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옷 입고 인사하는 김밥집 사장님, 이유가

[인터뷰] 효창동 어머니맛 김밥 박성도 사장님

등록 2017.01.04 17:15수정 2017.01.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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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맛 김밥집 사장님의 아침 인사 ⓒ 설혜영


아침 9시쯤 되었을까 효창동 익숙한 동네길을 지나다 어우러지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다. 한 가게 앞에서 중년 남자분이 길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계신 것 아닌가.


흰 중절모를 썼는데 모자 위 쪽에 빨간 꽃도 꽂혀 있고, 분홍색 넥타이도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왜 내가 부끄러웠는지 모르겠다. 다행이도 나는 차를 타고 지나고 있었다. 그분의 시선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지나면서 보니 만면에 미소를 가득 담고, 90도로 정중히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 자세히 보니 앞치마를 두르고 계셨는데, 김밥집 천막 아래 서있었다. 아, 김밥집 사장님이구나.

지난해 12월 8일 점심시간. 김밥을 먹는 건 어떠냐며 동료가 그 김밥집 얘기를 한다. 부부가 하는데 김밥 맛이 나쁘지 않단다. 4평이 채 안되는 작은 공간에 그 분과 부인이 함께 일하고 계셨다. 나는 김밥을 먹으며 틈틈히 그분의 모습과 가게를 살폈다. 말씀을 나누고 싶어 첫 마디를 뗄 적절한 말을 찾고 있던 터에 반갑게도 나와 같은 관심사를 발견했다. <백범일지>가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위 선반에 두 권이나 나란히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사장님 김구선생님 좋아하시나봐요?" 여쭤보니 "우리 남편은 백범 팬이라면서 백범일지 필사도 하고 계신다"는 여사장님의 답이 돌아왔다. 그제서야 남자 사장님 말씀하신다. "감동적이었어요. 동네에 백범일지 읽는 모임이 있다면 같이 하고 싶어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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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맛 김밥집 책꽃이에 꽂힌 백범일지 ⓒ 설혜영


자영업자 3명중 1명만 살아남는다는 치열한 생존 경쟁의 시장에 용감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프렌차이즈도 아닌 홀홀 단신 자영업자. 큰길가에서 한참 들어온 골목길 안쪽에 누구라도 도전할 수 있을 법한 김밥이라는 평범한 메뉴를 들고 나온 사람이 한가롭게 가게 앞에서 매일 아침 인사를 한다. 한술 더 떠 김밥집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백범일지>를 읽고 필사한다. 이런 분은 도대체 어떤 분일지 떠오르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 하고 그분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밤 늦게 가게 문을 닫고 바깥에서 불을 켜놓고 읽었어요. 이렇게 거인이 내 옆에 계시는구나... 어쩌면 백범 김구선생님이 '너 여기서 김밥집하면서 기념관에 오시는 분들에게 안내를 해다오' 하고 저에게 소임을 줬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희 김밥집 찾아오시는 분들이 깁밥을 사주고 계셔서 선생님 덕분에 먹고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김밥집 문을 열었는데 신기하게도 백범기념관을 찾아오는 분들이 꼭 가게 앞에서 멈춰 서서 길을 물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궁금증에 <백범일지>를 손에 잡았는데 너무 재미있어 3일 밤낮을 꼬박 새워 독파했다는 것이다. 역시 심상치 않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한 것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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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맛 김밥집 박성도 사장님 인터뷰 모습 ⓒ 설혜영


- 아침인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무작정 김밥집을 열고 손님들을 기다리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다. 그 때 '거리 인사를 하자. 예전에 대기업에 다니면서 인사했던 그대로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인사를 시작하고 초창기 주변 사람들 반응은 '또라이 아니야?', '며칠 하다가 그만두겠지'였다. 처음에는 사람들 반응에 좀 서운했는데 요즘은 '여기가 내 무대다. 내가 맡은 배역을 잘 소화하고 잘 전달하려면 사람들의 반응에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자'라고 생각한다. 퀵서비스노동자, 택배노동자분들이 많이 지나가시는데 손까지 흔들어 주면 더 좋아해주신다. 함께 인사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크리스마스에는 산타 모자 복장을 하고 인사를 했다."

- 원래 끈기가 있는 편인가?
"뭐하나 빠지면 3년은 간다. 끈기도 끈기지만 요즘은 아이들을 통해서 많이 배운다. 아이들의 모습은 무척 순수하다. 내가 굳어있고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이들을 보며 느낀다. 인사를 크게 하는 아이를 보면 구운 계란을 안줄 수가 없다. 내 욕심이긴 하지만 한참 후에 커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나를 떠올리며 '아 맞아 김밥집 아저씨는 아침인사를 매일 했던 걸로 기억 나'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라고 의미부여를 한다."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 소개해 달라.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분이신데 매일 아침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인사하시는 분이 있다. 오전 6시30분이면 어김없이 길 건너편에서 내려와 좌회전하신다. 9월 14일 추석 전날 아침에 인사를 하는데 그 날은 특이하게 직진하시더니 "해피 추석!"하며 과자바구니 선물을 내밀었다. 추석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날이 내 생일이었다. 선물을 받으면서 오늘이 내 생일이란 걸 깨달았다. 그때 '하늘에 있는 돌아가신 아버님 어머님이 생일 선물을 줘야 하는데 전해줄 수 없어서, 저 사람을 통해 준 것 아닌가' 생각했다."

- 김밥집 창업이 쉽지 않았을텐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나에게 김밥집은 새로운 도전이다. 처음에는 밥이 떡이 되고 어려웠다. 컴퓨터 유통 일을 하던 중에 거래하는 건에서 큰 건이 나왔는데 그걸 놓쳤다. 대기업 납품 건이었는데 자금이 없다보니까 못하게 됐다. 내 나름에는 최선을 다했는데 말이다. 억울했다. 어디 가서 얘기할 데도 없고 답답한 마음을 자연에 풀겠다 생각하며 자전거 국토종주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4박5일을 다녔고 4대강은 길게 시간을 낼 수 없어 주말마다 끊어서 했다.

들판, 강, 꽃, 산에다 외쳤다. '바보 같다. 왜 못했는가. 앞으로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나갈 수 있겠는가' 소리 치고 원망스런 사람들 욕도 했다. 4대강을 다니며 깨달았다. '내가 이제껏 50년 넘게 살면서 자전거 높이의 세상을 모르고 살았구나라'는 것을.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했고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무엇을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다. 11월에 강원도 고성까지 종주를 끝내고 돌아와 일하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손님으로 갔던 깁밥집에서 문을 닫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문 여는 마지막 날 인사라도 해야지 하고 들러 라면을 한 그릇 시켜 먹다가 내가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금을 입금했다."

- 김밥집을 연 것에 대해 만족하나?
"재미있다. 즐겁다. 스트레스가 없다. 대기업과 일을 하면서 은근히 상처를 받고 하고 싶은 얘기를 못했던 것이 많았는데, 지금은 내가 칼자루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게 없다. 김밥이 없으면 없다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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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선물 받은 과자 바구니 사진 ⓒ 설혜영


- 백범일지 필사를 하신다고 하셨는데?
"페이스북에 백범일지 연재를 시작했다. 페친들에게라도 다시 한번 백범일지를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예전부터 백범선생님을 존경해왔고 최고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백범일지를 보면서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밥을 얻어먹던 부분, 환국하셔서 황해도에 가서 젖을 먹여준 유모에게 절을 하는 장면에서는 같이 울었다. 국토종주를 다니면서도 백범일지가 떠올랐다. 이분이 도망 다닌 코스를 생각하면 내가 다닌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김구선생님은 그렇게 지금의 나를 비춰볼 대상이 된 것 같다.

김밥집 문을 열고 1년 내내 주말도 없이 일했더니 이제 기운이 다 떨어져서 깁밥을 쌀때 국토종주의 기운을 담아야 되는데 지금은 양념이 떨어졌다. 내년에는 국토종주를 다녀오라고 여사장님이 허락해주셨다. 내년에 다시 국토종주를 시작할 거다. 어머니맛 김밥 깃발과 태극기를 꼽고 달릴 거다."

삶의 희노애락이 담긴 국토종주 얘기를 듣고 있다보니 자전거를 타고 함께 달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힘껏 응원의 말로 화답했다.

"내년에는 김밥이 더 맛있겠네요."

눈물의 국토종주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다시 시작한 김밥집. 본인만의 무대를 만들 듯 사장님의 리듬에 맞춰 가게를 가꾸어나가는 재미에 공감했다.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이 다시 시작된다는 말도 있 듯이 살다보면 그런 날이 있다.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절망감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 그러나 그 속에서 다른 길이 생긴다. 그리고 그 아픔이 전화위복이 되는 마법 같은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인생의 한고비를 넘은 듯 조금 더 자란 나를 느끼며 사는 것이 인생 아닐까? 인생의 굽이마다 나침판 삼을 수 있는 한 구절, 한 사람을 품을 수 있다면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효창동 #어머니맛김밥 #백범기념관 #백범일지 #자전거국토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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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대안적 개발을 모색하고, 생태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불평부당한 사회를 민의 힘을 믿고 바꿔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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