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벼락치기'하는 반기문, 박근혜가 보인다

[주장] 반기문의 광폭행보가 불안해 보이는 이유

등록 2017.01.19 10:29수정 2017.01.1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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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에 대한 경례' 헷갈린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오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에서 강연 및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에서 사회자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말하자 다른 참석자들과 달리 목례를 하다 손을 올리고 있다. ⓒ 한겨레 제공


언제부터인지 '광폭행보'가 대유행이다. 원래 광폭행보란 말은 김대중·노무현 시절만 해도 잘 쓰이지 않던 정치용어였다. 그러던 것이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며 하나의 정치적 트렌드로 자리 잡는다. '넓은 폭'이라는 뜻의 '광폭'과 '일정한 목적지까지 걸어감'을 의미하는 '행보'가 합쳐진 광폭행보는 이제는 정치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치적 수사가 됐다.

학창시절 '벼락치기'를 안 해본 사람은 없을 터다. 벼락치기를 무용담처럼 말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험지를 보는 순간 공부한 내용이 뒤죽박죽 얽히고설켜 정작 시험을 망치기가 일쑤다. 시험이 임박해서 그 많은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 넣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밤을 꼬박 세고 단기간에 암기한다 한들 내용 정리가 제대로 될 턱이 없는 탓이다.

광폭행보가 딱 그 짝이다. 평소에 공부를 착실히 해 두었더라면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평소에 다양한 계층과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소통해 왔더라면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광폭행보를 펼칠 까닭이 없다. 그런 면에서 정치인의 광폭행보가 이명박·박근혜 이후 본격화됐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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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8월 28일 오전 당시 박근혜 후보가 서울 종로구 청계천 평화시장 앞 '전태일 다리'를 찾아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고 있는 도중 김정우 쌍용자동차 지부장이 바닥에 누워 헌화를 막자, 경찰이 김 지부장의 멱살을 잡고 저지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연일 광폭행보를 선보이며 화제를 몰고 다녔다. 동서남북을 횡단했고, 각계각층의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박 후보는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하는 국민대통합을 강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하고 전태일재단의 방문을 시도하는가 하면, 인혁당 유족과의 면담을 추진하고 쌍용차 희생자 분향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박 후보의 광폭행보는 국민화합과 통합 차원에서 기획됐다. 국민대통합을 위해서는 과거를 잊고 화해와 포용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박 후보의 인식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화합의 시대로 나아가는 것이 시대의 소명임은 불문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박 후보의 인식 속에 국민대통합을 위한 전제조건이 빠져 있다는 데에 있었다.

진정한 화해와 포용을 위해서는 그에 앞서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당시 박 후보에게는 바로 이 부분이 결여되어 있었다. 여전히 상처와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을 향해 그는 사과와 반성 없이 이제 그만 과거를 잊고 화해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말이 좋아 화해이자 포용이지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는 어디까지나 날강도나 다름 없는 또 다른 폭력에 불과할 뿐이었다.

당시 시민들이 박 후보의 광폭행보를 달갑지 않게 여겼던 것은 행위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뛰어넘자고 주장했던 박 후보는 기실 어느 누구보다 그것에 의지하고 의탁해온 정치인이었다. 박정희의 후광과 망국적인 지역갈등과 이념 갈등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박 후보였던 탓이다. 그런 박 후보가 선거를 앞두고 뜬금없이 화해와 포용의 국민대통합을 역설했으니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기가 막힌 것은 당시 박 후보의 광폭행보에 대한 우려가 훗날 고스란히 현실로 되돌아왔다는 사실이다. 대선 승리를 위해 자신의 정치적 철학과 노선, 정체성까지도 가공했던  박 후보는 대선 승리 이후 예의 본색을 드러내며 화합과 통합이 아닌 '광폭(狂暴)정치'를 선보였다. 그 결과가 작금의 대한민국이다. 그런 면에서 박 후보는 가공·포장된 정치인의 광폭행보가 사회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반면교사다.  

불안한 반기문, 단순한 '시행착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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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엄마 다윤엄마 손 잡는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해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가족 은화엄마, 다윤엄마의 손을 잡고 있다. ⓒ 남소연


최근 광폭행보에 열을 올리는 정치인이 한 사람 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반 전 총장은 행동마다 구설에 오르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귀국 이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지하철 승차권, 생수, 퇴주잔, 현충원 방명록, 꽃동네 턱받이, 국기에 대한 경례, 이순신 광주 발언 등 논란의 가짓수도 많고 참 다채롭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반기문 1일 1사고 법칙'이라는 조롱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반 전 총장은 10년간의 외국생활에서 기인하는 단순 해프닝쯤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그는 18일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약간의 애교로 봐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논란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한국 실정에 익숙하지 않은 만큼 시행착오로 봐달라는 의미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의 해명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그가 보여주는 광폭행보는 여전히 불안하다. 서두에 언급한 '벼락치기'가 연상되는 탓이다. 10년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선  하루 24시간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조바심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욱 불안하다. 국내 정세는 물론이고 국내 정치와 사회, 문화와 관행, 계층 문제 등 반 전 총장이 취약한 분야가 하나둘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논란이 됐던 18일 조선대학교 특강에서 나온 발언을 보자. 반 전 총장은 이날 '청년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주제로 한 특강에서 유엔사무총장 재임 당시 타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한국 청년을 만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이 글로벌 스탠다드한 시야를 가졌으면 좋겠다"며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하는 만큼 해외로 진출하고 정 일이 없으면 자원봉사라도 했으면 한다"고 입장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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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받으며 강연장 들어서는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오전 광주 조선대 강연장에 들어서며 학생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 남소연


낭만으로 점철된 이 발언을 청년들이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지 난감하다. 반 전 총장의 인식은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노력해도 안 되는 현실 사이에서 번민하고 좌절하는 청년세대의 삶과는 철저하게 유리돼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독점자본주의의 기형적 경제구조를 극복해야 하는 시대적 요구와도 괴리돼 있다. 반 전 총장의 인식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이며 황당하다.

반 전 총장의 광폭행보가 불안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행보 속에서 국내 정세와 관련한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 전 총장이 오랜 외국 생활에 따른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하는 논란들은 기실 어설픈 광폭행보가 부른 부작용으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가 한국에 있었다한들 지하철을 출퇴근 용도로 이용했을 것 같지는 않다. 꽃동네를 방문하는 일도 흔치 않았을 것이고,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는 것 역시 상상하기 어렵다.

반 전 총장의 광폭행보를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가 서민들이 직면한 현실을 얼마만큼 성찰하고 있느냐다. 다양한 계층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고민과 고충을 덜어주는 것이 정치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주어야 하는 것이 정치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바로 이 부분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인식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조선대 강연에서 드러난, 현실과 유리된 낭만이 이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급조해낸 가공의 이미지가 아니다. 이미지와 구호에 집착하는 순간 정치는 실체 없는 허상에 갇히게 된다. 반 전 총장이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어설픈 '서민 코스프레'도, 벼락치기식 '광폭행보'도 아니다. 국가 경영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이며 청사진이다. 그것이 먼저다.
#반기문 서민 코스프레 #반기문 턱받이 #반기문 광폭행보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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