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에서 독일의 농촌휴양, 치유 체험을

[독일의 농부 16] 국민의 별장지기가 지키는 '농촌관광'

등록 2017.01.21 20:10수정 2017.01.2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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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부터 되살리자."

세계 2차대전을 일으킨 전범 국가로 1945년에 처절하게 패망했던 독일. 그런데 채 10년도 되지 않아 '라인 강의 기적'이라는 신화 같은 드라마로 부활한다. 말 그대로 기적적인 경제적 부흥으로 국운은 다시 융성하기 시작한다. 그때부터 독일 국민의 고민도 시작됐다.

그 값진 경제적 성과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 게 좋을지 심사숙고했다. 그리고 바로 국가 최우선 과제를 국민들의 사회적 합의로 이끌어낸다. 농촌부터 먼저 복원하기로 했다. 농촌만 살리겠다고 그렇게 결정한 게 아니다. 농촌을 살리면 결국 도시가 살아난다. 도시가 살아나면 마침내 국가가 살아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독일인답게 지극히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깨달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1954년에 '농촌 복원의 철학과 원칙'을 세운다. 이름하여 녹색계획(green plan)이다. 일단 농민도 일반 국민과 동등한 소득과 풍요로운 삶의 질을 향유토록 했다. 그래야 농민도 국가 발전에 당당히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 향상, 소득 증대만 추구해 '부자 농민'이 되라고 선동하는 것은 농업과 농촌을 망치는 짓으로 판단했다. 그러면 대다수 소농들의 토대가 무너지고 농촌을 떠나 도시의 난민으로 떠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농민의 사회적 책무를 정확히 명시했다. 바로 국민에게 질 좋고 건강한 농산물을 적정한 가격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게 농민의 도리이자 할 일이라는 것이다. 농산물을 과대포장해 비싸게 판다면 세금을 내는 국민을 배반하는 일이라고 미리 경고했다.

알프스 호수 독일의 호숫가에는 상점도, 간판도 들어설 수 없다. 그래서 아름답다. ⓒ 정기석


상점도, 간판도 없어서 호숫가는 아름답다

나아가 독일은 자국의 식량문제 해결에만 이기적으로 매달리지 않았다. 패전국으로 먹거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은 독일이다. 그래서 결코 먹는 것으로 다른 나라의 목을 조이지 않기로 했다. 공정하고 평화로운 국제 농업 질서는 국가 이익만큼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 국가로서 뼈아픈 자기반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세 가지 원칙만으로도 녹색계획은 마치 독일 농부들의 경전처럼 경건하고 거룩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60년 넘게 독일 농업과 농촌을 지켜낸 금과옥조다.하지만 그 백미는 단연 네 번째 원칙이다. 인상적이고 감동적이다. 마치 전 국토가 생태공원 같은 풍광의 독일을 직접 눈으로 보니 그 말이 더 진실되게 들린다.

농촌은 단지 '농사를 지어 돈을 버는 곳'이 아닌, '사람이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곳'이라는 독일 농정 철학은 비로소 그 네 번째 원칙으로 완성된다.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한다. 농촌의 자연, 문화 경관은 모든 국민이 즐길 권리다. 국도변, 아름다운 호숫가에는 상점도, 간판도 들어설 수 없다."

그래서 독일의 농부들은 '국민의 별장지기', '국토의 정원사'로 불린다.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농사를 짓는 공익행위를 통해 '녹색계획'에 명시된 대로 독일의 모든 국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키르히베르크 오스트리아 티롤 키르히베르크 스키테마 농촌관광마을 ⓒ 정기석


농촌의 자연, 문화 경관은 온 국민이 즐기는 공유재

이렇게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농촌관광은 "자연과 농촌의 문화경관을 보존하며 다양한 동식물을 보호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농민들은 "농촌의 자연, 문화 경관은 모든 국민이 즐길 권리"라는 국민과 한 약속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그래서 가족농과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지역 순환농업 체계를 준수한다. 명실공히 농촌관광의 전문가들에 의해 고도의 품질관리시스템을 유지한다.

평야 지역인 독일 넷셀방(Nesselwanger)의 바벨 농가(Berghof Babel)는 대표적인 성공 모델이다. 부부와 3형제가 적정하게 역할을 분담하는 전형적인 2대 가족농이다. 독일 가족농은 장남이 농업을 가업으로 물려받는다. 장남의 책임과 역할이 가장 크다. 바벨농가의 장남도 농업마이스터로 농장을 맡고 있다. 차남은 농가레스토랑을 책임진다. 3남은 치즈마이스터로 치즈 가공장을 관리하고 있다. 1차는 장남, 2차는 3남, 3차는 차남이 책임지는 6차산업형 3형제 가족농이다.

가족끼리 운영하지만 70명이 동시에 투숙할 정도로 큰 규모였다. 침대 8개까지 농가에 허용되는 농박의 면세범위를 넘어선 사업자 수준이다. 그래서 농박이 아니라 민박업으로 허가를 받았다. 부대시설도 관광농원이나 전문 휴양리조트 못지않다. 실내수영장, 스파 시설, 승마장, 산악자전거코스까지 갖추고 있다. 실내 모래놀이터, 토끼장 등 자연 친화적인 어린이 놀이공간이 완비되어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안심하고 찾는다.

바벨농가 같은 독일의 농촌관광 사업자들은 절대 어기지 않는 철칙이 있다. 스스로 살고 있는 농가주택이나 농촌 마을의 자연경관은 훼손하거나 파괴하지 않는다. 사유재산이지만 마치 마을공동체와 지역사회의 공유재산처럼 외관은 물론 페인트 색깔도 제 마음대로 고칠 수 없다.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이웃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바벨관광농가 2대 가족농, 3형제가 운영하는 독일 넷셀방의 6차산업형 바벨 관광농가 ⓒ 정기석


농촌은 관광하는 곳이 아니라, 휴양하고 치유하는 곳

근본적으로 독일, 오스트리아의 농촌관광은 관광이라기보다 휴양, 치유 쪽에 가깝다. 특히 알프스 자락의 티롤(tirol) 지방은 천혜의 자연경관을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휴양과 치유 효과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다. 티롤은 사실상 모든 지역이 알프스 산맥지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북 티롤에는 인(inn) 강이 흐르고 그 위에 '인강의 다리'라는 이름의 주도 인스부르크(Innsbruck)가 자리 잡고 있다. 석회암 지형의 산악을 덮고 있던 산림을 개간한 녹색 지대인 초지의 풍광은 그림 같다. 그래서 티롤 지방의 대부분 농촌 주민들은 주로 목초지 농경, 가축 사육, 낙농업, 삼림업에 종사하고 있다. 특히 인 계곡에서는 밀과 호밀이 주작목으로 재배되고 있다.

특히 티롤의 지형은 스키 타기에 이상적이다. 그래서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고지대에서는 눈이 녹지 않아 여름에도 스키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티롤은 요양지로 더 각광을 받는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청정한 자연환경 덕분이다. 오직 일회적, 유흥목적 관광이 아니라 굳이 농가에서 묵어가려는 휴양형 관광객들이 주종이다. 3, 4대를 이어 농박을 찾는 단골들도 적지 않다.

티롤을 대표하는 스키촌 키르히베르크(Kirchberg)도 여름철까지 스키족들이 끊이지 않지만 복잡한 관광촌이라기보다 조용한 휴양촌에 가깝다. 90%가 산악지형인 척박한 키르히베르크에는 스키를 즐기러 오는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 덕분에 지역주민들이 먹고산다. 키르히베르크의 농민들은 수백년 된 농가주택을 개량한 농박과 식당에서 스키족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얼핏 보면 무주리조트의 상가촌 풍광과 흡사하다 무주리조트의 티롤호텔을 설계한 건축사가 바로 이곳 출신이다.

무주 오스트리아 티롤의 건축사가 설계한 무주리조트의 티롤호텔 ⓒ 정기석


독일의 농촌관광은 15일 이상의 휴가형·휴양형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외국의 농촌관광정책'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독일 연방정부의 관광정책은 '공간 균형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농촌 지역이 경제적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공간계획법 등을 통해 강조한다. 무엇보다 농촌이 자연친화적 휴가지역, 휴식공간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연방정부와 각 주정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지역경제 구조개선정책이 곧 관광산업 촉진을 위한 대표적 정책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독일은 지방자치가 발달된 연방 공화국이므로 관광정책도 산간지역, 포도농사지역 등 지역적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농촌관광정책은 연방 정부의 농정책임부처인 소비자보호·영양·농업부(BMVEL)에서 주로 담당한다.

그렇지만 농촌관광산업을 특별히 육성하기 위한 별도의 법은 없다. 오히려 독일 전 국토를 관장하는 연방건축기본법에 농촌 지역은 외곽지역으로 정해져 있어 토지용도 변경, 건물용도 변경 등이 매우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다. 특징적인 건 숙박업소에 대한 평가는 독일관광연맹(DTV)이 독일농업협회와 협력,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등급을 정한다는 점이다.

다른 관광업종과 다르게 농촌관광업은 대부분 농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농가민박이 주종을 이룬다. 농가민박의 특성도 한국의 농촌관광 양상과는 다소 다르다. 여름철에 집중되는 농가민박은 평균 15일 이상 체류하는 휴가형·휴양형 고객이 많다. 대부분 농가와 인연을 맺고 직접 예약해 이용하는 농가민박 이용객은 60~70%가 어린이를 동반하는 가족형이다. 지역답사, 지역 음식, 긴장 완화, 편안한 잠, 스트레스 해소, 해방감, 자유 시간, 레크리에이션 등을 방문 동기로 꼽는다.

특히 남부 독일의 바이에른주와 바덴-뷔르템부르그(Baden-Württemberg)주의 농촌관광이 활성화되어있다. 독일 농민연맹과 독일농업협회가 민간의 농촌관광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1991년 설립된 농가민박·농촌관광연방협의회는 독일농민연맹 소속으로 농촌관광을 총괄하는 기구이다. 주 정부 및 지방 차원의 농촌관광 관련기관․단체를 포괄한다. 1885년 설립된 독일농업협회(DLG)는 농촌의 생활과 농가의 수입을 개선하는 것을 주된 활동목적으로 삼고 있다. 특히 '농가에서 휴가를' 사업을 농촌관광 활성화 사업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으며 숙박시설 운영, 품질기준에 대한 지도책임도 담당하고 있다.

농촌관광등급 독일 라인스바일러마을 퇴페라이농박의 농촌관광등급 인증표 ⓒ 정기석


프랑스 'Gites de France' 와  영국 'Stay On Farm'

독일 등 서유럽의 농촌관광은 1990년대 이후부터 농촌체험, 전통식당, 농산물 직판, 숙박, 스포츠 등 서비스의 내용이 다양화되었다. 유럽연합 농업정책의 기조가 농산물 시장개방과 함께 생산성 중심 정책에서 농산물의 품질 향상, 친환경농업, 어메니티 자원에 기반한 농촌개발로 전환함에 따른 것이다.

특히 프랑스는 농촌관광 발전사례로 유럽 주변 국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처(국토정비청, 관광부, 환경부, 농림부) 간 효율적인 추진체계. 브랜드화된 주요 농촌관광 네트워크(농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Bienvenue a la Ferme)가 강점이다. 또한, 상품마다 품질헌장을 제정하고 농촌관광상품을 행정 단위가 아닌 지리적, 역사 문화적 행정 단위를 통해 효과적인 마케팅 단위로 설정해 추진하는 게 특징이다.

프랑스의 농촌관광은 농촌 지역의 일반관광시설(호텔+식당)과 농가주택 등을 숙박시설로 개량한 지뜨(프랑스어로 집, 숙소), 농업과 연계된 현업 농가의 관광시설 등 크게 3원화 된 구조로 설명된다. 특히 '지뜨 드 프랑스(Gites de France)'는 1951년 알프스 지역에서 농촌 지역의 은퇴자그룹을 중심으로 전통농가 등 농촌건축물 보전을 위한 민간 사회운동 차원에서 시작된 대표적 프랑스 농촌관광 숙박시설이자 서비스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영국의 농장휴가협회(Farm Holiday Bureau)의 'Stay On Farm' 네트워크도 인정받고 있는 성공모델이다. 농장휴가협회(Farm Holiday Bureau)는 왕립영국농업협회, 정부의 농업보급기관, 주간 농업지인 <주간농업> 등 농업관계단체 및 정부 관광국의 지원을 받아 농촌민박 운영자들이 1983년에 설립했다.

녹색 관광 상품의 특징은 농가 일손의 편의를 위해 숙박(Bed)과 아침 식사(Breakfast) 만을 제공하는 소규모의 'B&B형 민박 중심의 숙박형과 식사형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대부분 민박농가가 건물을 신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시골생활이나 문화, 역사적 유산, 풍경, 마을 주민의 환대 등을 관광 상품화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독일의 농부’ : 문화경관 직불금, 농업회의소, 협동조합, 가족농가, 유기농업, 사회안전망 등으로 국가와 정부의 돌봄과 보살핌을 받으며, ‘돈 버는 농업’이 아닌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농부의 나라’를 지키며 살아가는 독일, 오스트리아 등 EU(유럽연합)의 ‘행복한 사회적 농부’ 이야기
#농촌관광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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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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