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여성들이 국회로 가야 한다

한국여성의전화 주관 <국회로 간 여성인권운동가> 강의 후기

등록 2017.02.19 10:02수정 2017.02.1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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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장애인 국회의원 1%, 여성 국회의원 17%. 소수자의 '소수성'만을 입증시킨 20대 국회가 출범한지 1년이 되어간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국회의원은 17%의 여성 국회의원 가운데에서도 몇 안 되는 여성 인권 운동가 출신이다. '가정폭력방지법'을 통과시킨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약 23년간 활동했다. 인맥도, 돈도, 정치 경험도 없었던 그녀가 정치 입문을 꿈꿨던 건 현실 정치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정책을 만들고 입안시키는 것, 입법 기관에 속해 있지 않아도 NGO에서 직접 일구어 왔지만 MB정부 이후부터는 녹록치 않은 싸움이 됐다. 이전부터도 쉽진 않았지만 보수 정권이 점령한 국회에서 여성 인권 법안을 선뜻 받아줄 국회의원은 없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그녀는 정책이 정치의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어도 정치가 바뀌고, 정치를 점령하지 못하면 정책은 몇년이고 변두리를 돌 수밖에 없었다. 그 내용을 대표할 수 있는 당사자가 없기 때문이다.

운동만큼이나 현실 정치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한 그녀는 23년만에 '여성의전화' 활동가를 졸업하면서 국회의원에 대한 뜻을 품었다. 남자 일색인 여의도 한 가운데에서 여성 인권을 외친다는 것, 그것 자체로 '운동'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여 당선권 끝번호로 비례대표 초선 국회의원이 됐다.

지금 여기에 왜 있는지 잊지 않는 정치

정 의원의 모토는 '지금 여기에 왜 있는지 잊지 않는 정치인'이다. 국회의원이 된 이후부터 그녀는 악착같이 공부에 매달렸다. 법안, 예산, 정책 등 봐도 봐도 늘 봐야 할 자료가 산더미같이 쌓였다. NGO 시절에 눈이 빠져라 보아왔기에 그나마 한결 수월했지만, 마땅한 성과 지표가 없어 지금 잘하고 있는게 맞는지 늘 초조했다. 4년의 임기 안에 통과시키고 싶은 정책은 많았지만, 국회의원 한 명만의 힘으로 법안이 금세 통과되지는 않았다.

물론 국회의원만의 힘은 분명 있다. 보건복지위 장관에게 직접 질의할 수 있고, 공공기관에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요구한 질의와 제출 받은 자료로부터 유의미한 분석과 결과를 이끌어내야 하는 건 순전히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의 역량이다. 자료와 싸우고 법안과 씨름해 임기 가운데 단 20%라도 발의한 정책을 통과시킬 수 있다면, 초선 국회의원 한 명이 해낸 일 치고는 꽤 높은 성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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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로 간 여성인권운동가> 정춘숙 국회의원 강연 사진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국회의원은 현실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여성인권을 위해서라도 더 많은 여성들이 국회로 진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조경숙


국회에 발의된 법안이 첫 심사대인 법안소위를 통과하는건 '다수결'이 아니라 '만장일치'에 의해서다. 국회의원 한 명이 법안을 발의하더라도, 이 법안이 통과되기까지는 정당도 정치 성향이 다른 다수의 국회의원들을 설득하는 일이 필요하다. 따라서 여성 인권을 위한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여성 대표 한두명만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훈련된 젠더의식을 가진 여성들이 국회에 더 많이 들어와야 한다

현재 정 의원이 속한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의원은 총 36명으로 그 중 여성은 정 의원을 포함해 단 2명 뿐이다. 국민 절반이 여성인데, 법의 가장 근본인 헌법을 개정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여성 비율은 고작 5.5%에 불과하다. 장애인은 그마저도 없다.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다.

정 의원은 젠더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고, 그중에서도 여성 인권의 당사자인 '여성들'이 정치에 들어와야 하다고 역설했다. 정치적 무관심/정치 혐오는 정치로부터 사람들을 등 돌리게 하여 오히려 헌법을 포함한 현실 정치의 영역이 기득권-남성-이성애자 중심으로 유지되도록 방치한다. 중요한건 판을 짜는 것이고, 정치 형태를 바꾸는 일이라고 정 의원은 힘 주어 말한다.

정치를 바꾸는 건 결국 사람이다. '정치판'이 아무리 더럽다한들, 같은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길을 뚫고 만들어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주류 정치는 달라질 수 있다. 정 의원은 아무것도 없이 허허벌판에서 시작한 자신의 경험을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여성들에게 전달한다. 정 의원은 다음과 같은 말로 16일 강의를 끝맺었다.

"더 많은 (젠더 의식을 가진) 여성들이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면, 세상은 분명히 달라질 수 있다. 함께 정치 문화를 바꾸자."
덧붙이는 글 한국여성의전화 주관 2017 여성주의 집중 아카데미 <뜨거운 시선>은 총 5강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음 강의는 2월 21일(화)에 예정되어 있으며, <페미니스트 정치 운동의 전략>라는 이름으로 권김현영 여성학자가 강단에 선다.
#여성의전화 #정춘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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