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주최 촛불, 초등학생들까지 '애걸복걸'

'청소년 시국집회' 연 순천시 '98'들... 300명의 청소년들이 순천에서 플래시몹 한 까닭

등록 2017.02.15 21:04수정 2017.02.15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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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유일한 본분으로 일컬어지는 공부. 하지만 "공부만 하라"는 어른들의 질책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에 드러나거나 숨겨진 여러 곳에서 두각을 보이는 청소년들이 있고, 그리고 청소년에게 힘이 되어주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같은 고민에 속해 있는, 청소년인 필자가 직접 인터뷰합니다. 또, 청소년들이 모이고, 주최했던 행사나 모임을 취재합니다. 청소년 시민기자가 직접 발로 뛰고 집필하는 연재기획, <옆동네 1318>입니다. 

민중총궐기에서의 '함성'을 넘어, 현실 정치에 점점 청소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미니기획'을 준비했습니다. 서울 외의 지역에서 집회, 행동 등을 통해 '열심히 뛰고 있는' 청소년 행동 단체·주체를 인터뷰합니다. 이번 차례에는 '플래시몹' 형태로 순천에서 모인 청소년들 중, '주동자' 두 명을 인터뷰합니다. 다음에는 경남 고성군과 사천시에서 활동하는 청소년을 인터뷰하러 경남 창원시로 향합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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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 밤 순천 연향동 앞에는 많은 청소년들이 집회를 위해 모였다. ⓒ 강인균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4일 뒤 일요일, 전날 '순천 시민 총궐기'가 끝난 열기가 채 가시지 않은 순천시 연향동 국민은행 앞에서 청소년 300명이 모였다. 청소년들은 한목소리로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그렇다면 이 청소년들이 어떤 단체에 속해 있어서 모였던 것일까, 아니면 한 학교의 학생들이 '주동자'가 되어 친구들을 불러왔던 것이었을까.

아니었다. 지역에서 있었던 집회에서는 특이하게 '플래시몹'(불특정 다수가 일정 목적을 위해 모였다가 흩어지는 형태의 움직임) 형태로 이루어졌던 집회였다. 한 사람이 기획하더니 여러 명이 기획에 참여하고, 300명의 청소년들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그간 열렸던 성인 집회에서도 흔하지 않은 '플래시몹'. '수능 끝난 고3'들이 무작정 열었던 집회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래서, '바람처럼 열고 바람처럼 사라진' 이 청소년... 아니 '갓 스물'들을 만났다. 입소문을 잘 탄 덕분에 집회가 잘 되었다는 두 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땅거미가 쭉 깔린 지난 10일 저녁 광양, 순천에 사는 두 사람을 순천역 바로 앞 카페에서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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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에 응한 청소년들. 왼쪽이 최미린 씨, 오른쪽은 강인균 씨이다. ⓒ 박장식


- 만나서 반갑다. 두 분이 자기소개 한마디씩 해주시는 것 어떨까.

최미린: 순천 팔마고등학교에 다녔고, 9대 학생회장으로 있었다. 지금은 교사가 되기 위해 광주교육대학교에 입학 예정이다. 원래 성격이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교내 버스킹 행사를 기획한다거나, 사진전을 여는 등 여러 '일'을 벌였는데, 이번에도 청소년 시국집회를 열게 되었다.


강인균: 전남 광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열심히 한 일들은 별로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어쩌다가 '페북'을 통해 이 집회를 접하고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많았는데,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모 의원의 말에 분노해서 이번 행사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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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시위가 있던' 11월 19일과 당일 오후, '홍보전'에 돌입했다. 피켓을 들고 시국집회를 홍보하고 있다. ⓒ 박장식


- 와, 그런데 정말 무계획적으로 구심점 없이 열었던 것인가. 다른 지역에서 이런 형태... 그러니까 플래시 몹 형태로 이루어졌던 집회를 보기 어려웠다. 어떻게 이런 집회를 열게 되었는지 과정을 알 수 있을까.

최미린: "사실 어떻게 집회가 열리는지, 집회 절차에 대해서도 잘 몰랐다. 신문에 청소년들이 시위를 하는 모습을 담은 기사를 접하고 '나도 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고3이고, 수능이 2~3일 남았다 보니 수능이 끝나고 집회를 열기로 했다. 물론 친구들에게 장난식으로 '나 이거 뭐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 하면 와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수능이 끝나고 진짜 (집회를) 열어버리니까 다들 놀랐다.

수능이 끝나고 그냥 내 페이스북에 하자고 글을 올렸다. '계획하고 있는데 참가자가 30명만 넘어가도 집회 신고하러 간다'고 했는데, 진짜 30명이 댓글을 달아줘서 집회를 열게 되었다. 그중에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는데, 같이 돕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그렇게 인균이가 참여하게 되었다. 그래서 수능 다음날 바로 경찰서로 가서 집회신고를 했다. 그날 학교에서 포스터도 만들었다."

강인균: "경찰서에 가서 집회 신고를 했다. 경찰서에 신고하면서 행진도 하기로 했다. 연향동 패션의 거리를 도는 경로였다. 학생 자유 발언자도 모집하고, 그렇게 집회를 열었다. 토요일에 어른들이 여는 총궐기에 가서 '홍보'도 때리고 왔다. 그 날 피켓도 없고, 촛불도 없어서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그날 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남지부에서 연락이 와서 도움을 받게 되었다.

토요일 집회 때 시민들이 썼던 피켓, 깔개를 수거해서 다음 날 집회에 사용할 수 있었다. 촛불과 종이컵도 지원을 해주셨다. 앰프라든가 스피커, 마이크 같은 집기들도 지원받았다. 사비도 썼는데, 피켓이 부족할 것 같아 피켓을 만드는 데 썼다. 그래도 도움을 주신 분들 덕분에 부족함 없이 집회를 열 수 있었다."

최미린: "그런데 우리만의 색깔을 가진 집회로 만들고 싶었다. 조금 더 생기발랄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서 순천여고 댄스 동아리와 노래하고 싶다는 청소년도 불러서 신나는 식전행사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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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린 씨가 집회 3일 전에 '파워포인트'로 만든 포스터. 이렇게, 집회는 예상치 못하게 시작되었다고 한다. ⓒ 최미린


- 그런데 다음날 꽤 많은 학생이 모였다. 경찰 추산 300명 정도가 이번 집회에 모였다. 어떻게 본 집회가 진행되었나 알 수 있을까.

최미린: "오전에 친구들을 모아 시내 일대를 돌면서 피켓 홍보를 했다. 그것을 보고 오신 분들도 있다. 오후부터 준비했고 식전행사 후에 본 집회를 했는데 사회는 나랑 인균이가 같이 봤다. 처음에 쌍둥이 동생이랑 친구가 시국선언문을 읽고, 그다음에는 촛불을 흔들며 '순천 시민 부끄럽다, 이정현은 사퇴하라', '박근혜는 하야하라'와 같은 구호를 외쳤다.

그다음에는 자유발언도 하고, 자유발언이 조금 질린다 싶으면 '인기 많은' 민중가요를 틀었다. god의 '촛불 하나' 랩을 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오라고 했는데, 진짜 나와서 후렴구는 같이 부르기도 했다. 자유발언을 하면서 즉석 신청도 받고, 하야 관련 노래들도 같이 불렀다."

강인균:" 어느 정도 행사가 무르익었을 때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두 줄로 줄을 서서 행진했다. 행진하면서 구호도 외치고, 피켓도 흔들었는데, 상가 쪽에서 '힘내라', '멋있다'라는 반응과 함께 박수를 받았다. 정보과에 계신 경찰 몇 분이 오셔서 이번 집회 추산이 300명 정도라고 하셨다. 대성공한 셈이다.

차 안에 있는 시민들은 함께 한다는 의미로 5초간 주변을 지날 때 경적을 울리는데, 그때도 울려주셨다. 특히 시내버스 기사분들이 경적을 오래 울려주셨는데, 그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행사는 행진을 하고 마무리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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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연향동에서 열린 순천 청소년 시국대회의 모습. ⓒ 강인균


- 그렇다면 집회 진행 중에, 집회를 하려던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이 있다면 어떤 장면이 있었나.

최미린: "내 친구들이 많이 왔는데, 교실에서 필기 하라는 대로 필기하고, 수업 중에 잠 잘 자던 평범한 친구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모여 열정적으로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니 '반전 매력'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언론에 비치는 수동적인 모습이 아닌, 우리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강인균: "학교 후배가 나보다 시위나 집회를 열정적으로 다니고, 비싼 돈 들여서 서울까지 '원정'을 다닐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집회 이야기를 듣고 바로 달려 나오겠다고 했는데, 1, 2학년 기말고사가 며칠 안 남은 시점이었다. 그래서 걱정을 했는데 후배가 '지금 나라가 이 꼴인데 공부만 하면서 가만히 있을 수 있냐'고 반문한 것이었다. 이것을 보면서 후배에게 한 수 배웠다."

최미린: "또 중학생들이 많이 집회에 왔다. 가장 인상 깊었던 친구는 초등학교 5학년 친구였는데, 자유발언 때 '전 세계에서 없어져야 할 사람들'이라면서 미국의 트럼프, 북한의 김정은, 한국의 박근혜라고 말을 한 것이었다. 또 초등학생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와서 '나도 자유발언 한 번만 하게 해 달라'고 애걸복걸하는데, 그 모습에서 정말 '감동'받고 '나는 초등학생 때 무엇을 했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또 사회 볼 때는 많이 온 줄 몰랐는데, 행진하면서 뒤를 돌아보니까 많은 친구들이 줄을 길게 이어서서 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찡했다."

강인균: "광양 사는 친구들과 함께 버스 타고 가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 집회가 너무 잘 되었고, 큰 목소리로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던 것이었다. 그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

- 그렇다면 끝나고 주위 어른들 반응들은 어땠을까. 아마 선생님들 중에서 직접 목격하신 분들도 계실텐데.

강인균: "학교 가니까 담임선생님부터 다른 선생님들까지 '동네방네' 다 소문이 났다. 역사 쌤이 오시더니 교과서 말고 거리에서 배우는, 이런 것이 진짜 민주시민 교육이라는 말씀을 하시며 수고했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부모님은 '나중에 잡혀가는 것 아니냐'고 하셨는데, 다행히도 지금까지 별 탈은 없다. 그렇지만 길거리에서 '빨간 마티즈'를 보면 가끔 쫀다."

최미린: "앞에서 사회를 보고 있는데 그때 담임선생님이 오신 것이었다. 잠깐 보시다가 한눈파니까 다른 곳으로 가셨다. 사실 다음 날 피곤해서 지각했는데, 담임선생님이 '피곤했구나, 그래도 무단이다'라면서 진짜 무단지각에 출석부 체크를 하셨다. 그래도 무단지각은 무단지각이니까.(웃음) 부모님은 아예 집회에 오셨다. 엄마랑 언니가 왔는데, 엄마가 괜히 태클을 거셨다. '왜 그렇게 아는 척을 하냐'면서 거셨는데, 그래도 수고했다는 응원을 해 주셨다."

- 그렇다면 환기하는 질문 하나. 모든 상황이 같다는 전제하에 서울 광화문에서 이런 집회를 개최했다면?

강인균: "그곳에서 했거나 여기서 했거나 내용은 같았을 것이다. 원래 사람이 '빠글빠글'한 도시니만큼 더 많은 청소년이 모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우리 동네, 서울과 다른 지역에서 했으니만큼 더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최미린: "오히려 순천이라 더 의미 있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 했다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고 사람도 더 많이 모였겠지만. 사람들이 크게 관심 갖지 않는 지방의 작은 소도시에서 청소년들에게 이런 집회를 경험하게 해준 것이라서 의미가 더욱 크다."

- 앞으로도 이런 집회 개최기회가 있으면 할 것인가.

최미린: "당연하다.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고등학생에서 벗어났으니만큼 앞으로 한다면 더욱더 큰 책임감을 갖고 참여할 것이다. 고등학교 때 '경험'을 했으니만큼 이제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집회에 참여하고 싶다."

강인균: "이런 집회가 애초에 일어나지 않도록 권력자들의 반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의가 바로잡히는 사회가 되어서 이렇게 거리에 나설 일이 없으면 좋겠다. 만일 무엇인가 잘못 돌아간다면 이번보다는 훨씬 짜임새 있게 열기도 하고, 참여도 하고, 자유발언도 올라가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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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균 씨와 최미린 씨가 11월 20일 열린 순천 청소년 시국대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 강인균


- 고생하셨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개인적인 진로나 목표를 말씀해주셨으면 좋겠다. 학과는 이미 정해졌으니까 진학 목표는 '빼자'.(웃음) 개인적인 목표는 '빅 픽쳐'도 좋다.

강인균: "원래는 역사 교사를 하려고 했는데, 사범대에 떨어졌다. 그래도 사학과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고, 교직 이수 기회가 있다면 교직 이수도 받고 싶다. 또 더 연구해서 대학 교수도 되고 싶다. 개인적인 목표라면 정치를 언젠가는 해 보고 싶다. 사람이라면 다 '대통령' 한 번 하고 싶겠지만, 원내대표 정도는 한번 해보는 것이 현실적 목표이다."

최미린: "사실 문화예술 기획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전남이나 광주의 문화·예술 관련 대학원으로 진학해서 아이들이 문화, 예술과 가까워지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주고 싶다. 큰 목표는 좋은 사람 되기, 올해 목표는 '크롭티 입고 지산 락페가서 생맥'까기이다.
(저도 '록덕후'인데.(웃음) 록 밴드 누구 제일 좋아하시는가) 콜드플레이랑 'NOTHING BUT THIEVES' 노래 좋아한다. 원정 한 번 제대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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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참여한 한 청소년이 직접 만든 플랜카드. ⓒ 강인균


사실 '서울에서 집회를 연다면?'이라는 질문은 농담조로 던진 질문이었다. '서울에서 하면 엄청 많이 참여했을 것'이라는 대답을 하면서도 '그래도 순천이었기에, 집회를 경험하게 할 수 있어 더욱 빛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며 놀랐다. 단순히 '모이고 싶어' 모인 집회지만, 이런 생각이 기저에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갑자기 연' 이런 집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을 테다.

어른들도 하지 못한 '플래시 몹'이라는 생각을 통해 실제로 성공적인 집회를 이끌어나간 것을 보며 '콜럼버스의 달걀'이 떠올랐다. 다들 생각은 하고 있지만 '에이, 설마 되겠어?' 와 같은 반응을 보였던 것들이, '무대뽀 정신'으로 밀어붙인 청소년들 덕분에 성공적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어른들이 이들에게 한 수 배워가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옆동네 1318은 우리 사회의 '멋진 청소년'이라면 누구라도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제보는 trainholic@naver.com으로 부탁드립니다. 인터뷰에 참여하실 분의 '자천'도 환영합니다. 인터뷰 요청은 2월까지 받겠습니다.
#청소년 #청소년 집회 #청소년 행동 #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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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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