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의 80%가 공기업 취업, 비법이 뭘까

[현장] 여수석유화학고등학교 제16회 졸업식

등록 2017.01.05 18:01수정 2017.01.0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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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전행사로 열린 취타대 공연모습 ⓒ 오문수


4일(수) 오전 10시, 여수시 화장동에 있는 여수석유화학고등학교 '송백관'에서는 졸업생 99명과 재학생 및 학부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16회 졸업식이 열렸다.

1997년에 설립한 여수석유화학고등학교는 16회 졸업생 포함 3294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지만 15회, 16회 졸업생들은 예전에 졸업했던 학생들과 다른 점이 있다.

여수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석유화학산업단지가 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석유화학산단의 수요에 연계된 맞춤형 교육 과정을 실시하기로 하고 교명을 변경했다. 2013년엔 석유화학산업분야 마이스터고등학교로 지정됐다. 올해 졸업한 학생들은 석유화학 마이스터고등학교 2년 차인 셈이다(관련 기사 : 화장실에서 치킨파티를 한 교장선생님?).

이 학교에선 취업난이 실감나지 않는다

사상 최대의 청년 실업 시대. 주위를 둘러보면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을 못해 아우성이다. 하지만 이날 졸업한 여수석유화학고등학교 학생들은 취업난이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는 모습이다. 

졸업생 99명 중에서 공기업에 채용된 학생이 80%가 넘고 중소기업을 포함하면 87명이 합격했다. 높은 취업률이 나올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첫 번째 요인은 좋은 학생들이다. 입학 당시 학생들의 내신을 살펴보면 상위 20~30%다.

두 번째 요인은 교육 프로그램이다. 전교생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전문 학사 수준의 지식 습득에 몰두했다. 반복되는 심성 훈련도 이어졌다. 졸업 전까지 학생들이 취득한 위험물, 가스, 환경, 화학분석, 에너지, 전자기기, 정보처리, 컴활/PPT, 토익 스피킹 등의 자격증 취득률 총계를 계산해보니 783%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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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대부분이 남학생인 가운데 여학생들도 졸업장을 받았다. 한서원(맨 우측) 양은 "입학할 때 이렇게 여학생이 적은 줄 몰랐어요. 대학을 가도 취직이 안되고 해서 석유화학고로 왔는데 남학생들도 잘 대해줬고 취직되어 좋아요"라고 말했다 ⓒ 오문수


졸업식 모습도 눈길을 끈다. 대학 수료식 때 입는 가운과 사각모를 착용했다. 조영만 교장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방학도 없이 기숙사에서 공부하며 전문 학사 수준의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어찌 보면 학창 시절의 마지막이 될 것이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졸업식을 마련했습니다."

식전행사로 열린 취타대의 공연이 식장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여수석유화학고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취타대는 명성이 자자해 여수에서 열리는 행사에 종종 초대된다. 이들은 2016년에 열린 제17회 전남학생국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마이스터 1기 신입생과 함께 부임한 조영만 교장이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한 직후 학생들에게 마지막 수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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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만 교장이 회고사를 하고 있다 ⓒ 오문수


"졸업생 여러분! 마지막 수업을 짧게 해도 되겠습니까? 윈스턴 처칠 경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졸업식 축사를 했다고 합니다. '결코 포기하지 말라(Never give up!)'고요. 여러분들은 3년 동안 기숙사에 살면서 어찌 보면 대학 4년 동안 공부한 것만큼의 지식을 쌓았습니다. 제 마지막 수업입니다. '꿈을 가지고 결코 포기하지 말라(Have a dream, never give up!)"   

학부모 중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노구치 아케미씨다. 1995년, 결혼을 하며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주 온 여성이다. 아들 넷을 얻고 딸을 기다리며 다섯째를 낳았는데 성공했다. 남편인 주경선(57세)씨와 대화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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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1995년에 한국으로 시집 온 노구치 아케미(왼쪽에서 2번째) 씨의 장남 주병택군이 가족들과 함께 기념촬영했다 ⓒ 오문수


"졸업생 아들 축하해주러 왔어요. 취업하기 힘든 세상이라 기대 안 했는데 대기업에 합격해서 기뻐요. 장남이 졸업하자마자 취직도 되고 원하던 예쁜 딸도 얻어 더 바랄 것이 없어요. 요즘 세상이 어렵고 취업하기도 힘들어 내놓고 웃을 수가 없어요. 모든 사람이 저처럼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이번 졸업식에는 난관을 극복하고 취업에 성공한 자랑스러운 학생도 있다. 공정설비과를 졸업한 김문성군은 초등학교 3학년 시절에 부모님이 이혼하고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김군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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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성 군이 조영만 교장으로 부터 졸업장을 받고 있다 ⓒ 오문수


"생활이 어렵다 보니 학교생활도 힘들었어요. 이겨내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직장에 합격했습니다. 지금까지 겪었던 어려운 경험을 바탕으로 더 열심히 살아 꼭 성공하겠습니다."

졸업식 주요 행사를 마친 학생들에게는 또 다른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생들로 구성된 그룹사운드 'BTX'가 기타 소리에 맞춰 <걱정말아요 그대>를 부르자 강당에 모인 학생들이 합창을 했다. 학생들에게 BTX가 무슨 뜻인지 묻자 멋진 설명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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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주요 행사가 끝나고 학생들로 구성된 그룹사운드 BTX가 '걱정말아요 그대"를 연주하고 있다. ⓒ 오문수


"BTX는 벤젠의 B, 톨루엔의 T, 자일렌의 X의 첫머리 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모든 석유화학의 기초가 됩니다. 따라서 BTX는 석유화학고등학교 명칭에 부합한 그룹사운드 이름입니다."

졸업식을 마친 학생들은 자신과 약속을 담은 글을 타임캡슐에 넣어 봉인했다. 현관에 놓인 타임캡슐은 앞으로 10년 후인 2026년 12월 말에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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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만 교장(맨 우측)과 김경수(중앙), 김지인(맨 왼쪽) 양이 타임캡술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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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들이 자신과의 약속을 쓴 종이를 타임캡슐에 봉인하고 있다. 현관에 있는 타임캡슐은 10년 후인 2026년 12월말에 개봉발 예정이다 ⓒ 오문수


조영만 교장의 타임캡슐 첫 번째 약속은 "10년 후인 70살에 학교를 다시 방문하는 것"이다. 김지인 학생은 "손톱 물어뜯지 않고 일찍 일어나는 것"을 다짐했고, 김경수 학생은 "남의 잘난 점을 질투하지 말고 배우자"로 정했다.

타임캡슐까지 봉인한 학생들은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연탄 2천 장을 배달했다. 사상 최악의 청년 취업난 시대를 뚫은 학생들이 세상의 거친 파고도 잘 헤쳐나갈 수 있길 빈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여수석유화학고 #졸업 #석유화학 #취업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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