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퇴원했더니 이번엔 아버지가 아프다고...

등록 2017.02.22 10:59수정 2017.02.2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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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이가 아프다고 하신다. 어머니가 무릎 염증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 ⓒ pixabay


"아버지 이 아프세요? 뭘 물고 있어요?"
"응. 이가 아파서."


나는 추석 명절을 보내고 뜨끈한 친정 안방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이 셋은 거실에서 내기 장기를 두고. 그런데 텔레비전을 보는 아버지가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는 게 보인다. 보통 치아가 아플 때 하는 행동이다.

"아프시면 치과 가야지. 오늘 문 연 치과는 없으니까 진통제라도 드세요."
"치과에 가면 여기저기 치료하라고 해서 돈 많이 나와."
"그래도 일단 치료는 받아야지요."

지난 여름, 엄마가 식사를 못하고 지내서 우리 집으로 모셨다. 열흘인가 지난 뒤 엄마는 무릎 염증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일주일 치료 받고 퇴원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이번엔 이가 아프다고 하신다. 한숨이 나왔다. 이제 숨 좀 돌리는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부모님이 또 아프다고 하니 걱정도 되고 우울한 마음이 들었다. 자식인 나도 우울하고 기운이 빠지는데 정작 부모님은 어떠실까?

사실 이건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이다. 스스로 주문을 외운다. 노화의 반대인 성장 과정은 어떤가? 태어나서 울기만 하던 아기가 조금씩 자라서 몸을 뒤집고 잡고 일어서고 한발을 내딛는 걸 보며 얼마나 기특하고 기뻤나? 내 자식의 성장이 신비롭고 당연했다면 부모님의 노화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 노화를 당사자도 아닌 자식인 내가 더 우울하게 받아들인다면 그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성장이 기뻤던 것처럼 부모님의 노화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아버지에게 진통제를 찾아 드렸다.


명절 연휴 지나고 친정에 전화해선 아버지가 치과에 다녀오셨는지 물었다. 아버지는 임플란트를 두 개 하기로 했다는 말을 전하셨다. 노인들 임플란트 두 개에 대해선 정부지원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지원을 받기로 했는가 보다.

아버지는 충치 치료를 받았고 임플란트 두 개를 98만 원에 하기로 예약을 하셨다고 한다. 계약금으로 10만 원을 내고 오셨다고 한다. 나는 들은 이야기를 형제들 카톡 방에 올렸다. 언니들이 임플란트는 위험하다고 걱정을 한다. 주변에서 안 좋은 경우를 보았다는 거다.

최고의 의사에게 시술받았지만 염증이 머리로 들어가서 머리 수술까지 한 경우를 보았다는 거였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아버지 치료를 말리려면 형제 중 누군가 시간을 내서 치과에 따라가야 한다. 전화로 의사와 치료에 대해 상담을 할 수 없으니까. 다행히 언니가 다음 예약일에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한다.

일주일 뒤 치과에 언니가 따라갔다. 의사에게 가서 충치와 보철 치료를 우선으로 한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일주일 뒤에는 엄마의 정형외과 외래 진료가 잡혀 있었다. 퇴원 뒤, 엄마의 무릎 염증이 얼마나 좋아졌는가 확인하는 진찰이다.

오빠가 부모님을 모시고 대학병원으로 다녀왔다. 피검사 검사 결과는 아주 좋았다. 더는 약을 드실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서 지난 여름 고생했다는 말들을 톡에 올렸다. 나 역시 흐뭇했다. 해피앤딩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병원에 대해 불만 터뜨린 어머니, 아버지를 말리다

아버지를 모시고 정형외과에 갔다. 최소 오륙십 만원은 깨질 거라고 각오를 했다. ⓒ pixabay


다음 날 엄마에게 전화했다. 그런데 엄마의 말은 달랐다. 다시는 병원에 안 간다는 말씀을 했다. 왜 그러시냐 물으니 엑스레이를 30번도 넘게 찍었다고 불만을 터뜨리셨다. 일 주 뒤에 허리 아픈 아버지를 위해서 대학병원 예약을 해 두었는데 엄마는 아버지에게도 안 좋은 소리를 하셨다.

"당신도 병원 가는 거 잘 생각해. 한 번 병원에 가면 그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 다녀야 하니까."

병원에서 치료 받고 몸이 좋아졌을 때는 의사 선생님에게 그렇게 고마워하시더니 엄마의 태도는 달라져 있었다. 엄마가 아버지 진료에 고춧가루를 뿌리니 아버지도 안 가겠다고 하신다. 엑스레이를 30번도 넘게 찍었다고 하니 팔순의 엄마로서는 참 힘들었겠구나 싶지만 그렇다고 한 달 전에 힘들게 잡은 아버지 예약을 취소할 마음은 없었다.

형제 단체 톡방에 이런 말을 올리니 엄마의 말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답이다. 일단은 아버지 정형외과 예약은 그대로 두고 예약일 하루 전에 언니가 아버지를 설득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예약일 하루 전날, 아버지가 가기로 했다는 문자가 언니에게 왔다. 예약 일 정형외과에 갔더니 허리 엑스레이를 찍고 오란다. 엑스레이 촬영실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런데 한 아주머니가 옆 할머니에게 말을 건넨다.

"이 교수님이 수술해 주셔서 제가 하늘을 보고 다녀요. 진짜 수술을 잘하시는 분이에요. 제가 환갑도 되기 전에 허리를 펴질 못하고 걸었는데 이 분이 고쳐주셨다니까요."

아줌마가 말하는 의사는 아버지가 예약한 의사다. 나도 아주머니 말에 진짜인지 궁금해서 물었다.

"진짜예요? 그렇게 잘 고치세요."
"아이고 그럼요. 내가 S 대병원도 가보고 Y 대병원도 가보고 다 가봤다니까."

나는 엑스레이 찍고 나온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 드렸다. 아버지도 의사에 대한 신뢰감이 높아진 거 같았다.

순서가 되어서 진찰실로 들어갔더니 예약이 된 교수님을 대신해서 젊은 의사가 사전 진료를 한다. 아버지를 눕히더니 다리와 발을 만져보고 다리를 들어보라고 한다. 무릎을 굽히게 하고 접게 하고 다리를 올리게 하면서 움직임을 살핀다. 그런데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얼굴은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이다. 의사의 얼굴을 보니 긴장이 된다.

"아버님, 지금 연세에 비해서 건강하신데요. 이 나이에서 이 정도면."

걱정하던 아버지 얼굴에서 웃음꽃이 핀다. 내 얼굴도 마찬가지고. 교수님이 들어오신다. 척추의 4번과 5번 사이가 좁고 틀어져 있긴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만일 아프면 그때 동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대학병원에 오면 무조건 엑스레이 CT 촬영은 기본으로 할 줄 알았는데 그냥 가라고 다음 예약도 필요 없다는 거다. 최소 오륙십 만원은 깨질 거라고 생각하고 왔는데 돈도 몇만 원밖에 안 들었다. 아버지와 나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나왔다.

아이들 어디 데리고 가서 건강하다, 또는 또래보다 잘하는 편이다, 운동이든 공부든 그건 상관 없다, 그런 소리를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 실실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남편에게 연락하면서 둘이 좋아하고 부모님에게 좋은 일이 생기니 형제들에게 연락해서 서로 좋아한다.

병원 다녀온 결과를 형제 단체 톡방에 올리니 모두 기뻐한다. 고마운 일이구나 싶다. 그러고 보니 우리 형제가 여태까지 크게 우애가 안 상하고 살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인간성이 좋아서도 아니고 다 부모님이 건강한 편이어서 가능했던 일이었구나 싶다. 부모님께 고맙다.

#부모님의 뒷모습 #부모님건강 #형제우애 #병원 #진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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