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로 청소년 마음고통 덜어줍니다"

학교 밖에서 '교육의 미래'를 여는 리빙랩 사회혁신 실험

등록 2016.12.22 10:34수정 2016.12.2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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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R이 현실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AR은 눈에 보이는 현실에 3차원의 가상 영상을 보태서 보여주는 기술이다.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80~90%는 아이들이 40대가 됐을 때 전혀 쓸모없을 확률이 크다."

<사피엔스(Sapiens)>를 쓴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의 '유발 하라리' 교수의 말이다. 학교 교육이 세상의 가파른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고 있다.

여기 '교육의 미래', 또는 '미래의 교육'을 보여주려는 실험이 있다. 교실 안에 갇힌 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대한민국 교육에 새로운 길을 보여주려는 감성놀이터의 '리빙랩(Living Lab)' 실험이다.

교실 밖에서 미래를 가르치는 대안 교육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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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놀이터'의 워크숍 장면 ⓒ 감성놀이터


많은 이들에게 AR(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과 VR(가상현실, Virtual Reality)은 아직 낯설다. 이 새롭고도 매력적인 기술을 손에 넣은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을 열고자 머리를 쥐어짜는 사이, '감성놀이터'는 청소년의 상처를 보듬어보겠다고 나섰다. 이들은 서울시(서울혁신파크) 리빙랩 사회혁신 실험 공모 '내가 바꾸는 서울, 100일의 실험'에 선정돼 지난 8월부터 실험을 진행해왔다.

"뉴미디어 기술로 청소년의 심리 문제를 해결하려는 프로젝트다. 청소년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콘텐츠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를 갖도록 하고 작품을 만들면서 스스로 치유해가도록 하는 게 목표다."

'감성놀이터' 최석영 대표의 말이다. 청소년들에게 심리적 갈등이나 마음의 상처를 건전하게 표현하고 치유할 통로와 공간을 열어주겠다는 구상이다. '감성놀이터'가 가르치려는 것은 AR과 VR이라는 첨단의 과학기술을 활용한 뉴미디어 아트 창작법이다.

언제쯤 학교에서 가르칠지는 알 수 없으니 그만큼 앞서갈 기회와 가능성이 크게 열려있는 분야다. 그렇다고 '기술'로서의 창작법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메이커 운동(Maker Movement)'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가치를 전하는 것에도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또 한 번의 거대한 전환기를 맞은 인류에게 교육은 새로운 기술을 넘어 새로운 세계관을 일깨우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대와 공교육 사이의 틈새를 메우려는 감성놀이터의 도전이 값진 또 하나의 이유다.

최석영 대표는 이번 실험의 총괄 디렉터를 맡는다. VR을 비롯한 뉴미디어 콘텐츠 분야에서 15년 넘게 일해 온 베테랑인 그는 이번 실험이 "국내외 어디에서도 시도된 적 없는 그야말로 혁신적인 실험"이었다고 강조한다. '감성놀이터'가 보유한 여러 첨단장비와 함께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 자원과 제작기술을 아낌없이 제공함으로써 다른 곳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공간과 기회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작품 제작을 도운 점도 이러한 자신감에 한 몫 한다. 뉴미디어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를 비롯해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음향 전문가, 교사와 심리학 전문의 등 우리 사회 곳곳의 전문가들이 작품 제작에 힘을 보탰다. 교실과 전시공간은 지역의 자원을 활용했다. 미래 세대를 길러내는 일 만큼은 온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다.

청소년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V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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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VR 콘텐츠 제작 실습을 하는 장면 ⓒ 감성놀이터


첫 워크숍 '청소년 심리치유 VR 메이커 스페이스 개념이해1'는 10월 8일 오후 3시 역시 연남동주민커뮤니티센터에서 열렸다. 최석영 대표가 직접 강사로 나섰다.

"여러분은 다른 곳에서 배울 수 없는 뉴미디어를 배우고 있다. 도전해보겠다는 정신으로 자신감을 갖고 임하기를 바란다."

최 대표는 수업 내내 도전 정신을 강조했다. 이 자리에 모인 청소년들이 모두 미디어 아티스트가 되진 않더라도 메이커의 자세만큼은 가슴에 품고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날 최 대표는 학생들에게 종이로 만든 'VR HMD(Head Mounted Display)'를 하나씩 나눠줬다. 여기에 스마트폰을 끼우고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VR 콘텐츠를 자유롭게 볼 수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VR이 무엇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도록 한 것이다. 이날 학생들은 말로만 듣던 새로운 세상, '가상 현실'이란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이날 두 번째 강사도 메이커였다. '오토마타(automata)' 아티스트 이승항 작가. 오토마타는 간단한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인형이나 조형물을 가리킨다. 이승항 작가가 자신의 작품들을 영상으로 보여주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토마타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에서 고군분투하며 이 자리까지 온 이승항 작가였다.

"내가 청년이던 시절, 또 7~8년 전 오토마타에 처음 발을 들이던 때에 누리지 못한 기회가 여러분에게 열렸다. 메이커로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봄으로써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확신과 자신감을 얻길 바란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학생들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메이커 정신'이란 게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게 한 수업이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워크숍에선 'AR(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에 대해 배웠다. AR과 VR(가상현실, Virtual Reality)은 비슷한 듯 다르다. VR이 현실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말 그대로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AR은 눈에 보이는 현실에 3차원의 가상 영상을 보태서 보여주는 기술이다. 그래서 혼합현실(Mixed Reality, MR)이라고도 부른다.

네 번째는 '청소년 심리치유 사운드 제작실험 워크숍'이었다. 사운드 아티스트 이승지 작가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악이란 어떤 것인지, 또 작곡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알려줬다. 음악의 힘을 새삼 일깨워준 시간이었다. 

모두에게 생애 첫 전시회를 선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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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에서 참가자가 VR 미디어아트를 감상하는 모습 ⓒ 감성놀이터


11월 25~26일, 두 달간의 워크숍을 마무리하는 전시회가 중구 오렌지컨테이너에서 'MAKE: FELL: HELL 만들고 느끼고 치유하다'란 이름으로 열렸다. 전시회 큐레이션을 맡은 허대창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의 의미를 "미디어 기술을 이용한 예술과 치유의 만남에 대한 '또 다른 시도, 그 시작'"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회에선 세 가지 장르의 미디어 아트를 선보였는데, 파노라마 이미지(Panoramic Images)와 VR콘텐츠 그리고 사운드가 그것이다. 파노라마 이미지는 360° 촬영이 가능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DSLR카메라의 파노라마 기능으로 촬영한 이미지다.

청소년 작가들은 자신의 심리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장소, 또는 풍경을 찾아 이를 이미지로 담아냈다. '가을/경복궁', '구름 위 세상', '새벽의 거리', '아직 잠들어 있을 시간', '불빛 공원', '개미의 시점', '길거리 속 작은 행복' 등의 작품이름에서 이들이 담아낸 풍경을 어렴풋하게나마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VR콘텐츠. 가장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는 작업이었고 그만큼 뿌듯했던 작업이 바로 VR콘텐츠다. 아직 서툴지만 청소년 작가들의 패기와 열정에 여러 전문가들의 손길이 더해져 제법 그럴 듯한 미디어 작품들을 선보일 수 있었다. 책으로 그 감동을 전할 수 없어 안타깝다.

마지막은 사운드다. 다룰 줄 아는 악기로 손수 작곡한 작품들도 있었지만, 마음을 보듬는 소리를 찾아내 녹음하거나 저작권 없는 음악에 다양한 소리를 덧입혀 색다른 느낌의 사운드를 만들어낸 작품들도 있었다.

이렇게 세 개의 장르, 총 50여 점의 미디어 아트 작품들이 아담한 전시장을 채웠다. 학생들은 이틀 내내 들떠 있었다. 친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가족들의 발길이 이어질 때마다 청소년 작가들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작품 앞으로 데려가 작품에 담긴 깊은 뜻을 설명했다.

"하루 일과가 끝난 시간대에 맞췄다. 다들 하루 일과가 끝나면 하루를 돌아보기보다는 하루 동안 힘들었던 것만 떠올린다. 이 영상을 통해서 여유의 시간, 힐링 하는 시간을 갖고 자신을 성찰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제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아직 잠들어 있을 시간'이라는 파노라마 이미지를 만든 김태경 작가의 말이다.

현실을 넘어선 교육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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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숍에 참여한 학생들의 모습 ⓒ 감성놀이터


'감성놀이터'의 실험은 전시회를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실험에 참여한 스물한 명 청소년의 만족도도 높았다.

전시회를 하루 앞두고 진행한 평가 자리에서 '이번 프로그램이 심리치유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무려 94%의 학생들이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 프로그램이 나 또는 다른 청소년을 위해 다음 단계로 발전하며 지속되길 바라는가'라는 질문에도 역시 94%가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라고 답했다.

이번 프로젝트로 무엇이 변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내 또래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며 나의 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무언가 만드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 것", "새로운 것을 배워 내 자신이 더욱 성장한 느낌이 든다", "VR 분야로 진로를 새롭게 정하게 되어 감사하다", "작업을 하며 많은 사람들과 의견 조율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 것 같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또, "지속된다면 다시 한 번 참여하고 싶다", "이런 동아리가 있다면 내가 먼저 들어가고 싶다", "계속 했으면 좋겠다", "반드시, 꼭 하고 싶다" 등의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감성놀이터'가 가닿고자 하는 마지막 목표는 '메이커 스페이스'를 넘어 '학교'다. VR 미디어 아티스트를 길러내는 학교. 100일간의 실험을 마친 뒤 이화미디어고가 '감성놀이터'에 영상미디어과의 교육과정에 대한 컨설팅을 해달라며 MOU(양해각서)를 맺을 것을 제안해왔다. '감성놀이터'로선 무척 반가운 일이다.

이제 막 세계 시장에서 불 붙기 시작한 VR과 AR 분야의 주도권 다툼에서 살아남으려면 소프트웨어 콘텐츠 기술에서 앞서가야 한다고 말한다. 최근 불거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VR산업에 대한 정부의 대규모 투자가 무산된 오늘, 우리는 무엇이 더 값진 투자인지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몇몇 기업에 R&D 비용을 몰아주는 투자일지, 아니면 미래 세대가 한 발 더 앞서나가도록 하는 투자일지 말이다.

'청소년 심리치유를 위한 VR 메이커 스페이스 조성' 실험은...
올해 8월 서울시(서울혁신파크) 리빙랩(Living Lab) 사회혁신 실험 공모 '내가 바꾸는 서울, 100일의 실험'에 선정된 6개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다.

'청소년 심리치유 VR 메이커스페이스'를 활성화하기 위한 기반 프로그램 및 커뮤니티를 형성하려는 실험이다. 새로운 문화와 기술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이 심리적 문제를 흥미로운 콘텐츠와 연계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고민하도록 하고, 이와 함께 아티스트 및 디자이너, 심리 전문가와 함께 심리치유 VR 작품을 만들도록 하는 게 목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심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가며 자존감을 형성해가는 경험의 장이 마련되길 기대한다. 시대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학교 교육의 한계를 학교 밖에서 채워보려는 대안 교육 실험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덧붙이는 글 서울혁신파크 블로그 http://s_innopark.blog.me 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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