 나오는 기분인 듯 보인다. 어른들은 마치 무슨 '성지순례' 하는 느낌이랄까. 그곳에 들어가는 긴 줄과 나오는 긴 줄을 보며 든 나의 생각이다. 그곳에 간다고 청와대를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역사적인 청와대 100m 앞 시위현장'은 가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아닐까.   


오후 4시쯤 되니, 청와대 가까이로 대형 방송트럭이 다가간다. 곧이어 나온 한 사람, '민주항쟁의 레전드' 백기완 선생이다. "4.19 혁명부터 각종 민주화항쟁 당시에 죽지 못한 내가 살아서 이 나이에 청와대 100m 앞에 섰다"며, 그가 만들었다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시민들과 함께 불렀다.

아이들은 무슨 노랜지도 모르고 그저 신기하게 쳐다본다. 이제 광화문으로 '안성사람들' 깃발이 움직인다. 이때 우리 앞에 나타난 한 아저씨. 그는 사탕을 한 자루 가득 가진 50대 중년 남성이다. 그가 사람들에게 사탕을 나눠준다. 처음엔 그가 사탕장수인 줄 알았다.

"자, 행복사탕 받아가세요. 행복사탕!"

나도 몇 개를 받으면서 자루 속을 봤다. 정말 큰 자루에 사탕이 가득하다. 저걸 돈으로 사면 도대체 얼일까. 저걸 준비하기 위해 저 아저씨는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을까. 이거라도 해서 시민들에게 힘이 되고 싶은 저 마음은 또 어떤 것일까. 참으로 고마운 마음에 그 아저씨 얼굴을 다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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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는 음식 촛불 현장에서 처음 본 사람들과 서로 나누는 음식들이다. 촛불현장에선 수시로 일어나는 일들이다. ⓒ 송상호


'핫팩'과 음식으로 서로를 챙기는 사람들

행복사탕을 몇 개씩 얻은 우리는 행복한 얼굴로 '동화면세점 앞'에 도착했다. 본 무대 앞은 사람이 너무 많아 조그만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은 무리라 판단해서, 자리 잡은 곳이다. 또한 행사를 마치면 버스 있는 곳으로 수월하게 빠져나가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전문시위꾼(?)'답게 차가운 아스팔트에 바닥깔개를 깔고 앉았다. 4살, 6살, 7살, 8살 등의 아이들도 앉는다. 주최 측에서 '종이컵 양초'를 무료로 나눠준다. '전문시위꾼'쯤 되면, 양초를 굳이 돈 주고 사지 않는다. 하하하하.

날씨가 예상보다 더 춥다. 우린 서로의 체온을 챙긴다. 특히 같이 온 아이들을 어른들이 챙긴다. 자신에게 주어진 '핫팩'을 굳이 아이들에게 건넨다. 어른인 우리가 이러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저 아이들이 좀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물려주기 위함이다. 세월호 아이들에게 빚진 맘은 '내 아이, 남의 아이'를 구분하지 않고, 책임감 있게 아이들을 돌아보게 한 지 오래다.

북새통에 우린 따로 저녁 먹을 시간도, 장소도 없다. 모두 허기진 채로 광장에 앉았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한참 걷다보니 배가 고픈 건 당연지사다. 시간은 오후 6시. 집에 있었으면, 저녁 먹으면서 'TV 리모컨' 운전할 시간이지 않은가.

이때, 각자의 가방에서 뭔가가 나온다. 김밥, 초코파이, 빵 등이다. 주섬주섬 나오는 그것들이 광장에 앉은 채로,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 서로에게 나눠진다. 이때, 굳이 안성사람들만 챙기는 게 아니다. 옆에 있는 오늘 처음 본 사람들에게도 몇 개가 건너간다. '나보다는 너'를 챙기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처음 본 사람들도 음식 챙겨주는 식구가 된다

좀 있으니 우리 안성사람들에게 거저 받은 다른 곳 시민들이 우리에게 뭔가를 건넨다. 귤과 과자 등이다. 우린 또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먹는다. 같이 온 우리 아이들도 마치 소풍 도시락 까먹는 기분으로 먹고 있다.

우리 옆에 있던 한 중년 여성이 '나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오늘 날씨가 추울 걸 예상한 그 여성은 작지 않은 보온병을 준비해 왔다. 그 속엔 따끈따끈한 커피가 있다. 그 여성은 준비한 종이컵에다가 따스한 커피를 담아 주위에 앉은 시민들에게 나눈다.

"뭐 이런 걸 다."

이런 말을 하면서 우린 서로 웃는다.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은 필수다.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광장에 온 사람들이 모두 한 식구가 된다. '식구'란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을 말함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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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커피 이날 나눔의 하이라이트다. 한 중년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준비한 대형 보온병엔 커피가 들어 있었다. 이것을 광장에 앉은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 송상호


순간 울컥한다. 80년 광주민주화항쟁 당시, 광주현장에서 이루어졌던 공동체성을 보는 듯해서다. 그때만큼 처절하진 않지만, 분명 '우리가 하나'임을 서로에게 확인시키고 있는 현장이다.

나는 그 순간 보았다. 이건 '단순한 퇴진시위 현장'을 넘어서 우리 사회 속에서 무너진 '공동체정신의 회복현장'임을. 세월호 참사 이후 마치 국민들이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미래 세대 청소년들에 대한 부채의식과 사회에 대한 공동 책임의식이 살아 있었음을 확인하는 현장임을.      

이것은 오로지 촛불현장에 가야만 느낄 수 있는 '현장감'이지 싶다. 2016년 흔들리는 대한민국 속에서도 희망을 보는 이유다.
#촛불 #광화문 #공동체 #시위 #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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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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