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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쯤의 일이다. 군 복무 중인 후임이 휴가를 나왔다는 소식에 반갑게 만나 지난 추억을 얘기하는 자리였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옛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어느새 화제는 얼마 전 돌아가신 후임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그 친구는 군 복무 중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부고로 상심이 매우 큰 상황이었다. 이미 상을 치른 지 반 년이 지났지만 취기가 오르며 감정도 북받쳐 오르는지 그 친구의 눈가가 글썽였다.

뭐라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몰라 빈 잔에 술만 채워주던 중, 그 친구가 아버지의 사진 이야기를 꺼냈다. 장례가 끝난 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버지의 핸드폰에서 셀카 사진이 나왔다고 한다.

그는 처음 보는 아버지의 사진에 그만 왈칵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형, 쑥스러움은 한 순간일 뿐이야"라며 "생전에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많이 하고 추억을 기억할 수 있는 사진도 많이 찍어두라"고 충고했다. 눈물 어린 충고에 나 역시도 가슴 먹먹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인생에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남은 이들은 떠난 이들의 발자취를 그리워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을 추억한다. 그중에서도 사진은 떠난 이들을 가장 온전한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사진 속의 그들은 언제까지나 한결 같은 표정으로 우리 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사진사의 부치지 못한 편지

최근 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에 출연하기도 했던 장철영 작가가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을 모은 에세이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를 출간했다. 그는 제목 아래 '노무현 대통령 전속 사진사의 부치지 못한 편지'라는 부제를 달았다. 노 대통령 재임 중 그가 촬영한 사진들에 덧붙여 하늘에 있는 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함께 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에 수록된 사진들은 총 52장이다. 대부분 공개되어 누리꾼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는 사진들이다.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은 비공개 화보가 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노 대통령을 직접 촬영한 저자로부터 듣는 사진 속 뒷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저자 장철영은 청와대 출입 사진기자를 거쳐 비서실 전속 사진사로 발탁되며 노 대통령이 퇴임할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아냈고, 그가 촬영한 사진만 무려 50만 컷에 이른다. 그는 노 대통령을 렌즈 속의 모습으로 더 자주 접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렌즈를 통해 들여다 본 노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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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표지 ⓒ 김경준

소탈하면서도 인간적이었던 노무현 대통령

그가 회고하는 노 대통령은 소탈하면서도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어린 손녀와 청와대 잔디밭에 주저앉아 과자를 나눠 먹고, 자신의 비서들에게 "내가 운전하는 차 한 번 타봐라"라며 손수 전기 카트를 운전했다. 비행기 출장 중 인스턴트 라면을 먹는 모습을 촬영하려 하자 "이상하게 나온다"며 면발이 입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찍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하는 모습에선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아이스크림 먹는 사진' 역시 그 뒷이야기를 알고 나면 그의 인간적인 매력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청와대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우연히 만난 노 대통령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넸을 때였다. 비서들이 말리려 했지만, 노 대통령은 아이스크림 봉지를 뜯어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저자는 '이때다'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이런 건 찍지 말라"며 옆에 있던 비서관이 눈치를 줬지만, 그는 몰래 망원렌즈로 아이스크림 먹는 모습을 촬영했다.

"님이 아이스크림 나무 막대기에 남은 흔적까지 쪽쪽 빠시면서 드시는 장면을 보며 정말 많이 웃었어요. 님을 가리켜 사람 냄새나는 대통령이었다고 말합니다. 사람 냄새란 결국 평범한 이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소탈함이겠죠. 세상의 모든 지혜를 받아들이려는 열린 생각,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열린 마음. 님은 한없이 낮은 곳에서 모두 받아들이는 바다 같은 분이었습니다."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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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건넨 아이스크림을 받아 먹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 (2005년 6월 14일 대통령비서실 촬영) ⓒ 노무현재단

"난 프로가 하라는 대로 할기다"

노 대통령은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저자는 대통령이 자신을 인정해줬던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하노라 고백한다. 2004년 해외 순방 중 하와이에 들렀을 때였다. 기념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노 대통령이 차에서 내렸다.

어디를 배경으로 찍으면 좋을지를 두고 비서진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전속 사진사인 저자 역시 조심스레 의견을 개진했지만 비서들 앞에서 묵살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노 대통령은 딱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당신들이 사진사는 아니잖은가? 프로가 여기 서라는데 와 그리 말이 많노. 난 프로가 하라는 대로 할기다."

대통령의 사진사로서 자신의 의견이 배제되는 것에 대해 자존심이 크게 상할 뻔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에게 힘을 실어준 대통령에게 저자가 느꼈을 감동은 묻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저자 역시 "그 순간 나를 인정해주는 님의 말씀에 잠시 목이 메었다"고 고마운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사진 촬영을 업으로 하는 저자에게도 대통령을 찍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아무리 이웃집 아저씨 같은 소탈한 면모를 가졌다 하더라도,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게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더욱이 보는 눈도 많았다. 대통령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비서관들의 허락도 받아야했다.

그러나 저자는 대통령의 소박한 면모를 한 장이라도 더 렌즈에 담아내고 싶다는 욕심으로 '몰카'를 시도했다고 말한다. 밥 먹을 때도, 양치질을 할 때도 사사건건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저자에게 기분이 나빴을 법도 하지만, 노 대통령은 "별 걸 다 찍네" 한 마디 툭 던지고 말 뿐이었다고.

애연가로 유명한 노 대통령이 담배 피는 모습을 담아낼 때도 그랬다. 대통령이 담배 피는 모습을 꼭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저자는 어느 날 노 대통령이 담배를 무는 순간을 포착하자마자 곧바로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그만 플래시가 '펑' 하고 터졌단다. 갑작스러운 플래시 세례에 대통령도 놀라 고개를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놀란 사람은 저자였다.

저자는 슬그머니 카메라를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호된 질책을 각오한 채. 그런데 웬걸. 대통령은 아무 말 없이 다시 남은 담배를 피울 따름이었다. 신난(?) 저자는 카메라를 들어 기어이 몇 장을 더 찍었다는 후문이다.

"담배를 피울 때 님은 무슨 생각을 그리 하셨나요? 저는 님의 눈빛, 미소, 얼굴 근육의 떨림까지 렌즈를 통해 바라봤습니다. 담배를 피우시는 동안에도 고뇌, 안도, 상념의 순간들이 스쳐지나갔고 주름 하나하나가 미세하게 변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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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담화 발표를 앞두고 담배를 피우며 관련 자료를 검토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 (2007년 1월 9일 대통령비서실 촬영) ⓒ 노무현재단

노 대통령의 기록 철학, 사진으로 이어져

이쯤 되면 인간 노무현이 가진 배려심의 끝은 어디일까 궁금해진다. 그러나 그가 사진 촬영에 관대했던 이유를 단순히 인간적인 배려심에서만 찾는 것은 살짝 아쉬운 측면이 있다.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모두 기록으로 남아야하며, 국민들에게 공개되어야 한다는 그만의 철학이 사진 촬영에 대한 관대함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평소에 뭘 먹고, 어디서 자고, 무슨 일을 하는지 무척 궁금해한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들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한 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으려 했다. 대통령의 은밀한 사생활은 청와대 안에 꽁꽁 감춰둔 채, 연출된 이미지만을 공개해 자신을 화려하게 포장해왔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보수언론으로부터 '대통령으로서의 품위가 없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소박한 일상생활을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공개했다. 그래서 이 책에 담긴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대통령 노무현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긴 셈이다.

문득 청와대를 구중궁궐로 만들어놓고 은밀한 사생활을 즐겨온 박근혜 정권이 떠올라 씁쓸함을 감출 길이 없다.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두라고 했던 노 대통령과 무고한 국민들이 차디찬 바닷속에 가라앉는 순간에 도대체 뭘 했는지 확실히 밝히라는 국민들의 요구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박 대통령의 모습은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진사의 편지

2009년 5월 23일, 노 대통령이 서거했다. 퇴임하면 봉하마을로 내려가 전직 대통령의 사진사가 되겠다고 했던 저자의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못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고백하는 저자. 그 길로 카메라를 둘러멘 채 봉하마을로 내려간 그는 영결식이 끝나는 동안 노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이 떠나는 마지막 길을 렌즈에 담아낸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틈틈이 봉하에 내려가 권양숙 여사의 사진을 찍는 것으로 노 대통령과 했던 약속을 지키고 있다. 이제 그는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진사였다고 고백하며, 노 대통령에게 못 다한 얘기를 담아 편지를 부치고자 한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진사였습니다. 님이 세상을 바라보고 품으려는 방식이 얼마나 정의롭고 따뜻한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님을 다시 카메라에 담을 수는 없지만 저는 사진으로 그 순간들을 회상할 수 있어 여전히 행복한 사진사입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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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9일, 영결식을 마친 후 광화문 광장을 지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운구 행렬 ⓒ 노무현재단

사진 속의 그가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

현직 대통령과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에서 시작된 촛불 정국이 길게 이어지면서 국민들도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한 대가가 엄혹하다는 것을 온 몸으로 깨닫는 중이다.

지친 마음을 위로 받고 싶어 책장을 다시 펼쳤다. 사진 속의 그가 우리에게 한 마디 위로라도 던져줄 것을 기대하면서. 그는 여전히 한결 같은 표정으로 우리와 마주하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그에게 "잘 지내시나요?" 하고 말을 건네보지만, 그는 푸근한 웃음을 지은 채 아무 말이 없다. 절절한 그리움을 담아 다시 한 번 말을 건네니 그제야 그가 "이제 고만 좀 울고 나 좀 잊어뿌라" 한 마디 툭 던지는 것만 같다.

그에게 보내는 저자의 편지 속에 슬그머니 나의 편지도 한 장 끼워넣어본다.

"대통령님, 잘 지내고 계시죠? 꽃이 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알았기에 그리운 마음만 더욱 절절해집니다. 그곳에서도 혹시 바보처럼 나라 걱정, 국민 걱정만 하고 계시는 것 아닌가요? 이젠 다 내려놓고 편히 쉬세요. 당신이 이뤄내지 못했던 가치들을 실현하는 것은 남은 자들의 몫이니까요. 광장에 밝혀진 수십 만의 촛불을 보세요. 국민들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당신의 말씀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촛불을 들다가 지칠 때면 당신 사진 한 번 들여다보겠습니다. 그때마다 한결 같은 웃음으로 지친 우리를 위로해주세요. 그럼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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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대통령님, 촬영하겠습니다>, 장철영 저, 이상, 2017.1.20,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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