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렁냉이, 없어서 못 먹지! 어서 캐라고!"

'드렁냉이'를 캐서 나물을 무치고, 된장국을 끓였습니다

등록 2017.03.02 12:06수정 2017.03.02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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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따스합니다. 봄날입니다. 매실나무 꽃눈이 삐죽삐죽 올라왔습니다. 참새들도 날이 풀리자 떠드는 목소리가 한결 커졌습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입니다. 바람결이 훈훈합니다. 잔설이 녹아 맨땅을 드러냈습니다.


냉이가 텃밭에 올라왔다

모처럼만에 아내와 함께 텃밭에 나왔습니다. 땅이 풀리자 대파 움이 제법 파랗습니다. 겨우내 죽지 않고 살아난 생명력이 신비스럽습니다.

대파 몇 뿌리를 뽑으면서 아내 눈에서 갑자기 빛이 납니다.

"여보, 이거 냉이 아냐?"
"글쎄? 냉이와 비슷하기는 하네!"
"비슷한 게 아니라 냉이가 맞어!"
"그럼 냄새를 맡아보라구."

아내가 푸성귀 하나를 뽑아 코끝에다 갖다대봅니다. 아내 얼굴에 금세 미소가 감돕니다.


"이거 냉이가 틀림없네! 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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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텃밭에서 찾은 냉이. 봄소식의 전령사입니다. ⓒ 전갑남


나도 맡아보니 풀 냄새에 냉이 냄새가 섞여있습니다. 그런데, 시장에서 할머니들이 파는 냉이와 좀 달라 보입니다. 뿌리가 아주 길쭉합니다.

"혹시 잘못 알고 먹으면 큰 일 아냐?"

나는 예년 이 자리에서 냉이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되물었습니다. 내가 의심을 하자 아내는 걱정도 팔자라고 합니다. 새봄에 돋아난 풀은 독성이 없다면서요.

뽑은 푸성귀를 들고 나는 이웃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이웃집에는 동네 할머니께서 마실을 오셨습니다.

"할머니, 이거 먹는 냉이가 맞아요? 우리 밭에 눈에 띄어요."

내가 보여드리자 할머니께서 두말없이 말씀을 꺼냅니다.

"코는 어따 두고 냉이를 몰라 봐? 이건 드렁냉이라는 거야!"
"드렁냉이요? 그거 뭔데요?"
"밭두렁 할 때 두렁을 드렁이라 허잖여! 드렁에서 자란다고 해서 여기선 그렇게 불러!"
"아! 그래요. 이것도 먹는 거예요?"
"그야 없어서 못 먹지! 많이 올라왔남? 어서 캐라고!"

드렁냉이는 보통 냉이보다 뿌리가 더 길고, 잎이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할머니는 지금 캐먹어야지, 좀 있으면 꽃대가 올라와서 못 먹는다고 합니다. 용케도 알아봤다면서 된장국도 끓이고, 나물로 무쳐먹으면 별미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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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두렁이나 논두렁에 자란다해서 '드렁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뿌리가 매우 깁니다. ⓒ 전갑남


나는 급히 우리 텃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그 사이에 냉이를 한 양푼 가득 채웠습니다.

냉이는 새봄에 먹는 봄의 맛이다

봄에 나는 나물은 봄소식의 전령사입니다. 모진 겨울이 끝나갈 즈음, 새로 돋아난 봄나물은 입맛을 되찾아주는 보배로운 존재입니다. 추운 겨울 땅을 헤집고 나온 냉이며, 달래, 쑥과 같은 봄나물은 새봄과 함께 우리 입을 즐겁게 합니다.

봄나물 중에서도 노지에서 자란 냉이를 으뜸으로 칩니다. 냉이는 얼어붙은 땅에서 뿌리를 깊이 박고 잎을 바닥에 붙여 엄동설한을 견뎌낸 질긴 생명력의 풀입니다.

냉이는 잎과 뿌리를 함께 먹을 수 있습니다. 냉이 뿌리는 곧고 희며 털이 많이 나 있습니다. 인삼보다 더한 명약이 냉이 뿌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견뎌낸 생명력을 보고 그런 말이 나온 듯싶습니다. 여느 나물 뿌리와 달리 냉이 뿌리에서는 단맛이 납니다.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냉이는 알칼리식품으로 알려졌습니다. 나른한 춘곤증을 없애주고, 입맛을 돋궈주어 새봄에 먹는 제철식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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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캔 냉이가 양푼으로 하나 가득입니다. 손질하기가 만만찮습니다. ⓒ 전갑남


냉이 다듬는 일이 만만찮습니다. 아내는 냉이를 손질하는데, 꽤나 신경을 씁니다. 뿌리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허드레 잎도 떼어냅니다. 대여섯 차례 맑은 물이 나오도록 씻어야 깨끗해집니다.

우리가 직접 캐서 얻은 것이라 그런지 냉이가 귀하게 여겨집니다. 다듬어 놓은 양이 수월찮습니다.

냉이 향으로 식탁에 봄이 가득

아내가 팔을 걷어붙이며, 솜씨를 발휘할 모양입니다.

"여보, 된장국도 끓이고, 나물로도 무칠게 기대해 봐요!"

아내는 나물을 무치기 위해 냉이를 데칩니다. 소금을 약간 넣은 냄비에 물을 팔팔 끓어오르자 냉이를 넣고 뒤적뒤적하며 금세 꺼냅니다. 살짝 데쳐야 식감도 살아있고, 냉이 특유의 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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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친 냉이를 갖은 양념으로 조물조물 무치면 맛있는 봄나물이 됩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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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나물이 먹음직스럽습니다. ⓒ 전갑남


데친 냉이에 국간장, 파, 마늘을 넣고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려 조물조물 무칩니다. 마무리는 참깨를 술술 뿌려 끝을 냅니다.

이제 된장국을 끓일 차례. 냄비에 물을 받아 잔 멸치를 한 움큼 넣습니다. 다진 마늘도 넣고, 된장도 큰 스푼으로 하나 풀어놓습니다. 칼칼한 맛을 내기 위해 청양고추를 추가합니다. 육수가 끓어오르자 냉이를 붓고, 마지막으로 두부를 잘라 넣으니 된장국이 완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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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냉장국을 끓일 때 잔 멸치를 넣어 끓이면 맛이 좋고, 칼슘을 보충하여 먹습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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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와 함께 끓인 냉이된장국. 구수한 봄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전갑남


냉이나물과 구수한 된장국 냄새로 식탁에 봄 냄새가 가득합니다. 냉이 특유의 향긋함이 묵은 겨울 입맛을 털어내기에 충분합니다.

아내가 끓여낸 냉이된장국은 칼슘이 풍부한 멸치와 단백질 보고인 두부를 넣고 함께 끓여 영양적으로 만점인 것 같습니다.

드렁냉이라는 이름을 알려준 할머니께서 때맞춰 오셨습니다. 아내가 반기며 냉이 반찬 맛을 보여드립니다.

"사모님 손끝이 맵네 그려. 냉이로 이렇게 맛을 내는 거 보니까! 나도 졸지에 봄맛을 보는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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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봄 식탁입니다. ⓒ 전갑남


할머니는 봄에는 손만 부지런하면, 돈 안들이고 맛난 것을 해먹는다며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우십니다.

새봄에 냉이 향긋함과 함께 입이 즐겁습니다.
#냉이 #냉이나물 #냉이된장국 #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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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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