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닭볶음면을 든 채식주의자, 내용물 알고 당황했지만...

내가 육식을 끊은 이유(2)

등록 2017.02.09 15:57수정 2017.02.0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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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같은 채식주의자라고 해도 먹거리의 성분 하나하나를 따져 엄격하게 실천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 어느 정도 예외를 두어 조금 더 유연하게 실천하시는 분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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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끊고 1년이 흐른 어느 날, 항상 즐겨 먹던 참치 캔에서 유난히 비린내가 난다고 느낀 후 자연스레 생선도 멀리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의 최종 목표는 유제품을 포함한 모든 육식을 금하는 비건(vegan)이 되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때 나에게 순수 채식주의의 삶이란 어떤 '고고한'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는 듯한 동경의 대상이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다양한 선택권이 존재하는 여타 나라들에 비해, 그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순수 채식인으로 사는 데는 여러모로 장애요소가 많다. 우선 한국인으로써 각종 젓갈류가 들어가는 김치를 포기해야 하기에 일부 채식인들은 손수 채식김치를 담궈 먹기도 하지만, 김치는커녕 요리에도 취미가 없는 나에겐 그것부터가 큰 난관이었다.

또한 한국 음식 특성 상 각종 생선 육수를 쓰는 국, 찌개, 그리고 각종 유제품을 재료로 하는 기존의 빵, 과자, 초콜릿 류, 육류 성분이 함유된 만두와 면 류, 게다가 돼지 콜라겐을 원료로 하는 기존 음료, 젤리 등을 모두 금해야 하기에 여러모로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먹거리가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편한' 마음으로 먹으려고 시작한 비육식생활로 인해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결국 해산물까지 섭취 가능한 '페스코(pesco)'로 남는 것이 나에겐 최선의 선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신 생선은 드물게 먹고 달걀은 간접 섭취만 해오고 있다. 사실 같은 채식주의자라고 해도 먹거리의 성분 하나하나를 따져 엄격하게 실천하는 분들이 있는 반면 어느 정도 예외를 두어 조금 더 유연하게 실천하시는 분들도 있다.

한국에 사는 외국 채식주의자들 중 함께 들어간 식당에서 멸치 육수를 썼다는 이유로 된장국을 거부한 이가 있는 반면, 비건(vegan)이긴 하지만 '김치'는 조금씩 먹는다는 이도 있다. 언젠가 가게에 와서 계산대에 '불닭볶음면'을 내려놓은 한 외국인 남성이 일행과 나누는 대화 중에 '베지테리언'이라는 단어가 들려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맞단다.

실례지만 이거 '치킨누들'인데 괜찮겠냐고 물으니, 당황한 기색으로 나와 면을 몇 초 정도 번갈아 쳐다보더니 "처음 먹어보는 거라서..." 하며 결국 사갔다. 외국인들 사이에 워낙 인기있는 제품이라 한 번쯤 호기심으로 먹어보려나 싶었는데 재밌게도 그는 그 다음 날 그걸 또 사갔다.


이태원엔 이슬람 사원이 있기에 가게에 와서 종종 '할랄(Halal)' 식품 여부를 묻거나 돼지고기 함유 여부를 묻는 이슬람 신자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한국의 기존 먹거리 는 선택의 폭이 좁은 편이다.

육식을 안 한다고 하면 간혹 고기 생각이 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나같은 경우 처음엔 '안 먹어도 견딜 수 있는 상태'로 지내다가 점차 '먹기 싫어지는 상태' 그리고 세월이 더 흐르면서 결국엔 '냄새조차 싫어지는 상태'로 변했다.

5년 전 파리 여행 중 몹시 허기진 상태로 들어간 한 스낵바에서 주문이 잘못 전달되어 '치킨 샌드위치'가 나왔다. 먼 타국에서 배고파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에서 그걸로 또 실랑이를 벌일 기운도 없어 불가항력의 상황이라 생각하고 한 번 먹어보기로 했다. 사실 내가 아직도 고기를 먹을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 입 베어무는 순간 닭 특유의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며 웩 하고 뱉어내고 말았다. 확실히 인간의 몸은 특정 식품을 오랫 동안 섭취하지 않으면 몸 자체에서 거부하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듯하다.

각설하고, 인류는 지금껏 무분별하고 과다하게 육류섭취를 해 온 것이 사실이기에 이제는 건강 측면에서 조금 줄이는 것은 좋지만, 궁극적으로 모두가 육식을 금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조속히 더 윤리적이고 바른 방법으로 육식을 할 수 있는 방식이 도입되기를 바랄 뿐이다.

야채나 과일은 유기농, 무농약 재배 등등의 취사 선택권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고기는 그렇지 않다. 그런 점에서 자신들의 율법에 따른 엄격한 도축과정을 통한 고기만을 허용하는 이슬람 문화에서도 우리는 배울 점이 많다.

어느 나라보다 육식 수요가 많은 미국에서도 기존 도축방법의 문제점을 보완한 다양한 대안책들이 연구되고 있는 것 같다. 난 개인적으로 도축에도 '안락사'가 도입되는 날을 꿈꾼다.

그게 아니라도 비록 인간의 먹거리가 될 운명을 감수하는 동물들이지만 그들의 죽은 몸을 섭취할 때 그들의 고통과 원망도 함께 흡수되는 작금의 방식보다 한 차원 높은 시스템이 조속히 도입되길 소망한다. 그것만으로도 이 병든 지구와 인간, 동물들을 살리는데 큰 힘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육식 #채식주의 #도축 #비건 #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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