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강철 대사 신임... 침투 간첩 관리 부서 소속이었다"

[단독] 흑금성 공작원 박채서씨 인터뷰 "강반석 집안, 97년 베이징 대선공작반 지휘"

등록 2017.02.23 14:46수정 2017.02.2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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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는 박채서씨 ⓒ 심규상


북한 정찰총국이 김정남 피살의 배후로 지목된 가운데 강철 주(駐)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는 북한 노동당 대외조사부(현 정찰총국) 소속으로 1997년 대선 당시 중국 베이징에서 활동한 '대선공작반'을 지휘한 사령탑이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90년대 국군 정보사령부 대북공작관과 안기부 대북공작원으로 활동했던 박채서씨는 "강철은 김정은 위원장의 외가인 '칠골 가계' 사람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임이 두터운 실력자였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박씨의 이 같은 증언은 강철 대사의 위상과 그가 수행해온 역할에 비추어 '김정남 암살공작'을 사전에 알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과거에 강철 대사가 소속된 노동당 대외조사부(일명 35호실)는 평양외국어대나 군사대학에서 외국어를 전공한 우수한 학생을 요원으로 선발해 주로 제3국에 침투하는 간첩을 관리했던 곳이다. 평양외국어대 일본어과를 졸업한 김현희가 대표적인 대외조사부 소속 대남공작원이다. 국정원에 따르면, 대외조사부는 2009년 인민군 총참모부 정찰국, 노동당 작전부와 통합되어 정찰총국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실제로 김정은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 사건을 수사중인 칼리드 아부 바카르 말레이시아 경찰청장은 22일 기자회견에서 "김정남 암살에 북한 대사관 직원(2등서기관 현광성, 44)과 고려항공 직원(김욱일, 37)이 연루되어 있다"고 밝혀 주목된다. 대사관 직원이 연루되어 있다면 대사가 이를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또한 바카르 경찰청장은 "이들에 대한 인터뷰를 이날 북한 대사관에 요청했다"며 "대사관측이 협조해주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강철, 김정은 위원장 신임 한몸에 받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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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독극물 공격을 받은 후 고통을 호소하는 장면이 담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CCTV 갈무리. ⓒ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1990년대 국가안전기획부 해외조사실(대북공작국) 소속 '흑금성 공작원'으로 유명한 박씨는 21일 기자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강철 대사가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텔레비전 뉴스로 보고 눈에 많이 익은 인물이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97년 당시 대선공작반을 지휘한 '강 참사'였다. 강반석(김일성 어머니) 집안인 강철은 평양외국어대 출신으로 6개 국어를 구사하고 해외 정세에도 밝은 실력자다"고 밝혔다. 김일성 주석의 외가인 '칠골 가계'는 본가를 지칭하는 '백두 혈통'과 함께, 북한에서 주민들에게 오랫동안 우상화 작업을 해온 대표적 '로얄 패밀리'이다.

지난 2월 13일 김정남 피살 사건 이후, 많은 국내외 언론이 말레이시아 현지 소식을 연일 실시간으로 보도하고 있다. 특히 김정남의 부검 결과와 사망 원인이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강철 대사는 두 차례나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번에 발생한 모든 사건이 한국과 결탁한 말레이시아가 정치화한 것"이라고 '남한 배후설'을 주장해 뉴스의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그의 외교관답지 않은 거친 언행으로 인해 북한-말레이시아 간 외교전으로 비화하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강 대사의 신원에 대해서는 보도된 바가 없다.

실제로 강철 대사는 2014년 6월 장성택의 조카인 장용철의 후임으로 말레이시아 및 브루나이 대사로 부임했다는 것 말고는, 이전 경력과 직책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은 그에 앞서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과정에서 장용철 대사와 매형인 전영진 쿠바 대사를 평양으로 소환해 숙청했다. 따라서 대사가 소환된 '사고 공관'에 강철이 임명된 것은 그만큼 김정은 위원장의 신임이 크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또한 김정은의 외척(外戚)인 그가 말레이시아 대사로 임명됨으로써 장성택의 동남아지역 비자금 및 인맥을 점검하는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었다.


90년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위장 포섭되어 침투한 뒤에 장성택 등의 신임을 얻은 흑금성 공작원 박채서씨는 북한 전역에서 상업광고를 찍는 편승공작을 수행하면서 북한 핵심 지도부의 의지를 파악해 당시 안기부 해외조사실(대북공작국)에 보고하는 국가공작을 수행했다. 그런데 98년 3월 정권 교체기에 구(舊) 안기부 수뇌부가 대북공작 1급비밀을 담은 '이대성 파일'을 유출하는 바람에 신분이 공개되어 3억 원의 위자료를 받고 '해고'되었다.

다음은 21일 박채서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박씨와의 전화 인터뷰는 말레이시아 경찰이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김정남 암살에 북한 대사관 직원(2등서기관 현광성)과 고려항공 직원(김욱일)이 연루되어 있다고 공개하기 전에 이뤄졌다.

- 김정남 피살 사건을 어떻게 보나.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의 직접 승인이나 동의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요인 암살에 관여하는 대외정보조사부나 정찰총국의 소행으로 보인다."

-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로 돈줄이 마른 김정은이 김정남과 그의 후견인이었던 장성택의 비자금을 노린 것이라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장성택이 김정남의 뒤를 봐준 것은 맞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김정남에게는 많은 자금이 없다. 2005년경 마카오에 있던 비자금의 대부분을 베이징으로 가져왔고, 장성택은 이후 베이징을 중심으로 자금을 운영해 왔다. 또 장성택이 호화-사치생활이 몸에 배이고 금융관리에 못미더운 김정남에게 돈을 맡길 리가 없다. 김정남이 베이징에 오면 대개 장성택이 소유한 향촌(鄉村) 빌라촌에서 머물렀는데, 현금이 필요하면 지원해 주는 정도였다."

- 장성택이 김정남을 후견한 특별한 배경이 있는가.
"장성택은 중국식 개혁개방과 집단지도 체제 구축을 조심스럽게 추진해 왔다. 그러나 김정남은 장성택이 추진하려는 북한 체제의 변화와 집단지도 체제 구축을 위해 필요한 과도기의 상징적 존재일 뿐이다. 만약 장성택이 처남인 김정일과의 오랜 인간 관계나 북한의 관습을 무시했다면, 김정일 생전에 쿠데타나 모종의 사태를 일으켰을 것이다. 실제 친중파인 장성택의 중국 군부내 지원 세력이 모종의 사태를 종용하기도 했다. 그러한 정황을 잘 알고 있는 김정은의 호위 세력이 장성택을 전격 제거하고 그의 비자금을 장악하려 했던 것이다."

- 강철 대사는 만난 적이 있는가.
"강철 대사가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텔레비전 뉴스로 보고 눈에 많이 익은 인물이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97년 당시 대선공작반을 지휘한 '강 참사'더라. 강 참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외가인 '칠골 가계'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임이 두터운 실력자였다. 당시 권민, 리호남 참사와도 잘 통하는 사이어서 누구냐고 물어보니, '칠골 가계'(강반석 집안)라며 평양외국어대 출신으로 6개 국어를 구사하고 해외 정세에도 밝은 실력자라고 얘기하더라."

- 당시 겪어본 강 참사는 어떤 인물이었나.
"당시 리호남 참사나 나이가 더 많은 강덕순 참사가 업무에 미숙하거나 실수하면 곧바로 지적하고 시정토록 하는 식으로 거침없는 행보를 해 강한 인상을 받았다. 또 안기부 편승공작으로 추진했던 광고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면, 베이징 현지에서 관계자들을 강하게 질책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 물을 먹어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사고가 유연하고 합리적인 인물로 기억한다."

"강철의 억지 주장을 보면 북한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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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채서씨가 '흑금성' 공작원 시절에 평양 5.1경기장을 방문해 안내원과 함께 찍은 사진. ⓒ 김당

- 그런데 기자회견에서 '남한 배후설'을 주장하는 것을 보면 외교관답지 않게 언행이 거칠고 막무가내다.
"대외적으로는 개인의 의사나 성향을 표시할 수 없으니 당연히 그렇게 억지 주장을 펴는 것 아니겠나. 주로 러시아와 독일 쪽에서 근무한 것으로 들었는데 영어와 일어에도 능통했다. 당시 안기부 편승공작이었던 광고사업을 추진하면서 베이징의 가라오케에 여러 번 갔는데 <마이웨이> 팝송을 그렇게 잘 부른 사람은 처음 봤다. 당시 그는 해외에 나온 북한의 어떤 인물보다도 진취적이고 과감성이 돋보이는 인사여서 내게 오래 인상이 남아 있다. 그런 그가 기자회견에서 하는 억지 주장을 보면 북한의 상황이 그만큼 절박한 것으로 판단된다."

- 당시 강 참사가 수행했던 다른 일은 없었나.
"95년 12월 런던에서 김정일 비자금 관리자였던 최세웅(대성총국 유럽지사장)이 망명했을 때도 강 참사가 직접 진두 지휘했다. 함께 망명한 최씨의 와이프 신영희가 만수대예술단 소속 무용수였는데 강 참사 와이프랑 친구 사이라고 들었다. 또 당시 김 기자도 베이징 현장에 있으면서 봤지만, 97년 2월 황장엽 망명으로 광고사업이 교착되었을 때도 본국과 교신해 '황장엽과 광고사업은 별개다, 배신한 노인네는 갈 테면 가라'고 정리해 준 것도 강 참사다(기자는 당시 남북한이 광고사업 합의서에 서명할 때 현장을 취재했다). 특히 강 참사가 김정일 일가의 골동품 처리를 주도했던 것으로 보아 김정일과 누이동생 김경희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인물로 판단했다."

- 그런데 강철 대사가 97년 베이징의 대선공작반을 지휘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다. 또 국정원의 '북풍 사건' 내사 기록이나 검찰의 '북풍 사건' 수사결과에도 강덕순 참사는 등장하지만 강철 참사는 안 나온다.
"강 참사는 당시 남한 사람이나 외부인과 일절 접촉을 하지 않았다. 북풍 사건에 연루된 한나라당 정재문 의원이 대선 한달 전(97년 11월 20일)에 베이징 장성호텔에서 안병수와 강덕순 참사, 그리고 회동을 주선한 재미교포 김양일 등과 비밀 접촉할 때도 강 참사는 뒤에서만 조율했다. 당시 정재문은 북풍을 요청하면서 360만 달러를 제공했는데, 그때 강덕순이 정재문 면담 결과를 보고할 때 현장에 있었다. 보고가 끝난 뒤에 강철 참사가 베이징 21세기호텔 방에서 돈을 카운트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북풍 사건 검찰 수사기록에는 강 참사(강철)가 안 나오지만 국정원에 보고한 디브리핑(Debriefing, 공작원 첩보보고)이나 공작첩보에는 나온다. 당시 강철의 신상에 대해 보고한 내용도 국정원에 남아 있을 것이다."

- 검찰 북풍 사건 수사결과에 따르면, 북한은 남북관계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방편으로 'DJ 불가론'에 입각해 97년 7월부터 베이징에 통일전선부와 국가안전보위부 합동으로 구성된 '대선공작반'을 가동했다. 그렇다면 강철은 어디 소속이었나?
"공작을 진행할 때는 내가 상대한 인물의 신원 파악이 가장 중요하다. 북한이 97년 베이징에 대선공작반을 차릴 때도 강 참사는 외부인과 접촉을 안해 사람들이 그의 신원을 전혀 몰랐다. 그런데 대북 광고사업을 추진할 때 문제가 생기거나 사업 진행이 막히면 그가 결심을 해서 해결해주길래 리호남 참사에게 물어보니 '칠골 가계'라고 귀띔해주었다. 당시 내 판단으로는 노동당 대외조사부의 베이징 책임자로 판단했다."

- 대외조사부면 KAL-858기를 폭파한 대남공작원 김현희가 소속된 곳 아닌가.
"그렇다. 당시 대외정보조사부는 조선노동당 산하의 해외•대남공작 및 정보기관이다. 조선노동당 중앙청사의 3층 5호실을 사용해 '35호실'이라는 위장명칭을 사용했다. 35호실은 공작원을 해외에 파견해 남조선과 해외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주임무이며 해외동포와 유학생을 포섭하거나 매수해 간첩활동을 조장하거나 제3국을 경유한 공작원 대남침투를 실행한다. 또 주요 인사를 암살, 납치하거나 폭파, 테러공작도 담당한다."

- 강철 대사가 정찰총국에 통합된 대외조사부 소속이었다면, 이번 암살 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가.
"모든 대남공작 부서가 정찰총국으로 통합되었다는 데는 이론이 있다. 작전부 등 무력 조직만 정찰총국에 통합되었고 대외조사부 같은 인간정보 조직은 유지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아무튼 대외조사부나 정찰총국 소행이라면 극비리에 추진했겠지만, 말레이시아에서 발생한 사건인 만큼 강철 대사가 편의를 제공했거나 최소한 사전에 암살 공작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국가정보원 대외비 자료와 직원 인터뷰를 토대로 '국정원 흑역사'를 파헤친 <시크릿파일 국정원>(메디치미디어, 2016)의 저자로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본부장(편집국장)을 지냈다.
#김정남 피살 #강철 대사 #정찰총국 #흑금성 공작원 #박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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