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로 '송박영신' 하자

[서평] <경향> '장도리' 화백 박순찬, <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

등록 2016.12.31 21:56수정 2016.12.3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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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장도리' 박순찬 화백의 <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 ⓒ 비아북


박순찬 화백이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경향신문> 연재만화 '장도리'의 1년여 내용을 한 권으로 모아 <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비아북)를 출간했다. 앞서 네 권의 책을 낸 바 있는데, 이번 책에서 가장 생생한 현실의 숨소리가 들린다. 차가운 아스팔트를 달구는 촛불 함성과 함께 호흡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작가도 작가의 말에서 "지금 수많은 민중이 사이비 기업, 사이비 민주주의, 사이비 언론이 아닌 진짜 시장경제, 진짜 민주주의, 진짜 언론을 요구하며 촛불을 켜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책에 실린 만화의 상당수는 촛불집회에서 울려 퍼지는 내용과 직접·간접적으로 관련을 맺는다. 지난 몇 개월 간 나타난 충격적 현실을 다룰 뿐만 아니라, 아직 대부분의 언론이 애써 눈을 감던 오래 전부터 예리한 눈길로 사태의 심각성을 예감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외과의사의 날카로운 메스처럼 권력의 환부를 늘 관찰하던 작가의 문제의식이 있기에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었을 것이다.

박근혜는 '멍'그리고 '짝퉁'

촛불집회 현장에서 느끼는 절묘한 조화, 즉 세계가 경이로워하는 시위와 축제, 분노와 재치의 결합도 그의 만화 속에서 이미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네 칸 만화 안에 살아 숨 쉬는 풍자정신이 광화문 광장으로 확장된 느낌이 들 정도다.

예를 들어 '빙의'라는 만화에서는 최순실이 빙의된 박근혜가 재벌 총수들을 만나 "혼이 정상이면 우주가 도와주어 대박이 날 것이니 돈 내세요"라고 한다. 다음 칸에서 "촛불은 바람 불면 다 꺼져"라고 한 김진태(새누리당 의원)는 박정희 시대에 민주화운동을 "탱크로 밀어버리면 다 끝나"라고 했던 차지철이 빙의된 것으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 수십 년이 지났지만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부패나 통치 논리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음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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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 중 '빙의' ⓒ 비아북


박근혜의 무능을 비판할 때도 분노를 거칠게 드러내기보다는 절묘한 풍자에 실어 효과를 높인다. '총에서 멍으로'를 보면 역대 대통령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 쿠데타의 시조인 박정희는 '총'이고 전두환은 무식해서 '돌', 노태우는 '물'이다. 김영삼은 IMF로 국민을 깡통 차게 해서 '깡', 이명박은 하도 거짓말을 잘해서 '뻥'이다.

박근혜는 아무 것도 안하고 멍만 때리고 있어서 '멍'이다. 세월호, 전염병, 유해제품, 취업난, 전월세난 등 심각한 사회문제 앞에서 박근혜는 초지일관 멍한 얼굴이고 결국 멍때리기 대회에서 우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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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 중 '총에서 멍으로' ⓒ 비아북


박 화백의 풍자는 상황에 걸맞도록 언어를 요리하는 데서 절정에 달한다. 예를 들어 박정희는 법과 민주주의의 박을 깨트려서 '박통', 전두환은 돈에 환장해서 '전통', 노태우는 두 말이 필요 없는 '물통', 김영삼은 '깡통'이다. 박근혜는 최순실의 아바타여서 '짝통'이다. 짝퉁 대통령이어서 짝통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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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 중 '짝퉁' ⓒ 비아북


한국의 통치사를 추적할 때도 언어가 비판의 결을 더 예리하게 만든다. 왕이 통치하는 왕정, 군이 통치하는 군정을 거쳐 지금은 최순실이 사실상 통치하는 '실정'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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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 중 '실정' ⓒ 비아북


또한 박근혜 정부의 정책도 몇 마디로 말로 압축된다. 신공항은 백지화, 국정교과서로 국민을 백치화, 청년은 실업자로 백수화한다. 마지막으로 국가기관은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를 옹호하도록 백구화된다. 주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꼬리를 흔들며 핥는 강아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림에 하얀색 강아지 '백구'가 그려져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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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 중 '백지화' ⓒ 비아북


배후의 구조까지 문제의식 심화 

만화라고 해서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박 화백의 만화는 당장 벌어진 시사적 사건을 지적하는 데서 머물지 않는다. 현실 사건이나 문제의 한 단면에서 출발하지만 현상에 머물지 않고 배후의 구조적인 문제로까지 문제의식을 심화한다.

만화를 통해 얻은 비판적 시선을 더 심층적인 내용으로까지 관심을 갖고 들어가도록 유도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를 통찰로 이끈다.

'매트릭스'에서는 과연 한국이 민주공화국인가라는 의문을 영화 '매트릭스' 장면을 연결해 설명한다. 영화가 그러하듯이 한국의 배후에는 재벌과 최순실이 있어서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조종한다.

헌법 제1조 1항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규정하고 있음은 누구나 안다. 수많은 정치인과 언론이 이 조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정작 '민주공화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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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 중 '매트릭스' ⓒ 비아북


대충 다수결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국가 정도로 이해한다. 그러면 '공화국'은 그저 국가라는 말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엄밀하게 볼 때 민주주의와 공화국은 별개의 개념이다. 공화국은 역사적 개념으로서, 국가를 공적인 영역으로 규정하고, 사적인 영역이 국가 영역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한다.

대표적인 사적 영역이 재산이나 신분, 종교 등이다. 박 화백의 만화는 재벌의 돈이나 비선 인맥과 같은 사적 영역이 국가를 좌지우지 한다면 이미 공화국일 수 없다는 의미를 담는다. 헌법이 규정한 공화국의 의미에 대해 더 깊이 있는 고민을 유도한다.

'실력'에서는 돈도 실력이니 부모를 원망하라는 정유라의 말을 금수저도 실력이니 친일 안 한 조상을 원망하라는 대한민국 부유층의 말로 연결한다. 이 역시 당장 나타나는 정유라와 최순실의 행태를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언론에서 한 발 더 들어가는 것이 최순실 집안의 재산이 형성된 유신 말기에서 찾는 정도다. 하지만 이 만화를 통해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특권층의 재산형성의 뿌리를 파고들 때 일제강점기와 해방직후까지, 더욱 더 구조적인 영역으로까지 접근하도록 자극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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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 중 '실력' ⓒ 비아북


'장도리의 現在史'(현재사) 시리즈도 일독을! 

흔히 한국을 자조적인 표현으로 '국민 노릇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한다. 장도리 만화는 사이비 기업, 사이비 민주주의, 사이비 언론으로 얼룩진 한국사회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대신 관조적인 의미의 자화상은 아니다. 문제에 비켜서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도록 풍자를 통해 격려한다. 나아가서는 문제가 생겨난 뿌리와 구조를 고민하도록 이끈다.

한국사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만화집을 권한다. 더불어 시간이 허락된다면 이명박근혜 정권 8년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작 <나는 99%다>, <516 공화국>, <세월의 기억>, <헬조선에 장도리를 던져라> 등 '장도리의 現在史' 시리즈도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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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찬 <경향신문> 화백의 연작 <장도리의 現在史> ⓒ 비아북


덧붙이는 글 박홍순씨는 글쓰기와 강연을 통해 인문학을 넓히는 활동을 해왔다. 저서로 <미술관 옆 인문학>, <헌법의 발견>, <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 <장자처럼 살라> 등이 있다.

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 - 장도리의 대한국민 現在史 2015~16

박순찬 지음,
비아북,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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