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동냥'으로 전기차 한번 굴려봐?

[전기차 도전기] 차량 구입보다 만만치 않은 충전기 설치

등록 2017.01.22 11:41수정 2017.01.2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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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제주도 서귀포 중문해변에서 열린 겨울 바다 펭귄 수영대회에 참가, 아니 구경을 하기 위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평화로를 달리던 중이었다. 제주시에서 중문해변까지 거리는 약 50km, 왕복 100km를 달릴 생각을 하니 갑자기 기름값이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육지에서 오랜 시간 캠핑 파트너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준 SUV도 벌써 10살을 넘겼다. 다행히 아직 크게 아픈 데는 없지만 제주에 온 후로 캠핑 할 일이 없어졌기에(산이고 바다고 실컷 놀다가 밤에 잠은 집에서… 밖에서 잘 일이 없다), 이 덩치 큰 SUV의 효용성이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아, 드디어 때가 왔나 보다. 친환경 전기차 보급을 주도하는 제주에 살면서 덩치 큰 디젤 SUV가 웬 말인가. 이것은 결코 최근 며칠간 전기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로부터 '뽐뿌'를 받아서가 아니라 합리적인 결정임을 되뇌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1월 초, 바다로 뛰어들 준비를 하는 용감한 사람들 ⓒ 이영섭


아아, 그들은 저지르고 말았다 ⓒ 이영섭


어떤 밥을 먹일지 고민이 시작되다

얼마 전부터 업무상 전기차 사용자를 자주 만나다 보니 디젤차를 타고 다니는 나는 루저요, 전기차를 타고 다니는 그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위너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연료비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 예로 하루 50km 정도를 운행하는 어느 공무원의 경우 휘발유 차를 몰 때는 월 20만 원 이상이 기름값으로 소요됐는데, 전기차로 바꾼 후 5만 원 이하의 충전요금만 지출하고 있단다.


내 경우에는 디젤이지만 워낙 덩치가 큰 SUV라 기름값만 월 25만 원 정도를 쓰고 있다. 전기차로 바꿔서 월 20만원을 절약하고 이 돈으로 할부금을 넣으면 어떨까? 이건 분명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믿음을 갖고 일을 추진해 보기로 했다.

익히 아는 사실이겠지만 전기차는 순수 전기만으로 구동이 되는데, 충전을 위해서는 전용 충전기를 이용해야 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너무 복잡해지지만, 현재 전기차 충전기를 크게 분류하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충전기 별 전기차 충전요금 ⓒ 이영섭


다양한 전기차 충전기 (좌측부터 가정용 완속, 공공 급속, 공공 완속) ⓒ 이영섭


현재 전기차 충전요금은 정부와 각 지자체의 방침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기에 일률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예를 들어 가정용 충전요금의 경우 1만5천 원 정도의 기본요금이 부과되는데 정부 지침에 따라 향후 3년간 100% 면제되고 있다. 충전 요금도 50% 할인이 적용되어 기존 54원~230원 내외이던 요금이 절반 가량으로 줄어든 상태다.

공공 충전기는 좀 더 복잡하다. 설치 및 운영 주체가 환경부냐, 한전이냐, 그도 아니면 민간 사업자냐에 따라 무료로 충전 가능한 곳도 있고, 유료로 운영되는 곳도 있다. 유료인 경우에도 kW당 요금이 170원에서 300원 이상으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아무튼, 가장 이상적인 환경은 단독 주택의 개인 주차공간에 전용 충전기를 설치하는 것이다. 전기차 사용자들 사이에서 소위 '집밥'이라 불리는 이 호사를 누리려면 일단 마당 있는 단독주택이 필요하다.

나 같이 아파트나 빌라 등 공동주택에 사는 경우에는 가정용 충전기 설치가 결코 쉽지 않다. 공용 주차장에 충전기를 설치하려면 입주자대표회의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동의서를 받는 게 너무나 어렵다는 사실. 대부분의 전기차 구매 희망자들이 바로 이 단계에서 포기하곤 한다.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파트 주차장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해놓고 그 앞에 전기차만 주차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데 좋아할 주민이 누가 있겠는가. 문제는 전기차 사용자 입장에서도 골치 아픈 건 매한가지라는 사실이다.

내 전기차 충전기 앞에 일반 차량이 주차해 놓았다면? 전화해서 빼달라고 해야 할 것인가? 이건 서로에게 못할 짓이다.

그래, 일단 아파트에 고정형 충전기를 설치하는 건 과감히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아보자.

수월봉 근처를 달리다 노란 꽃 물결에 차를 멈췄다. 계절을 착각한 유채꽃인가? 알고 보니 무꽃이란다. ⓒ 이영섭


그렇다면 젖동냥으로 아이를 키워볼까

집밥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외식? 적어도 전기차 사용자들에게는 '젖동냥'이라는 표현이 더 친숙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집에 충전기를 설치하지 못한 사람들의 경우 공공 충전기에 100%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젖동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일단 내가 사는 동네 주민센터에는 공공 완속 충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낮에는 주민센터 직원들이 사용하고 밤에는 거의 비어 있는 듯하다.

문제는 완속 충전의 경우 100% 충전에 8시간 정도가 필요하다는 것. 그렇다면 밤에 충전을 걸어놓고 걸어서 집에 돌아와 다음 날 아침 다시 걸어가서 차를 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엄청 불편하다. 일단 젖동냥 후보에서 보류해 두자.

조금 더 검색해 보니 집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절물휴양림과 노루생태공원에도 공공 급속 충전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것도 공짜! 급속 충전의 경우 40분이면 배터리의 80%까지 충전할 수 있기에 조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주유소를 이용한다 생각하면 어떨까 싶다.

그런데 좀 더 생각을 해보니 이 역시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일단 충전기 대수가 각각 1대씩이다. 누군가 사용을 하고 있으면 대기 시간까지 포함해서 1시간 이상을 충전에 허비해야 한다. 오가는 길도 문제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만 꽤 높은 고지에 있어 만약 눈이라도 쌓일라치면 도로가 통제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 역시 완벽한 해답은 되지 못할 것 같다.

시청에 설치된 무료 충전기. 충전 경쟁이 너무 치열해서 그림의 떡이다 ⓒ 이영섭


진정 방법은 없는 것인가?

전용 충전기 설치도 어렵고, 젖동냥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방법은 없는 걸까. 관련 기관과 사용자 커뮤니티를 며칠간 탐색해본 결과 또 다른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차장에 설치된 전기 콘센트에 자기식별이 가능한 태그를 부착하고, 전기 계량기가 내장된 충전기를 싣고 다니면서 충전이 가능한 제품이 있단다. 일명 이동형 충전기, 고정된 형태의 충전기가 아니라서 설치 동의를 받기도 쉬울 거 같고, 무엇보다 주차 위치에 덜 구애를 받는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일단 신청만 하면 환경부 보조금으로 사용자 1인당 5개까지 콘센트를 무상 설치해 준다고 하니, 이 정도면 충전 위치를 잡는 데 크게 불편하지 않을 것 같다. 그 5개의 콘센트 중 하나라도 주차 자리가 비어있으면 되니까 말이다.

이렇게 전기 콘센트만 있으면 어디서든 충전이 가능하단다. 바로 이거다! ⓒ 이영섭


바로 이놈이 내 갈 길이구나 확신하고 관련 업체에 문의를 해보았다. 그런데...

세상일이 그리 쉽게 풀릴 리가 없단 걸 새삼 깨닫는다. 일단 2016년까지 무상으로 지원되던 전기 콘센트 공사비가 올해부터 사라졌단다. 주차장에 콘센트가 없으면 개당 20만 원 정도 공사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잽싸게 주차장에 내려가 확인해보니 전기 콘센트가 3개 설치되어 있다. 여기에 추가하고 싶으면 개당 20만 원을 내야 하는 것이다. 공사비야 어찌어찌 감당한다 쳐도 가장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아파트의 공용 전기가 한국전력과 고압으로 계약이 되어 있어야 한단다.

공동주택 전력은 고압과 저압으로 나뉘어 공급되는데, 간단히 생각하면 아파트 내 변전소가 있는 대단지의 경우 고압일 가능성이 높고, 중소 규모 단지는 저압일 가능성이 높다. 저압으로 계약이 되어 있을 경우 전기 계량기가 아날로그 방식이라서 시간과 계절에 따라 차등 적용되는 전기차 충전요금 적용이 불가하단다. 부랴부랴 한전에 다시 확인을 해보니 역시나 저압으로 계약되어 있다.

이 길고 긴 방황의 끝이 결국 포기로 끝나야 하는 것인가.

노을해안로를 달리다가 무리 지어 이동하는 남방돌고래떼를 만났다. 너희들은 좋겠다. 충전 한 번 안 하고 여기저기 잘도 돌아다니는구나 ⓒ 이영섭


차를 위해 집을 바꿔야 하나?

개인적으로 제주로 이주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공동주택을 선택한 데 대해 큰 후회는 없다. 마당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종종 들곤 하지만 역시 난방비라든지 주거환경 자체는 신축 아파트가 나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차 구매를 고민하면서 다시금 집에 대한 고민이 들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전기차의 50%가 굴러다니는, 그래서 정책적으로 상당한 지원이 따르고 있는 제주도에 살면서 전기차 한 번 못 몰아보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올해 중앙 정부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 1400만 원과 제주도에서 보조하는 지방비 600만 원을 합하면 구입 보조금만 2000만 원.

최신형인 아이오닉도 2천만 원 초반에 구매할 수 있고, 2016년형에 한해 파격적인 할인가를 적용하고 있는 SM3의 경우 1500만 원 이하에 구매할 수 있음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2017년 지자체별 전기차 구입 보조금 ⓒ 이영섭


아, 생각해보면 난 최신 기술, 디지털, 첨단화, 스마트, 이런 단어에 너무 약하다. 오디오를 취미로 할 때도 무식하게 열을 뿜어내는 A급 앰프보다는 디지털 방식에 열광했고, 그 외 모든 분야에서 스마트한 신기술에 매료되며 살아왔다. 결국, 이 지름신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정말 충전기 설치를 위해 단독주택으로 이사라도 가야 하는 걸까? 지름신이 왔으니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야 하건만, 사람이나 자동차나 집밥 먹고 산다는 게 왜 이리 힘든지.

#제주이주 #전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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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 : 제주, 교통, 전기차,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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