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는 '죄'라는 교수님, 내가 커밍아웃한 이유

[카드뉴스] 대학 내 성소수자 혐오... 그럼에도 이들이 커밍아웃한 이유

등록 2017.03.01 16:41수정 2017.03.0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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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인권이 존재하기 위해 선결돼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해본다. 역사적으로 인권은 늘 그 대상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확장하고 변화하고 발전했다(물론 이는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겠지만).

여전히 세상엔 성소수자의 인권을 부정하는 이들이 많다. 성소수자의 존재마저 끊임없이 지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 사회가 그렇고 내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대학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사회 안에 대학 사회가 있는 것이니 당연한 현상이겠지만, 나는 내가 속해있고 접근성이 높은 이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가 속해 있는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아래 큐브)는 2013년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과 대학 내 성소수자 인권 또한 우리 사회의 인권 지수와 무관할 수 없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2014년에 만들어진 연대체이다. 2016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전국 54개 대학, 59개 모임이 함께하고 있다. 이처럼 대학 사회는 상대적으로 성소수자에 친화적인 공간일 수 있다. 하지만 성소수자 모임이 많은 만큼, 그 존재가 가시화될 가능성도 많다 보니 반동과 혐오, 탄압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이렇다. 서강대학교에선 학내 성소수자모임인 '춤추는 Q'에서 신입학시즌에 맞춰 '성소수자 신입생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게시하자, 교수가 임의대로 철거한 사례가 있었다. 현수막을 게시하기 위해 필요한 행정절차를 모두 거쳤는데도 벌어진 일이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해당 교수는 '서강대 학우엔 비성소수자들도 있는데, 성소수자 입학생만 축하하는 것이냐. 그러면 안 된다'거나 '원래 지저분한 것을 잘 떼는 사람'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이에 다양한 대학의 학생회가 규탄 성명을 내고 고소장을 접수하기도 했다.

보수 기독교 교단의 대학인 총신대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총신대에선 대학 측이 총신대 성소수자 모임인 '깡총깡총'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을 색출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실제 학교 측은 지난해 3월 <뉴스앤조이>와 인터뷰에서 성소수자 학생을 확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총신대는 학교 본부와 교단 소속 목사를 퀴어문화축제 행사장에 보내기도 했다. 학교 측은 지난해 8월, 퀴어퍼레이드에서 깡총깡총 구성원들의 신원 노출을 우려해 대신 깃발을 들었던 사람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채플 시간이나 강의실에서의 혐오 발언도 문제다.


대학이라는 공간의 혐오는 어느 때보다 짙고, 반동은 어느 때보다 심하다. 숭실대는 인권영화제에서 성소수자 관련 영화를 상영한다는 이유로 장소 대관을 거절했고, 고려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성소수자들은 대학 사회에서 끊임없이 지워지고 있다. 하지만 학생 사회에서의 커밍아웃도 이어지고 있다. 김보미 서울대 총학생회장, 고려대 동아리연합회장를 시작으로 연세대 총여학생회장, 카이스트 부총학생회장, 계원예대 총학생회장이 커밍아웃했다. 이들이 본인의 존재를 드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선출직은 아니지만 인권위원회라는 학내 기구에서 커밍아웃한 채 활동하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통해 그 질문에 답해보려 한다. 내가 있는 학교는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에 향한 혐오가 팽배한 공간은 아니다. 하지만 교수님들의 입을 통해 "동성애자는 출산할 수 없기에 수용할 수 없다", "동성애는 죄다"라는 말을 종종 들을 수 있는 공간이다.

내가 성소수자임을 커밍아웃하고 인권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 이유도 교수님들의 성소수자 혐오 발언 때문이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여자/남자친구에 대한 물음은 물론, 이성애 중심적인 발언이 나오고 그 과정에서 나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이 답답했다.

또 학내에서 각종 인권침해적 상황, 혐오 발언을 마주하지만 아무도 제약하거나 조정할 수 없던 상황도 문제였다. 과거에는 인권위원회라는 기구도 없었고, 총학생회 역시 부재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상황이 몹시 못마땅했고 이를 해결하고 싶었다. 여러 사람을 모으고 정책과 비전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이 일을 하고자 하는 명분이 있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인권을 외칠 수 있는 당사자임을 보여주기 위해 커밍아웃을 했고, 학생 대표자들의 인준을 통해 학생회 활동을 시작했다.

학생회 활동을 하며 학생 사회는 많이 변했다. 각 과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보다 가시적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각 과가 자생적으로 인권 교육을 만들었다. 그리고 기존에 발언권이 없었던 소수자들이 직접 말하기 시작했다. 장애 인권 소모임이 만들어졌고, 채식인들의 인권 역시 활발하게 논의됐다. 이로써 나의 커밍아웃은 완성되었다.

처음 커밍아웃은 나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상대적으로 '관용적인' 대학이란 공간에서 쉽게 학생회 활동을 하고 싶어 커밍아웃을 선택한 것도 있다. 그리고 그냥 나를 숨기는 것 자체가 이해 가지 않았던 것도 있다. 나의 커밍아웃은 이렇듯 거창하지 않게 시작됐다. 단순히 나에게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소수자성을 무기 삼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커밍아웃은 학교 안에 다른 변화와 의미를 만들어 냈다. 커밍아웃은 단순히 나의 존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었다. 숨겨진 사람들, 존재들이 세상에 건네는 말이었다. 커밍아웃은 소통이었다. 커밍아웃을 하기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언어화하는 내부의 커밍아웃을 거친 후 그것을 세상에 밝히는 또 다른 커밍아웃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다. 혐오 사회에서 커밍아웃하는 것은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밍아웃은 나의 존재가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이고 우리 공동체에 던지는 메시지다. 나의 존재로 인해 학교는 변했다. 교수님들의 문제적 발언을 문제제기할 수 있는 창구가 만들어졌고, 학생회가 소수자를 위해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을 인식하고 준비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존재하였으나 목소리 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냈다.

시작은 조금 별로였던 나의 커밍아웃.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우리의 인권을 함께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인권은 어느 하나, 누구 하나만의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인권과 인권이 상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그러니까 우리, 좀 더 설쳐보자.
덧붙이는 글 바꿈 홈페이지, 미디어오늘에 중복게재 됩니다.
#인권 #동성애 #퀴어 #대학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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