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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 판 이랑, 뮤지션으로서의 자존심은 지켰다

[주장] 돈 안 되는 예술을 하는 사람은 불평도 하면 안되나?

17.03.05 10:00최종업데이트17.03.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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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열렸던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이하 한대음) 시상식에서 자신이 받은 트로피를 50만에 팔았던 뮤지션 이랑의 포지션을 보고, 지난 26일 관람한 다큐멘터리 영화 <노후 대책 없다>가 불현듯 생각났다. 트로피를 팔았던 이랑, <노후 대책 없다>에 등장하는 펑크 뮤지션들 모두 음악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가난한 뮤지션이다. 실력을 인정받아 이랑은 한대음에서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을 수상했고, <노후 대책 없다>에 등장한 스컴레이드와 파인 더 스팟은 해외 펑크 시장에 눈을 돌린 지 오래다. 그래도 이들은 대다수 한국 사람들을 알지 못하는 '듣보잡' 뮤지션이고, 월세 낼 돈이 없어 트로피를 팔거나 음악 아닌 다른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야 한다.

이랑의 트로피 즉석 판매 퍼포먼스를 두고, 많은 사람은 뛰어난 음악을 만들고도 가난한 예술인들의 현실을 개탄했다. 이 기상천외한 퍼포먼스를 아니꼽게 본 사람들도 있었다. 몇몇 네티즌들은 이랑의 트로피 경매를 두고 '돈 안 되는 음악 하면서 불평하지 말고 돈 되는 일을 해라"라는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랑이 자신의 SNS 계정에 "제가 봤을 때 돈 되는 일=한남으로 태어나기"라는 표현을 두고 새로운 논쟁이 붙고 있다.

이랑이 판 건 트로피 뿐이다

지난 28일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가수 이랑이 곡 '신의 놀이'로 '포크 부문' 상을 받았다. 그는 무대에 올라 뮤지션의 벌이를 이야기하면서 트로피를 파는 퍼포먼스를 했다. 그의 트로피는 현장에서 50만원에 거래됐다. ⓒ 조재무사진가


이랑의 트로피 경매 퍼포먼스 소식을 듣자마자, 트로피를 팔 수밖에 없는 가난한 예술가의 현실의 울쩍한 마음만 들었던 나는 이랑의 퍼포먼스가 이렇게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지 몰랐다. 솔직히 이랑이 트로피를 판 행위가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닌데,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며 그녀의 행위를 비판하려 드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랑에게 상을 준 한대음 측에서는 상당히 기분이 언짢을 수도 있다. 돈이 없기는 한대음 사무국도 마찬가지이고, 다들 없는 살림에 뮤지션들에게 뜻깊은 상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이랑은 힘들게 준비한 시상식의 트로피를 팔았다.

그런데 이랑은 한대음에서 받은 최우수 포크 부문 상을 판 게 아니라, 트로피를 판 것이다. 이랑이 수상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니까, 설령 트로피를 판다고 해도 이랑이 제14회 한대음 수상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랑이 시상식을 두고 "친구가 돈, 명예, 재미 세 가지 중에 두 가지 이상 충족되지 않으면 가지 말라고 했는데 시상식이 재미도 없고 상금이 없다. 명예는 정말 감사하다"라고 촌평한 것 또한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면 상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상을 준 시상식이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상을 받았으니 무조건 상을 줘서 감사하다, 아니면 시상식에 대해서 좋게만 말해야 하는가.

이런 논리라면 지난해 그 말 많고 탈 많은 대종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병헌이 대종상을 겨냥하여 남긴 소신 발언("대종상이 그동안 말이 많았고 문제도 많았고 여전히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나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 느끼고 계신 부분이라 생각한다") 또한 비판받아야 한다. 당시 남우,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모든 배우는 불참하고 자기 혼자 가서 상을 받은 형국인데 대종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직언을 건넸으니 말이다.

하지만 당시 대종상에 대한 이병헌의 소신 발언은 박수받고, 시상식을 진행하는 취지는 좋지만, 한국대중음악상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수많은 대중에게 알려지지도 않고, 수상자에게 상금도 안 주는 한대음의 현주소를 사실 그대로 말한 이랑은 건방진 수상자로 비판받는다.

그런데 이랑의 말대로 돈, 명예, 재미 세 가지 중에 돈, 재미라는 두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는데도 이랑은 시상식에 참석했고, 상을 잘 받고, 잘 팔았다. 상을 주는 것까지는 한대음의 마음이라고 하나, 상을 받고 난 이후에는 트로피를 엿하고 바꾸어 먹든, 집 창고에 쳐박아 놓든, 그건 수상자의 자유다. 이랑이 시상식이 끝나고 그 트로피를 몰래 팔았으면 별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었을 텐데, 상을 받자마자 판 것이 잘못이면 잘못일까.

이랑의 트로피 경매 퍼포먼스를 비판적으로 보는 몇몇 사람들은 돈 안되는 음악하면서 불평하지 말고 돈 되는 일을 하라고 이랑을 엄중히 타이른다. 그런데 이랑은 자신이 받은 트로피를 50만원에 팔았을 뿐이지, 한달에 42만 원을 버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불평한 적은 없다. 그러면 자기 입으로 나 1월에 42만 원 벌고, 2월에 96만 원 벌었다. 그 소리도 못할까. 그래서 이랑은 부족한 생활비를 메우기 위해 트로피를 팔았고 그 대가로 50만원을 손에 쥐었다. 그것으로 이랑의 퍼포먼스는 끝났다. 그런데 아직도 이랑이 트로피를 판 행위 거기에서 머물려있는 사람들은 이랑이 트로피를 경매에 부친 것을 잘했니, 못했니 따지기 바쁘다.

상금이 고팠던 가난한 예술가, 또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노후 대책 없다> 이동우 감독과 영화에 출연한 파인 더 스팟 송찬근이 영화 추천 서비스 커뮤니티 '왓챠'에 남긴 한줄 평 ⓒ 왓챠


영화 <노후 대책 없다>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해 17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오른 이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DMZ국제다큐영화제 등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화제에 두루 초청된 화제작은 되었지만, 수상을 하지 못해 상금을 받지 못한 이동우 감독과 주요 출연진들은 영화 추천 서비스 커뮤니티 '왓챠' 내 <노후 대책 없다> 영화평에, (영화제는 많이 초청되었지만) 상을 받지 못해 대출 이자를 내지 못했던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는 글을 남겼다. 다행히도 그들은 그해 열린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원하던 상금을 받았고, 서로 사이좋게 나눠 가졌다고 한다. 만약 이들도 상을 주는데, 상금을 주지 않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게 된다면, 이랑처럼 트로피를 대놓고 팔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문제제기는 할 것 같다. 명예는 감사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상금이라고.

<노후 대책 없다>에서 돈을 못버는 자신들의 신세를 자조하는 스컴레이드와 파인 더 스팟 등 펑크 뮤지션들을 두고 어떤 이들은 이랑에게 그랬던 것처럼, "돈 안되는 음악하면서 불평하지 말고 돈 되는 일을 해라."는 시선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겠다. 그래서 스컴레이드, 파인 더 스팟 멤버들은 일찌감치 음악으로 돈 버는 일을 포기하고 영화 현장 스태프, 식당 서빙, 건설 노동자, 사회 운동가 등 돈 되는 일을 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한다. 그렇게 투잡을 뛰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자신들의 불안한 미래를 상상한다. 그리고 돈 안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에 대해서 그 어떠한 비판적 시선도 제기할 수 없는 것인가. 인디 음악, 영화 하는 사람들 다 어려우니까 그 내부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어도 꾹 참아야만 하는 것인가.

돈 안 되는 음악을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자유다. 때로는 자신들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음악성을 인정받아 한대음에서 큰 상을 받거나 혹은 해외 펑크씬의 러브콜을 받아 수십여국에 음반까지 발매한 밴드가 월 42만원밖에 벌지 못하는 현실이 이상한 것이 아닌가. 그래도 이랑과 <노후 대책 없다>에 등장 하는 밴드들은 다수 대중들이 낯설어하는 자신들의 음악을 무조건 사랑해달라고 읍소 하지 않는다. 그들은 돈이 안되는 음악 엄연히 말하면 주류 음악계의 통념에 반한다는 이유로 배를 곪는 것이 당연시 여겨지는 이 시대 수많은 예술가들을 대표해서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본의 아니게 이랑 덕분에 일반 대중들에는 낯선 한대음이 널리 알려졌다는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독립(인디)영화에 관심이 많은 나도 부끄럽게도 이랑의 퍼포먼스 때문에 한대음이라는 시상식을 알게 되었다. 이랑의 퍼포먼스 덕분에 <노후 대책 없다> 관람에 이어 인디 음악 뮤지션들도 독립영화 진영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못지 않게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게 되었다.

인디 음악, 영화 현실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좋게 봐주세요 식의 구걸은 사양한다. 그것은 차라리 트로피를 팔면 팔았지, 이랑, <노후 대책 없다> 뮤지션들도 원하지 않는 삶의 방식일 것이다. 인디 음악, 영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중들을 위해 주류 음악, 영화계는 만들지 못하는 좋은 대중 예술 작품을 많이 만들어야한다. 이랑은 2012년 데뷔 이래 언제나 멋진 포크 음악을 만들었고, 그렇게 대중 예술가로서 책무를 다하고 있다.

이랑이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판 행위는 음악성을 인정 받아도 가난을 면치 못하는 비주류 뮤지션의 현실을 표현한 퍼포먼스로 평가받아야한다. 설령 트로피 퍼포먼스가 누구에게 불편하게 다가올지 언정, 젊은 예술가의 치기로 폄하받아서는 안된다. 앞으로도 이랑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훌륭한 포크 음악을 만들고, 할 말 다하는 멋진 뮤지션으로 살아갈 것이다. 세상 그 누구도 돈이 없어 트로피는 팔아도 예술가로서 자존심은 팔지 않는 이랑을 막을 수는 없다.

이랑 노후 대책 없다 한대음 트로피 경매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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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스타팀에서 방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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