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 지키던 청소년들, 사복경찰에 따진 까닭

[옆동네 1318]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청소년 회원들

등록 2017.02.21 09:53수정 2017.02.2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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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유일한 본분으로 일컬어지는 공부. 하지만 "공부만 하라"는 어른들의 질책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에 드러나거나 숨겨진 여러 곳에서 두각을 보이는 청소년들이 있고, 그리고 청소년에게 힘이 되어주는 어른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같은 고민에 속해 있는, 청소년인 필자가 직접 인터뷰합니다. 또, 청소년들이 모이고, 주최했던 행사나 모임을 취재합니다. 청소년 시민기자가 직접 발로 뛰고 집필하는 연재기획, <옆동네 1318>입니다. 

민중총궐기에서의 '함성'을 넘어, 현실 정치에 점점 청소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미니기획'을 준비했습니다. 서울 외의 지역에서 집회, 행동 등을 통해 '열심히 뛰고 있는' 청소년 행동 단체·주체를 인터뷰합니다. 이번 차례에는 부산 초량동 일본 영사관 앞의 소녀상을 지키는 청소년들을 만납니다. 다음에는 대구로 향합니다. - 기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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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 옆에 있는 지하철 엘리베이터 외곽벽에 일본을 옹호하는 내용과 '일본군 위안부 한일합의 규탄'하는 내용의 글이 붙어 있다. ⓒ 윤성효


부산 초량역 7번 출구 인근의 일본 영사관 앞에 세워진 부산 평화의 소녀상. 서울에도 여럿 세워져 있고, 심지어는 고등학생들이 '주관'하여 세운 소녀상도 있을 정도(관련 기사:  "전국 100개 학교에 소녀상 100개 세우겠다").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소녀상 역시 철거냐, 아니냐를 두고 여러 '수난'을 겪었지만, 유독 이곳에 세워진 소녀상은 소녀상이 미처 다 설치되기도 전에 강제집행을 당하는 등 그야말로 '3일 전쟁'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있었다. 소녀상을 지키려다가 연행당한 10여 명의 대학생들이 있었고, 소녀상 앞을 지금도 지키고 있는 여러 청소년과 어른들이 있다. 지금도 사회적인 관심이 예전만 못하지만,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하는 등, 많은 '미래세대'들이 소녀상을 지키고, 소녀상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힘쓰는 중이다.

실제로 인터뷰를 하던 날 소녀상 앞을 지났다. 지킴이 한 명이 추운 겨울 날씨에도 소녀상 앞을 지키며, 그 앞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이곳의 소녀상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었다. 어떻게 설치되었는지, 왜 이곳에 설치되었는지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었다. 여하튼, 2월 12일 일요일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의 청소년 회원들을 만났다. 부산 범천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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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기 위해 모인 '미래세대가 세우는 부산의 소녀상> 회원들 왼쪽부터 차례대로 장진원 씨, 전옥지 씨, 전지환 씨. ⓒ 박장식


- 만나서 반갑다. 자기소개 한 마디씩 부탁드린다.

전옥지: "부산 문화여자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전옥지이다. 이제 '예비 고3' 올라간다. 부산시민, 더 나아가 국민이 세운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을 어렵게 건립한 만큼 더 잘 지키려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 단체 하나 하기에도 버거워서 다른 단체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장진원: "부산 대동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장진원이다. 우리의 손으로 세운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참여했다. 통일단체인 부산 청소년 겨레하나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지환: "만덕고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 올라가는 전지환이다. 작지만 나라도 힘이 되고 싶어 소녀상 지킴이 활동과 위안부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나도 그렇지만, 세 명 모두 겨레하나에 같이 소속되어 있다."

- 그렇다면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소개도 간단히 해 주실 수 있을까.

전옥지: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로 시작했다. 청소년, 대학생, 청년 중심으로 소녀상을 세우기 위해 모인 단체이다. 우리가 속해 있는 '겨레하나'부터, 다양한 부산지역의 청년단체가 모여 생겼다. 소녀상을 일본 영사관 앞에 세운 뒤 지난해 12월 28일 수요일 소녀상을 세운 다음 해단식을 열려고 계획을 잡아놨는데, 동구청에서 소녀상을 철거하고 야적장에다 '갖다 버리는' 강제집행을 해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해단하려고 했던 추진위원회가 부산 소녀상 지킴이 단체가 되었다. 동구청 앞에 가서 항의방문도 하고, 동구 공무원들 출근길에 피케팅도 했다. 결국, 12월 30일에 야적장에 있었던 소녀상을 결국 반환받고 31일에 제막식을 열 수 있었다. 지금은 매일 오전 9시부터 5시까지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고, 여론이 철거하지 말자는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이런 '수난'은 없을 것 같다."

전지환: "지금은 일본 영사관 소녀상에 '몰빵'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잘 되어서 원래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겨레하나' 활동으로 되돌아가려고 한다. 대선 관련 활동이나, 사회, 정치 참여, 통일과 관련된 활동이 1월 내내 '올 스톱' 되어있었기 때문에 이번 달부터는 다시 원래의 활동을 시작하려고 한다."

장진원: "나는 '겨레하나'에서 역사 관련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소녀상 관련 활동을 하려고 한다. 앞으로 청소년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계속해나갈 예정이고, 'Love Japan' 등을 붙이며 소녀상을 훼손하려는 사람들을 막는 활동을 하려고 한다. 청소년 중에 '소녀상이 뭐야?' 하는 청소년을 위해 역사 강의 시간도 마련하려고 한다."

- 소녀상을 돌려받는 과정에 '어이없는 에피소드'가 있었다던데.

전옥지: "동구청에 항의방문을 갔었는데, 그때 동구청에서 소녀상을 가져가라고 했었다. 동구청장이 회의실에서 기자회견 하듯이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자기 할 말만 하고 '내빼'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구청장을 따라갔는데, 뒤를 돌아보니까 창밖에 경찰버스가 있고, 복도에 경찰 형사가 있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 '경찰을 왜 불렀냐'며 엄청나게 따졌다."

전지환: "따지니까 하는 말이 맨 처음에 동구 직원과 마찰 때문에 일부 직원이 경찰에 신고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그런 신고접수가 되었다고 하면 경찰차가 오지 경찰 버스가 '친히' 출동하겠느냐. '요즘은 112에 신고하면 경찰 버스가 오느냐'고 따졌다. 그러니까 '여기서 신고하면 온다'고 반박하더라. 정말 어이가 없었다.

결국 동구청과 약속을 할 수 있었다. 대학생들을 연행했던 경찰 실무자에게 직접 사과도 받아내고, 몇 가지 문제가 있던 부분도 '공권력 개입 안 하겠다', '다른 실무자에게 사과를 받겠다' 등 약속을 통해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초량동으로 돌아가니 소녀상을 가져갔던 트럭이 다시 왔다."

전옥지: "트럭이 오니까 바로 건설노조 분들이 오셨다. 소녀상 설치할 때 많은 돈을 기탁하시고, 홍보도 많이 해 주셨던 분들이셨는데, 땅을 파고, 시멘트로 고정도 하는 등 '전문 철거반'이 오지 않고서는 저번처럼 절대 뽑아갈 수 없게 만들어 주셨다. 물론 철거야 마음을 먹으면 가능하겠지만, 국민들이 소녀상 편이기 때문에 정말 '절대' 못 뽑아갈 것이다."

장진원: "아깝게도 그 기간 동안 학교에 있었다. 그래서 그 과정을 이야기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 사실 '행정처분'이 그렇게 빨리 이루어지지 않아서, 한 달도 가고, 여섯 달까지 가는 경우도 많은데 이번에는 3일 만에 '위대한 승리'를 이룰 수 있었다. 어떤 이유라고 생각하시는지. 개인적으로는 '전국적인 지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장진원: "원래 작년 8월 15일까지 제막하기로 했었는데, 모금 문제로 설치를 못 했다. 모금될 지도 의문이었는데 다행히 12월에 세울 수 있었다. 우리도 올해까지 다시 설치가 안 되어서 계속 공권력과 싸웠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열심히 '싸워주신' 소녀상 수호자분들과 열심히 도와주신 기자분들 덕분에 3일 만에 되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전옥지: "우리 계획은 소녀상 설치팀을 꾸려서 28일에 소녀상과 함께 첫 수요시위를 하고 31일에 '정식 제막식'을 가지려고 했는데, 4시간 동안 '뺏고 되찾으려는' 싸움이 벌어졌었다. 그동안 소문이 나서 기자분들이 순식간에 몰린 것이었다. 지나가시던 분들도 소녀상 지키는 것에 동참해 주시고, 불합리한 공권력에 '빡쳐' 저항해주신 많은 시민들, 펜을 든 기자분들 덕분에 3일 만에 '승리'로 끝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전지환: "소녀상을 세우고자 했던 분들, 함께 해 주신 분들, 나아가 모금해주셨던 부산 시민들이 계셨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고, 그분들 덕분에 소녀상을 지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더 큰 이유로는 이 사건을 알게 되신 전국의 모든 국민들이 항의 전화도 해 주시고, 사이트 들어가서 항의해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 소녀상 설치 전후 부산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직접 본 대로 이야기하자면?

전지환: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시민들의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부산의 소녀상 문제로 인해 이런 사안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시민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인터넷 댓글을 봐도 그렇다. 페북 댓글만 보더라도 '이렇게 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렇게 철거해 버린 나쁜 놈들' 등의 반응을 볼 수 있었다. 관심이야말로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장진원: "원래 부산은 보수 세가 강한 곳이었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와 부산 소녀상을 통해 정치적인 변화를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평소였으면 정치적인 행동에 어른들의 반대가 심했을 테지만, 지금은 서면에서 집회를 구경하시던 어르신들도 동참하시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전옥지: "소녀상 설치 전, '무조건 1번'을 고수하셨던 분들이 다른 번호를 찾아보기 시작하셨다. 우리가 소녀상 설치 이전에도 여러 행동들을 해왔는데, 참가자들이 없어 애를 먹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민들이 정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고, 청소년들도 정치에 대한 관심을 많이 표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소녀상을 둘러싼 논란이 부산시민을 바꾸는 데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 '겨레하나'의 계획이나 소녀상과 관련된 계획이 있을까. 있으면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전지환: "우리 단체의 '오리지널 빅 픽쳐'는 평화통일이다. 대선이 끝나면 남북 간의 민간 교류 기회를 만들려고 한다. 민간교류가 점점 회복되어서 정치적인 교류도 다시 이루어지면 하는 바람이 있다."

장진원: "소녀상과 관련된 활동이라면... 12.28 합일 합의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폐기운동을 하려고 한다. 부산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의 청소년, 청년, 그리고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느니만큼 꼭 폐기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옥지: "가장 큰 눈앞에 닥친 일은 '대선'과 '18세 투표권'이다. 5월에 대선이 있는데, 상반기 나머지 활동은 대선 관련 활동으로 채우려고 한다."

- 고생하셨다. 그렇다면 마지막 질문은 '변하지 않는 그 질문'으로 할까. 앞으로의 진로, 진학 계획이 듣고 싶다.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말씀하셔도 좋다.

전지환: "수능은 칠 것인데, '할인권'으로만 쓸 것이다. 대학교에 가는 대신 그 돈으로 1년간 외국에서 세계 일주를 하며 김어준처럼 아르바이트하며 살고 싶다. 시야를 넓히고 싶어서 하는 것인데, 그 이후의 일은 그 뒤에 생각하려고 한다. 개인적인 목표는 러시아 가서 무중력 체험 한 번 해 보는 것이다."

전옥지: "원래 취업을 하려고 했다. 이런저런 사회문제에 참여하다 보니 대학 진학이 목표로 바뀌게 되었다. 학생 운동권에도 참여하고 싶고...과제에도 치일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죽기 전에 북한 가 보는 것이다."

장진원: "아직 중학생이다 보니 인문계에 진학해 대학 가는 것이 목표이다. 선생님이 되고 싶다. 역사에 대해 학생들에게 설명해주는 교사가 되고 싶다. 별 목표는 없다. 꼰대가 되지 않는 것이 내 가장 큰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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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 ⓒ 박장식


일부러 하나의 질문을 하지 않았다. 바로 소녀상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른들의 '추태'나 진배없는 행동들에 대한 질문이었다. 사실 여기에 '담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정부의 행태에도 문제가 있지만, 소녀상 앞에서 가장 모욕적인 행동이 '이만큼 했으니 이제 용서하고 소녀상을 치우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추태', '몹쓸 짓'이었다.

부산역과 초량동, 영주동이 자리 잡은 북항 일대는 일제의 착취와 수탈의 기점지로 쓰였던 곳이었다. 이런 곳에 세워진 소녀상은 해방 직후, 부산항에 다시 돌아오려던 강제징용자들의 '수난' 못지않은 수난을 겪었다. 그런 어려운 과정을 겪고 다행히 우리 앞에 돌아온 소녀상이니만큼, 소녀상 앞 지하철 엘리베이터에 붙은 '몹쓸' 문구들을 꼭 스스로 떼어 내야 하지 않을까.

'몹쓸 문구'를 붙이고, 소녀상 앞에서 '일본사랑'를 외치는 그들에게 장소 한 곳을 추천해주고 싶다. 아픔을 딛고 '멋진 컨테이너 항'이 자리 잡은 부산 신선대항을 바라볼 수 있는, 대연동 산길 위에 자리 잡은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다. '그 추태을 부리고 있는' 초량역에서도 30~40분이면 닿는다. 이곳을 빨리 들러보면 채 30분이 안 걸린다. 이곳을 둘러보고도 그 추태를 반성하지 못한다면, 그대들은 금수나 다름없다.
덧붙이는 글 옆동네 1318은 우리 사회의 '멋진 청소년'이라면 누구라도 인터뷰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제보는 trainholic@naver.com으로 부탁드립니다. 인터뷰에 참여하실 분의 '자천'도 환영합니다. 인터뷰 요청은 2월까지 받겠습니다.
#청소년 #위안부 소녀상 #청소년 단체 #청소년 행동 #부산 소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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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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