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한 골목길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을 만나다

[포토에세이] 미장이의 예술

등록 2017.01.28 20:45수정 2017.01.28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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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철필이나 못으로 시멘트가 다 굳기 전에 몰래 낙서를 하는 재미도 그리 나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모범생도 아니었으면서 그런 유년의 추억이 없다는 것이 조금은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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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담 강경 옥녀공원 근처의 골목길에서 만난 풍경 ⓒ 김민수


간혹 골목길 시멘트 담벼락에서 장이들이 서비스(?)로 남긴 톱니흙손 문양을 만날 때가 있다. 단순한 모양이지만, 오래된 시멘트담벼락을 보면서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호사가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이미 골목길들은 도시개발로 인해 사라져가고 있으며, 시멘트 담벼락도 쇠락해가고 있다. 그리고 건축할 때 시멘트담을 쌓는 경우가 있다고 해도 이전처럼 문양을 새겨넣는 일은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오래지 않아 사라질 풍경 중 하나가 시멘트 담벼락에 새겨진 미장이들의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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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이의 예술 강경 옥녀공원 근처의 마을 골목길에서 ⓒ 김민수


참으로 묘했다.

미장을 마친 후에 흙손과 고대로 깔끔하게 마무리하고는 톱니흙손이나 뾰죽한 철필이나 못을 이용해서 마치 화폭에 그림을 그리듯하면, 그 벽이 존재하는 한 그 흔적도 사라지지 않는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적에는 시멘트로 만든 조잡한 조립벽 같은 것들이 있었다. 편리하긴 했으나 경고하지 않았고, 힘센 사람이 기댔다가는 무너질 수도 있는 지경이었다.

요즘, 그런 담벼락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대체로 다 뒤틀려 버렸고, 그런 담은 시대의 뒤편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 나름 블럭을 쌓고 시멘트로 미장한 담벼락들은 제법 남아있다. 물론, 이 역시도 오래 가지는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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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담 미장이의 예술품 ⓒ 김민수


강경포구와 그리 멀지 않은 마을에서 만난 시멘트 담, 그곳에는 듬성듬성 벽에 미장이들이 담장공사를 마무리하면서 남겨둔 흔적들이 있었다.

어릴적 이런 공사가 마무리되고 시멘트가 마르기 전에 못으로 낙서를 하면 아주 오래갔다. 어떤 경우는 치명적(?)이라서 다시 시멘트로 메꿔야 할 경우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석필로 벽에 낙서를 해본 기억은 나는데, 새로 단장한 시멘트 담벼락에 낙서를 한 기억은 나질 않는다.

철필이나 못으로 시멘트가 다 굳기 전에 몰래 낙서를 하는 재미도 그리 나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모범생도 아니었으면서 그런 유년의 추억이 없다는 것이 조금은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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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담 과거에는 시멘트 담마다 스프레이를 뿌려서 광고를 남기기도 했다. ⓒ 김민수


요즘이야 인쇄술이 발달했고, 광고기술도 발달해서 이런 식의 광고를 하지 않지만, 한때는 시멘트 벽마다 빨갛고 까만 스프레이를 이용해서 광고를 했다. 그런데 낡은 시멘트 벽과 이 광고는 잘 어울린다.

쇠락해가는 것들끼리 잘 어울리는 것일까? 용달이삿짐은 물론이려니와 지붕개량전문이라는 휴대전화 번호가 010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니 지금도 전화하면 통화가 되는 모양이다. 아직은 끝나지 않은 그 무엇이리라.

가까운 곳에 강경포구가 있어서 서양 문물이 들어오는 통로이기도 했지만, 또한 일제 강점기에는 수탈의 통로이기도 했다. 그런 아픔들이 겹쳐진다. 새마을운동을 주도했던 대통령의 딸까지 겹쳐지면서 마음이 불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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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담 시멘트담이 보수와 벽화 ⓒ 김민수


블럭만 덜렁 쌓고 미장도 하지 않은 벽은 오랜 세월 속에서 푸석푸석해 졌다. 틈틈히 메꿔가면서 명맥을 이어온 흔적들 속에서 매화로 추정되는 벽화를 본다.

꽃 피는 봄처럼 삶도 피어나길, 이 역사도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을 갖지만, 과연 나뭇가지와 뿌리의 흔적이 사라진 저 벽화에 그려진 매화는 완성될 것인지, 그냥 저렇게 방치될 것인지, 그렇게 그냥 쇠락해 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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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풀 도께비풀의 씨앗이 시멘트 담장과 어우러져서 한 폭의 그림 같다. ⓒ 김민수


시멘트 담벼락에 도깨비바늘 씨앗이 별처럼 피었다. 그래, 저 풀꽃의 씨앗이 흙담이나 시멘트담이 아니라면 무엇이랑 어울린단 말인가? 그나마 흙담이나 시멘트 담 정도는 있는 곳이라야 겨우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공간이 있을 터이다.

저 씨앗이 봄이 오기 전에 모두 흙에 안착하고, 추운 겨울을 맨몸으로 난 씨앗들은 흙의 품에서 마른 목도 축이고 추웠던 몸도 녹여가면서 제 안에 있는 초록생명을 피워낼 것이다. 그들은 나물로도 먹지 않는 잡초이긴 하지만, 잡초라서 그렇게 또한 명맥을 이어갈 것이니 잡초라는 것이 또한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벚꽃이 필 무렵 대선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에 대선후보들의 행보가 바빠진만큼, 탄핵 대상인 그분도 마음이 무척이나 바쁜가 보다. 아직도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끝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그분의 잘못일까, 옆에서 지금도 이길 수 있으며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고 부추기는 대리인단 같은 이들 때문일까?

그래, 저 도깨비풀도 벚꽃이 필 무렵이면 싹을 내겠지. 그 즈음에는 그동안 이 땅, 이 나라를 조롱했던 이들이 차가운 감옥에서 자신들의 죄를 참회하는 시간이 주어져야겠지.

쇠락해가는 시멘트담벼락을 보면서 새마을운동의 주역인 아버지의 후광을 힘입어 대통령이 되었던 딸의 쇠락을 함께 본다. 그런데, 시멘트 담벼락에는 미장이의 예술혼이라도 남아있는데 그 분은 뭘 남기신 것인가?
#시멘트담장 #미장 #골목길 #톱니흙손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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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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