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짝 마" 한 마디에 불탄 청소년 288명의 목숨

[중국 사람 이야기 ⑩] 중국판 '세월호 참사', 20년 지나도 못 잊는 사람들

등록 2016.12.28 09:30수정 2016.12.2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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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2월 8일 오후 6시 중국 커라마이시 우정공연장에서 초·중학생 736명과 선생님, 공무원 등 총 796명이 참여한 문맹 퇴치 기념공연이 열렸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고 20분이 지난 오후 6시 20분, 공연장 무대에서 화재가 발생해 초등학생과 중학생 288명 그리고 선생님과 교육 실무자 34명이 사망했습니다. 부상자는 132명이나 됐는데, 그중 60명은 중상을 입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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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딸을 잃은 부모님 ⓒ baidu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당시 중국 주석 강택민과 총리 이붕이 급히 현장을 찾아 유가족을 만났지만, 이미 화재로 초·중학생(7~15세) 자녀를 잃은 부모에겐 크게 위로가 되진 못했을 겁니다.

화재 발생 과정 그리고 사망사고 원인 조사

무대 위에 설치된 조명등 중 하나가 과열돼 불이 났고, 이 불이 무대 막으로 옮겨 붙었습니다. 그리고 무대 막에 붙은 불이 관람석으로 번지면서, 공연장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커라미이시 우정공연장은 1층에 있었습니다. 공연장에서 건물 복도로 나갈 수 문은 6개, 복도에서 외부로 나갈 수 있는 문은 8개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화재가 발생하자 참석 어린이 736명 중 288명이 대피하지 못하고 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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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공연장 건물 평면도 ⓒ baidu


중국 정부는 사고 발생 후 신속하게 사망 사고 발생 원인을 조사하고, 그 내용을 발표하면서 커라마이화재 사망 사고는 인재(人災)임을 인정합니다.

우정공연장은 사고 발생 2년 전에 개축하면서 내부 시설을 다시 설치했습니다. 이때 소방당국은 무대막과 조명등이 23cm밖에 떨어지지 않아 화재 위험이 있다면서 문서로 개선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우정공연장 주임(주임은 중국에서 조직의 최고 책임자 직위입니다)은 이를 개선하지 않았습니다.


우정공연장 '차이자오평' 주임은 화재사고 발생 시 이미 퇴근해 현장에 없었지만, 재판부는 최고 책임자로서의 관리 태만 죄명으로 징역 5년을 선고합니다.

조명등에서 시작된 불이 무대 막에 옮겨 붙자, 우정공연장 직원들이 이동식 대형 소화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끄려 했지만, 소화기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우정공연장 '카더얼' 부주임은 시설 관리 태만과 어린이를 대피시키지 않은 죄명으로 징역 6년을 선고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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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공연장 건물 평면도 ⓒ baidu


화재 발생 당시 공연장에서 건물 복도로 나갈 수 있는 문 6개(위 평면도에서 A, B, C, D, E, F)중 2개(C, D)는 열쇠로 잠가 놓아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건물 복도에서 외부로 나갈 수 있는 문은 8개(평면도 상 1~8) 있는데, 그 중 3번 문 하나만 열려 있었고, 나머지 문 7개는 열쇠로 잠가 놓아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공연장에 있던 796명은 오직 3번 문을 통해서만 외부로 대피할 수 있었습니다.

공연장 문 열쇠를 관리하는 담당 직원은 화재가 발생하자 도망가 버렸습니다. 재판부는 직무 태만과 화재 발생 상황에서 열쇠로 문을 열지 않은 죄로 열쇠 담당 직원에게 징역 6년을 선고합니다.

화재가 발생한 후 상황이 위험해지자, 시청 교육부 간부직원 중 한 명이 일어나 소리쳤습니다.

"따지아또우쭈어시아, 부야오똥, 랑링따오시앤조우"(大家都坐下,不要動!讓領導先走!)

한국어로 해석하면 "모두(어린이) 꼼짝 말고 앉아 있어라. 우선 고위직이 먼저 대피하겠다"입니다.

무대 맨 앞 좌석에 있던 고위직 공무원과 공연장 직원들이 제일 먼저 대피합니다. 그래서 고위직 공무원 26명은 모두 생존합니다. 고위직 공무원이 모두 대피하고 나서 선생님들이 어린이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이 대피하던 중 하나밖에 없던 탈출구 문이 불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때까지 대피하지 못했던 어린이 288명 그리고 선생님과 구청 교육 실무자 34명이 사망하고 맙니다.

고위직 공무원들은 하나 남은 탈출구 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무대 앞 좌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위직 공무원들이 탈출구 문으로 접근하기 위해 공연장을 가로질러 가는 시간 동안 누구 한 사람도 하나 남은 탈출구 문으로 대피하지 못했습니다. 대피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골든 타임'을 놓친 거지요.

죽은 자와 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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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딸을 잃은 부모님 ⓒ baidu


7세에서 15세까지 초·중학생 어린이 736명 중 288명이 사망했습니다. 선생님 18명 중 17명이 사망했습니다. 구청 교육담당 직원 23명 중 고위직 공무원을 제외한 17명이 사망했습니다. 고위직 공무원 모두와 공연장 근무자 대부분이 생존했습니다.

재판

커마라이화재 사고로 19명이 징역형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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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판결문 ⓒ baidu


공연 참석 시청 공무원 중 가장 직위가 높은 시청 석유관리국 부국장(실제 직급은 시장급입니다) '방티앤루'씨는 화재 대피 지휘 관리를 하지 않고 혼자 도망간 죄명으로 5년 징역형을 선고받습니다. 이 분은 화재현장에서 제일 먼저 도망 나온 후 머리카락이 그슬려서 아프다면서 차를 몰아 병원에 갔습니다. 그 시각, 대피하지 못한 어린이들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공연장 참석 시청 공무원 중 두 번째로 직위가 높은 부시장 '자오란시우'씨는 4년 6개월 징역형을 받습니다. 이 분은 화재 발생시 소방서에 신고하고, 전기 전원을 내리는 등 화재진압을 지휘했고, 공연 중이었던 어린이들을 대피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얼굴 90%가 화상을 입고, 손가락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의 화상을 입었지만, 책임자이기 때문에 형량이 무거웠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시청 교육부 주임(주임은 중국에서 조직의 최고 책임자 직위) '탕지앤'씨와 시청 교육부 부서기(조직에서 직위가 두 번째 정도) '꽝리'씨는 어린이 대피 지휘 관리를 하지 않고 혼자 도망간 죄로 각각 4년과 5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습니다. 이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어린이들은 꼼짝 말고 앉아 있어라"라고 말했는데, 누구인지는 아직 논쟁 중입니다. '꽝리'씨는 기자가 왜 어린이를 놔두고 혼자 살려고 도망갔느냐고 묻자 "사람은 당연히 자신의 목숨부터 챙긴다"라고 대답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습니다.

그 외 화재 현장에 있었던 시청 교육부 과장 '주밍롱'씨 역시 어린이를 대피 시키지 않고 혼자 도망간 죄로 징역형 4년을 선고 받습니다. 하지만 같은 직급인 시청 교육부 과장 '자오정'씨는 어린이를 대피시키고 마지막에 탈출했기 때문에 무죄를 선고 받습니다.

여기까지가 현장에 있었지만, 어린이를 대피시키지 않고, 혼자 살겠다고 제일 먼저 도망간 고위직 공무원에 대한 재판 결과였습니다.

다음은 화재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관리 감독을 책임지던 상위 기관의 고위직 공무원에게는 어떤 책임을 물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시청 총공회문화예술중심(한국식으로 바꾸면 시청 문화국 정도 됩니다)은 문화예술 관련 행사를 총괄하고 공연장을 감독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입니다. 그래서 카라마이시 문맹퇴치기념 예술 행사도 당연히 시청 총공회문화예술중심에서 공연 허가를 받았습니다. 또 이 기관은 화재가 발생한 우정공연장 시설 감독 업무도 담당합니다.

시청 총공회문화예술중심 주임(주임은 중국에서 조직의 최고 책임자 직위) '순용'씨는 문화예술 행사 감독 태만과 공연장 시설물 감독 태만으로 4년 징역형을 선고 받습니다. 시청 총공회문화예술중심 교육위원 '자오종정'씨는 예술 행사 관리 감독 태만으로, 부주석 '위에린'씨는 공연장 시설물 관리 감독 태만으로 각각 4년 징역형을 선고 받습니다.

이제부터는 사고 조사를 마치고, 또 그 조사 내용을 근거로 관련자들을 처벌하는 재판이 끝난 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꼼짝 말고 앉아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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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사고에서는 어린이 먼저, 커라마이화재에서는 어린이는 나중에 (풍자만화) ⓒ baidu


화재가 발생하자 시청 교육부 간부 직원이 "어린이는 꼼짝 말고 앉아 있어라"라고 말했다는 사실은 <중청보>(중국청년신문) 기자가 처음 보도했습니다.

사고 조사가 마무리되고 나자, 교육부 간부 직원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인터넷에 퍼졌습니다. 이 주장에 따르면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어린이들에게 주의사항을 이야기하면서 행사가 끝난 후에, 고위직 공무원이 먼저 퇴장해야 하니까, 그때까지 자리에 앉아 있으라고 말했는데, 어린이들이 착각해서 화재가 발생하고 나서 들었다고 한다'는 겁니다.

2006년 화재사고를 겪은 어린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커마라이화재 관련 유언비어 조사>가 이뤄졌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청 교육부 간부 직원이 분명히 "어린이는 꼼짝 말고 앉아 있어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커라마이화재 기념관

사고 발생 장소인 우정공연장 건물은 사고 발생 후 3년 동안 화재 흔적이 남아있는 폐허 상태로 보존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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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건축한 우정공연장 앞면 건물 ⓒ baidu


1997년 4월 건물의 앞면만 다시 건축하고 나머지 뒷면은 완전히 철거했습니다. 그러니까 건물 앞면만 있는 조금 이상한 건축물이 된 거지요. 다시 세운 우정공연장 앞면 위에 '우정관'이라는 건물 이름만 썼습니다. 건물 벽에 화재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 이름을 새겨 넣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커라마이화재 기념행사

행정기관에서 진행하는 커라마이화재 기념행사는 없습니다. 하지만 화재 발생일이 되면 매년 언론(신문, TV)에서 화재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현재 어떻게 사는지, 또 화재에서 상처를 입은 생존자(부상자 132명 중 중상자 60명)들이 현재 어떻게 사는지 취재해서 방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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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라마이화재 15주년 행사 ⓒ bai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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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라마이화재 20주년 행사 ⓒ baidu


인터넷에서는 매년 화재 발생일을 즈음하여 커라마이화재 사고의 발생과 처리 결과에 대해 대토론회가 열립니다.

누리꾼들의 활동

지금도 중국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이 "어린이들은 꼼짝 말고 앉아 있어라, 우선 고위직이 먼저 대피하겠다"라는 말에 분개하고 있습니다. '고위직 공무원과 공연장 근무 직원들이 어린이들을 먼저 대피시켰다면, 어린이를 모두 살릴 수 있었을 텐데'라면서 말이죠. 또 누군가는 '최소한 고위직 공무원이 공연장을 가로질러 가면서 허비한 골든 타임 동안, 어린이들을 대피시켰다면 모두는 아니라도 많은 어린이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중국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은 "꼼짝 말고 앉아 있어라"라고 말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청 교육부 주임 '탕지앤'씨와 시청 교육부 부서기 '꽝리'씨 두 사람의 생활 내용을 실시간으로 공개합니다. 직장을 옮겨도,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도 인터넷에 올라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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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을 잊어버리면, 반드시 반복됩니다 (그림 아래 부분 한자 해석) ⓒ baidu


이미 20년 전의 일인데, 너무 한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많은 누리꾼들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음에 또 누군가가 '어린이들은 꼼짝 말고 앉아 있어라, 우선 고위직이 먼저 대피하겠다'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반박합니다.

죽을 때까지 어린이를 대피시킨 선생님

최근에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 어린이를 살리고, 보호한 선생님을 기억하고 존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합니다.

학교를 퇴직했다가 어린이가 좋아서 다시 학교로 돌아와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을 하던 '멍추이펀' 선생님은 온몸으로 어린이를 감싸고 엎드린 자세로 불에 타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품속에 있던 어린이는 살아났습니다.

제8초등학교 '장리' 교장 선생님과 제1중학교 '니전씽' 교감 선생님은 어린이들을 벽에 붙여 앉히고 자신들의 몸으로 어린이를 감싸 안은 채 사망했습니다.

제7중학교 '조우리앤' 선생님은 불붙은 커튼 천으로 출입구 불을 끄면서 어린이를 밖으로 내 보냈습니다. 커튼 천이 모두 불 타자 선생님은 더는 출입구 불을 끌 수 없어 공연장 안에서 사망했습니다.

덧글. 자료 출처 중국 인터넷 주소를 알려드립니다. 중국어 고수분들께서 제가 조사한 자료와 다른 내용의 자료를 찾는다면 알려주시길 부탁합니다.

(1) 바이두 백과 사전 (사건 개요)
(2) 바이두 백과 사전 (사건 관련인)
(3) 사건 재판 결과 자료
(4) 누리꾼 사건 회고 자료
#중국 #중국사람 #커라마이 #커라마이화재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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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중국사람이야기>,<중국인의 탈무드 증광현문>이 있고, 논문으로 <중국 산동성 중부 도시 한국 관광객 유치 활성화 연구>가 있다. 중국인의 사고방식과 행위방식의 근저에 있는 그들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중국인과 대화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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