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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잡는 '치유', <더 큐어>가 그리는 '힐링'의 가면

[리뷰] 피로와 질병을 달고사는 현대인들에게 권하는 영화

17.02.24 22:06최종업데이트17.02.2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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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어 버빈스키 감독의 영화 <더 큐어> 포스터. ⓒ 20세기 폭스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힐링'의 시대다. 저마다 '힐링'을 갈구한다는 사실은 사회가 그만큼 깊이 병들었음을 의미한다. <더 큐어>는 탐욕과 경쟁, 속도로 점철된 메트로폴리탄의 삶을 벗어나 '치유'와 '안식'을 주기에 최적지로 보이는 알프스 고지로 우릴 안내한다.

이 영화는 뉴욕과 스위스 알프스를 배경으로 펼치는 '스릴러 미스터리 추리극'이다. 첫 장면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상징하는 복선이다. 고층 빌딩에서 홀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수익률을 높이고자 한창 작업에 몰두하는 증권사의 직원이 나온다. 그는 돌연 가슴의 통증을 느끼고 냉수를 들이켰지만 외려 그 물을 먹고는 즉사한다. 생명의 원천으로 알려진 물이 오히려 사람을 병들게 하고 죽음으로 안내하는 놀라운 역설, 이 영화가 내내 강조하는 포인트다.

뉴욕 월가 사람들은 시시각각 등락을 거듭하는 증시에 목숨을 걸다시피 한다. <더 큐어>에서는 그렇게 미친 듯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쉼과 치유가 필요한 '환자'로 본다. 주인공 록하트는 잘나가는 증권회사의 고위 간부이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과거 록하트 부친의 회사와 경쟁하던 CEO의 회사다. 한데 그 CEO는 어느 날 스위스 알프스 자락에 있는 웰니스 센터에 가더니 이상한 편지만 한 장 보낸 채 돌아오지 않는다. 록하트는 그 CEO를 모셔오라는 특명을 받고 엘니스 센터를 찾아갔다가 그곳이 몹시 수상한 곳임을 차츰 알게 된다.

영화 <더 큐어> 스틸컷 ⓒ 20세기 폭스


<더 큐어>는 공포 영화치고는 볼거리도 풍성하고 시나리오도 자못 흥미롭다. 웰니스 센터는 200여 년 전 성이던 곳을 개조해 만든 치유센터다. 고풍스러운 성채, 그곳에 가는 길은 깎아지를 듯한 벼랑으로 이어진 비좁은 도로다. 외부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데다 묘하게도 거기에 들어간 사람 중에 밖으로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는 200여 년 전 이 성에서 벌어진 해괴한 사건과 관련이 있다.

록하트는 이 센터를 방문한 첫날 자동차사고를 당하였고 코피를 흘렸으며 환각에 시달린다. 센터는 겉보기에는 평온하지만, 곳곳에서 음산한 기운을 풍긴다. 센터에 치유를 받고자 들어간 사람들은 그곳 치유법에 중독 혹은 세뇌되어 바깥 세계를 나갈 생각을 접는다. 그들은 그곳이 가장 평안한 치유와 안식을 준다고 믿는다.

록하트는 진실을 알리면 환자들이 동조해 줄 것이라고 보고, 모든 환우 앞에서 자신이 출입금지구역에 들어가 본 것을 말한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기대와 달리 그들은 록하트에게 몰려들어 그를 해코지 하려 든다. 자신들은 여기가 좋고 그대로 남고 싶은데 왜 평온을 깨며 방해하느냐는 거다. 이 영화는 현대 기술 문명에 중독되고 병들어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이 쉬고자 찾아간 곳조차 사실 쉼과 치유를 주기는커녕 더욱 심한 중병과 죽음으로 이끌 수 있음을 경고한다. 진실을 정직히 마주하기 싫은 자들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는 것이다.

성공과 완벽, 건강과 행복을 최고로 여기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 영화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뭔가 잘못돼 있고 그건 모두가 아는 바다. 대부분 피로와 질병을 운명처럼 달고 사는 중이다. 하지만 이를 떨쳐 내려면 모든 걸 접고 웰니스 센터 같은 곳에 들어가 특별 치료와 요양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영화는 삶을 망가뜨리는 무한질주의 거대도시나 시계가 멈춘 웰니스 센터 같은 곳이 아닌 산 아랫마을의 비루한 현실로 내려가야 그나마 온전히 살 수 있음을 넌지시 말하려는 것 같다.

영화 <더 큐어> 스틸컷 ⓒ 20세기 폭스



더 큐어 힐링 고어 버빈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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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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