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에 삼겹살 먹던 나, 갑자기 고기를 끊었다

내가 육식을 끊은 이유(1)

등록 2017.02.04 03:22수정 2017.02.04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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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uitarian - 채소를 먹어도 생명을 만들어 내는 뿌리, 잎 부분을 먹지 않고 열매만 고집. 열매주의자
▲ Veganism / vagan - 동물로부터 얻은 모든 것을 배척하는 완전 채식주의. 고기와 유제품, 달걀은 물론 '일벌의 노동력'이 필요한 꿀도 먹지 않으며 동물 가죽으로 만든 옷이나 신발조차 거부함. 심지어 애완 동물의 사료도 채식만을 고집한다.
▲ Lacto vegetarian - 유제품은 먹되 달걀은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
▲ Ovo-vegetarian - 달걀과 야채만 먹는 채식주의자
▲ Lacto-ovo vegetarian - 유제품과 달걀을 먹는 채식주의자
▲ Pesco-vegetarian(pescetarian) - 유제품이나 달걀은 물론 생선도 먹는 채식주의자
▲ Pollo-vegetarian - 닭고기까지 먹는 채식주의자
▲ Semi-vegetarians - 자주 고기나 유제품을 피하지만, 체계적이지는 않은 사람들
- 출처 : 한국채식연합(http://www.vege.or.kr/)



무섭게 오르던 달걀값이 이제 겨우 안정세를 찾은 듯하다. 가격은 여전히 높지만 AI 바이러스가 이 정도 선에서 멈춰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다.

10여 년 전 육식을 끊은 이후 달걀을 직접 산 적이 없어 이번 달걀 파동에도 별 영향은 없었다. 그렇지만 강 건너 불 구경만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래저래 많이 착잡하다. 또한 7년 전 구제역 파동으로 인한 끔찍한 돼지 생매장 사태 이후로 말 못하는 짐승들이 또 한 번 겪는 참극이 몸서리치게 싫을 뿐이다.

평생 고기 없이는 못 살 것 같던 내가 육식을 끊고 일종의 해물주의자인 '페스코(pesco)'가 되기까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육식을 끊기 몇 년 전에 우연히 채식주의자인 분들과 인연이 되어 관련 정보나 자료들을 접하며 조금씩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긴 했지만, 너무 오랫동안 육식에 깊이 탐닉해 왔던 탓에 당장 끊기는 당연히 힘들었다.

그러다 육식을 끊기 1년 전에 특이한 꿈을 꾸었다. 햄버거를 먹으려는데 고기 패티가 말을 해서 기겁을 하고, 생선구이를 먹으려는데 또다시 생선이 말을 하는 바람에 기겁해서 먹은 걸 다 뱉어버린 후 앞으로는 이런 것들을 먹을 수 없겠구나... 하며 슬퍼하는 꿈이었다.

이 얘기를 들은 한 비건(vegan) 지인이 당신도 조만간 고기를 끊게 될 거라 예언했지만, 난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 호언장담했다. 다른 사람은 다 고기를 끊어도 나같은 고기 귀신이 그럴 리가 만무하다고 큰소리 쳤는데 놀랍게도 1년 후 그녀의 말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육식을 끊기 전 한 삼 년 간은 내심 끊고 싶어도 못 끊는 상황이었다. 채식주의라는 세계와 연결이 된 후 육식과 도축에 관한 많은 자료들을 접하며 심적으론 큰 동요와 괴로움이 있었지만 입과 위장은 여전히 고기를 원하는 불균형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아버지들의 아버지'를 읽으며 '돼지'라는 동물에 대해 생각했고, 영화 말미에 농장의 소들이 도축장으로 끌려들어가 햄버거 패티가 되는 전 과정을 덤덤히 보여준 '패스트 푸드 네이션(Fast Food Nation)'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스키니 비치(Skinny bitch)'를 읽으며 채식과 건강에 대해 서서히 눈을 떠갔지만, 난 여전히 일주일에 두 번은 두툼한 버거를 먹고 시시때때로 순대, 삼겹살, 치킨 등등을 먹어줘야 하는 육식주의자였다.

그런 상태는 마치 머리로는 헤어져야 하지만 마음으로는 그러지 못해 계속 질펀하고 우울한 관계를 유지하며 끝을 향해 달리는 비루한 연애의 끝자락과 같았다.

결정적인 일이 벌어진 건 전 세계적으로 한창 광우병 파동이 일던 9년 전 어느 날 저녁 9시 뉴스를 보던 때였다. 한동안 잠잠한가 싶었던 광우병이 지방 어느 농가에서 재발했다는 보도를 듣는 순간 어떤 폭풍 같은 분노와 짜증이 치솟았고, 순간적으로 내면에서 알 수 없는 짤막한 말소리가 들렸다.

"이제 끊을 때가 됐다."

그 목소리가 내 것인지 다른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 순간 난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비로소 30년이 넘은 고기와의 질긴 인연이 '진짜로' 끊났다는 걸. 짧게는 3년 동안 지리하게 계속되었던 육식과의 전쟁을 드디어 승리로 마감했으며 그 이후로 난 다시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이 미스터리한 일은 지금 내 삶의 중요한 기억으로 남았다.

혹자는 물을 것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육식을 끊으려 한 이유가 뭐냐고. 몸은 원하지만 마음에서 원치 않는 일을 지속하는 괴로움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음에 걸리는'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고 믿기에 평생 편한 마음으로 '남의 살'을 먹을 수 없다면 깨끗이 인연을 끊는 게 최선이라 여겼다.

왜 고기를 먹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가끔은 평생 먹을 고기를 미리 다 땡겨먹어 이미 '한도초과'라서요, 라고 받아넘기곤 한다. 출출한 상태로 새벽 4시에 잠이 깨어 삼겹살을 구워먹을 정도로 대단한 육식가였지만 한 번 돌아선 마음은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었다.

사실 인간에게 있어 채식과 육식 중 어떤 것이 더 좋은가라는 논쟁은 부질없다고 본다. 체질에 따라 각각 맞는 먹거리가 다르다. 무엇보다 신이 인간을 애초에 잡식성으로 창조한 것은, 비록 인간이 이 지구의 주인은 아닐지라도 이 행성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능력껏' 먹을 수 있는 자유와 권한을 주셨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엔 책임이 따르는 법.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사한 권한의 대가로 지구는 오래도록 심한 몸살을 앓아 왔으며, 그 피해는 모든 행위의 주체인 인간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
#채식 #육식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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