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와 순교의 땅, 지금은...

곡성성당, 나주성당, 다산초당 등 남도의 천주교 성지

등록 2017.02.13 10:50수정 2017.02.13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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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박해'의 진원지인 곡성성당 마당에 들어선 불탑. 특정 종교를 떠나 모두 함께 사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다. ⓒ 이돈삼


여행지를 생각하면 곧잘 떠오르는 곳이 절집이다. 산중 깊숙한 곳에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어서다. 문화재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산사체험 프로그램도 발길을 유혹한다. 상대적으로 개신교나 천주교 예배당은 여행지에서 한발 비켜 선 느낌이다. 생각해 보면 역사와 의미 깊은 교회나 성당이 많은 데도 그렇다.

특정 종교를 떠나 한번쯤 들러볼 의미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 남도의 천주교다. 광주에는 대교구청이 있다. 남동성당과 북동성당의 유서도 깊다.


옛 광주가톨릭대학교 건물을 쓰고 있는 광주대교구청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붉은 벽돌집이다. 1962년에 건립됐다. 가로 12m, 높이 8m의 조각작품 '비움의 십자가'도 설치돼 눈길을 끈다.

나주 노안성당의 성모상. 눈 덮인 풍경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 이돈삼


광주 남동성당 전경. 광주민중항쟁 이후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저항운동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 이돈삼


1980년 5월 광주항쟁 때 김성용 남동성당 주임신부가 광주를 탈출, 서울로 올라가 광주의 실상을 처음 알렸다. 이후 남동성당은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저항운동의 구심점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도 그 역할을 해오고 있다.

북동성당은 광주 천주교 선교의 태 자리이다. 한국농민운동사의 큰 획을 그었던 함평고구마 사건과도 인연이 깊다. 당시 피해 농민들이 가톨릭농민회를 찾아 도움을 청한 것이 계기였다. 농성 20개월 만에 농민들이 보상을 받아내는 데 큰 힘을 보탰다.

광주의 성당이 민주와 인권, 평화에 큰 역할을 한 덕에 비장함이 묻어난다면, 전남의 성당은 순교자와 엮이는 곳이 많다. 곡성성당, 나주성당, 영광성당이 대표적이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했던 강진과 손암 정약전이 유배됐던 신안 흑산도도 천주교와 엮인다. 이들의 유배가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시작됐다.

곡성성당 입구에 세워진 '옥터 성지' 표지석. 정해박해의 진원지임을 알리고 있다. ⓒ 이돈삼


곡성성당 뒤에 들어선 옥사와 형틀. 옛 천주교인 탄압의 상징물로 복원했다. ⓒ 이돈삼


순교지로서의 성당 가운데 먼저 손에 꼽히는 곳이 곡성성당이다. 1827년(순조 27년)에 일어났던 정해박해의 진원지에 들어선 성당이다. 정해박해는 을해박해(1815년)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 신도들을 다시 한 번 핍박한 사건이다.


곡성으로 숨어든 신자들은 신분을 감춘 채 생계를 잇기 위해 옹기를 빚으며 살았다. 이 마을에서 일어난 사소한 다툼을 빌미로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가 다시 시작됐다. 천주교인 검거 선풍이 전라도 전역으로 확대되고 경상도, 충청도와 서울까지 파급됐다.

곡성성당의 성모상을 둘러싼 노란 리본들. 세월호 침몰의 아픔을 표현하고 있다. ⓒ 이돈삼


곡성성당은 당시 천주교인들을 잡아 가뒀던 감옥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옥터 성지'로 불리는 이유다. 곡성성당이 들어선 자리에 당시 곡성현청의 객사가 있었다. 이 객사가 임시 감옥으로 사용됐다. 성당 입구에 놓인 '옥터 성지' 표지석이 그때를 증명하고 있다.

곡성성당은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섰다. 성당 안에는 어린 양이 새겨진 십자가와 예수의 갈비뼈를 형상화한 벽이 이목을 끈다. 성당 뒤쪽에 옛 감옥과 형틀도 복원해 놓았다. 성당 마당에 세워진 불교의 상징물인 석탑도 이색적이다. 성모상 앞에 세월호를 기억하는 노란 리본도 많이 매달려 있다.

순교자를 기념하는 영광성당 전경. 순교 기념문의 4개 칼 모양이 순교자들을 가리키로 있다. ⓒ 이돈삼


영광성당 예배당. 신도들끼리 이어 쓰던 성경책이 놓여 있다. ⓒ 이돈삼


천주교와 불교의 어우러짐은 영광성당에서도 엿보인다. 영광성당에 있는 느티나무 고목에 절집 전각의 처마 끝에나 매달려 있는 작은 종, 풍경이 걸려 있다. 바람에 따라 흔들리면서 소리를 내는 청아한 풍경소리가 성당의 고요를 깨운다.

영광은 천주교가 비교적 일찍 전해진 지역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이화백 등 2명이 영광에서 순교를 했고, 병인박해 때엔 영광사람 2명이 공주와 나주감옥에서 순교했다. 영광성당은 이들을 기리는 순교자 기념성당이다. 성당 입구 순교기념문의 4개 칼 모양이 이들을 가리킨다.

무학당 자리에 들어선 나주초등학교 전경. 한쪽에 순교 터였음을 알리는 안내판에 세워져 있다. ⓒ 이돈삼


나주성당에 들어선 순교자 기념 경당. 순교자들이 겪은 사면초가의 상황을 빈 무덤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 이돈삼


나주성당도 순교자 기념 성당이다. 병인박해가 계속되던 1871년 영광사람 윤문보 등 3명이 나주감옥으로 잡혀왔다.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다 이듬해 무학당에서 순교했다. 당시 무학당은 지금의 나주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나주초등학교 정문에 순교 터였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나주성당은 무학당 순교자들의 믿음으로 터를 닦았다. 본당에 빈 무덤 형태의 순교자 기념 경당이 만들어져 있다. 기해박해와 병인박해 때 나주에서 순교한 4명을 기리는 공간이다. 입구가 무게 60톤의 큰 돌로 만들어져 있다. 안에 들어가면 4면이 닫힌 벽으로 돼 있다. 순교자들이 겪은 사면초가의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경당 앞에는 청동으로 만든 순교자의 기도상이 설치돼 있다. 그 모습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나주성당의 까리다스 수녀회의 한옥 건물도 눈길을 끈다. 앞뜰에는 수녀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한복을 입은 성모자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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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으로 만든 순교자의 기도상. 그 앞으로 순교자 기념 경당이 위치하고 있다. ⓒ 이돈삼


옛 성당의 고풍스런 멋을 간직한 나주 노안성당 전경. 나주지역 최초의 천주교회다. ⓒ 이돈삼


해마다 크리스마스축제를 여는 노안성당도 나주에 있다. 나주지역 최초의 천주교회다. 옛 성당의 고풍스런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100년이 넘은 역사와 건축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제44호)로 지정됐다. 이 성당을 중심으로 신도와 마을주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크리스마스 축제를 열면서 '산타마을'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눈길을 끄는 성당은 더 있다. 고흥 소록도에는 2번지(병사) 성당과 1번지(직원) 성당이 있다. 1번지 성당에 들어앉은 십자가가 붕대에 감겨있다. 한센인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십자가다. 1959년과 1962년부터 한센인들과 함께 산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의 사택도 소록도에 있다.

고흥 소록도에 있는 2번지(병사) 성당과 1번지(직원) 성당. 한센인들의 아픔이 서려 있는 공간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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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흑산성당 앞의 조형물들. 흑산도는 손암 정약전이 신유박해 때 유배 돼서 8년 동안 살았던 섬이다. ⓒ 이돈삼


다산 정약용의 형, 손암 정약전이 신유박해 때 유배와 8년 동안 살았던 신안 흑산도에는 흑산성당과 흑산성당 사리공소가 있다. 돌담과 돌장식이 독특한 성당이다. 사리공소 앞 마을 담장은 고려 때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사리공소 인근에 정약전의 유적지인 사촌서실(沙村書室)도 있다. 정약전이 초가를 짓고 책을 읽으며 어린아이들을 가르쳤다는 곳이다. 바닷물고기의 생태를 다룬 '자산어보'도 여기서 집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정약전의 동생, 다산 정약용도 천주교와 엮인다. 다산은 신유박해 때 강진으로 유배 와 18년 동안 살았다. 경기도 남양주 마재에서 태어난 다산은 10대 후반에 이미 천주교에 매료됐다. 20대 초반에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1791년 진산사건으로 윤지충과 권상연이 죽임을 당하고 박해가 거세지자, 배교의 뜻을 명백히 했다. 이후 여러 차례 신앙을 부인하고, 1799년에는 '척사방략(斥邪方略)'이란 책을 통해 천주교 배격 입장을 더욱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강진 유배생활 때 다산은 천주교와 관계를 이어왔다. 성직자 영입운동에도 참여했다. 유배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는 예전보다 더 강한 신앙심을 보여줬다. 배교를 반성하며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묵상과 기도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강진 다산초당 전경. 신유박해 때 유배된 다산 정약용이 생활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 이돈삼


#성당 #천주교 #곡성성당 #나주성당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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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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