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와 촛불, 광화문에서 '분단'을 경험한 아이들

[그 엄마 육아 그 아빠 일기 80] 태극기가 휘날리는 서울시청 광장에 가다

등록 2017.02.25 17:34수정 2017.02.2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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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자 호텔에서 내려다 본 시청 광장 태극기와 성조기 ⓒ 송문식


지난주 토요일(18일) 우리 가족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내가 서울시청 지하 시민청에서 열리는 세월호 엄마들의 뜨개전시 '그리움을 만지다'를 가자고 했기 때문이다. 왜 하필 그 전시회를 시청 지하에서 하는지. 지금 그곳은 주말마다 '태극기 집회', 아니 관제데모가 열리는 곳 아니던가.


뭐, 그렇다고 내가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시민청에서 세월호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난 시청 광장 시위 현장을 둘러볼 생각으로 흔쾌히 알겠다고 길을 나섰다. 아빠가 '태극기 집회'를 간다고 하니 당장 까꿍이가 이상하게 쳐다본다.

"아빠, 이제 태극기 집회 나가? 박근혜 편이야?"
"아냐. 그냥 한 번 둘러보게. 우리도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야 되잖아."

1시쯤 2호선 시청역에 도착하니 많은 어르신들이 보였다. 하나같이 주머니에는 태극기 빨대가 꽂혀 있었고, 혹자는 TV에서 보던 대로 대형 태극기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깜짝 놀라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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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물결 아득해지는 풍경 ⓒ 이희동


"아빠, 저 할아버지들은 왜 태극기를 들고 있어?"
"응? 그러게. 우리가 촛불 드는 것과 비슷해. 저분들은 태극기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시는 거야."
"그럼 지금 나도 촛불(LED) 들어도 돼?"
"아냐. 지금 여기서 촛불 꺼내면 조금 위험할 것 같아. 할아버지들이 와서 뭐라고 하실걸?"

내가 생각해도 나의 대답은 궁색했다. 여전히 아이들은 모든 것이 궁금한지 계속 질문할 태세였지만, 나는 서둘러 시민청으로 향했다. 아이들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자신이 없었고, 그들의 추레한 증오를 보여주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태극기와 노인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되는 것이 조금은 두려웠다.


시민청에 도착하자 그곳 역시 노인들로 북적거렸다. 많은 어르신들이 시민청 곳곳에 주저앉아 태극기를 옆에 두고 왁자지껄 이야기하고 계셨다. 안내원 중 한 분에게 매주 힘들겠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니 이제는 익숙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원.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광장으로 향했다. 자, 이제 한 번 둘러볼까나.

일어나라! 애국시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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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로 소환되다 반공 글짓기 대회가 열렸던 1989년 ⓒ 이희동


광장의 첫인상은 익숙함이었다. 음악 때문이었다. 광장에는 군가서부터 6.25 노래까지 그동안 듣지 못했던 노래들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아~아~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어느새 나도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피식 웃을 수밖에.

광장에는 수많은 어르신들이 하나같이 태극기를 들고 열심히 연단에서 선창하는 구호를 따라 외치고 있었다. 그중에는 언론을 통해 접했던 '계엄령뿐, 군대여 일어나라' 팻말을 목에 걸고 계시는 분들도 계셨다.

"국회해산", "특검해체"

'누명탄핵' 팻말 건 초등학생, 무슨 생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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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서울시청 안에서 바라본 광장 발 디딜 틈이 없다 ⓒ 이희동


혹시 이상한 눈초리를 받을까 뜨문뜨문 구호를 따라 외치면 배회하는데, 광장의 가운데서 부모님을 따라 왔는지 '누명탄핵, 원천무효'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와 마주쳤다. 아득해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아이를 이곳에 데려왔을까? 이들이 촛불집회에 서 있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 지금 나의 느낌일까?

더 기가 막힌 건 광장 곳곳에 보이는 육사 동기 깃발이었다. 이 자리에 군복을 입고 참여한 채 자신이 육사 생도였음을 밝히는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일까? 이 사회가 60~70년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진정 믿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돌아가게 되면 자신들이 다시 사회의 주역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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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올라온 태극기들 영남지역이 많이 보인 건 기분 탓이겠지? ⓒ 이희동


또한 광장에는 전국 각지의 지명 팻말들이 있었다. 강릉, 원주, 고성, 진주, 상주, 함양, 대전 등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저 팻말을 들면 오히려 사람을 동원한 게 티가 날 텐데 왜 굳이 들까 의아했지만 지나가는 어느 어르신의 말 한마디가 나의 어리석음을 질타했다.

"봐봐. 전국에서 다 왔네 그려. 언론들, 촛불이 훨씬 많다고 하더니 다 거짓말이야. 여기 와서 보니 이제 제대로 알겠네. 실제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 편이야.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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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시청사에서 바라본 광장 남대문까지 모여 있다 ⓒ 이희동


그렇다. 그들은 스스로를 거울삼아 아무도 동원되지 않았음을 굳건히 믿고 있었다. 오히려 모금함에 자진해서 돈을 넣고 있었다. 친구분들이 요즘 '태극기 집회'에 가야 한다며 아버지를 그렇게 설득하신다더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많은 인파들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우리가 수많은 촛불들을 보며 연대의식을 가지듯 이곳의 어르신들도 이 어마어마한 규모를 보며 자신감을 얻으시겠지.   

그러던 중 연단에 어떤 여성 예비역 장군이 올라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힘, 엄마의 힘을 모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무효 시키자는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이 여성임을, 약자임을 강조했다. 군복을 입고 국회를 향해 입에 담지도 못할 이야기를 하면서 약한 여자를 운운하는 그들의 모습은 실로 기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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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분? 각하께서 보시면 기뻐하시겠다 ⓒ 이희동


시간이 흐르면서 연단에 오르는 자들의 멘트가 점점 독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국회해산 등을 점잖게 외치는가 싶더니 일정 시간이 지나자 온통 빨갱이 타령이었다. 김정남은 김정은의 손에 죽임을 당했으며, 그런 김정은을 비호하는 야권은 빨갱이라는 식이었다. 요 근래 김정남 죽음과 관련된 뉴스를 우리 언론들이 왜 그리 크게 다루는지 의아했는데, 보수언론의 경우 이런 자리에서 써먹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빨갱이 타령이 끝나자 어떤 여성분이 서울시청 구청사를 가리키며 큰소리로 외쳤다. "박원순은 왜 북한 노동당 로고를 걸고 있냐? 빨리 내려라!" 그분이 가리키는 곳에는 세월호 노란 리본이 그려져 있었다.

다시 촛불 광장으로

힘들었다. 그 추운 겨울밤, 촛불을 들고 서 있었을 때도 멀쩡했는데, 시청 광장에서는 1~2시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왜 이리 피곤한지.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자들 가운데 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증오와 환멸에 찬 언어 때문인 듯도 했다. 이들도 촛불 집회에 나오면 나와 같은 느낌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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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시민청 내부 집에 언제 가누 ⓒ 이희동


광장을 나와 다시 시민청으로 내려갔다. 여전히 많은 어르신들이 지친 표정으로 그곳에 앉아 계셨다. 힘들면 집에 가면 될 텐데, 아무래도 지방으로 내려갈 버스를 기다리는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따분한 얼굴로 저곳에 있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세월호 엄마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아팠던지 훌쩍이는 아내와 그 시간이 지루해 몸을 틀고 있던 아이들과 함께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시민청을 올라오자 여전히 시청 광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태극기와 쏟아지고 있었는데, 아내가 중얼거렸다.

"3.1운동 때 일본 놈들도 저 태극기 물결을 보면서 무서웠을까?"

광화문으로 가는 길, 까꿍이가 물었다.

"아빠, 어땠어? 저 할아버지들은 왜 저래?"
"글쎄. 아마 저분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좋아하는 것 같아. 박근혜 대통령의 아빠도 대통령이었는데 그때 저 할아버지들이 아빠같이 젊을 때였거든. 그러니까 지금 대통령을 보면 자기 젊었을 때가 생각나서 저러지 않을까?"
"이상해. 막 소리 지르고 욕하고. 태극기도 이상해 보여."
"아니야. 할아버지들이 다 그런 건 아냐. 그리고 저렇게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같이 사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거야. 우리와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들만 잘살 수 있다면 그게 나쁜 사회야. 그런데 저 할아버지들은 그런 사회가 좋다고 해서 문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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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리본을 단 태극기 광화문 광장의 태극기 ⓒ 이희동


까꿍이는 아는 듯 모르는 듯 아빠의 손을 잡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청계천 쯤 이르러 노란 리본 단 사람들이 많은 걸 보더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 듯, 촛불을 밝혀도 되느냐고 물었다. 찡했다. 벌써 네가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분단을 느낀 게로구나. 세대로 그어진 분단.

낯익은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 오니 그제야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마냥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고 촛불을 높이 들었다. 앞서 봤던 태극기의 물결이 꽤 충격이었는지, 노란리본을 단 태극기를 계속해서 가리키기도 했다. 녀석들에게는 과연 태극기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궁금했다. 부디 이 시국이 빨리 수습되어서 태극기가 오염되지 않기를.

집에 오는 길. 착잡함을 금할 수 없었다. 시청에서부터 남대문 못미쳐 늘어서 있던 태극기의 물결이 마음에 걸렸다. 저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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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들어라 태극기 대신 촛불이다 ⓒ 이희동


#촛불집회 #태극기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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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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