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도 불길 속에서 태어난 청자의 속살

5대 도공집안의 꿈 이룬 해겸 김해익

등록 2017.01.28 20:41수정 2017.01.2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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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입구의 불 해겸의 불은 가마 안에 때는 것이 아니라 가마 입구에서 때는 불이다. 하지만 그 불의 길은 가마 출구에서 가열차게 타오른다. ⓒ 권미강


가마 입구를 여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짙은 갈색 굉음이 가마 입구를 뚫고 뿜어져 나왔다. 20여 일 1300도를 넘나드는 불과 사투하며 견뎌낸 도자기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들이 찬 겨울 공기 속으로 박힌다. 마침 겨울 하늘은 차가운 비색이었다. 이제 곧 터널 같은 가마에서 흙의 결정체가 된 도자기들이 모습을 드러내리라.

일 년에 두 번, 가마에 불을 지피고 초벌과 유약 과정을 거쳐 다 익힌 도자기를 꺼내기까지 50여 일 가마 곁을 떠나지 않은 도공의 눈빛이 빛난다. 마지막 불을 넣자마자 서둘러 막았던 입구의 벽돌과 흙을 털어내고 가마가 한숨 입김을 불어낸 후에야 도공은 몸을 숙여 가마 속으로 기어들어 간다. 고개를 숙이고 구부린 그의 무릎은 오랜 시간 불을 견뎌낸 도자기들에 대한 경외심 같은 것이리라.


도공을 따라 가마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입구가 불에 녹아서인지 동굴의 석순처럼 늘어져 있다. 가마 안쪽 벽도 그랬다. 가마 안은 아직 따뜻했다. 20여 일간 불가마로 있다가 10일간 식혔는데도 여전히 온기가 남아있다. 얼기설기 막아서 도자기를 보호했던 벽돌을 치우고 안을 들여다보니 '앗! 비색이 보인다. 첫 대면의 환희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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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대면 50여일간의 작업 끝에 도자기와 만난 해겸선생이 색과 질감을 살펴보고 만족하다는 듯 웃고 있다. ⓒ 권미강


어두운 가마 속인데도 땀이 맺힌 도공의 얼굴에는 미소가 그려진다. "아, 됐네." 이 짧은 한마디로 그는 그간의 노고를 스스로 보상한다. 이윽고 하나씩 하나씩 모습을 보여주는 도자기들, 맨 앞에 있던 갈색의 청자를 꺼낸다. 그 뒤에는 누런색, 그 뒤에는 녹색 그리고 가장 갖고 싶어 하는 비색, 더 뒤로 가면 회색의 청자가 나온다.

"청자는 바람이 만들어내는 거지예. 자연하고 동행하면서 만들어내는 게 청자라예."
"바람 양에 따라 색이 달라집니더. 바람이 마이 가믄 갈색이 되고 좀 덜 가믄 누런색, 덜 들어가면 녹색이 된다 아입니꺼."
"회색 청자는 불이 뒤로 가믄서 온도가 떨어져 불완전 연소되믄 되는 거고예."

똑같은 유약을 발라도 그때그때 주어진 환경에 따라, 바람의 양에 따라 색이 바뀐다는 도공의 40년 경험치는 불을 연구한 그의 입에서 깨달음의 선시처럼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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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가 보인다 잘 익은 청자들이 가마 안에 보물처럼 서있다. ⓒ 권미강


5대 도공집안의 숙명


5대째 도공의 가업을 잇고 있는 해겸 김해익 선생은 열일곱 살 때부터 가마의 불을 만졌다. 어릴 적에는 일꾼도 꽤 있었지만, 대량 생산된 그릇들이 쏟아지면서 가업이 기울어지자 한 손 거들며 도공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하지만 결혼하면서 평범한 가장이 되고 싶었던 그는 다른 이들처럼 도회지로 나가고 싶었고 그 뜻을 아버지에게 밝힌 적이 있었다는데, 아버지의 한 마디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불을 찾아라, 먹고사는 것은 내가 책임질 거구마."

그의 아버지도 도자기 최고 정점인 비색청자를 만들겠다는 꿈을 가졌었고 그가 그 뜻을 이어가기를 바란 것이다. 그는 도공 집안의 자손으로서 가업을 이었다. 한때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타오르는 불을 보면서 아버지의 깊은 뜻을 알게 됐다는 그는 청자 빛을 찾는다는 것은 자신과의 싸움이자 아버지와의 싸움이기도 했다고 소회한다.

2013년 아버지는 초벌을 넣어둔 가마를 두고 세상을 뜨셨다. 마지막까지 청자를 굽고 싶었던 아버지의 소원과 반드시 청자를 굽겠다는 그의 염원이 가마 속 화염만큼이나 뜨거웠다. 그것은 어쩌면 뜨거운 도공 집안의 업이리라. 숙명을 따라 그는 40여 년 오로지 청자의 비색을 찾았고 그 비밀을 불에서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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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를 꺼내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서 들어가는 가마 안은 허리를 펴고 일어서기도 힘들다. 거의 하루종일 걸리는 도자기 꺼내는 작업이지만 하나씩 손에 쥘 때마다 행복하다는 해겸선생 ⓒ 권미강


불 이야기

옹기와 토기, 청자로 이어지는 그의 집안에서 내려는 불 이야기가 있다.

"불을 건드리지 마라."
"불은 꾹꾹 눌러가며 지긋이 때라."
"불을 건너뛰지 마라."

불을 마주하고 있는 날이면 그 각오는 더욱 날을 세워 불의 움직임과 소리까지 잡아내 구워지고 있는 도자기의 색깔과 형태까지 파악한다. 처음엔 옹기로 시작해 토기를 거쳐 청자까지 온 것은 '우리나라 도자기 문화의 진수는 청자'임을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불은 20일 정도 계속된다. 대부분 일주일에서 길어도 10일인데 청자는 그보다 훨씬 많은 20일 동안 불을 지펴야 만질 수 있는 귀한 도자기다. 물레를 돌려 도자기를 빚고 조각과 상감을 넣은 도자기를 800도에서 4~5일간 초벌 한 후에 이틀을 식히고, 3일간 유약을 바르는 과정을 거친 후 청자가마인 소위 대포 가마에 안착시킨다.

그는 가마를 나란히 두 개를 두고 쓰는데, 모두 길이가 약 8m 정도 된다. 초벌과 재벌의 가마가 다른 것은 불을 정교하게 땔 수 없기 때문이라는 그는 가마마다 열의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오랜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고 한다.

그가 사투를 벌여야 할 재벌 불은 이번에도 21일간 이어졌다. 그의 오랜 동료이기도 한 아내와 번갈아가며 불을 지킨다. 그의 불은 도자기가 아닌 가마를 데우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가마 안에 나무를 넣는 것이 아니라 입구를 익히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입구 온도를 1천 도가 넘는 불로 익히기 때문에 석순같이 녹아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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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밖으로 꺼낸 도자기들 작은 도자기부터 꺼내졌다. 맨 앞에 있는 자기들 색이 좋다고 했다. ⓒ 권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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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밖으로 꺼낸 도자기들 꺼낸 도자기들을 살피며 의견을 나누고 있는 부부. 해겸선생도 그렇지만 청자를 구울 수 있었던 것은 가장 믿음직한 동반자인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 권미강


불이 들어가는 입구가 익어야 나무도 연소가 잘되고 잘 탄다. 만약 불길이 안으로 들어가면 불꽃이 천 도 이상 되고 이 불이 도자기가 닿으면 녹기 때문에 도자기에는 불길이 닿지 않도록 하는 것도 불을 때는 기술이다. 그는 복사열로 도자기를 굽는 것이다.

"바람이 들어가는 불을 때면 안 되지라. 앞에 있는 건(도자기) 거의 바람이 들어가고예 그래서 색이 다른기라예. 뒤에 있는 기 바람이 들어가지 않아서 색이 좋고 상품이라예."

도자기는 온도 편차가 생기면 제 색이 나오지 않아 가마 옆에 작은 창을 내고 창불을 땐다. 하지만 청자만은 아니다. 해겸은 예전에 있던 창불 때는 입구도 다 막았다. 그의 불길은 입구에서 가마의 끝, 불의 출구로 나오는 단 하나뿐이다.

그의 불은 연소가 잘 일어날 수 있도록 입구를 1천3백도 정도로 만들고 가마 뒤는 마지막에야 그 정도의 온도가 되도록 한다. 입구가 800도 되고 뒤에 천 도가 넘어가면 센 온도가 자꾸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불이 빨라져서 20일을 땔 수가 없다는 것이 그가 터득한 불을 잡는 방법이다.

"옛날 도자기들이 찌그러진 것은 온도 때문이라예. 불은 끝이 젤 뜨거운데, 불이 끝나는 지점, 불길이 딱 떨어지는 자리가 젤 뜨거워예. 거기 닿는 게 찌그러진다 아입니꺼."
"가마 뒤가 천 도를 넘어설 때까지 불꽃은 앞에만 있어예. 불도 여러 단계를 거치지예."
"젤 먼저 가마를 말리고 가마가 새카맣게 끄슬리고 그다음은 흰 불이라 카는 게 올라올 때는 백종이 같이 만들어야 되고예, 그 다음에 홍시 같은 불이 만들어지는데 그때까지는 (가마 뒤 출구에) 절대 불꽃이 안 나가예. 그런데도 저 뒤는 빨갛지예."
"그 뒤에 녹힘불을 때면 불이 힘차게 올라가 연기도 없이, 20일쯤 지나면 하루, 이틀... 젤 힘차게, 열이 안으로 들어가는데 700~800도 정도 되지예."

구워진 도자기를 자식 보듬듯 꺼내며 천천히 알려주는 불 이야기는 그가 몇십 년 동안 벌여온 불과의 사투만큼이나 어려웠다. 표면에 공기가 닿는 데만 열이 발생하고 바닥은 공기가 안 닿으니 꺼진다는 이야기며, 그 속에서 공기가 안 닿는 숯을 태우기 위해서는 가마가 천도가 넘어야 한다는 이야기며, 바닥에 공기가 안 들어가도 열이 탄다는 이야기며, 평생 가마에 불 때는 광경을 두어 번 본 경험이 전부인 나로서는 풍경조차 그릴 수 없는 낯설고 어려운 이야기다.

"불이 익어가는 그때까지 기다려야지예. 그러려면 불을 오래 때야 되고예."
"하지만 무조건 오래 땐다고 되는 게 아니라예. 그 시간들을 계산해야지예."

이제는 아예 노승의 선시처럼 들리는 불 이야기를 통해 그에게 불이란 청자를 굽는 과정을 넘어 그가 살아온 삶의 철학 한 켠을 지켜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의 경전 같은 이야기는 도자기를 꺼내는 몇 시간을 두고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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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색 청자 가마 중간쯤에서 꺼낸 청자다완은 비색이었다. 꺼낸 직후여서 가스막이 있어 다소 탁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가스막이 없어지면서 제대로 된 비색이 나온다고 한다. ⓒ 권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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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색 청자 가마에서 나온 순간 바라보기만 해도 황홀했다. ⓒ 권미강


푸른 불이 보이다

8m 정도 되는 그의 가마에서 20여 일간 불을 때려면 나무가 5톤 트럭으로 8대 정도가 필요하다. 불을 땔 때마다 약 천만 원 정도 되는 나무를 때는 것이다. 거의 소나무인데 그나마 재선충 때문에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다. 시 산림계에 가서 도장 찍어야만 반입이 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들어온 나무를 자르고 때는 것부터 수십 일을 잠도 못 자고 가마를 달구는 일까지 수십 번의 실패를 거듭했는데도 그는 도자기를 좀처럼 팔지 않는다.

물론 토기를 만들던 시절엔 조금씩 한 군데를 통해서 판매도 했다. 하지만 도자기 판매에 집중하다 보면 청자를 굽겠다는 초심을 잃을 수도 있다는 염려와 함께 구운 도자기를 통해 실패의 이유들을 되짚어보는, 일종의 연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의 가마에서는 5톤의 나무가 들어갔었나 싶게 재가 거의 없다. 숯이나 재조차도 없이 다 연소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야말로 불의 기술은 최고의 경지까지 가야 한다는 그의 말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재를 통해 증명된 셈이다. 이번에는 특히 축열 시켜서 숯으로 때야 볼 수 있는 푸른 불이 나왔다. 그래서 비색에 대한 기대도 한층 커진 것이다.

불만큼 어려운 게 없다고 하는 해겸은 그 어려움을 이렇게 말한다.

"에베레스트산 올라가는 길에는 샛길이 많지예. 어떤 길로 가든 간에 목적을 향해 잘 가야하지예. 정상에 가려면 구부 능선은 넘어가야 하는데예 그게 참 힘들지예. 요즘 불을 보면서 내가 이제 구부 능선은 온 거 같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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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색으로 특허받은 명장 해겸선생은 오랜 청자 불기술을 가지고 ‘맑고 은은한 비취색의 고려청자 제조방법’ 특허도 취득했다. ⓒ 권미강


가마 명장

그는 가마 명장이다. 도공이 가마 명장이 됐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같지만 흔치는 않다. 그는 전국에 있는 청자 가마를 보러 다녔고 가마터를 무수히 찾아다녔다. 주변에 떨어진 사기들을 주워와 자신이 구운 도자기와 비교했다. 발품을 팔아서 터득한 고려청자 가마는 그 길이가 8~10m 정도다. 일본으로 건너간 가마 길이가 13m로 우리나라 청자가마보다 긴데 이 정도만 길어도 청자불을 땔 수가 없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오랜 경험 끝에 8m의 대포 가마(모양이 대포같이 생겼다 해서 대포 가마라고 그는 불렀다)를 선택한 건, 청자는 불의 직접적인 온도가 아니라 달궈지고 불꽃에 감싸여 발생하는 복사열로 굽는 도자기이기 때문이다. 복사열은 도자기의 속까지 골고루 익혀주고 그 강도도 높여준다.

우리나라 청자의 비색 중 가장 최고는 강진에서 나왔다. 강진의 사당리와 용운리인데 순청자에서 비색을 만든 것도 강진이다. 해겸은 그 중 입구가 있는 용운리 가마를 선택했고 그 선택은 맞았다. '솥이 달라지면 밥맛도 달라지듯이' 그는 가마의 생김새와 길이도 비색을 찾는 데 아주 중요하다고 한다. 그가 불을 땔 때, 입구에 나무로 11자를 만들어 불을 때는데 나무가 전부 밖으로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위에 나무를 얹어 때우면 공기가 들어가도 그 양이 적다.

공기가 들어가면 불이 빨라지면서 온도가 높아지고 가마는 순간적으로 1천3백도를 넘어서는데 이런 온도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시점에서 올려야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재벌을 할 때 1500도에서 2000도까지 올렸는데 찌그러지고 가마가 그 열을 못 이겨 무너졌던 경험도 갖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와 아내와 번갈아가며 23일간 불을 때다보면 진이 쭉 빠지기도 한단다. 작업을 할 때마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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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개인전 오랫동안 만들어온 도자기를 세상에 내보이는 도자기전을 통해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 권미강


청자는 흙과 유약, 불이 잘 만나야

청자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도자기도 그렇겠지만, 흙과 유약, 불이 잘 만나야 한다. 흙은 점토와 흑토, 백토, 이 세 가지를 잘 써야 하는데 특히 색깔이 여러 가지 나오는 게 점토다. 점토는 붉은색, 노란색, 검은색, 재색, 흰색 등 총 오색이 나오고 청자 비색에 가장 중요한 철분은 노란색과 붉은색에 제일 많다.

재색 점토의 경우는 해남과 포항에 많고 경주에도 오색 점토가 다 나오지만 찾으려면 힘들어서 거의 쓰지 않는다고 한다. 오색 점토가 가장 많은 곳은 전라도인데 청자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제일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경상도의 경우 흰색과 검은색, 재색 찾기가 힘든데 전라도는 그의 말대로 '천지 삐까리'라는 것이다.

"청자는 오색이 다 들어가예. 불도 유약, 흙 다 중요한 것이 청자라예."

청자 유약은 주로 장석과 규석인데 여기에 매염재인 재와 조개껍데기 등이 쓰인다. 천연염색이나 도자기나 같은 매염재를 쓰는데 광택과 부드러움을 내주는 역할을 한다. 안료는 상감에 들어가는 흑상감, 백상감, 진사까지 쓰는데 모두 고려 때 청자에 쓴 안료라고 한다. 청자는 산화철이 들어가야 녹색으로 바뀐다. 바람을 통해 산소가 들어가면 갈색이 나오는데 비색을 내는 유약은 없다.

"비색은 숯불을 태워서 올라오는 불이 청자에 코팅하는 거라예."
"푸른 불꽃이 만들어내는 색이 비색인기라."
"불꽃이 아니믄 비색은 만들 수가 없어예."

그가 오로지 비색을 위해 불을 연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비색은 유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 기술에 있다는 것이 그가 수십 년간 청자의 비색을 찾아온 결과다.

신안 앞바다에서 건져낸 고려청자의 비밀

오래 전, 신안 앞바다에서 수장됐던 도자기가 발견돼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풍랑을 만나 침몰했던 배에서 1천 년 넘게 소금기 하나 없이 말끔하게 발견된 청자에는 무슨 비밀이 숨어있을까?

도자기를 오래 쓰다 보면 소위 차심이 들어간다고 해서 미세하게 균열이 간 곳에 차 성분이 박혀 색이 변색되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차심이 들어가야 좋은 도자기인 줄 알고 있기도 하다. 그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청자를 연구하면서 차심이 들어가는 도자기라면 천 년 넘게 바닷속에서 견딜 수 없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천 년을 소금기 가득한 바다에 넣어 놓으면 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차심이 있는 잔에 차를 넣으면 거품이 올라오는데 이는 그 안에 있는 공기가 빠지면서 올라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균열이 있던 곳이 찻물이 들어가 짙어질 수밖에 없고 나중에는 그 안에서 부패하는 것이다.

하지만 청자는 흙에서부터 이물질을 안 받아줄 만큼 밀착이 되어 있어 젓갈을 담아놔도 씻으면 냄새나지 않는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만든 그릇에 담배까지 넣었다가 하룻밤이 지난 후에 씻었는데 냄새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청자에도 미세한 균열은 있다. 그 균열을 만드는 재료는 규석, 즉 유리인데 이것이 식을 때 더 강해지기 때문에 불을 오래 때서 난 균열은 이물질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오랜 불 속에서 단단하게 익혀 만들어진 조밀한 밀착력이 천 년 넘게 바다에 있어도 소금기를 머금지 않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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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개인전 2년 전 대구에서 가진 도자기 전시 ⓒ 권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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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전 2년 전 대구에서 했던 도자기전시 ⓒ 권미강


청자를 닮은 도공의 생

10여 년 전, 경주 산내면 우중골에서 조용하게 청자를 굽고 있는 그를 무작정 찾아갔다. 처음에는 무뚝뚝하게 말수가 적었던 그와 대면한 후 많은 날들을 찾아갔다. 물레를 돌리고 어설픈 조각을 하고 상감을 입히면서 그가 한 말이 있다.

"조각 솜씨가 좀 어설프지예. 그림도 그렇고 허허. 여기에 집중하면 불을 때는 데 소홀할까 봐서예."
"불 기술만 단디 하고 나믄 그림하고 상감은 천천히 해도 다 된다 아입니꺼."

여러 번 만나면서 그의 작업을 지켜보고 그는 반드시 청자를 굽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많은 도공들이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혼을 쏟아붓는다. 그도 그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도공 집안의 업과, 아버지의 꿈이자 자신의 꿈이기도 한 '고려청자 비색'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는 숙명이 있었다. 그리고 도자기를 돈처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남편의 작업 동반자로서 자리를 지켜낸 아내가 있다.

세계가 인정하고 어떤 그릇보다도 가장 뛰어난 청자 기술의 맥을 잇고 싶다는 그의 집념은 지난해 말에 받은 '맑고 은은한 비취색의 고려청자 제조방법'이라는 특허증이 증명해준다. 흙이나 도자기 만드는 과정, 유약 등은 문헌에 나와 있지만 불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40여 년 오로지 불에 집중해온 그에게 특허증은 불 앞에서 '인내(忍耐)'해낸 세월의 징표 같은 것이다.

구워진 도자기를 1시간 정도 꺼내고 가마 밖에서 쉬었다가 다시 꺼내고 하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그의 말은 오로지 도자기와 청자 얘기뿐이다.

"나무 껍질을 안 벗겨도 깔끔하게 구워낼 수 있는 능력이 돼야 한다 아입니꺼."
"청자를 꺼내면 흰빛이 있는 기, 그기 가스다 아입니꺼. 그게 날라 가야 상감이나 무늬가 또렷이 나옵니데이. 길게는 일 년 걸리는데, 가마에서 끄집어내도 또 그리 기다려야 한다니께네. 허허. 청자는 기다려야 되는 그릇이라예."
"백자 유약에 철이 들어가믄 청자 유약으로 바뀐다 아입니꺼."
"청자가 젤로 어려븐 것은 산화철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랬예. 공기만 만나도 붉어진다 아입니꺼. 그래서 청자가 젤 어렵고 변화가 제일 많이 일어나지예. 산화철 때문에 그렇다 아입니꺼."
"백자는 철분이 빠져 있으이까네, 깔끔하기 때문에 잘 나올 확률이 노픈기라예."

"도자기에서는 청자가 젤 어렵고 불 때는 기술이 최고봉으로 안믄면 청자가 안 나오지예."
"조선 시대 백자를 많이 쓴것은, 고려 때 걸 안 쓰는 것도 있었고예."
"초창기 백자에는 푸른색이 있었다 아입니꺼. 그런데 불을 적게 때면서 푸른색이 빠지고 깔끔한 백자가 됐다 아입니꺼."
"우리나라에서 젤 깔끔하게 만들어 논게 청화지예. 불을 젤 적게 때는 게 청화라예."

"도자기는 깔끔하게 하려면 불을 적게 때면 된다 아입니꺼. 불은 오래 때면 오래 땔수록 실패율이 높아지지예.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서 백자는 세 등급으로 나눈다 아입니꺼."
"순백자, 철화백자. 청화백자. 불 기술이 세 번 바뀌는데예, 그중에서 청화가 불을 젤 적게 땐다 아입니꺼."
"청화는 망댕이 가마로 때는데예. 마지막 온도는 1300도 정도라예.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안료는 철화부턴데 그림 그린 건 오래 때면 터질 가능성이 있고 가마가 무너지지예."
"일본 채색 도자기는 근본을 만들어놓고 백자를 1300도 소성을 시켜 놓고 채색은 800~600도 온도를 맞춰서 다시 구워야 하는데예, 젤 높은 온도 굽고 색깔마다 온도가 달라서 4~5번 그려서 굽는데예. 기술은 무지 정교해야 해예."

끊임없이 이어지는 도자기 굽는 이야기가 전혀 지루하지 않다. 그 오랜 세월, 어쩌면 그의 몸 속 유전자 속에 깊이 새겨진 청자 비색에 대한 열망이 5대를 거쳐 오면서 이제는 무르익어 결실을 맺어야 할 때임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하는, 그래서 해겸 자신도 가다듬고 연구하고 기다리면서 온전한 청자 비색의 비밀을 풀어낸 것이리라.

가마 출구에서 품어내는 막바지 불인 홍시 같은 노을이 청명한 하늘을 조금씩 물들이고 있는 시간, 그의 가마는 몸을 풀고 해산의 기쁨을 맞은 어미처럼 편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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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 출구의 불길 해겸의 가마의 불길은 오로지 입구에서 출구로 나오는 길 뿐이다. 이번 불은 끝에서 푸른빛이 감돈다. 바로 비색청자의 불이다. ⓒ 권미강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현장언론 민플러스에도 중복 게재됨을 밝힙니다.
#청자 #도자기 #해겸 #김해익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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