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에게 농사 이야기가 통할까?

[청소년책 읽기] 곽선미와 다섯 사람이 쓴 <10대와 통하는 농사 이야기>

등록 2017.02.21 08:17수정 2017.02.21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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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무엇을 잘 배울 적에 아름답게 자랄까요? 오늘날 초·중·고등학교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 무엇부터 제대로 잘 배워야 사랑스럽게 클까요?

이 물음을 듣는 어른은 저마다 다르게 말하리라 생각합니다. 역사를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말씀할 분이 있을 테지요. 문학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말씀할 분이 있을 테고요. 이제는 바야흐로 경제나 돈을 잘 배워야 한다고 말씀할 분이 있을 테며, 피가 튀길 만큼 무시무시한 사회에서 살아남을 만한 재주나 솜씨를 익혀서 빨리 자격증을 따야 한다고 말씀할 분이 있으리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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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철수와영희

텃밭은 한 해에도 여러 번 모양이 바뀝니다. 씨 뿌리는 시기를 기준으로 세 번 정도 크게 변하는데, 이걸 미리 예상해서 계획하면 농사를 더 잘지을 수 있어요. (148쪽)

작물을 수확하고 받은 씨앗은 보관을 잘해 두어야 합니다. 바로 심으면 싹이 나지 않아요.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씨앗을 보관할 때는 종이봉투나 종이 상자, 광주리처럼 바람이 잘 통하는 데에 종류별로 나눠서 담는 게 좋습니다. (166쪽)

곽선미·박평수·심재훈·오현숙·이상수·임현옥, 이렇게 여섯 어른은 <10대와 통하는 농사 이야기>(철수와영희 펴냄)라는 책을 씁니다. 이 여섯 어른은 어린이랑 푸름이한테 무엇보다 '농사'를 가르치거나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도 오늘날 초·중·고등학교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인문지식이나 역사나 경제나 문학 못지 않게 '농사' 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주어야 한다고 여기리라 느낍니다.

<10대와 통하는 농사 이야기>를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네, 오늘 우리가 어린이하고 푸름이한테 무엇보다 잘 가르쳐야 할 일이 있다면 바로 '흙살림'이지 싶어요. 산업이라는 테두리에서 바라보는 농업이 아닌, 큰 농기계를 거느리는 커다란 농업이 아닌, 스스로 텃밭을 일구어 푸성귀를 얻고, 조금 힘이 붙으면 조그맣게 논도 한 번 꾸려 보는 흙살림을 어린이랑 푸름이한테 가르치고 물려주어야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농사를 지으려면 세상과 삶의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기가지의 과정을 관찰해야 하지요. 계절과 때를 알곡 날씨의 변화를 민감하게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98쪽)


농사를 짓기에 농사꾼입니다. 가만히 보면 오늘날 시골에 있는 학교 가운데 농업학교는 거의 다 사라집니다. 시골학교조차 시골아이한테 흙살림을 안 가르쳐요. 언제 씨앗을 심고 어떻게 돌보다가 언제 거두어 어떻게 갈무리하는가를 안 가르칩니다.

시골학교조차 흙살림을 안 가르치기 마련인데, 도시학교는 흙살림을 어느 만큼 가르칠까요? 교사나 어버이는 아이들이 흙살림보다는 입시공부에 더 마음을 쏟기만을 바랄까요? 흙살림을 몰라도 입시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여길까요?

어쩌면 쌀값이 너무 싸서 쌀농사를 짓다가는 외려 굶어죽는다는 말이 나올 만해요. 우리는 누구나 쌀밥을 먹고 푸성귀를 먹으며 고기를 먹지만, 정작 곡식하고 푸성귀하고 고기를 일구는 시골지기 일감은 '돈벌이가 안 된다'고 하는 한국 사회 얼거리예요.

이 대목은 한켠으로는 우습고, 한켠으로는 무섭습니다. 밥을 돈으로 사다가 먹지 않고 손수 지어서 먹는다는데 외려 '굶어죽을' 판이 되니까 우습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쌀 한 톨이 어떻게 태어나는가조차 제대로 모르면서 온갖 인문이나 정보나 지식만 넘치니 무섭다고 할 만합니다. 늘 밥을 먹으면서 밥살림을 모른다면 무서움을 넘어 무시무시한 노릇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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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 감자 거두기 ⓒ (사)텃밭보급소


지금이야 유기 농업이 많이 확산되었지만 박정희 독재 정권 시절에는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정부에서 권하는 농약이나 비료를 제날짜에 쓰지 않으면 간첩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잡혀가기도 했어요. (111∼112쪽)

쌀뜨물에는 인산이라는 양분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이는 식물의 열매를 잘 맺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걸 모아서 퇴비로 주면 좋아요. 또한 쌀드물에는 전분이 있어 기름기를 제거하는 데 쓰일 수 있습니다. 설거지할 때 이용하면 좋겠지요. (92쪽)

이제 시골에 사는 사람은 한국에서 10%조차 안 됩니다. 거의 모두 도시에서 삽니다. 그나마 시골사람은 아직도 빠르게 자꾸 줄어듭니다. 몇 안 되는 시골사람 가운데 흙살림을 짓는 이는 퍽 적은데, 우리는 '한 사람이 지은 곡식·푸성귀·고기'를 아흔 남짓한 사람이 기대어 먹는 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첨단 기계와 문명을 내다팔면서 곡식이며 푸성귀이며 고기이며 모조리 나라밖에서 돈으로 사들여서 먹는 셈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흙살림을 짓지 않기 때문에, 도시에서 똥오줌은 모두 쓰레기로 바뀝니다. 똥오줌이 거름이 못 되고 버려져요. 이러면서 하수도는 생활쓰레기뿐 아니라 똥오줌까지 섞여서 매우 넘치고, 이 하수도를 다루느라 돈도 어마어마하게 쏟아부어야 하지요. 게다가 한국은 밥찌꺼기(음식물쓰레기)조차 몇 조 원에 이를 만큼 엄청나게 나와요. 이 밥찌꺼기도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쓰레기가 되지요.

흙살림하고 등지는 삶이 되면서 그만 쓰레기를 늘리는 사회가 되어요. 시골이 텅 비고 도시만 뚱뚱해지는 얼거리 못지 않게, 한국 어디에나 쓰레기가 철철 흘러넘치는 마당이 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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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도 벼농사 ⓒ (사)텃밭연구소


오늘날 세상이 삭막해진 것은 결코 인간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경쟁고가 탐욕을 부추기는 사회 환경 때문이지요. 그럴수록 우리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114쪽)

유기물들은 흙 속으로 세균, 곰팡이 등의 미생물들을 불러들입니다. 이 유기물과 미생물 들은 작은 벌레나 지렁이 등 다른 생명을 불러들이고, 땅강아지와 두더지 등도 살게 하지요. 이러한 다양한 생물들은 흙 속의 유기물을 먹고 배설하며 살아갑니다. 이 과정에서 흙 입자들을 적당히 뭉치게도 학고 흩어지게도 하여 생명이 삵기에 좋은 구조로 만들어 줍니다. (53쪽)

<10대와 통하는 농사 이야기>는 어린이랑 푸름이가 다른 모든 인문지식과 학교교육에 앞서 '우리가 스스로 먹는 밥'을 제대로 다시 돌아보자고 이끌어 줍니다. 우리 사회 어른이 스스로 못 바꾸는 얼거리라면, 앞으로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스스로 도시에서 작은 텃밭을 일굴 수 있도록 길동무가 되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먼저 텃밭을 배우고 가꾸면 둘레 어른이 이 텃밭살림을 함께 하도록 끌어당기자고 하는 목소리를 들려주어요.

이러한 (화학)농사법은 석유의 소비를 부추겼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가지요? 농사에 쓰이는 화학 비료와 농약뿐 아니라 비닐, 농기계 등 농사 전반에 걸쳐 석유가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딸기를 보겠습니다. 농부는 석유로 만든 비닐로 하우스를 만들고 비닐로 흙을 덮습니다. 석유 에너지를 이용해 만든 화학 비료로 딸기를 키우고 석유로 만든 농약을 뿌려 줍니다. 또, 겨울철 실내 온도를 높이기 위해 석유를 연료로 사용합니다. 석유로 움직이는 농기계로 딸기밭을 관리하고 석유로 움직이는 냉장 트럭에 수확한 딸기를 실어 보냅니다. (20∼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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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옥상 텃밭 ⓒ (사)텃밭보급소


삶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길을 찾는 흙살림 이야기가 우리 앞날을 살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삶과 사람을 살리는 길을 찾는 동안 흙뿐 아니라 서로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길을 함께 헤아릴 수 있다고 느껴요.

마냥 사다가 먹는 살림을 멈추고 푸성귀 하나부터 손수 가꾸어 먹는 작은 텃밭살림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우리 삶터와 마을과 나라가 얼마나 크게 아름다운 길로 접어들 만한가를 헤아려 봅니다. 흙을 가꾸려는 생각을 품으면서 텃밭을 짓고, 집과 마을을 가꾸려는 생각을 아끼면서 밥을 지을 적에, 어린이와 푸름이 마음자리에 어떤 사랑이 샘솟을 만한가를 헤아려 봅니다.

한겨울에 석유로 난로를 지펴서 얻는 딸기가 아닌, 어린이랑 푸름이가 작은 텃밭에 씨앗을 심어서 키우는 딸기라면 얼마나 맛날까요. 제철딸기를 어린이랑 푸름이가 손수 키울 수 있으면 우리는 '석유를 아주 덜 쓰'면서 딸기 같은 먹을거리는 이 먹을거리대로 매우 맛나게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도시 농업의 목적은 생산량 증대가 아니라 '자급'에 있습니다. 내가 먹을 것은 내가 스스로 만든다는 것이지요. (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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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열매 ⓒ (사)텃밭보급소


<10대와 통하는 농사 이야기>라는 청소년책을 펴낸 철수와영희 출판사는 작은 곳입니다. 이 이쁘장한 책을 펴낸 작은 출판사가 앞으로는 흙살림 이야기에 이어서 옷살림 이야기하고 집살림 이야기도 펴낼 수 있으면 더욱 이쁘리라 생각합니다. 이 나라 어린이랑 푸름이가 밥이며 옷이며 집을 손수 짓고 가꾸며 살리는 길을 슬기롭게 배우도록 이끈다면 아주 아름다우리라 생각해요.

살림을 손수 지으면 돈을 더 많이 안 벌어도 됩니다. 밥이랑 옷이랑 집을 손수 지어서 누릴 수 있으면 경제성장을 굳이 안 해도 나라가 아름다우면서 튼튼하게 설 만합니다. 정치 우두머리는 '일자리 만들기'보다 '사람들이 손수 짓는 살림을 북돋우기'로 나아간다면 다 같이 멋지면서 아름다울 만하지 싶어요.

식품 첨가물의 목적은 건강이 아닙니다. 사람 몸에 필요하거나 이로운 성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보기 좋게 하거나 향이나 맛을 내려고 쓰는 거예요. 물론 썩지 않고 오래가게끔 하는 방부제 같은 것들도 있지요. 내가 직접 만들어 먹는다면 그래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131쪽)

찬찬히 꿈을 꾸어 봅니다. 아파트 꽃밭이 텃밭으로 바뀌고, 아파트 주차장이 논으로 바뀌는 모습을 꿈으로 꾸어 봅니다. 학교마다 있는 주차장이 텃밭이나 논으로 바뀌는 모습을 꿈으로 꾸어 봅니다. 청와대 앞마당도 국회의사당 주차장도 텃밭이나 논으로 바뀌어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공무원 누구나 틈틈이 호미를 쥐어 땀을 흘리는 모습을 꿈으로 꾸어 봅니다. 서울 광화문에 큼지막하게 선 신문사 창가에는 '상자 텃밭'이 놓여서, 신문사 기자도 틈틈이 텃밭을 돌보면서 손수 도시락을 챙겨 먹는 모습을 꿈으로 꾸어 봅니다.

어린이랑 푸름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10대와 통하는 농사 이야기》를 읽으면서 흙살림을 배울 수 있기를 빌어요. 흙부터 찬찬히 살피면서 삶을 살리고, 생각과 마음과 꿈을 사랑스럽게 살릴 수 있기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10대와 통하는 농사 이야기>
(곽선미·박평수·심재훈·오현숙·이상수·임현옥 글 / 철수와영희 펴냄 / 2017.2.4. / 13000원)

10대와 통하는 농사 이야기 - 생태적 삶을 일구는 도시 농업과 건강한 먹을거리

곽선미 외 지음,
철수와영희, 2017


#10대와 통하는 농사 이야기 #농사 #청소년책 #청소년인문 #흙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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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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