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에 비난 가한 박사모, 안타깝다

[게릴라칼럼] 박근혜 정권이 뒤틀어 놓은 진보-보수 대결구도와 박사모의 마지막 '발악'

등록 2017.01.01 00:30수정 2017.01.0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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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연예대상의 한 장면. 유재석의 수상 소감을 두고 박사모가 비난을 가하고 나섰다. ⓒ MBC


"제가 유재석이 아름다운 재단에 그렇게 많은 돈을 기부한 걸 알게 되고 너무 흥분했었어요. 뭔지 이상하게 화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못 참고 그 후에 유재석 기사 나기만 하면 열을 내며 댓글을 달았죠.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말이죠. 제가 주장한 바는 왜 저쪽 단체에만 기부하고 애국우파 단체 어버이연합 같은 데는 기부 안 하냐. 불공평하다. 유재석 의심스럽다. 의심 안 받으려면 양쪽 다 공평하게 기부하면 내가 이런 댓글 안 달겠다, 라고 했죠."

안타깝고, 또 안타까웠다. 왜 방송인 유재석이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를 하는지, 그렇다면 그 단체는 왜 '이쪽', '저쪽'이란 꼬리표를 달게 됐는지, 더군다나 유재석은 왜 어버이연합 같은 단체에 기부를 하지 않는지. 이를 알아보려고 노력하지 못하는 글쓴이의 한계가 너무나 뚜렷하고 안쓰러워서다.   

이 안타까운 글이 인터넷 카페 박사모(박근혜대통령을사랑하는모임) 내 화제 글에 등극했고, 여러 매체가 기사화되면서 30일 하루 인터넷을 달궜다. '대구 서문시장에 유재석이 5천만 원 기부한 거에 대하여'란 이 글은 지난 28일 박사모에 게재된 글이다.

더욱이, 29일 MBC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유재석의 수상소감이 관심을 끌면서 이른바 '국민 MC'이자 '유느님' 유재석을 건드린 박사모에게 조롱과 비난이 가해지는 형국이다. 이 상황을 들여다보기 전에 왜 어버이연합에는 '유재석이 기부를 안 하느냐'고 불평했던 박사모 회원의 글을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글쓴이의 '멘탈'과 상황인식을 살펴보면, 박근혜 정권이 더 망가뜨려 놓은 기이한 균형 논리와 뒤틀린 진보-보수, 좌파-우파 프레임을 확인하는 단초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10월쯤 유재석 관련 트위터에서 거기 매니저인지 하는 사람과 본격적으로 시비를 붙은 적이 있어요. 왜 유재석이 좌파시민단체에만 기부하냐 정말 실망이다. 어떻게 국민엠씨가 그럴 수 있냐. 왜 편향됐냐. 우파한테도 기부하면 내가 분노를 멈추겠다, 했더니 상대가 저한테 흥분하며 따져 대더라구요. 기부할 때 그 대표가 어디에 쓸지 어떻게 일일이 알고 기부하냐 하면서 계속 저를 몰아세우더라구요. 그래도 저는 계속 같은 말만 주장했죠.

우파단체에도 기부하면 내가 정치적 기부가 아니고 순수한 기부행위로 인정해주겠다고요. 그래서 그런가 얼마 전 <연합뉴스> 자막에 작은 글씨로 유재석 불난 대구 서문시장에 5천만 원 기부... 이런 글씨가 지나가서 순간 너무 놀랬죠. 거기 기부 사연은 내가 유재석이 아니라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저는 뭔지 기분이 그날 좋더라고요."


"유재석씨, '애국우파' 단체인 어버이연합에는 왜 기부 안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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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박사모에 올라온 유재석에 대한 비난 글. ⓒ 인터넷 갈무리


'왜 유재석은 좌파시민단체에만 기부하느냐', '왜 어버이연합과 같은 애국우파 단체에는 기부하지 않느냐'.

글쓴이의 논리를 요약하면 이 정도다. 최근 특검이 수사에 돌입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의하면, 아름다운재단은 아마도 좌파시민단체로 분류될지 모를 일이다. 또한 아름다운재단에 10년째 500만 원씩 기부한 사실이 알려진 유재석 역시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야 마땅할 듯싶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재직하고 관여했던 단체인 아름다운재단이니만큼, 박원순 시장 지지자들이 명단에 포함된 블랙리스트에 유재석도 당당하게 리스트 하나를 차지해야 하지 않겠나.

아마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아 블랙리스트 작성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전 비서관 3인방(김소영·신동철·정관주)의 인식 수준도 딱 거기까지였을 것이다. 문화예술계의 상황을 세세하게 파악하기는커녕 소위 '연좌제'에도 미치지 못하는 천박하고 나이브한 인식으로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 박 대통령이 좋아할 만한 좌파 '라벨링'에 몰두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좌파에 기부를 했으니 우파에도 기부를 해야 한다'는 논리는 또 어떻게 봐야 하나.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 들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 '기계적 균형'이란 기이한 프레임이 박근혜 정부 들어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다고 보면 맞을 것 같다. 더욱이, 정권이 장악한 '부역 언론' KBS와 MBC를 비롯해 종편까지 가세해 진보-보수의 대결 구도를 열렬하게 확대재생산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예컨대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이 만 명이 집회를 몇 시간 동안 개최하면, 한쪽 어귀에서 백여 명이 모인 어버이연합이나 엄마부대·박사모의 집회가 고스란히 애국보수단체의 '맞불집회'라는 이름으로 보도돼 왔던 것이 박근혜 정부 하의 언론지형이었다. 그리고 이 진보-보수 프레임은 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거세진 보수층의 저항과 맞물려 애국보수 집회로 나타났고, 여전히 그 프레임을 고수하는 매체들도 적지 않았다.

이에 편승해, 검찰은 돈을 받고 동원된 어버이연합의 '관제데모' 수사의 결론을 8개월째 미루는 중이다. 유재석을 비난한 박사모 회원과 같이 '기계적 균형' 프레임에 포획된 희생자들을 정권과 검찰, 언론의 삼위일체가 양산해 왔던 것이다.

그런 피해자에겐 유재석이 대구 서문시장에 5천만 원을 기부한, 화재 피해자를 위한 지극히 순수한 기부까지도 색안경을 쓰고 '정치적 기부'로 보지 않겠는가. 아니 도대체, 화재 피해자들을 위해 큰 돈을 기부한 유재석은 무슨 죄인가.

진보-보수 프레임이 낳은 괴물들, 박근혜 정권이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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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에서 우토로 마을을 찾은 유재석. 과거 우토로 마을을 찾았던 사연이 공개되면서 한층 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 MBC


"무한도전이 안 그래도 촛불세력을 지지하는 듯한 뉘앙스의 말들을 방송 중간 중간에 넣고 박근혜 대통령님 담화문까지 패러디했던 것까지는 참았는데 대상 소감으로 말한다는 게 고작 이런 거였나요? 당신은 김제동이랑 다를 게 없습니다."

"유재석 팬이었는데 대실망입니다. 돈맛을 보면 말만 번지르하게 하게 되나 봅니다. 전라도 여자랑 결혼하더니 갈수록 실망입니다. 곧 휴식이 필요하겠네요."

29일 MBC <연예대상> 방송 이후 박사모에 올라온 유재석에 대한 비난 글이다. 유재석의 수상 소감이 '사이다', '개념 소감' 등으로 화제가 되자 그에 관한 비난이 유재석은 물론 <무한도전>과 가족에까지 다다른 것이다. 박사모가 문제 삼은 유재석의 수상 소감은 이러했다.

"<무한도전>을 통해 많은 걸 느끼고 배웁니다. 요즘 특히 역사를 통해서 나라가 힘들 때, 나라가 어려울 때, 나라를 구하는 것은 국민이고,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 요즘 꽃길 걷는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소수의 몇몇 사람이 꽃길을 걷는 게 아니고, 내년에는 대한민국이 꽃길로 바뀌어서 모든 국민 여러분들이 꽃길을 걷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됐습니다"란 유재석의 말을 꼬투리 잡는 '애국보수'는 과연 어느 나라 국민인 건가. "내년에는 대한민국이 꽃길로 바뀌어서 모든 국민 여러분들이 꽃길을 걷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는 덕담을 귓등으로 흘려듣는 이들과 그 누가 '소통'을 시도할 수 있을까.

더욱이 유재석은 최근 <무한도전>의 역사와 힙합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인 '위대한 유산'을 진행 중이다. 멤버들과 함께 유재석은 방송을 통해 우리 근현대사와 '국민', '백성'의 힘에 대해 새삼 깨달았노라고 고백한 바 있다.

그러한 맥락을 놓고 보면, '시국'을 논외로 하더라도 국민 한 사람으로서 충분히 건넬 수 있는 덕담이요 고백이라 할 만하다. 특히나 <무한도전> '배달의 무도' 이전에 이미 일본 우토로 마을에 기부를 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후원해 왔던 그가 아니었던가.

유재석을 향한 박사모의 근거 없는 비난은 일회성이라기보다 '태세 전환'이라는 측면도 존재한다. 이른바 '박근혜-김정일 편지' 사건으로 비아냥을 자초했던 박사모가 타격의 대상을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등 정치인에서 '좌파' 혹은 '촛불집회' 참여 연예인으로 바꾸는 것 아닌가 하는 의견들도 적지 않다.

일간베스트(일베)와 유전자를 공유하는 박사모가 촛불집회에 참석했다는 이유로 최근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3번째로 '병역 등급 보류' 판정을 받은 배우 유아인을 공격한 것이 좋은 예다. 앞서 박사모는 세월호 노란리본을 달고 KBS <1박 2일>에 출연한 배우 김유정에 대해서도 비난을 가했다. 전국에서 만민공동회를 열고 있는 김제동은 이들의 단골 타격 대상이다. 유재석에게 가한 비난의 논리를 떠올리면, 이들의 어긋난 공격은 동정심을 일으키기는커녕 분노를 자아내게 만든다.

2016년을 하루 앞둔 지금, 박 대통령은 지금 쥐죽은 듯이 청와대에서 칩거 중이다. 이런 와중에 박 대통령 측 탄핵심판 변호인 측은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며 혐의를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그 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박사모는 청와대에 "박근혜 대통령님 힘내십시오"란 전화 메시지 남기기 운동에 한창이라고 한다.

이들 박사모의 연예인과 문화예술인들을 향한 공격이, 스러져가는 박 대통령과 그 지자들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치부하고 이해해주기엔 사회적 피로감이 너무 크다. 이 모두 국정을 농단한 '대통령 박근혜'와 '박정희 체제'가 남긴 거대한 얼룩이라고 생각하니, 2016년의 끝자락에 더욱더 가슴이 쓰려 온다.
#유재석 #박사모 #김제동 #김유정 #유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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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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