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권세 누린 '양반 가문'이 어디 있을까

[중국문화기행 ④] 공자 77대 종손 결혼식

등록 2016.12.21 07:32수정 2016.12.2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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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집안은 중국 최고 양반 가문입니다(한국식 표현입니다. 중국에는 '양반'이라는 호칭이 없습니다). 한국에서 양반임을 증명하는 수단은 족보입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인데, 공자 집안은 2500년 동안 공자의 후손을 기록한 족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나 중국에서나 양반임을 증명하는 족보는 항상 사실 여부를 의심받는데, 공자 집안 족보는 세계 그 어느 족보보다 정확해서 누구도 가짜라고 하지 않습니다.

1936년 12월 16일 중국 최고 양반 가문 출신인 공자 77대 종손 공덕성이 산동성 제녕시 곡부에 있는 공부(孔府)에서 결혼식을 치릅니다.

중국 최고 가문 결혼식답게 그 당시 중국에서 한 가닥 한다는 인물은 모두 참석합니다. 원래는 당시 중국 1인자 국민당 정부 주석 장개석도 참석하기로 했는데, 서안사변이 일어나 장쉐이량이 장개석을 감금하는 바람에 가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샛길로 빠집니다. 이때 장개석이 감금된 장소가 바로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가 사랑을 불태우던 서안 화칭츠라는 온천입니다. 화칭츠에 여행가시면, 양귀비 목욕탕만 구경하지 말고, 장개석이 감금됐던 장소도 가보시길. 양귀비 목욕탕에서 걸어서 5분 거리입니다.

다시 돌아옵니다. 그런데 만약 한국 사람이 1936년 중국 최고 양반가문 종손 결혼식에 참석해 행사 내용을 봤다면, '이건 완전히 쌍놈 결혼식이네'라고 욕했을 겁니다. 결혼식 행사가 어떤 내용으로 진행됐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사전 지식이 조금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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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77대 종손 결혼식 사진 ⓒ 바이두


공자는 중국 산동성 제녕시 곡부에서 태어나고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곡부에는 공자와 관련된 유적지가 많은데 사람들이 자주 가는 장소는 공묘, 공부, 공림 이렇게 세 곳입니다. 결혼식이 공부(孔府)에서 열렸기에 공부(孔府)를 설명드리겠습니다.

공부(孔府)를 한자로 풀이하면 공자 관청입니다. 공부(孔府)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공부(孔府)가 언제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알아보겠습니다. 공자의 유학은 한나라 한무제가 '동중서'라는 학자를 기용하면서부터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중국 황제 입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계급이 정해져 있다는 공자의 유학이 너무나 고마웠을 겁니다. 공자의 유학이론 '극기복례'(克己復禮)는 자기 자신이 속해있는 위치를 알고 그에 맞는 사회예법에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이론에 따르면, 황제는 영원히 황제이고, 신하는 영원히 신하이고, 노비는 영원히 노비입니다. 누구도 황제 자리를 넘볼 수 없습니다.

유학 이론을 만든 공자가 너무 고마운 황제는 공자 후손에게 선물을 듬뿍 안겨줍니다. 황제가 공자 후손에게 주는 선물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송나라 황제는 공자 후손에게 엄청난 선물을 줍니다.

송나라 황제는 공자 가문 종손에게 '연성공'이라는 관직을 줍니다. 이 관직을 한국식으로 풀어보면 '영구세습시장' 정도 됩니다. 공자 가문 종손은 성인이 되면, 고향 마을 시장(사또)에 자동으로 임명될 뿐 아니라, 이 시장 관직은 영구적으로 후손에게 세습됩니다. 그러니까 공자 가문 종손은 태어나면서 금수저를 넘어서 다이아몬드 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는 거지요.

세월이 지나면서 나라(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국민당 정부)도 바뀌고 수많은 황제가 세워졌지만, 공자 가문 종손은 언제나 영구세습시장 관직을 유지했습니다. 공자 가문이 1000년 동안 영구세습시장 관직을 유지한 시청과 시청관사가 바로 공부(孔府)입니다.

공자 가문을 제외하고 세계 어느 나라에도 한 가문이 1000년 동안 일정 지역의 시장(사또) 관직을 유지한 경우가 없습니다. 대단한 집안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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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손 결혼식에서도 이런 춤을 추지 않았을까? ⓒ 김기동


다시 결혼식 얘기로 돌아갑니다. 1936년 12월 16일 중국 최고 양반 가문으로 영구세습시장 관직을 가진 공자 77대 종손 공덕성이 공부(孔府)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20세기 외세 침략에 맥없이 무너진 중국은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런저런 개혁운동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이런 개혁운동의 기본사상은 중체서용(中體西用)입니다. 중체서용(中體西用)은 중국 본래의 유학을 중심으로 하고 근대적인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개혁방법입니다.

1936년 공자 77대 종손 공덕성은 공부(孔府) 후당루(後堂樓) 건물에서 결혼식을 치르면서, 중체서용(中體西用)에 따라 중국 본래의 유학 결혼예법과 서양의 결혼예법을 반반씩 썩은 새로운 형태의 결혼 행사를 진행합니다. 그래서 공자 종손 신랑은 중국 전통 결혼 의복을 입고, 공자 종손 집 맏며느리가 될 신부는 서양 결혼 의복을 입습니다. 예식 행사도 중국 유교 결혼예법과 서양 근대 결혼예법을 반반씩 적용한 행태로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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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77대 종손 결혼식 중국 예복을 입은 신랑과 서양 예복을 입은 신부 ⓒ 바이두


중국 문화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면서, 그 어떤 문화도 유연하게 받아들여 새로운 문화로 재탄생시킵니다. 과거의 모습을 고집하며, 그 어떤 변화도 받아들이지 않는 방법이 전통을 지키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같습니다.

공자 77대 종손 공덕성이 결혼 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보며 이번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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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77대 종손 결혼식이 열린 공부(孔府) 후당루(後堂樓) ⓒ 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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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77대 종손 부부가 생활 했던 공부(孔府) 후당루(後堂樓) 내부 모습 ⓒ 김기동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다는 공자 사상과, 계급을 부정하고 모든 사람이 똑같다고 주장하는 공산주의 사상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공자 가문 종손 공덕성은 1949년 2500년 동안 조상이 살았던 공부(孔府)를 떠나 타이완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공덕성은 1980년 우리나라 안동시를 방문해 추로지향(鄒魯之鄕)이라는 글귀를 선물합니다. 안동시 도산서원에 가면, 서원 입구 돌 비석에 새겨진 공자 집안 종손 공덕성의 추로지향(鄒魯之鄕) 글씨를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중국여행 #중국문화 #유교 #전통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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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사람이야기>,<중국인의 탈무드 증광현문>이 있고, 논문으로 <중국 산동성 중부 도시 한국 관광객 유치 활성화 연구>가 있다.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행위방식의 근저에 있는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중국인과 대화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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