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노숙 104일째, 봄향기 가득한 고향 밥상 그리워

청정환경을 자랑하는 양양의 봄들에서는

등록 2017.02.28 14:08수정 2017.02.2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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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남쪽과 동쪽 자락에 자리한 양양군은 같은 군내라도 마을에 따라 환경이 완전히 다르다. 오색마을엔 4월 하순까지도 언제 눈이 내릴지 알 수 없다. 봄꽃은 이미 피어 봄을 맞이하였는데 그 위로 눈발 거칠게 휘날리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으니 이 또한 전혀 생경스런 풍경이다.


오색 계곡 두 손 가득 길어올려 마셔도 되는 맑은 물이 양양군엔 산골짜기마다 사철 흐른다. 얼음이 풀리기 시작하는 2월 중순부터 눈은 더 잦아지지만 당도한 봄은 어김없이 버들가지가 피고, 나무마다 한껏 물을 올리기 시작한다. ⓒ 정덕수


광대나물 봄들 양지쪽이면 어디나 어김없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들꽃 중 하나가 광대나물이다. 여린 싹을 채취해 나물로도 먹는 광대나물은 군락을 이뤄 꽃이 피면 마치 자운영이 만개한 들판을 만난 듯 싶다. ⓒ 정덕수


개불알풀 봄까치꽃으로도 불리는 개불알풀은 짙은 남색의 꽃이 작으나 참으로 곱다. 이 풀은 꽃만 보아서는 왜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꽃이 진 뒤 씨방이 열리면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 정덕수


그러나 봄은 어김없이 당도해 들길을 걸으면 발아래 지천으로 푸릇한 새싹들이 분주하게 잎을 펼치고, 개불알풀이나 광대나물 꽃다지가 꽃망울을 한껏 열어젖힌다. 이런 봄철이면 겨우내 움츠렸던 근육들을 사용하기 위해 몸은 더 많은 영양소들을 필요로 한다.

그 중 비타민B와 같은 경우는 햇볕을 통해서도 사람 신체에서 자체적으로 생성된다고 한다. 하지만 무기질과 단백질 등의 다양한 에너지원이 있어야 더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다.

지금이야 광장에 있어 어렵지만 오색마을에 있을 땐 찾아오는 이들이 미리 연통을 주면 들에 나가 달래와 냉이 등 몇 가지 푸새를 캐 물 맑은 냇가에서 깨끗하게 손질해 음식점으로 가곤 했다. 즉석에서 무침과 달래간장, 된장찌개가 되어 함께 봄을 나누는 즐거움 어디 견주겠는가.

우리 식탁엔 육류보다는 푸성귀와 남새들이 주로 많이 오른다. 더러 육류를 섭취해도 쌈채소와 고추, 마늘, 된장, 김치를 곁들여 조화롭게 영양소를 섭취할 줄 아는 식습관이 길들여져 있다.

육류 중에서 돼지고기를 삶은 수육을 먹을 경우 보쌈김치와 새우젓을 곁들여 먹는데, 새우젓은 돼지고기를 소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보쌈김치는 정말 다양한 영양소들을 고루 집합시킨 김치 중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밤과 잣, 굴 등을 김치양념과 어우러지게 만든 보쌈김치와 함께 먹는 수육은 외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음식문화의 백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한국음식과 가장 근접한 음식으로는 베트남 음식을 예로 든다. 월남쌈을 보면 고기와 쌀, 다양한 야채와 국물이 어우러진 대표적인 한국의 음식과 닮은 영양을 고루 갖춘 음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꼭 육식과 함께 하지 않아도 국이나 무침만 보더라도 우리는 얼마나 기막힌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는가.

냉이된장찌개 달래와 냉이를 넣어 끓인 된장찌개만큼 봄의 향기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먹거리도 드물다. 매운 고추 몇 개 썰어넣고 끓인 칼칼하면서도 봄향 물큰한 된장찌개가 요즘 가장 간절하게 생각난다. ⓒ 정덕수


된장찌개의 재료 달래와 냉이 매운 고추가 봄철 밥상을 풍성하게 한다. 간혹 즉석에서 된장을 풀어 끓이기만 하면 된장찌개가 되는 줄 아는 이들이 많은데 이는 맛 좋은 된장찌개랄 수 없다. 먼저 된장과 다시멸치에 무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끓여 놓고 다시멸치를 건져낸다. 여기에 간을 맞춰 물을 붓고 두부와 대파, 호박 등을 넣고 끓이다 냉이와 달래, 매운 고추, 부추를 넣고 불을 곧장 끄면 향기롭고 맛 좋은 된장찌개가 된다. ⓒ 정덕수


이른 봄 들에서 캔 냉이와 달래를 이용하여 국을 끓이는데도 지방마다 혹은 가정마다 된장을 주요 간맞춤 장으로 이용하는 것은 같지만, 굴이나 멸치, 표고버섯가루 등으로 보다 다양한 재료를 추가하여 봄철에 필요한 영양들을 얻는다. 영양제나 보약을 먹을 필요가 없다.

아이들이 있는 집들은 먼저 간장을 내지 않은 된장으로 국을 끓여 된장의 맛에 길들여지게 할 필요가 있다. 이때 된장국을 끓이며 맑은 국물을 얻으려고 메주콩의 알갱이들을 모두 걸러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직접 담근 된장이라면 그럴 필요는 없다. 메주콩의 알갱이를 채로 걸러내는 걸 보고 물었더니, "메주콩을 먹는다는 게 뭔가 덜 좋은 거 같아서"라는 대답을 하는 걸 보면 일본식의 미소에 길들여진 문화가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된장을 그대로 넣어 찌개나 국을 끓였고 무침에도 된장을 그대로 사용했다. 이는 오래된 관습이고 한국음식의 전통적인 방식이다.

솔직히 식당에서 내는 된장국은 메주콩을 어떤 콩으로 이용했는지를 모르는 까닭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판단되지만, 직접 농사를 지어 된장을 담근 경우라면 100% 신뢰를 하고 그대로 먹어도 된다.

양양은 국도에서 벗어난 곳 어디나 밭이 있다. 그만큼 냉이와 달래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는데, 양양읍에서 4일과 9일에 펼쳐지는 장날 풍경을 보면 촌로들이 손수 캔 냉이와 달래 같은 푸새를 파는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집에서 담근 된장이나 고추장, 간장이 있다면 촌로들이 파는 달래나 냉이, 씀바귀는 기막힌 먹거리가 된다. 직접 들에 나가 채취를 해도 좋겠지만 그런 경우 비슷한 모양의 풀이 많아 산촌에서 생활했던 이들이 아닌 경우 종종 엉뚱한 식물을 잔뜩 채취하곤 하니 권하지 않는다.

냉이 몇 뿌리만 썰어 넣어도 된장찌개는 확연히 맛이 달라진다. 계절을 불문하고 냉이가 들어간 된장찌개를 한 수저 입에 넣는 순간 이미 머릿속으론 봄 향기가 푸릇하게 피어오른다.

여기에 착안해 오색약수터 앞 몇 곳 식당에서는 사계절 된장찌개에 냉이를 넣어 고객에게 제공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봄철 냉이가 많이 시장에 나올 때 대량 구입해 깨끗하게 손질한 뒤 살짝 데쳐 하루 사용할 분량만큼 포장을 한 뒤 냉동시켜 보존한다.

달래간장 달래와 매운 고추가 주재료인 달래간장은 두부를 굽거나 데쳐 먹을 때도 좋고 두부조림을 할 때도 유용하다. 단맛을 선호한다면 설탕보다 양파를 썰어 넣으면 된다. 깔끔한 맛을 즐기는 입장에서 참깨나 참기름은 사용하지 않고 김치용 고춧가루를 적당히 넣어 먹는다. ⓒ 정덕수


어려서부터 아빠를 따라 달래와 냉이를 캐 먹었던 아이들은 제철이면 어김없이 먼저 "달래간장에 두부를 먹고 싶다" 거나 "냉이된장찌개나 냉이무침을 먹고 싶다"고 한다. 그만큼 어려서부터 맛 본 음식은 평생 잊히는 법이 없다.

청정환경을 자랑하는 양양의 고로쇠수액도 맛보고, 달래간장에 고소한 손두부 맛이 그리워 상사병 도질 지경이다. 조만간 양양엘 한 번 다녀와야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푸새 #달래 #냉이 #양양군 #된장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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