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은 트럼프 국경통제의 속내

[서평] <개념으로 읽는 국제 이주와 다문화사회>를 읽고

등록 2017.02.06 14:58수정 2017.02.0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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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대한민국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본질은 보지 않고, 호들갑만 떨면서 트럼프의 반외국인 정서를 여과 없이 전달하는 국내외 언론이 심히 못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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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으로 읽는 국제 이주와 다문화사회> ⓒ 푸른길

오랫동안 이주 현장에 있었던 내가 보기에는 트럼프가 '일국의 대통령이 되기보다 장사꾼이 되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국경 통제를 위한 행정 명령으로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면서 수익을 창출해 내기 위한 도구로 이민 정책을 활용하고 있다.


어떻게 국경 통제가 수익 창출로 이어질까? 미국은 이민자 추방 정책의 상당 부분을 민간에 위탁하고 있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이민구치시설이나 국경장벽 건설, 출입국 생체인식 정보 취득 등에 민간 기업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관련 기업들 입장에서는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과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은 호재 중의 호재인 셈이다.

<개념으로 읽는 국제 이주와 다문화사회>는 이러한 이민 정책의 이면을 살피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학자이면서 이주자로서 독특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3인의 저자는 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38개의 핵심 개념을 정리했다.

이 책은 '현장에 뿌리를 둔' 학자들이 쓴 책이다. 핵심 개념을 머릿속에 정리하면서 읽다 보면, 금기로 여겼던 종교와 인종 문제까지 건드리는 트럼프의 과격한 행동에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살필 수 있다. 더 나아가 최근 국내외에서 대두되고 있는 '이주'와 다문화 현상을 파악하는데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가 알아야 할 38개 단어

국제 이주와 다문화 연구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38개 핵심 개념은 관련 연구자가 아니어도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용어들이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그런 용어들을 짧게 사전전 정의를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학술적으로 어떻게 기원하고 발달했는지, 그 속에 담긴 의미가 어떻게 확장되는지도 살피면서 정책적 시사점과 실천적 함의를 제시하고 있다.


가령, 거주 지역을 옮긴다는 '이주'만 해도 국내 이주와 국제 이주를 나누고, 환경적 영향에 따른 강제 이주 개념을 난민과 동일선상에서 다룰 수 있음을 제시한다. 더불어 다루고 있는 ▲외래인/외국인 ▲시민권 ▲노동 이주 ▲인신매매와 밀입국 ▲귀환 이주 ▲미등록(불법) 이주 등의 개념은 이주 정책에 있어서 필수적인 개념들이다. ▲통합 ▲이주자 네트워크 ▲이주 규모와 이주 흐름 ▲다문화주의 ▲지역 통합 ▲이주 제한 정책과 개방 경계 ▲선별성 ▲사회자본 ▲초국가주의 등의 개념 또한, 최근 전 지구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주와 사회통합 혹은 다문화사회에 대한 통찰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이주 문제는 좌로 가나 우로 가나 답이 없다'고 했듯이 '이주' 문제는 구체적인 논의로 들어갈수록 무릎을 칠 만한 해답을 찾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국제사회가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어느 나라나 흔히 경험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그렇고,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미국도 그렇다.

시리아 난민 문제로 많은 논란을 겪고 있는 독일 등의 서유럽을 비롯하여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문제가 '이주'다. 여기서 말하는 이주는 '국경을 넘는' 국제 이주다. 국경을 넘는 이민자가 늘어날수록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호의적이지 않다.

"최근 이민자의 숫자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많은 국가에서는 이민에 대한 대중적인 반대(아니면 적어도 불편한 분위기)가 넓게 형성되고 있다. 그곳의 사람들은 이민자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우려한다." - p.11

작년 말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 간부들이 건설 현장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에 직접 협력하여 논란이 있었다. 최근에는 동탄 지역 건설노조가 미등록 이주노동자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일자리 잠식과 임금하락에 대한 내국인 노동자들의 우려가 낳은 행동이다. 극우 정치인의 선동이 아니라 무엇보다 연대를 중요시하는 노조가 주도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개념으로 읽는 국제 이주와 다문화사회> 저자들은 이런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주 현상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좀 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흔히 통용되는 잘못된 개념들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개념으로 읽는 국제 이주와 다문화사회> 38개 핵심 개념은 그런 면에서 디테일에 강하다.

이 책에 따르면, 세심하게 현상의 실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트럼프가 지난 1월 15일에 행정 명령에 서명한 국경 장벽 문제만 해도 그렇다. 미국이 설치한 국경 장벽이 불법 이민을 억제하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그동안 연구해 온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사실상 멕시코인의 월경 비율은 최근 급격하게 감소하여 거의 0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오히려 미국 내 이동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그 부분을 애써 무시한다.

"장벽이 설치되고 나서부터 많은 이주자들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면 미국으로의 재입국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게 되었고, 따라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아예 포기하게 되었다." - p.12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최근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개념 정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이주학자들이 이주를 강제된 것으로도 본다는 것과 경제적 이주자와 난민 간의 전통적 이분법이 적절하거나 타당하다고 보지 않는 경향을 이렇게 소개한다.

"이주가 강제된 것이라고 여겨진다면, 정착국은 그 이주자들을 관습적인 의미에서의 난민이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많은 정착국들이 그들을 받아들일 때, 심지어 전형적인 난민을 수용할 때조차 마지못해 수락한다는 점이다." - p.107

우리 사회가 이 책의 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경제적 이주자를 난민과 동일선상에서 대우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것은 자명하다. 노동단체조차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세상이니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초청 노동자 사례를 보면, 생각을 달리 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부 이주자들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뿌리를 내렸고, 고용주의 입장에서도 이미 업무에 숙달된 노동자들을 굳이 새로운 노동자로 대체할 이유가 없었다. 그 결과 정부는 이들을 쫒아내는 것이 애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p.115

초청 노동자 정책은 순환 원칙에 따라 한정된 기간의 비자를 주어 정착하기 전에 집으로 돌려보내고, 새로운 대체 인력을 초청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초청 노동자들은 결국 영주권을 얻어 정착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이야기다.

이민에 대한 대중적인 반감 혹은 불편함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존재해 왔다. 그렇다 해도 정치인이 마냥 대중의 입맛을 맞춘다면 성숙한 민주 사회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아무리 다문화사회라고 떠들어도 경제가 어려울수록 (트럼프의 선동에서 알 수 있듯) 외국인은 손쉬운 제물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최근 트럼프가 펼치는 이민 정책은 현장을 무시한 정치 놀음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현장에서 내놓는 연구 결과물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오랜 현장 경험을 통해 축적한 연구 결과물마저 무시하는 것이 정치인이고, 선동에 동조하는 게 대중이다.

국경 통제를 위해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과 비효율성이 명백해지는 순간, '국경 통제가 불법체류자와 테러를 막는다'는 트럼프의 선동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문제는 국경 통제의 비효율성과 그 결과물로 사적 이익을 취한 이들이 드러난다 해도, "국경통제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선전에 대중들이 너무 쉽게 넘어간다는 것이지만.

대한민국이 다문화사회라고 하지만 여전한 편견과 차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정치인들의 구호와 선동을 감시하는 눈이 없는 현장은 정치인에겐 꽃놀이패다.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인은 우리 사회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개념으로 읽는 국제 이주와 다문화사회>가 정리한 이주 관련 핵심 개념들을 미리 살펴본다면 독버섯을 미리 제거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개념으로 읽는 국제 이주와 다문화사회

데이비드 바트럼 외 지음, 이영민 외 옮김,
푸른길, 2017


#개념으로 읽는 국제 이주와 다문화사회 #트럼프 #이민 #이주노동자 #다문화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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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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