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 청문회에서 한 약속 지켜야 한다

[주장] 이재용의 청문회 약속은 삼성의 범죄 목록이자 누군가의 피눈물

등록 2016.12.16 21:47수정 2016.12.16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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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총수 청문회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사장은 기꺼이 '바보'가 되어 '아무것도 모른다'는 '바보 코스프레'를 종일 반복했다. 죄를 인정하지 않으려면 달리 방법이 없었을테고, 감옥에 가는 것보다는 낫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청문회는 별 성과 없이 끝났고, 삼성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을지도 모르겠다.

삼성의 범죄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었지만,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부덕의 소치'이며 '뭐라고 꾸짖으셔도 할 말이 없다'는 이재용의 말은 '사죄는 하지만 내 잘못은 없다'는 박근혜의 담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럼에도 청문회를 통해 그동안 삼성이 지키지 않았던 약속과 삼성의 무책임, 범죄 행위를 지적하고 개선을 약속받는 데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아직 약속에 지나지 않지만 '재벌도 공범'이라고 외쳐온 거리의 촛불이 만들어낸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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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국민행동에서 삼성직업병 사망자 문제를 알리는 반올림 12월 10일 광화문 광장에서 삼성반도체/엘씨디 공장의 직업병 피해 문제를 알리는 반올림. 박근혜-최순실 일가에는 수백억의 뇌물을 주고, 노동자들에게는 화학물질 정보조차 가르쳐주지 않아 영문도 모른채 죽어간 76명의 사망노동자, 224명의 직업병 피해자들이 있음을 현수막을 통해 알리고 있다. ⓒ 이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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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국민행동에서 반올림이 박근혜 퇴진, 이재용처벌 피켓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12월 10일 7차 국민행동에서 방진복을 입고, 이재용처벌, 박근혜퇴진 피켓을 들고 행진 ⓒ 이기화


재벌들과 권력을 매끄럽게 이어주며 '민원' 창구 역할을 해온 전경련을 탈퇴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재용의 3대 세습을 위해 온갖 불법과 탈법을 마다하지 않고 적극 개입해온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두 기관 모두 삼성이 저질러온 일들을 기획하고 실행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곳으로, 사라져야 마땅한 곳들이다. 눈속임에 그쳐서는 안되고, 범죄를 밝히고 책임자와 함께 범죄를 실행했던 사람들을 단죄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언론 압박을 중단하겠다는 약속도 얻어냈다. 삼성이 수조 원의 광고비를 쓰며 언론을 맘대로 통제해 온 것을 삼성과 싸워 온 사람들은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삼성의 잘못을 지적하는 기사는 한 꼭지 실리기 어려워도, 삼성발 기사들은 순식간에 전체 언론에 도배되어 왔다. 지금도 삼성 비판 기사는 어느 순간 사라지는 일이 드물지 않다. 삼성은 약속한대로 언론을 통제하는 못된 버릇을 그만두어야 한다.

이건희가 지키지 않은 사회환원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2008년 비자금 사태 때, 이건희의 형량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삼성은 사회 환원을 약속한다. 이 덕분에 재판에서 이건희는 실형을 면할 수 있었고 곧이어 사면도 받았다. 1조 4천억으로 추산되는 이 사회 환원 약속을 더는 미루지 말아야 한다.

노조 탄압으로 알려진 삼성에서 해고자 복직을 검토하고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에 노력하겠다는 답도 이끌어냈다. 납치, 감금까지 자행하며 노조를 감시, 탄압해온 삼성은 이제 그만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삼성제품을 수리하는 명백한 삼성의 노동자들을 더는 모른 체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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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부회장 청문회 약속 이행촉구 기자회견 12월 15일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의 재벌구속특별위원회는 서초동 삼성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 이재용 부회장은 청문회에서의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하였다. ⓒ 반올림


삼성반도체공장과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산업재해에 대해 '미흡했고 삼성의 책임이 맞으며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은 특히 반가운 일이다. 삼성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는 동안에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래 두 명의 사망자가 추가되어 이제 삼성반도체·LCD에서 직업병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78명이 되었다. 피해자는 226명에 이른다.

'위험의 외주화'도 심각한 상황이다. 삼성과 노동부의 무관심속에 삼성스마트폰 하청업체에서 메탄올로 실명된 사건이 다시 재발했다. 건당 수수료 체계와 회사의 과도한 실적 독촉으로 안전장치가 미비한 상황에서 에어컨을 고치다 추락사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재용의 청문회 약속 후 이틀 연속으로 평택 삼성반도체 공장을 짓다가 두 명의 노동자가 질식과 추락으로 목숨을 잃는 일도 벌어졌다. 이 역시 완공일정을 무리하게 줄이려는 회사의 시도가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현장에 더해지며 발생한 참사들이다.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는 점에서 명백한 기업살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은 지난 해 반올림과 오랜 대화 끝에 사회적 중재기구인 조정위원회의 권고에 따르기로 합의한 후, 정작 조정위 권고가 나오자 이를 무시하고 대화마저 단절한 채 자체보상으로 마무리하려 했다. 비밀유지를 조건으로 피해자에게 보상이라며 돈을 건냈던 삼성의 자체보상 과정은, 삼성이 산재를 은폐해온 그 간의 행태를 여전히 확대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백혈병에 걸린 황유미씨에게 500만 원을 주고 없던 일로 무마하려 했던 방식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더 이상은 안된다. 더 이상 죽이지 말라. 더 이상 다치고 병들게 하지 말라.

이 죽음의 행렬을 끝내려면 책임자에게 책임을 지워야 한다. 삼성 이재용은 직접 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라. 산업재해를 은폐하지 말고 투명하고 배제없이 보상하라. 무엇보다 재발되지 않도록 방지대책을 마련하여 실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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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청문회 입장시 기습시위 12월 6일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 본회의장에 입장하는 이재용 앞에 반올림 회원이 76명의 직업병 사망자 얼굴이 담긴 현수막을 들고 있다가 제지당했다 ⓒ 오마이뉴스


이재용 부회장이 청문회장에 입장하던 순간, 삼성직업병 사망자 현수막은 급히 치워졌고, 오래된 황유미씨의 영정은 산산조각이 났다. 물의를 빚고 조사를 받으러 청문회에 출석하는 날에도 삼성의 무책임과 범죄 행위로 고통받아 온 이들의 모습은 이재용의 심기 경호를 위해 치워져야 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이재용은 이 날의 폭력에 대해서도 사과해야 할 것이다.

우리사회 진정한 비선실세는 재벌이고 삼성이다. 지금 광장에선 '박근혜 즉각퇴진, 구속'을 넘어 '재벌도 공범이다', '재벌총수 구속하라', '이재용을 구속하라' 같은 구호가 널리 외쳐지고 있다. 청문회에선 모르쇠로 잘 빠져나갔는지 모르지만, 광장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온 국민이 지켜본 청문회에서의 약속도 지키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분노까지 감당해야 할 것이다. 광장의 분노를 잊지 말라.
#반올림 #이재용청문회 #삼성백혈병 #삼성직업병 #삼성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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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황상기 씨의 제보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이후, 전자산업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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