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자 마르크스, '헬조선'을 보면 뭐라고 할까?

[서평] 마르크스 입문서,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록 2016.12.25 17:06수정 2016.12.2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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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면접을 앞둔 한 청년이 있습니다. 지원한 기업은 청년이 코흘리개 시절부터 꿈꿔왔던 곳입니다. 청년은 토익, 봉사활동, 자기소개서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았습니다. 곧 면접관이 들어서고, 송곳 같은 질문에 그는 완벽하게 답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만이 남았습니다. 마침내 그의 꿈이 이루어질 순간입니다. 화기애애한 표정으로 면접관이 묻습니다.

"듣던 대로 완벽하군.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네. 이 직무를 선택한 계기가 무엇인가?"

망설임 없이 청년은 면접관을 향해 말합니다.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뭐?"


놀란 듯한 면접관의 반응에도 청년은 흔들림 없이 말을 이어갑니다.

"제 자신의 완성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행복을 위해 일할 때만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면접관의 눈은 자연스레 청년의 양복 상단으로 향합니다. 그의 이름표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카를 마르크스'

위의 내용은 '공산주의 혁명가' 마르크스가 1835년, 그의 나이 17세에 썼다는 글 '직업 선택을 앞둔 한 젊은이의 고찰' 일부를 현대에 맞게 각색해본 것입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당연한 지금의 풍조에서, 자신의 행복은 '남'의 행복을 완성할 때 있다는 그의 생각은 이처럼 인상적이다 못해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일본 고베여학원대학 교수인 이시카와 야스히로의 책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은 이처럼 마르크스가 지금, "만약 '대한민국'에 있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갖게 하는 책입니다. 저자가 다니는 대학생들에게 마르크스를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쓴 이 책은,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최신 마르크스 입문서'입니다.

지금,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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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 지은이 이시카와 야스히로(홍상현 옮김) / 펴낸곳 나름북스 출판사 / 2016년 11월 28일 / 값 15,000원 ⓒ 나름북스


흔히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그 말이 틀리진 않지만, 그가 만약 지금 대한민국에 있다면 어떨까요? 그의 이론에 앞서, '종북 빨갱이'란 딱지가 붙어 불온한 세력으로 취급될 게 분명합니다. 저자 이시카와 야스히로 또한 일본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며, 마르크스의 사상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돼왔고, 왜곡됐는지 설명합니다.

"스탈린의 교활함이 특히 드러난 것은 이 체제(개인적 전제 체제)를 마르크스와 레닌의 이름으로 정당화시켜 세계의 공산주의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는 점입니다.(...) 1991년 소련 붕괴는 일본의 지배층이 '마르크스와 공산주의는 죽었다.', '공산당은 시대에 뒤떨어졌다', '자본주의 만세'라며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는 계기가 됐습니다. 일본의 서점에서 마르크스의 책이 사라지는 일도 일어났죠. " -본문 중에서

그 이면에는 스탈린의 독재, 미국의 견제 등 복잡한 국제사가 있습니다. 그러니 공산주의가 무조건 빨갱이들의 생각이라는 편견을 가지기 전에, 일단 마르크스와 공산주의를 제대로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요? 특히 저자의 말대로 대학생을 포함해 공부를 하려는 이들에게는 더욱 편견과 정치 프레임을 버리고, 학문 자체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마르크스의 삶과 그의 이론 또한 그랬으니까요. 책에 따르면 젊은 시절 마르크스에게는 세계를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이 었었다고 합니다. 유물론, 변증법, 경제를 사회의 토대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벌써부터 어렵게 느껴지시나요. 괜찮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자는 대중 입문서니까요. 저자의 해설을 천천히 읽어내려가다보면 앞선 내용들이 이렇게 쉬운 거였나, 하는 마음마저 듭니다.

"'불이 뜨겁다고 믿으니, 손을 가까이 가져가면 데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학비가 비싼 것이다.' 등 관념론의 구체적인 예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겠죠.(...) 마르크스의 견해는 정반대였습니다. 관념이 현실을 구성하는 게 아니라, 현실이야말로 관념을 만들어내는 근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런 관점을 유물론이라고 불렀습니다." -본문 중에서

공산주의 이론 역시 이 같은 관점에서 탄생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입니다. 한 마디로 과학적인 방법에 따라 연구한 학문에 가깝지, 이상 뿐인 이야기가 아니란 것이죠. 그렇다면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산주의 사회란 과연 무엇일까요. 공산주의하면 우리의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북한 김씨 일가의 3대 독재 체제를 말하는 것일까요?

이 오해를 풀기 위해 먼저 해야 할 것은, 마르크스가 예견한 자본주의의 모순이 현재의 모습과 얼마나 닮아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저자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진정한 한계는 자본 그 자체다. (...) 결국 생산은 자본을 위한 생산에 지나지 않는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하며 자본주의에서 의 생산, 즉 노동은 '이윤 제일주의'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 예로 든 것은 대부분 불안한 노동 환경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한국 역시 유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죠.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아르바이트생,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홀로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던 어린 노동자,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까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공산주의의 가치가 대두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해결해가는 결과로서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본가의 사적 이윤 추구에 오로지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 전체의 행복과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이익'이 아닌, '모두의 이익'을 위한 생산이 그 중심입니다. 그렇게 보면, 로열 계급만 호위호식하는 북한의 독재 체제는 공산주의 사회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이죠.

다시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를 바라봅니다. OECD 국가별 노동시간 '일등'와 실업률 개선 '꼴찌', 그에 비해 쌓여만 가는 대기업의 사내보유금, 이를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정부, 이런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자조하는 이 나라 청년들.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 마르크스가 있었던들, 과연 뭘 할 수 있었을까요? 이에 대해 저자는 역시 마르크스로 답합니다.

"실제로 마르크스 시대의 영국에서는 아이들과 여성들까지 포함된 노동자들이 과로와 공장의 비위생적 환경 등으로 목숨을 잃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 운동이 일어나 경영자들과의 격렬한 투쟁이 전개됩니다. 핵심은 노동 시간의 제한이었죠.(...) 공장입법이 노동자와 국민의 투쟁으로 자본주의를 조금씩 개혁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단 말입니다." -본문 중에서

자본주의의 문제는 결국, 그 문제들에 대한 규제와 개혁을 통해서 해결될 수 있다는 소리지요. 또한 그래야만 성숙한 미래 사회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 변화는 노예제가 농노제로, 농노제가 자본제로 바뀐 것처럼 '긴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입니다. 참. 성숙한 미래 사회란, 마르크스에 따르면 공산주의겠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는 '복지사회'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질문'을 던져보자

조정래 작가는 책 <인간연습>에서 공산주의의 실패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이성이란 본능을 이길 수 없고, 그것이 인간의 한계 아닐까. 그 '인간의 한계'가 사회주의 몰락의 절대 원인은 아닐까." '다 같이 잘 살자'는 인간의 이성은 언제나, 사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능을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조금 다른 생각을 합니다. 고종 시절, 강화도 조약으로 채광권이 외인에게 넘어가는 걸 반대하던 광산노동자부터,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던 전태일 열사, 남성주의 사회에 머물지 않고 '유리 천장'을 깨려는 '여성들'까지. 그들은 자신의 이익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살고자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는 아무 희망도 꿈도 없었을 것입니다.

조정래 작가의 말에서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몰락'과 '실패'가 아닙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잠시 넘어진 것뿐이지요. 저자가 사는 일본에서 '소련의 앞잡이'라고 불리던 일본 공산당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마르크스 자신 역시 미래 사회의 구성은 단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꽤 '긴 기간'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처럼요. 

'취업난이 심하다고 생각하니까 취업이 어려운 거다'고 누군가 말하면 어떨까요. 바보 같은 소리라고 할 게 분명합니다. 공산주의는 '빨갱이들의 생각이니까, 나쁘니까, 실패했으니까', 라는 소리도 이와 비슷하겠지요. 공산주의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면 잠시 내려놓고, 이 책을 통해, 마르크스의 생각을 통해 '내'가 사는 한국 사회에 새로운 질문들을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면접관이 이번에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왜 이 직업을 선택했나요?'

덧붙이는 글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 지은이 이시카와 야스히로(홍상현 옮김) / 펴낸곳 나름북스 출판사 / 2016년 11월 28일 / 값 15000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이시카와 야스히로 지음, 홍상현 옮김,
나름북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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