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민중과 재개발 참사의 눈물이 서려있는 이곳

서울 개발의 막차를 탄 용산, 그곳에서 터무니 있는 개발을 생각한다

등록 2016.12.15 16:04수정 2016.12.1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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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한강대로가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는 서울역부터 한강로를 따라 용산역과 한강대교 북단에 이르는 인근 부지 349만㎡에 대한 '용산 지구단위계획 재정비 수립'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재정비가 추진되는 지역은 용산구 전체면적(21.87㎢)의 16%에 해당하며 용산공원 주변지역(895만㎡)의 39%를 차지한다. 이번에 추진하는 지구단위계획은 구체적인 개발계획은 아니라 도시의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로 기반시설의 배치, 가구 및 획지의 규모와 건축물의 용도, 높이 등을 정하여 향후 추진된 개발의 가이드라인의 역할을 하게 된다.

남산에서 한강대로를 내려다보면 확연히 구별되는 안과 밖의 모습에 안타깝기까지 하다. 아파트 단지 높은 건물들 사이에 심상치 않을 정도로 넓은 잔디밭이 펼쳐진 곳에 이국적 풍경의 건축물들이 있는 넓은 미군기지는 휴양지를 떠올릴 만큼 아름답다. 그러나 바로 옆 주변 지역은 넘볼 수도 없고 닮을 수도 없을 정도로 초라한 모습 그 자체이다. 삼각지 인근 지역이다. 지금 이곳이 용산공원사업 추진과 함께 들썩이고 있다. 그것의 증거가 삼각지 화랑거리의 부동산들이다. 부동산이 즐비한 모습이 향후 도시의 미래를 말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터무니없는 개발의 민낯 용산참사

이곳에서 나는 "터무니없는 개발"의 폭력을 떠올리고 터무니를 살리는 개발을 생각한다. 터무니를 살피는 과정에서 나는 궁금증이 생겼다. "용산은 왜 서울의 중심부이면서도 개발의 막차를 탄 곳이 되었는가?"라는 것이다. 이 궁금증에 답하는 과정이 바로 터무니를 찾는 과정이 되었다. 참혹한 개발의 민낯을 보여준 용산4구역은 용산미군기지 공원사업 구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003년 한미 간 용산기지 이전 합의 이후 2004년 국회 비준이 이루어지면서 잠자던 용산에 개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바로 그때 용산4구역은 2006년 구역결정고시를 시작으로 일사천리로 개발이 추진되었고, 그와 더불어 철도 공작창부지였던 용산국제업무지구 구상도 2007년 통합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공식화되었다. 이렇듯 용산은 용산미군기지의 역사와 더불어 부침을 겪어왔다. 용산참사는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터무니를 지워버리는 개발주의 참혹한 경고음이었다. 터무니를 살리는 개발은 그곳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것이다. 억지스러운 조감도를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이어져 지금 현재에 자리하고 있는 그 터의 모습에 어울리는 모습을 그려나가는 것이다.

조선민중의 피눈물로 만든 경의선과 용산역

삼각지, 한강대로는 용산군사기지와 경부선 철도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웅크린 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아왔다. 용산역은 경의선, 경원선의 기점으로 우리나라 철도 역사와 아픔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역이다. 러일전쟁을 이기기 위해 일제는 철도부설권을 강제로 빼앗고 철도부설용지를 헐값에 사들이고 민중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며 경의선을 완공하였다. 1904년 효창고개에서 벌어진 일제의 총살형이 철도공사가 얼마나 폭력적이었으며 민중들은 어떻게 저항했는지를 이 보여준다.


의병 출신의 3명의 젊은 남성들은 1904년 8월 27일 경의선 철도를 폭파시켜 20일 철도를 마비시킴으로써 일제통치를 극렬히 저항했다. 일제의 생명줄과 같던 철도를 지키기 위해 일제는 경의선 철도가 시작되는 용산역 근처 도화동 철도 건널목 공터에서 조선민중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을 총살했다. 이후 용산은 주변 철도병원, 철도학교, 철도기지창, 철도운동장 등이 모인 철도도시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철도도시의 상징적 건물이었던 용산역은 민자역사로 탈바꿈하면서 그 흔적을 모두 지워버렸다.

그 시절의 흔적

용산미군기지와 신용산역 일대의 지구단위계획 대상 지역은 모두 일제시대 지배의 핵심 수단이었던 곳이다. 군사기지와 철도지역의 특성을 그대로 갖고 있던 곳이다. 경성역을 능가할 정도로 주목받고 떠오르던 곳이 바로 용산역과 신용산 일대였다. 철도도시, 군사도시로 신식문물의 교류지였던 그 시절 흔적들이 수줍게 남아 있다.

대표적인 건물은 아직까지 그 이용방안이 마련되지 않은 철도병원이다. 철도건설과정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만들어진 철도병원은 이후 종합병원으로 발돋움한 곳이다. 또 삼각맨션 바로 뒤에는 심상치 않은 창고 건물 몇 채가 남아 있다. 한국전력의 전신인 경성전기주식회사 창고 건물이다. 애물단지가 된 변전소부지가 예전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다. 이곳에서 한강대로를 따라 조금 가면 1926년에 완공된 간조 경성지점 사옥 건물이 있다.

압록강 철교와 한강 인도교를 건설한 일본의 건설회사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신용산으로 부각되던 활발한 용산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대표적인 건물들이 아니더라도 경부선 철로 옆 삼각지 일대는 일제시대 상가주택들이 예전 모습을 간직하며 아직 남아 있다. 지상철도 옆이라는 물리적 제약은 아직까지도 예전의 모습을 지키며 살게 해주었다.

개발은 철저하게 자본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는 레일과 같다. 그러나 개발자들의 욕망을 제어할 수단들도 갖고 있다. 개발계획을 입안하고 허가하는 중요한 역할을 바로 공공기관이 갖고 있다.

그러나 이 개발사업에서 터무니를 살리려는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으려면 공공의 목적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개발의 의미를 찾고 어떤 지역을 만들어야 할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용산공원 사업과도 연계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용산미군기지와 철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그 역사의 흔적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터무니들을 살필 수 있는 의미심장한 흔적들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개발의 광풍 속에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도시개발의 밑그림 속에 그 구상이 담겨 있어야 한다. 보존지역으로 개발하지 못한다하더라고 의미를 살려 보존해야 할 구역을 정하고 허용용도, 불허용도 지정을 통해 미래의 모습을 구상해야 한다.

잠시 멈춤의 소중함, 멈춤의 긍정

거대한 역사를 켜켜이 쌓아놓은 유럽의 도시를 보며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듯이 앞으로 만들어질 도시에 시간의 흔적을 보존하는 일이 필요하다. 잠시 멈출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소중하다. 멈춤은 돌아보는 일이며, 인류 유산의 토대 위에서 다시 시작할 힘을 만드는 과정이 될 것이다. 현재의 모습을 살피는 과정에서 이 도시의 미래가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억지스러운 개발, 인위적인 물리적인 변형은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억지스러운 개발이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그곳의 흔적 찾기부터 시작하자.

#용산공원 #용산역 #경의선 #용산지구단위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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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대안적 개발을 모색하고, 생태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불평부당한 사회를 민의 힘을 믿고 바꿔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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