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된 땅에 사상누각 공원 만들 수는 없다

[주장] 용산미군기지환경조사결과 정보공개 결정 판결을 환영하며

등록 2017.01.26 11:21수정 2017.01.2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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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수돗물을 먹을 수 없다. 마트에 줄을 길게 서보지만 필요한 만큼 물을 구할 수 없다. 송수관이 정화될 때까지 다른 도시에서 배달해온 물에 의존한 채 살아가야 한다. 2014년 중국 란저우시에서 벌어진 수돗물 대란상황이다.

송수관에 흘러들어간 벤젠이 기준치의 20배를 넘어서면서 문제가 생겼다. 만약 내가 살고 있는 서울 용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하는 생각을 하니 아찔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게 강 건너 불구경 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 내 발밑에 흐르는 지하수에서 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19일, 녹사평역 인근의 지하수에서 벤젠허용치의 무려 587배가 검출되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송수관이 달라서 다행히 중국과 같은 비상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뿐 상상을 뛰어넘는 결과이다. 그런데 과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01년 녹사평역인근 유류유출, 2006년 캠프킴 유류오염사고를 기억하실 것이다. 이러한 중대한 환경사고가 있은 후에도 미군기지 주변의 환경문제는 전혀 관리되지 않았다. 서울시 용산미군기지 정화작업 데이터에 의하면 2004년 29.354ppb였던 녹사평역 인근 벤젠 오염농도는 2008년 42.745ppb로 오히려 2배 이상 늘어났다. 우리의 환경부는 어디에 있는가?

지난 12월 14일 용산주민의 한사람으로서 반가운 판결이 있었다. 용산미군기지 내부오염결과를 공개해달라는 시민단체의 정부공개거부처부취소소송에서 환경부장관의 비공개처분을 취소한다는 판결이었다.

이번 판결은 지난 6월에 있었던 1심 판결 내용을 재차 확인했을 뿐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만 달라진 것은 환경부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더 커졌다는 점이다. 우리의 환경주권을 위해 싸워야 할 환경부가 오히려 국민의 안전을 해치는 미군의 행위를 엄호하려고 해서 되겠는가? 이러한 정부의 굴종적 자세가 미군의 환경오염 행위를 조장해온 측면도 크다.

국익을 위한 선택의 영역이 되어야 할 외교가 이데올로기에 묶여 건전한 논의를 봉쇄당해왔다. 무엇을 위한 한미동맹인지 묻지도 않은 채 무조건적인 금기만을 강요해온 뒤짚힌 논리가 아직도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있다. 국민의 안전을 위협해도, 국제법상의 상식이 통하지 않아도 우리는 다만 쉬쉬할 뿐이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가 청구한 정보는 오염도를 측정한 객관적 지표에 불과할 뿐 오히려 공개되지 않을 경우 주한미군에 대한 불신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며 환경부에서 주장한 외교관계 문제나 업무의 정당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주장을 배척했다.

용산은 그동안 용산미군기지 주둔으로 인해 많은 불편을 감내해왔다. 용산구 중앙을 차지하고 앉은 용산미군기지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미군기지로 인해 양분된 용산의 동서방향 교통은 불편하기 짝이 없고, 서울 외곽까지 불어 닥치는 개발바람도 미군기지 앞에서는 비껴갈 수밖에 없었다. 이제 금단의 땅 미군기지가 용산주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공원으로 거듭나려고 하고 있다. 생태공원으로 가는 첫걸음은 환경오염정보의 공개를 통해 오염문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기름으로 오염된 땅에 사상누각의 공원을 만들 수는 없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설혜영은 6대 용산구의원을 역임했고, 현재 온전한생태평화공원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용산미군기지 #환경부 #환경오염 #설혜영 #용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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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대안적 개발을 모색하고, 생태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불평부당한 사회를 민의 힘을 믿고 바꿔 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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