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40대는 너무 북한을 좋아해" 어느 여단장의 망언

[입영부터 전역까지⑧] 우리가 침묵했던 이유

등록 2017.02.23 16:06수정 2017.03.0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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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12월 31일 오후 서울 덕수궁 대한문앞에서 박사모 등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인 탄기국(대통령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 주최로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모두가 굳었습니다. 겁을 먹었죠. 신병교육대에 여단장이 방문한다는 것을 듣고요. 훈련병들의 앞에서 조교는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여단장의 기침'을 조심하라고. 만약 여단장이 기침을 낸다면 역대 최악으로 힘들게 훈련을 한답니다. 즉, 여단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라는 뜻입니다. 여단장이 아무리 재미없는 '아재개그'를 할지라도, 장단에 맞춰주라고 또 강조했습니다.


여단장의 '아재개그'에 혼신을 다해 웃다

번쩍번쩍한 계급장. 신병교육대장보다 훨씬 높은 장교. 지금까지 봐왔던 계급 중에서 가장 높은 '대령'. 모 여단의 여단장이 그렇게 나타났습니다. 230명이 넘는 훈련병, 뒤에 서있는 조교들의 박수를 받으며 그는 단상에 올라왔지요.

그는 대뜸 '아재개그'를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뭐라 말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그러나 매우 재미가 없었음은 기억하죠. 사회였다면 매우 썰렁했을 그 '아재개그'. 훈련병들은 모두 반응이 없었습니다. 다급한 조교가 뒤에서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자, 비로소 눈치를 챈 훈련병들은 입을 열고 크게 웃어댔죠.

"와하하하하하하하하하."

상당히 기계적인 웃음소리. 높은 음성이지만 영혼이 없는 웃음이 퍼졌죠. 그 웃음을 듣던 여단장은 흐뭇한 미소까지 지었습니다. 이내 몇 개의 '아재개그'를 더 던졌고요. 그때마다 훈련병들은 혼신을 다해 웃어줬습니다. 절대로 여단장의 '기침'이 나와서는 안 되니까요.


웃으면서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초코바를 위해 번쩍 손을 들다

만족스러운 표정의 여단장. 훈련병들의 웃음소리가 열광적이라고 느낀 것 같습니다. 이내 그는 손짓을 하며 웃음소리를 멈췄죠. 순간적으로 북한의 김정일이 떠오르는 제스처였지요.

그러면서 여단장은 파워포인트를 켜고 역사에 대한 설명을 쭈욱 했습니다. 한 소절이 끝날 때마다, 훈련병들은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열광적인 척' 박수를 쳤죠. 그러던 중에 여단장은 질문했습니다.

"여기, 임진왜란에 대해 설명해볼 훈련병 있나?"

그의 손에는 초코바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직감했죠. 여기서 대답한다면 분명히 초코바를 줄 것이라고. 입대한 뒤로 줄곧 먹어보지 못한 달콤한 초코바. 여단장이 아닌 초코바만 눈에 들어올 지경이었죠.

주변 훈련병들은 선뜻 손을 들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어렵거나, 혹은 여단장이 부담스러운 모양입니다. 경쟁자가 없는 상황입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저는 번쩍 손을 들었습니다.

여단장의 허락을 받은 저는 약 5분간 장황하게 설명했죠. 연도, 시기, 인물까지 거론하면서 최대한 자세하게, 무엇보다 '여단장의 마음에 들게' 말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국 여단장은 여기서 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초코바를 던져줬습니다. 근처에 있던 여단장의 부관장교는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진도 찍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때 찍힌 사진은 사단 내에서 꽤 유명하게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상관없었죠. 여단장이 흐뭇하게 웃었던지, 부관장교가 사진을 찍었다던 지, 그런 것은 관심 밖이었습니다. 오직 초코바가 손에 들어온 것만이 관심사였습니다. 물론 근처 훈련병들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결국 그 '작은 초코바'는 쉬는 시간에 같은 생활관 훈련병 10여 명과 나눠먹었죠. 그 작은 걸 어떻게 나눠먹었냐고요? '한입씩' 나눠먹었습니다.

"요즘 30대, 40대는 너무 북한을 좋아해"

여단장은 역사에 대한 설명을 계속 지속했습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북한에 대한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주로 북한이 못 산다는 점, '늘 호시탐탐 남한을 노린다는 점'을 강조했죠. 역시나 훈련병들은 그 말이 끝나자 박수를 쳤습니다.

박수가 끝난 뒤에 여단장은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북한이 싫지? 거, 요즘 젊은 층은 다행스럽게도 북한을 귀찮게 생각하더라고."

여기저기에서 "맞습니다!"라는 말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떻게든 초코바를 받아보려는 훈련병들과, 진심으로 북한을 싫어하는 훈련병들의 복합체였죠.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지금도 황당합니다. 아직도 잊히지가 않죠.

"요즘 30대, 40대는 너무 북한을 좋아해."

그러면서 "북한을 너무 좋아한다"고 덧붙이기까지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건 대단한 망언 중의 망언입니다. 북한을 너무 좋아한다.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군인인 여단장이 말한다면 의미가 달라집니다. 군에서는 북한을 추종, 내지 좋아한다면 종북으로 여깁니다. 여단장은 요즘 30대, 40대를 사실상 종북이라고 떠든 것이죠.

그러나 여기에는 아무도 항의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거기에 동조하는 훈련병들도 속출했습니다. 그렇게 여단장은 흐뭇하게, '대적관이 투철한' 훈련병들을 보면서 돌아갔습니다.

만약 누군가, 어느 '용감한 훈련병'이 여단장에게 그 발언에 대해 사과를 요구했다면 어땠을까요? 분명히 여단장은 '기침'을 하며 나갔을 겁니다. 그리고 모든 불이익·보복은 230명이 넘는 훈련병에게 왔겠죠. 그렇다면 그 '용감한 훈련병'은 순식간에 '눈치도 없는 훈련병'으로 불리거나, 심하면 '고문관'으로 욕을 먹었을 겁니다.

지휘관이 망언을 했음에도 아무도 항의하지 못하는 현실. 훈련병들이 비겁한 것이 아닙니다. 불이익·보복을 가하는 군의 구조가 잘못된 것이지요. 현재 우리 군은 명령에 복종하기만을 요구합니다. '잘못된 명령'에는 저항할 권리와 의무는 주지 않고요.

그래서 오늘도, 군인들은 점호시간에 복무신조를 외우며 복창합니다.

'우리는 법규를 준수하고 상관의 명령에 복종한다.'

잘못된 명령에는 저항할 권리와 의무를, 병사들이 외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고충열 #입영부터전역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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