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은 이렇게 옷을 고릅니다

[시각장애인 아웃렛 쇼핑 동행기] 코디 동행하는 이미지 메이킹 사업

등록 2017.02.25 11:23수정 2017.02.2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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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에서 코디를 기다리는 시각장애인 조현대씨. ⓒ 이지연


* 이 글을 쓴 이지연님은 글에 등장하는 시각장애인 조현대씨의 활동보조인입니다.


지난 12일 오후 1시. 서울 1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부근 M아웃렛 입구는 인파로 북적였다. '최대 80% 특별할인'의 막차를 타려는 사람들이다. 그 가운데 시각장애인 조현대(남·52)씨가 서 있다.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건다. "1층 매장 입구에 도착했는데 코디 선생님은 어디 계신가요?" 조씨의 올라간 입꼬리엔 기대감이 서려있다.

조씨에게 쇼핑은 흔한 기회가 아니다. 시각장애인은 물건을 함께 골라줄 '사람'이 동행하지 않으면 쇼핑은 엄두도 낼 수 없다. '돈' 혹은 '시간'만 있으면 언제든 쇼핑을 즐기는 비장애인의 일상과 대조된다. 그는 봄에 입을 면바지와 도서관에 들고 다닐 만한 서류가방이 필요하다. 한 달 전에 구로나눔장애인자립센터를 통해 코디네이터(아래 코디)와 약속을 잡았다. 오늘이 바로 벼르고 별러 잡은 '쇼핑데이'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2시간 안에 바지와 가방을 고르지 못하면 기회는 물 건너간다. 미션이다. 

[미션 1] 착용감이 좋은 군청색 면바지를 골라라

조씨의 '쇼핑 미션'을 함께 할 사람은 3명이다. 코디, 사회복지사, 활동보조인. 일행이 가장 먼저 들어간 곳은 1층 'ㄹ' 매장이다. 평소 캐주얼을 즐겨입는 조씨의 취향을 사전에 파악한 코디가 쇼핑 동선을 짠다.

"선생님, 바지 고를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뭔가요?"


코디가 얼굴을 조씨에게 바짝 갖다대며 묻는다. "착용감! 불편하면 못 입어"라며 칼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옷장에 이미 검정색과 베이지색 바지가 있다는 조씨의 말에 코디는 군청색을 추천한다. 코디가 허리둘레 31인치에 맞는 바지를 매대에서 찾는다. 이 모습을 본 한 매장고객이 코디에게 한 치수 큰 바지를 찾아달라며 말을 걸어온다. 친절한 말투와 정제된 용어에 그를 매장 직원으로 오해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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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대씨가 옷을 입고 나오자 도와주는 코디. ⓒ 이지연


피팅룸에서 바지를 갈아입고 나온 조씨에게 코디가 다가간다. 길이 수선을 위해 바지 밑단을 접으며 "면 99%에 폴리에스테르 1%가 함유돼 활동성이 좋을 거예요"라는 말도 덧붙인다. "다 좋은데, 단추가 많아서 이 바지는 안 되겠어" 조씨가 미안한 표정을 짓는다. 맵시를 위해 속단추가 달린 바지는 단추구멍의 위치를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그에게 사치다.

코디가 매장 지도를 보며 2층 'ㅎ' 매장으로 향한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드디어 '물건'을 발견한다. 착용감이 좋고 군청색이면서 단추가 하나 달린 디자인을 찾은 것이다. "봄에는 바지 밑단을 살짝 접어 입으면 좀 더 젊어보일 거예요." 코디가 카드 결제를 하는 조씨를 향해 '꽃중년'이 되는 팁을 귀띔한다. 그제서야 만족한 조씨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미션 2] A4용지가 들어갈 만한 가벼운 서류가방을 골라라

일행이 세 번째로 들른 곳은 1층 'ㅂ' 매장이다. 조씨는 점자판, 종이뭉치, 양치도구 등을 담을 만한 작고 가벼운 가방이 필요하다. 그는 평일 오후 대부분 국회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책을 집필하기 위해서다. 2년 전 <너희가 장애인을 알아>라는 책을 냈다. 이번엔 행복에 관한 에세이를 계획하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도서관 갈 때마다 종이가방에 물건을 넣어다니는 그를 안타까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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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가방을 고르고 있는 조씨와 코디. ⓒ 이지연


조씨의 요구사항을 귀담아 듣던 코디가 진열대에서 가방 하나를 꺼낸다. 패브릭천으로 만들어진 군청색 가방으로 A4 용지가 딱 맞게 들어갈 크기다. 조씨가 가방을 손에 들며 무게를 가늠해본다. 수납공간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가방 앞면에 달린 보조주머니에 복지카드를 넣을 수 있겠다며 흡족해하는 표정이다. 매장에 들어선 지 5분도 안 돼 카드를 꺼내든다. 2시간 안에 바지와 가방을 모두 구매했다. 미션 성공이다.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프로그램... 관건은 소통

조씨가 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아 쇼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지 메이킹' 사업 덕분이다. 이는 '서울시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사업'의 일환이다. 그는 구로나눔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구로나눔센터)의 지원을 받아 코디를 소개받았다.

시각장애인이 '이미지 메이킹'을 신청하면 코디와 사회복지사가 장애인과 동행한다. 사회복지사는 프로그램 진행자로 코디에게 업무를 설명하고 쇼핑 활동을 사진으로 남긴다. 코디는 1일 단위로 자립센터와 계약을 맺어 2시간 동안 서비스를 제공한다. 의상학과를 전공하는 대학생이나 졸업생이 주로 이 업무에 지원한다.

구로나눔센터에서 이미지 메이킹을 진행한 지는 1년이 다 돼간다. 장애등급 1~3급을 판정받은 장애인이 사업 신청대상이며 1년에 1회 신청이 가능하다. 작년까지 총 10명이 해당 서비스를 이용했다. 연령대는 다양하지만 신청자의 대부분이 여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시각장애인과 코디 간 소통이 관건이다. 그러나 시각장애인 신청자 중에는 의사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구로나눔센터 자립지원팀 사회복지사 정지원(25)씨는 "신발 하나 고르는 데 2시간 넘게 걸린 적도 있다"며 "신청자의 취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다"고 말했다. 코디나 사회복지사가 시각장애인에게 사고자 하는 물건의 조건을 구체적으로 캐묻는 이유다.

시각장애인과 코디의 사전 정보교류도 중요하다. 이날 활동한 코디 성다경(26)씨는 조씨를 아웃렛에서 만나기 며칠 전 전화로 몇 가지 항목을 확인했다. 신체 사이즈, 외모 콤플렉스, 선호하는 스타일, 원하는 나의 모습, 선호하는 브랜드, 장애의 정도 등이다. 이러한 조사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처음 본 시각장애인과 코디가 호흡을 맞춰 두 시간 안에 좋은 물건을 고르기 힘들다.

숙명여대 의류학과 졸업을 앞둔 성씨는 현재 쇼핑호스트를 꿈꾸고 있다. 그는 자신이 고른 상품을 조씨가 마음에 들어하자 "너무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한편으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이에게 색깔을 어떻게 표현할지가 가장 어렵다"고 토로했다. 조씨는 다섯 살 되던 해 백내장을 앓게 되면서 시력을 잃었다. 그는 색깔에 대한 기억을 많이 잊은 상태다. 이러한 이유로 시각장애인에게 색을 설명할 때 적합한 언어표현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빨강색'이라는 말 대신 '특별한 날 돋보이고 싶을 때 좋은 색'이라고 설명할 필요가 있다.

자신을 가꾸는 것, 시각장애인도 예외 아냐

"시각장애인이 자신을 가꾸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장애인자립센터에 이미지 메이킹 사업 아이디어를 최초로 제시한 조씨의 한마디다. 그는 옷을 어울리게 입는 것은 '자기만족'을 떠나 '타인에 대한 배려'라고 표현했다. 그는 과거 장애인자립센터를 통해 옷을 함께 골라줄 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다. 이를 계기로 '코디네이터 동행쇼핑'이 '이미지 메이킹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됐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자신이 제대로 물건을 샀는지 알 수 없는 답답함이 무엇보다 크다. 착용해본 옷이 자신에게 어울리는지도 알 수 없다. 특히 비장애인 가족이 없는 경우 물건을 함께 골라줄 사람이 절실하다. 시각장애인의 부모가 연로해 신체적으로 동행하기 힘든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가 옷에 대해 이토록 신경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1987년도에 한 여대생을 만나면서부터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듯 그에게도 떠올리면 가슴 떨리는 첫사랑이 있었다.

"옷을 잘 입어야 이성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대답은 솔직함 그 자체였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시각장애인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주위 사람이 사다준 옷만 입어야 하는 현실이 만족스러울 리가 없다. 그의 입에서 '특별한 계기'를 듣고자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시각장애인 #조현대 #구로나눔장애인자립센터 #장애인 복지 #너희가 장애인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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