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을 떠나오면서 아이들에게 남긴 글

-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등록 2017.02.17 10:30수정 2017.02.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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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포 5포 혹은 7포세대,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헬조선 등의 신조어가 유행하는 시대, 꿈과 포부를 이루기가 너무나 힘든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러분들에게 또 한 마디 무책임하고 상투적인 말을 보태고 싶진 않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단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삶을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살다가 죽을 수는 없다. 어떻게, 어떤 자세와 태도로 사는 것이 사람다운 삶일까. 건강하고 행복하고 가치 있는 삶이 될까.

사람은 저마다 모습이 다른 것만큼이나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세계관이나 인생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돈을 모아 부자가 되는 것이 삶의 목적일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한평생 남을 도우며 살아가는 것에서 행복과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삶의 목적을 무엇에 두느냐에 못지않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선택하는가도 중요하다. 삶은 하루하루,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now, here)가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먼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순간의 어려움이나 고통, 욕구를 참을 수 없어서 몸과 마음을 함부로 굴복시키거나 소비해서는 안 된다. 여러분은 한 가정의 더없이 소중한 자녀다. 기독교를 믿지 않더라도 인간은 저마다 천부의 인권을 가지고 태어났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나를 태어나게 해주시고 길러주시고 늘 걱정하시는 건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고귀한 사랑에 다름 아니다. 부모님의 불필요해 보이는 듯한 잔소리나 학교 선생님의 지나쳐 보이는 듯한 간섭도 그 본질은 사랑이다. 부모 노릇 35년째, 선생 노릇 38년째인 나의 통절한 고백이다.

그런데 사랑은 늘 달콤하고 포근하고 편안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아마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님이나 선생님 같은 어른들의 제어가 현격하게 줄어들어, 되레 서운하거나 허전해질 때가 올 것이다. 나무 한 그루가 자람에도 적당한 수분과 양분에다 알맞은 햇빛과 바람이 있어야 하듯, 여러분이 온전하고 성숙한 한 인간이 되기 위해선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주는 각양각태의 관심과 보호, 간섭과 통제는 필요악(?)이다. 이 모두가 다 사랑이란 이름의 자양분이다.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라. 그것이 중요하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든 삶의 적응도를 높여라. 혹자는 인간과 인간의 차이가 인간과 동물의 차이보다 크다고 한다. 그건 물론 개인 간의 능력과 인간다움의 정도나 가치관의 차이를 말함일 테지만, 구체적으론 지금 이 순간의 여러분의 삶의 적응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함을 유의하라. 세계 최다의 학습노동량을 감수하고 있는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사실 내겐 없다. 하지만, 수업을 들어가 보면 단 10분을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1년 365일 거의 변함없이 올바른 자세와 태도로 수업에 임하는 학생도 더러 있음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 두 학생의 차이는 학업성적의 차이가 아니라 삶의 적응도의 차이이며, 삶의 질이나 수준의 차이가 될 수도 있다.

모든 삶의 가치와 척도는 건강에 그 토대를 두어야 한다. 건강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건전한 생활습관을 가질 때 건강은 따라오는 것이다. 여러분은 아직 한창 때라 건강에 별 관심이 없거나 소홀할 수도 있다. 나도 최근에 건강해지려고 오랜 기간 했던 운동이 되레 그 부작용으로 잠시지만 병원의 신세를 졌던 적이 있다. 병의 원인이 그게 다는 아니었겠지만, 글자 그대로 과유불급이었다. 그래서 더욱 여러분에게 건강을 강조하고 싶다. 사람의 몸은 70%가 물이라고 한다. 아침 기상 시나 식간, 그리고 취침 전의 공복 시에 간식이나 음료수를 섭취할 게 아니라 정수기의 생수 한 컵을 마시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무려 30년 동안 위장병을 앓았다. 늘 아프진 않았지만, 이따금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십여 년 전, 나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공복엔 물을 마셔야 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습관 하나를 실천함으로써 깨끗이 나았다. 가끔 수업 중 위통, 복통을 호소하는 학생들에게 내가 물마시기를 권하여 호전된 학생들이 더러 있다. 아무리 성장기라 하더라도 너무 배불리 먹지마라. 위장의 70~80%만 채우라. 생전에 내 아버지께서 자랄 때 식탐이 많던 날 보고 자주 하셨던 말씀이다. 그러면 한평생 소화기 계통의 질병은 앓지 않아도 될 것이며, 정신이 맑고 창의력도 샘솟는다.


늘 남의 기분을 배려하는 태도를 가지고 살아라.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고, 남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하니 남을 의식하며 살지 않을 수 없다. 먹을 때와 입을 때는 물론 심지어 잠잘 때도 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함은 차라리 이러한 뜻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하라.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도와줄 일이 있으면 적금 붓는 심정으로 남을 도우라. 그러면 틀림없이 미래의 어느 시기에 반드시 보답을 받게 된다. 내 삶의 체험에서 하는 말이다.

나보다 힘이 약해 보인다고 함부로 얕잡아 보고 무시하거나 위협하지 마라. 나보다 가난해 보이거나 못생겼다고 우월감을 드러내지 마라. 그러면 그 친구는 상처를 받는 것을 넘어 두고두고 원한을 품을 수도 있다. 나보다 공부 못한다고 친구를 깔보지 마라. 공부 외 여러분보다 잘 하는 게 분명히 있다. 공부 잘 하는 것은 청소년기에 삶의 전부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허구많은 사람의 능력 가운데 단 한 가지에 불과함을 결단코 잊지 마라.

여러분의 무한한 잠재력을 개발하고 발휘하라. 보통 사람은 평생 동안 자신의 잠재능력의 10~30% 정도 발휘하는데 그친다고 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잠재력을 많이 발휘한 사람으로는 톨스토이가 70% 정도, 아인슈타인이 60% 정도였다고 한다. 자신의 잠재력 중 절반만 발휘하면 상당한 업적을 이룰 수 있다. 자신의 관심이나 기호, 취미가 아마도 잠재력 개발의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보람을 느끼는 것이 잠재력 개발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사회에 편만한 편견이나 선입견, 우상이나 미신을 함부로 믿지 마라. 이런 것들은 다른 표현으로 고정관념(stereotype)이라 할 수 있다. 여태까지의 잘못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생각해보고 타당한 것만 받아들여라. 예를 들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대, 남자들은 모두 늑대들이야 - 진화가 덜 됐어, 전라도 사람들은 하나같이 싸가지가 없더라, 북한 사람은 머리에 뿔이 났대, 학생은 공부만 해야 돼, 아이들은 미성숙해서 판단력이 모자라, 데모하는 놈들은 공부하기 싫어서 그래, 정치인은 모두 사기꾼이야, 종교는 반드시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만 해, 공무원은 철밥통이고, 노동조합 하는 사람은 종북이고, 파업만 하면 불법이라는 등의 말. 이런 종류의 말들은 자신하건대 다 선입관이거나 편견이다. 이런 말들은 대개 특정 시대, 특정 지역이나 계층, 혹은 세력들이 자신들의 목적이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일부러 퍼뜨린 말이라고 보면 된다. 이런 말들은 지구가 둥글다고 하는 놈들은 다 이단이야, 라고 하는 중세의 무지만큼이나 사실 터무니없는 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들은 남의 사정을 들어보지도 않고 지레 자기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게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정상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말은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민주사회에서는 거의 없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미성숙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과학적 혹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도 증명될 수도 없는 사실을 말하고 사고하면 자신도 모르는 새 멍청이가 되고, 급기야는 야만적․폭력적 사고의 수렁에 빠져들어 노예가 될 수도 있다. 말은 사고를 낳고, 사고는 신념과 행동을 낳기 때문이다. 어려운 말로 배제와 차별을 불러 한 사회를 비인간화시킨다. 흑인은 머리가 나빠, 유태인들은 모두 수전노라든가, 짱깨(중국인)들은 모두 더럽다거나, 무슬림들은 테러리스트라거나, 조센징 빠가야로(조선놈은 바보새끼다), 라고 하는 말도 그렇다. 종교든 지역이든 사상이든, 그 대상을 폄하하거나 낙인을 찍기 위해, 아주 미미하고 임의적이고 개별적인 경향성을 과도하게 일반화하는 지극히 정치화된 교언(巧言)이거나 선동하는 말이다.

이런 데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다양하고 풍부한 주제의 독서를 많이 해 두는 게 좋다. 독서는 청소년기에 꼭 필요한 책들을 골라서 읽는다는 자세로 하면 된다. 지적 호기심으로 어떤 한 분야에 몰입할 수도 있으나 독서는 다방면에 역사적으로 대중적으로 검증된 도서, 즉 자기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고전을 위주로 읽는 것이 유익하고 안전할 것으로 생각된다. 너무 많은 독서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모든 책이 다 약이 아니라 독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믿는 사람과 생각하는 사람. 아무거나 그것도 온몸이 푹 빠지도록 믿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건 대개 진리가 아니라 우상이거나 미신의 함정인 경우가 많다. 우상보다 이성을, 미신보다 자기만의 지식의 토대를 청년기에 쌓아야 한다. 지적 소양이 부족한 사람은 살다가 의지가 약해지면, 누구나 아무거나 믿어 자신은 물론 온 사회를 위험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할 수도 있다. 놀라운 일은, 히틀러 당시 독일의 지식인들마저 그랬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모든 것을 성찰하라. 그러면 바른 삶의 척도가 나올 것이다. 그게 여러분을 바르고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는 삶의 길잡이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 자유, 평등, 박애, 평화, 생태, 다양성과 같은 그동안 역사를 통해 검증되어온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며 살아가되, 한 시기 어느 특정인들이 힘주어 강조하는 것을 함부로 믿지 말고 끝없이 의심하고 비판하고 성찰하라. 비판적 사고와 성찰적 이성을 갖는 것만이 건전한 민주시민, 세계시민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순진하게 한 시기 유행처럼 세상에 회자되다 사라지는 말들을 함부로 믿지 말고, 늘 생각하는 사람이 되라. 그래야 자신은 물론 우리사회가 지속가능하다.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남미출신의 혁명가로 전 세계 청소년의 우상이었던 체 게바라의 유명한 말 한 마디만 덧붙이고 싶다. 현실주의자가 되라. 그러나 가슴에 불가능한 희망 한 가지는 반드시 품고 살아라. 그것이 청춘본색이다. 대구상원고 제자들, 아듀!

덧붙이는 글 정도원의 세상읽기 카페에도 올립니다
#헬조선 #존엄성 #삶의 적응도 #청춘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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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해직교사 詩人·한국작가회의회원 전교조 대구교육연구소장 교육민주화동지회 부회장 저서 : 『교단으로 돌아가면』 『우리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겨울나무는 외롭다』 『더 나은 교육은 가능하다』 『교육보다 교사가 먼저다』 『삼백예순날 하냥 외롭고 순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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