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의 의대생, 우리가 확신했던 게 틀렸다니

국정농단에 빠진 의료계를 보며 읽은 <확신의 함정>

등록 2017.02.07 15:04수정 2017.02.0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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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사회를 원하는 의대생 3명이 책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에 나눈 이야기들을 모아 기사로 담았습니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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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저자의 <확신의 함정> ⓒ 김민수

금태섭이 지은 <확신의 함정>은 유연한 사고와 비판에 수용하는 모습을 갖추어 보라고 말한다. 얼핏 보면, 법률에 관련한 책 같이 보인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법이라는 것을 넘어 정치, 문화, 사회 전반의 모습들과 관련된 생생한 사례들을 들려줘 우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 책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는 항상 옳을 수 없기 때문에, 매번 고민해야 하며 틀렸다면 고쳐 나가야 한다는 것.


'문학을 비롯한 예술을 법의 잣대로 평가하려고 애를 쓰는 것은 법원의 오래된 전통이다. 하지만 그 기준은 명확하지도 않고, 정당하지도 않다. … 단순히 평가의 차이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예술 기법에 대해서 한 수 가르칠 자격이 있다고 자임하는 판례의 태도이다. 대법원은 "꼭 본인 부부의 나신을 그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야할 논리적 필요나 제작기법상의 필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과연 이런 판단을 법원이 하는 것이 정당할까?' - 예술을 법으로 재단할 수 있는가, 158p

우리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체로 너그러운 마음을 보인다. '원래 그런 거야'라고 하면 별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다. 그 문제에 다양한 사실관계들이 얽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들은 어느 분야에나 존재한다. 교육, 가정, 범죄, 성, 법, 정치, 과학, 사회, 종교, 경제 등 인간이 활동하는 모든 곳에 있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인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다룰 때도 존재한다. 진지한 고민과 탐구가 필요한 곳에서도 당연함의 논리는 그 권위를 내세우고 우리에게 따를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할 때가 많다.

'타블로의 학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의 의식 깊은 곳에도 이런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도 얼마든지 사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자신감, 답변에 조금이라도 의혹이 있으면 얼마든지 증명서를 요구할 수 있다는 황당한 고집, 그리고 만에 하나라도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하는 사람은 법적, 도덕적으로 어떤 불이익도 감수해야 한다는 비논리는 이런 생각 없이는 생겨날 수 없다.' - 나는 나를 증명해야 하는가, 148p

이 정당성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우리를 지배하는 '선입견', 다 알고 있다는 '오만', 진실을 물고 늘어지지 않은 '게으름'은 확신을 만들어낸다. 틀림없다는 확신은 불의를 정의로 탈바꿈하고 악을 선으로 바꿀 수 있으며, 진실을 거짓으로 만들어버리고 진리를 위협한다. 이렇게 형성된 인간의 인식 틀은 쉽게 바뀌려하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불과한 1975년 미국 국립과학기술원은 앞으로 100년 이내에 지구가 심각하게 추워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 폰테는 대중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지구 한랭화는 앞으로 11만 년 동안 대처해야 할 사회적, 정치적 문제다. 이 문제에 관한 정책 결정에 대중이 동참하는 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자손과,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해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고작 30년 전에 10만 년 동안 지속될 빙하기가 온다고 법석을 떨던 사람들이 갑자기 지구가 더워져서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떠들어댄다면 그 말에 믿음을 갖기는 쉽지 않다.' - 과학은 정답일까?, 187p

우리는 모호한 것을 대하는 것을 어려워하며, 복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고, 확실한 것을 추구한다. 일단 정해진 것은 반드시 참이어야 한다. 그것은 어떤 문제에 대해 자신의 논리를 전개할 때 뒷받침하기 위해 참인 전제로서 이용된다. 그것은 의심하기 힘든 것이며, 때로는 신의 뜻, 사명이나 고귀한 목적으로 둔갑한다.

'그러나 단순히 종교적 선택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르카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 책의 작가(마르잔 사트라피)가 대학 입학을 위한 이념 시험에서 시험관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한다. 시험관이 … 라고 묻자 마르잔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요. 하지만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해왔어요. 만약 여자의 머리카락이 그렇게 많은 문젯거리가 된다면 신은 여자를 대머리로 창조했을 거라고 말이죠." 이슬람의 신이건, 기독교의 신이건, 신은 적어도 남자를 흥분시키기 위해 여자의 머리카락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 신은 왜 여자를 대머리로 만들지 않았나, 170p

또한 이 당연함의 논리는 자주 다수의 힘으로 소수를 억압할 때 이용된다. 피해를 보는 것은 이것으로 인해 문제를 겪고 있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소수이다. 그들의 목소리는 진실을 이야기해도 귀 기울이는 사람은 적고, 다양성과 상호존중이라는 가치는 힘의 논리에 의해 파괴된다. 오직 강자의 방식만이 받아들여질 수 있으며, 소수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을 위해 '맞춤 제작'되는 아이가 있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물론 인간을 완전히 수단으로 보아서 '전투형 인간'을 만든다던가 '순종적인 인간'을 생산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두말할 필요 없이 금지해야 하겠지만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일이라면 어떨까? 불치병에 걸린 자식을 둔 부모가 조직 이식이 가능한 또 한 명의 아이를 낳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이용하는 것은 허용될까?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도 크게 위험한 일이 아니라면 아직 스스로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신생아단계에서 혈액채취나 골수이식 등을 부모가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만일 아이가 자라면서 반대를 하면 어떻게 될까? 법은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까?' - '완벽한 아이'를 향한 욕망, 175p

그러므로 무엇인가를 믿는다면 동시에 질문을 해봐야한다. 그 사실에 대해 의심을 던져봐야 하고 여러 반응과 해답들을 찾아야한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도 질문은 필요하다. 그 과정은 옳은 것, 받아들여지는 것,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 길에서 다양한 사람들, 가치들, 관점들을 만나게 된다. 그 길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가꿔나갈 수 있다. 그 길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가 가야할 길임은 분명하다.

우리가 선망하고, 믿고 있었던 의료계는 '비선 의료진'의 국정농단에 놀아났다. 태반주사와 면역주사, 줄기세포 주사 등 난데없는 무허가 시술이 병원내외에서 이루어졌고 이를 시술한 특정 의료인과 관계된 병원은 특혜를 받고 몸을 불렸다.

뿐만 아니라, 의료제도의 개편은 국민 건강을 위한 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대기업과 비선 의료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이 기대했던 '의료인'의 윤리의식은 바닥에 떨어졌다.

'확신의 함정'에 빠진 의료계를 보면서, 우리는 당연함의 논리를 깨고 고쳐나가려고 한다. 누가 강자인가? 소수의 부패된 강자들이 의료계 다수를 좀 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우리가 관심이 없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닐까? 여러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너무 불편하다.

확신의 함정 - 금태섭 변호사의 딜레마에 빠진 법과 정의 이야기

금태섭 지음,
한겨레출판, 2011


#의대생 #책모임 #국정농단 #의료농단 #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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