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죽 통해 '불평등 맞선 상징' 형상화 하고 싶었다"

손석춘 작가, <코레예바의 눈물>로 제2회 이태준 문학상 수상

등록 2017.03.02 15:32수정 2018.07.3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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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문학상 시상식 이태준 문학상 시상식 제2회 이태준문학상 수상자로 손석춘 작가가 선정되었다. 시상식은 지난 1일 성북동 수연산방에서 열렸다. ⓒ 박현주


이태준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가 제2회 이태준 문학상 수상자로 손석춘 작가를 선정했다. 삼일절이었던 지난 1일, 성북동의 수연산방에서 소박한 시상식이 열렸다. 수상작은 <코레예바의 눈물>(2016, 동하). 언론인으로도 잘 알려진 손석춘 작가는 여성독립운동가 주세죽의 삶을 장편 소설에 담아 오롯이 복원하였다.

주세죽(1901~1953)은 함흥의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학생 시절 3.1만세 운동에 참여하면서 옥고를 치렀고, 이후 상해로 가서 본격적인 항일운동에 뛰어들었다. 1924년 서울에서 최초의 사회주의여성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를 결성하였고, 경성여자청년동맹과 근우회 창립에도 참여하는 등 사회주의계열 여성운동가로 눈에 띄는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지성, 타고난 예술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박헌영의 아내라는 점은 비극적 삶을 예고했다. 더구나 동지 김단야의 구애는 그 비극성에 가속도를 붙이게 된다. 반세기 전 그녀가 애달파했던 조선 민중의 처지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거듭된 시련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사회변혁의 꿈은 오늘날 이루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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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예바의 눈물> 책표지 주세죽은 눈에 띄는 미인이었다. ⓒ 박현주

손석춘 작가는 "주세죽이 오늘날 살아있다면, 남쪽과 북쪽 모두에, 노동자와 농민, 예술인들을 억압하는 체제에 분노하리라 확신한다"며, "남과 북을 모두 넘어선 세상을 만드는데 몸 던지지 않았을까" 반문했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과분한 상을 받아 마음이 무겁지만 남과 북의 천박한 체제를 넘어선 새로운 나라, 모든 사람이 골고루 잘사는 아름다운 집을 짓는 일에 언제나 함께 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기념사업회는 "손석춘 작가의 장편 소설 <코레예바의 눈물>은 우리 현대사 중에서도 금기로 여겨진 '남로당의 당수 박헌영의 혁명 동지인 주세죽의 삶'을 옹골차게 그려놓았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혁명가의 삶에 맺힌 사랑과 슬픔을 아름답고 '앓음답게'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선정 이유로 "아름다운 우리말을 잘 살려 쓴 문장과 날 선 작가 정신이 이태준의 문학사적 의의와 끝까지 지조를 지켰던 이태준의 작가 정신에 부합하는 점"을 꼽았다. 특히 "주세죽과 박헌영이 일본제국주의를 피해 바다를 건너 탈출하는 장면의 탁월한 묘사는 한국 문학이 이뤄낸 쾌거"로 평하였다.

기념사업회 임종헌 이사장은 축사에서 "소설가 이태준은 1930년대 한국문학을 열었으며 식민지 시절에는 친일활동을 거부하고 월북 이후엔 김일성 우상화 작품쓰기를 거부한 작가로, 이태준의 작가정신을 잘 살리는 작가를 매년 발굴하겠다"고 문학상 제정의 취지를 밝혔다.


이태준기념사업회는 고액의 상금이 마치 문학적 권위처럼 자리 잡은 국내의 상업화된 문학상 제도에 경종을 울리고자 수상자에게 공식적인 상금 수여는 하지 않는다. <실종작가 이태준을 찾아서>, <달의 바다> 등 이태준 관련 책을 펴내면서 기념사업회 설립을 주도한 안재성 소설가는 "이태준의 명예를 헌정하는 것으로 충분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이태준 문학상은 2016년도부터 시상을 시작했으며, 매년 3월 1일 시상식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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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 작가 ⓒ 박현주

- 먼저 축하드린다. 잘 알려지지 않은 주세죽이란 인물에 관심을 갖고 작품을 쓰게 된 계기는?
"남이든 북이든 정치경제 체제가 부끄러울 정도로 천박하다. 우리 후손들이 오늘의 우리를 어떻게 볼까. 그런데 우리의 근현대사가 친일과 종북 논쟁 따위로 오염된 것만은 아니다. 근현대사를 깊은 지층까지 파고 들어가면 그곳에서 청신한 샘물을 발견할 수 있다. 해방 70년을 맞아 주세죽을 통해 '모든 불평등에 정면으로 맞선 상징'을 형상화하고 싶었다. 주세죽의 꿈은 오늘의 남에서도 북에서도 실현되지 못했기에 현재진행형이라고 생각한다."

- <코레예바의 눈물>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가장 흥미로웠던 때는?
"주세죽의 내면으로 들어가 형상화해야 했다. 독립혁명가로서 내면은 자신 있었지만, 여성의 심리를 과연 내가 온새미로 파악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 잘 써지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 흥미롭기도 했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제대로 보았는지 심판은 독자, 특히 여성 독자 분들의 몫이다."

- 작가는 언론인으로도 유명하고, 언론, 민주주의, 사회과학 분야의 인문 교양서를 다수 출간하였다. 주세죽의 삶을 논픽션이 아닌, 소설 형식으로 복원한 이유는 무엇인가? 
"주세죽의 기록은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 오랜 시간 걸쳐 자료를 모았지만, 일제 경찰과 소련 정보기관이 기록한 짧은 이력들뿐이다. 창백한 숫자와 문자로만 남아있는 생애를 생생하게 형상화하려면 논픽션으로 불가능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주세죽의 진실에 다가서려고 최선을 다했다. 소설을 쓰며 내 안에 주세죽이 들어와 있는 느낌이 종종 들었다."

- 작가는 2000년도에 장편소설 <아름다운 집>을 출간한 이후부터 소설가로도 살아왔다. 언론 이전에 문학에도 뜻이 있었는가? 작가가 느낀 문학의 매력은 무엇인가?
"대학시절 문학평론으로 연세문학상에 입선했다. 당시 쓴 평론 제목이 '겨레의 진실과 표현의 과제'였다. 내 삶의 좌표이기도 했다. 내가 탐색한 진실을 뒤늦게 표현해가고 있다. 아름다운 삶을 살았지만 원혼이 된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문학에서 찾았다. 그 원혼들에게 올리는 조촐한 술 한 잔이 나의 문학이길 소망하며 쓰고 있다."

- 작가는 문학/비문학 장르를 넘나들며 매해 1~2권씩 출간하는 등 다작 활동을 하고 있다. 비결이 있다면?
"많은 이들이 고통스런 길을 걸어갔다. 나름대로 언론노동운동, 새로운 사회운동에 나섰지만 나는 상대적으로 편하게 살아왔다. 살아남은 자의 의무를 절감하고 있다. 그때마다 글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진실을 가능한 많은 동시대인들과 나눠야 한다고 다짐했다."

-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또는 쓰고 싶은 주제는 무엇인가?
"이 땅의 피투성이 원혼들을 더 불러오고 싶다. 그들의 깨끗한 진실, 그 웅숭깊은 가슴을 형상화해가고 싶다."


#손석춘 #코레예바 #이태준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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