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시켰다" 보수단체의 폭로, 왜 지금인가

청와대와 한국자유총연맹은 공범... 검찰 수사 지켜봐야

등록 2017.01.24 11:35수정 2017.01.2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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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7월 4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회장단과의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016년 4월 청와대가 세월호 반대 집회와 한·일 위안부 합의 지지 집회 등에 극우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을 동원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이른바 '어버이연합 게이트'다. 어버이연합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자금을 지원받아 주요한 시국 현안에 탈북단체들을 동원해 집회를 열었고, 이 과정에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허현준 행정관이 개입해있다는 것이 그 대략적인 얼개다.

당시 <시사저널>은 청와대 집회 지시 의혹을, <JTBC>는 전경련의 자금 지원 부분 등을 보도하며 그동안 '설'만 무성했던 청와대와 극우보수단체 사이의 검은 거래의 실체를 집중 파헤쳤다. 의혹의 중심에 있던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청와대 허현준 행정관과 위안부 집회를 여는 것과 관련해 협의를 했다"며 논란을 증폭시켰다.

관련 사실이 알려지자 세상은 발칵 뒤집어졌다. 어버이연합이 전경련의 자금 지원을 받아 탈북자들을 '관제 데모'에 동원한 것 자체도 문제지만, 이 과정에 청와대와 국정원까지 관련돼 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민주주의를 계승·발전시키고 헌법질서를 수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청와대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결사의 자유를 부정하고 민주주의의 질서를 파괴하는 중대 범죄를 저지른 셈이 된다.

야당은 즉각 '어버이연합 게이트'의 진상규명을 위한 TF팀을 구성했고, 국정조사의 필요성까지 제기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도 검찰에 어버이연합과 전경련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며 청와대가 개입한 커넥션의 실체를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의혹의 당사자들인 청와대와 전경련, 어버이연합 등은 세간의 의혹을 완강히 부정했다. 청와대는 관련 사실을 부인하는 한편 의혹을 허 행정관의 개인적 일탈로 몰고갔고, 박 대통령은 "사실이 아니라고 보고받았다"며 선긋기에 나섰다. 전경련 역시 자금 지원은 일상적인 기부일 뿐이라고 해명했고, 어버이연합은 돈은 받기는 했지만 청와대가 개입한 것은 아니라고 말을 바꿨다.

사건을 수사해야 할 검찰 역시 굼뜨기만 했다. 검찰은 수사를 앞두고 잠적했던 추 사무총장의 신원 파악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고, 어버이연합에 집회를 열라고 지시한 허 행정관에 대한 조사에도 수동적이었다. 검찰이 어버이연합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고, 허 전 행정관을 비공개로 소환한 것은 그해 8월 말이 다 되어서였다. 최초 의혹이 불거진 지 무려 4개월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수사에 미온적인 검찰의 행태는 1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파문 이후 거의 초토화되다시피했던 어버이연합은 재건됐고 여전히 친정부 집회의 선봉에 적극 나서고 있다. 청와대와 전경련, 국정원까지 연루된 커넥션 의혹 역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여론조작과 왜곡을 통해 민주주의와 헌법질서를 파괴한 의혹의 심각성에 비하면 '어버이연합 게이트'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 그대로였다.

'관제 대모' 의혹 불씨 살린 청와대

그러나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는 법이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가 청와대가 개입한 '관제 데모' 의혹의 불씨를 다시 되살리는 모양새다. 23일 청와대가 국내 최대규모의 보수우익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자총)에  '관제 데모'를 지시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관련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어버이연합 게이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사안이다. 회원수 200여 명에 불과한 어버이연합과 150만 명에 달하는 자총은 개미와 코끼리만큼이나 극명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는 자총에게 국정교과서 찬성 시국집회, 세월호 반대 시국집회 등 친정부 집회를 열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난다. 이를 주도한 인물은 이번에도 허 행정관이었다. 그는 2015년 11월 3일 자총의 고위 관계자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7일 국정교과서 반대 집중 집회와 세월호특별법 제정 1주기 집회가 열리고 14일 민중총궐기대회가 예정돼 있다"며 대규모 시위에 맞서는 맞불집회를 준비해 줄 것을 주문했다.

이어 11월 26일에는 "지금 쟁점은 노동 등 4대 개혁, 경제활성화법, FTA 입법 사안이니 정기 국회 기간에는 여기에 맞춰 같이 하자"고 요청하기도 했다. 공개된 문자는 2015년 10월22일부터 그해 12월 2일 사이에 허 행정관과 자총 고위 공직자 사이에 주고받은 것으로, 보도에 의하면 허 행정관의 요청을 자총이 모두 실행에 옮긴 것으로 나타난다. 그동안 자총이 주도했던 각종 친정부 집회가 청와대의 지시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는 의미다.

이번에 공개된 문자는 청와대가 보수우익단체의 '관제 데모'를 주도했다는 세간의 의혹이 사실이라는 것을 명확히 입증하고 있다. '어버이연합 게이트' 당시에도 전경련이 입금을 한 다음날 바로 탈북자단체가 민생처리법안 촉구집회에 나서는 등 대가성에 대한 의혹이 끊이질 않았었다. 문자 내용을 공개한 자총 고위 관계자는 "보수와 진보는 해석의 차이일 뿐이고 자유는 모두가 누려야하는 것 아니냐"며 "청와대가 자총을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고 토로했다.

주목할 것은 그가 관련 내용을 언론에 폭로한 시점이다. 현 시국은 그동안 대한민국 사회를 주도해왔던 보수의 충격적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보수세력의 위기감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고 있는 시점이다. 탄핵심판에 속도를 내고있는 헌법재판소는 박 대통령 측을 연일 긴장하게 만들고 있고, 보수세력의 구심점이 돼야 할 새누리당은 빠르게 분열하고 있다. 범사회적으로도 정의, 공정, 상식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시대적 당위가 뜨겁게 분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대표적 보수우익단체인 자총 고위 관계자가 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더욱 곤경에 빠트리는 내용을 폭로했다. 의문스러운 것은 '왜 지금인가' 하는 점이다. 만약 관련 내용을 폭로할 생각이었다면 그동안 양심고백을 할 기회와 시기가 없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어버이연합 게이트'가 불거질 당시야말로 자총이 양심고백을 할 수 있는 가장 적기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유는 어렵지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여전히 권력을 틀어쥐고 있던 시점이었다. 폭로가 나오려야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국 자총의 뒤늦은 고백은 보수세력을 재편해야 하는 그들의 궁색함과 졸렬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끈 떨어진 갓 신세나 다름 없는 박 대통령과의 결별을 통해 '가짜 보수'와의 선긋기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의도적인 것이든 아니든 자총의 폭로가 청와대와 보수우익단체 사이의 커넥션이 실재했음을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으로 '관제 데모'를 지시한 청와대나 그에 동조해 친정부 집회를 연 보수우익단체나 헌법과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공범이긴 매한가지라는 뜻이다. 반드시 그 실체를 규명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막중한 책무가 다름 아닌 검찰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6년 4월 26일 언론사 보도·편집국장 간담회에서 "청와대의 집회 지시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히 보고를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 수사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이 검찰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결같다. 원칙대로 공명정대하게 수사하라는 것이다. 국면이 뒤바뀐 지금, 국민의 가이드라인에 검찰이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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