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잡은 듯 구는 대선주자들, 잠에서 깨어나야"

[인터뷰] '참지식인의 표상'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9년째 근현대 인물 평전 연재 중

등록 2017.03.08 15:12수정 2017.03.08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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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어수선할수록 올바른 길을 선도해야 할 지식인의 역할은 막중하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처럼 지식인들의 묵직한 한 마디는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붓끝에서 쏟아져나오는 강렬한 한 마디는 권력자들에겐 두려움을 안겼고, 민중에겐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줬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전모가 밝혀지며 이 시대의 참 스승이자 지식인으로 행세했던 많은 학자들이 부패하고 타락한 권력에 빌붙어 온갖 부정행위를 저질러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제 시민들은 우리 사회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참지식인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다.

'참지식인의 표상'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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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 촛불무대 오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98주년 3.1절인 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구속 만세! 탄핵인용 만세! 황교안 퇴진! 3.1절 맞이 박근혜 퇴진 18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권우성


그런 점에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74)은 보기 드문 지사라고 할 수 있다. 한평생 재야운동권에 몸을 담아왔던 그는 붓을 들어 독재권력과 투쟁해온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는 등 필화(筆禍)를 겪기도 했다. 그때의 후유증으로 지금도 약을 달고 살지만 그는 한평생 자신의 지조를 꺾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스스로 권력과 거리를 두고자 했던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 <서울신문>의 주필로 기용되자 주식을 처분하고 언론독립을 이뤄냈다. '민주공화국에서 정부가 언론 주식을 소유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그의 신념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맡았던 독립기념관장은 그가 유일하게 맡았던 공직이었다. 그마저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자 잔여 임기 6개월을 앞두고 미련없이 사표를 던졌다. 부패한 권력의 부역자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립기념관장에서 퇴임한 뒤 '야인'이 된 그는 2008년 5월부터 <안중근 평전>을 시작으로 <오마이뉴스> 블로그 '김삼웅의 인물열전'에 근·현대 인물 평전을 연재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집필한 인물의 수만 28명에 이른다. 이번 삼일절을 앞두고 그의 블로그는 누적 방문자수 천만 명을 돌파했다. 많은 청년·학생들 심지어 해외 교포들까지 그의 평전을 읽으며 시대정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제 그는 이 시대 지식인의 표상으로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역사에 목마른 교포 위해서라도 연재 계속"


지난 3일 저녁, 신촌의 한 찻집에서 만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전형적인 선비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었다. 손자뻘이나 다름없는 기자에게도 시종일관 존칭을 써가며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모습에 오히려 기자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는 조용하고 차분한 어조로 기자의 질문에 답하다가도, 박근혜 정권으로 화제가 옮겨가자 목소리를 높여 현 정권의 타락상을 성토했다. 인터뷰를 빙자해 이뤄진 만남이었지만 사실상 어디 가서도 들을 수 없는 귀한 강의를 듣고 온 느낌이었다.

최근 블로그 방문자수 천만 돌파와 관련해 "인기를 실감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외부 강의를 나갈 때 인기를 실감한다"며 겸연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는 3년 전 카자흐스탄 방문 당시를 떠올렸다. 당시 <홍범도 평전>을 연재하고 있던 김 전 관장은 행사차 홍범도 장군의 무덤이 있는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 그때 자신이 연재하는 평전이 현지 신문에 고스란히 연재되고 있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독일에 갔을 때는 현지의 한인 유학생이 열심히 읽고 있다며 그에게 감사의 뜻을 표해왔다. 이렇듯 해외에서 만난 동포들이 자신의 연재를 잘 읽고 있다며 감사인사를 해올 때, 그는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블로그 연재를 중단할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출판사에서 처음엔 불만이었죠. 책 내용이 블로그에 다 올라와있으니까 책이 안 팔린다고요. 안 팔린 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이건 일종의 사명감입니다. 하루에 5천 명에서 많게는 3만 명 이상 제 블로그에 들어와서 글을 읽는데, 이들에게 내 글을 읽힌다는 보람도 있고요. 특히 우리 청년들이나 해외에서 우리 역사에 대해 목말라하는 교포를 위해서라도 저는 온라인 연재를 중단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기자는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가 끊임없이 평전을 구상하고 집필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실제로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8시만 되면 새로운 글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주변의 역사학자들조차도 "우리는 논문 한 편 쓰는 데 1년 이상 걸리는데 선생은 어떻게 1년에 평전을 2~3권씩 내느냐"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단다. 이에 대해 그는 "특별한 비결은 없다"며 "취미생활이 따로 없다보니 하루의 대부분을 읽고 쓰는 데 할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굳이 또 한 가지 추가하자면 연재에 관한 그만의 독특한 신념도 한 몫한다.

"옛날에는 신문에 소설 연재란이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날은 작가의 사정으로 연재가 중단될 때가 있었습니다. 그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평전 연재를 시작하고 보니 그때의 제 심정이 생각나는 겁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내 글을 읽겠다고 일부러 <오마이뉴스> 블로그에 들어올 텐데, 내가 하루 안 올리면 얼마나 서운할까 싶어서 게으름을 못 피우겠더라고요. 만약에 해외 출장을 가게 되면 그 기간만큼 미리 원고를 써서 편집부에 넘기고 갑니다. 이제는 거의 관성화된 거죠."

"<이승만 평전> 연재할 때 협박 당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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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인 김삼웅 전 관장 ⓒ 김경준


그는 1996년에 낸 <박열 평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백범 김구 평전> <단재 신채호 평전> <안중근 평전> <장준하 평전> <리영희 평전> <노무현 평전> 등 독립운동가·민주화운동가·대통령·민중시인을 대상으로 평전을 집필해왔다. 최근 출간한 <의암 손병희 평전>은 그의 서른 번째 평전이기도 했다.

그가 펴낸 평전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근현대 인물들에 쏠려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솔직히 고대사나 중세사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면서도 "당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과거를 들여다보기 어렵다고 생각했다"고 근현대사에 천착하는 까닭을 밝혔다.

근현대사의 위인이라고 무조건 평전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는 평전 집필의 원칙이 있다. 독립운동가나 민주화운동가 중에서도 자신의 철학과 비전, 행동이 일치한 지도자에 대해서만 평전을 쓴다고 했다. 다만 예외는 있었다. 바로 이승만 전 대통령과 최근 연재 중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이승만하고 박정희에 대한 평전을 쓴 건 반면교사로 삼기 위한 까닭이었죠. 그 두 사람은 아직까지도 수구세력들이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데, 이승만과 박정희의 실체를 제대로 밝혀야겠다는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 때문에 쓰게 됐습니다."

그는 "이승만에 대한 평전을 연재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평전 집필을 위해 참고해야 할 자료의 소유자들이 자료 제공을 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자료 거부는 양반에 불과했다. 언론 광고를 통해 그에게 '공개사과'를 요구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승만 평전을 연재할 당시에) 사과하지 않으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협박전화를 받고 '소속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그건 네가 알아서 뭐해'라며 전화를 끊어버리더라고요. 그 뒤로는 결국 유야무야됐습니다. 오히려 일이 커지면 제 책이 더 잘 팔릴까봐 그랬는지도 모르죠."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은 '단재 신채호'"

평전으로 다룬 인물들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서슴지 않고 '단재 신채호'를 꼽았다. 그는 신채호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자 닮고 싶은 인물이라고 치켜세웠다.

"단재 선생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에 논설을 쓰면서 국민계몽에 앞장선 분입니다. 동시에 매국세력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그야말로 민족언론인이었습니다. 나라가 망한 뒤에는 해외로 망명해서도 꾸준히 우리 역사책을 쓰면서 교포들을 계몽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임시정부에 참여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국제아나키즘대회를 이끌면서 선언문을 준비하기도 했을 정도로 현실참여에 앞장선 지식인의 표상이었습니다."

실제로 김 전 관장의 삶은 단재의 삶과 매우 닮아있었다. 역사연구가이자 언론인으로서 대중계몽 및 민족독립에 앞장섰던 단재처럼 그 역시 붓을 들어 현실 부조리에 맞서 싸웠다.

2003년 당시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주필로 독립기념관 사외이사를 겸하고 있던 그는 독립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던 <조선일보>의 윤전기를 철거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민족의 독립을 기념하는 독립기념관의 가장 돋보이는 장소에 친일 신문을 찍어낸 윤전기를 전시한다는 건 말이 안 됐다"며 끝까지 철거를 주장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이 일로 인해 그는 보수언론의 집중 공격을 당했다. 그가 독립기념관장에 임용됐을 때 '좌파 대통령이 좌파 지식인을 앉혔다'는 말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얼토당토 않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윤전기 철거는) 독단적으로 행한 일이 아니고 이사회에서 결정한 일이었는데 내가 표적이 됐다"며 "퇴임 후에도 이 일로 물고 늘어질 정도로 아주 집요하게 공격했다"고 회고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3.1운동은 '3.1혁명'으로 부르는 게 맞다"

최근 그는 삼일절을 맞아 열린 18차 박근혜 탄핵 촉구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무대에 오른 그는 탄핵 반대 세력을 향해 "민족의 상징인 태극기를 부패권력자의 방패막이로 쓰지 말라"고 일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날 집회에서 3.1운동을 3.1혁명으로 부를 것을 제의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 영어를 먼저 배우는 우리 아이들이 3.1운동을 '쓰리-콤마-원 스포츠'라고 배운다"면서 기가 찬 듯 웃어보였다. 그는 또 "중국의 신해혁명이나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그리고 프랑스나 영국의 혁명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면서 정작 그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우리 3.1혁명을 운동이라고 낮춰 부르는 것은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3.1혁명을 통해 우리는 4천 년 동안 유지되어온 왕조체제를 거부하고 최초의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습니다. 특히 3.1혁명은 여성해방운동의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남성 위주 사회에서 여성들이 혁명의 대열 앞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종교와 신분, 지역, 계층을 불문하고 전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참여한 혁명은 세계혁명사에서도 3.1혁명이 유일했습니다."

그는 "원래 제헌헌법 초안에는 전부 3.1혁명으로 표기되어 있었다"며 "친일세력의 집결체인 한국민주당이 당시 제헌국회 의장이었던 이승만에게 '이제 나라가 세워졌는데 혁명이라는 용어는 거북스럽다'고 건의하자 이승만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운동으로 격하된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그는 이에 덧붙여 삼일절이라는 이름 자체도 '혁명절' 등의 이름으로 바꿔야한다고 역설했다. 개천절, 광복절, 제헌절 등 국가의 주요기념일에 대해서는 고유의 의미가 담긴 이름이 있는데, 유독 삼일절만 가치중립적인 숫자로 명명됐기 때문이다.

"대선 주자들, 봄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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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경구를 하나 제시해달라"는 요청에 손수 준비해온 프린트물을 꺼내 '춘면불각효'의 뜻을 설명하는 김삼웅 전 관장의 모습 ⓒ 김경준


그 어느 때보다도 어수선한 탄핵 정국에서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경구가 있는지 하나만 제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준비해온 프린트물을 꺼내 내려놓았다. '춘면불각효(春眠不覺曉)'. 무슨 뜻인지 물었다.

"봄잠에 취해 새벽이 오는 줄도 몰랐다는 뜻입니다. 좋은 분위기에 젖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는 말인데 지금 이 나라 위정자들에게 딱 해당되는 말입니다. 박근혜를 비롯한 정부 관리들이 봄잠에 취해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잊은 것 아닙니까. 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일어나 어렵게 탄핵정국을 조성했는데, 이것을 매듭지으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고 벌써부터 정권 다 잡은 것처럼 행동하니 봄잠에 취해있는 셈이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심판 최종 선고가 초읽기에 들어서면서 조기 대선을 준비하는 대선 주자들의 행보 역시 갈수록 바빠지고 있다. 김 전 관장은 대선 주자들에 대해서도 '봄잠'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통령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대통령이 될 것인지 먼저 고민해야하지 않겠느냐"며 적폐 청산을 위해 '이중혁명' 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권교체가 이뤄지면 가장 먼저 검찰개혁, 정보기관 개혁, 재벌개혁, 언론개혁, 사학개혁 등 5대 개혁을 실시해야 합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보수정권의 유산을 청산하는 '이중혁명'으로 가지 않고서는 야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거대한 족벌세력의 반발로 인해 개혁이 실패할 겁니다. 야당은 이제 봄잠에서 깨어나 길게는 일제강점기 이래의, 짧게는 박정희 유신체제 이래의 적폐를 청산하도록 노력해야만 합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일각에서 불어오는 개헌 논의에 대해서도 그는 신중하자는 입장이었다. 김 전 관장은 "서툰 무당이 장구 타령한다고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패악을 헌법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 헌법에는 국무총리가 국무위원을 추천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내각제 요소가 반영이 되어있다"며 "헌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을 뿐, 헌법 자체가 잘못됐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 헌법의 완성도를 높이 평가하며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언급했다. 삼균주의는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실현함으로써 개인과 개인,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간의 균등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 사상이다. 1941년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건국강령에서 삼균주의를 기본 이념으로 채택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출발점부터 불공정한 사회입니다. 어떤 사람은 50m 앞에서 뛰어가고 어떤 사람은 50m 뒤에서 그것도 무거운 쇳덩이를 메고 뛰면 공정한 경쟁이 이뤄질 수가 없죠.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결과의 균등이 아니라 출발의 균등을 주장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 헌법에는 '기회의 균등', '인간의 존엄성 보장' 등 삼균주의의 기본 이념이 모두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잘 만든 헌법을 놓고서도 그 헌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정치인들 스스로가 반성하지 못하고 애꿎은 헌법 타령만 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봐요."

대신 그는 개헌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라는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했다. 그는 "어차피 개헌을 할 수밖에 없다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꾸는 등의 부분 개정은 필요하다"며 "국회의 권한을 확대시키되 국회의원 세비를 반으로 줄여 소수자들을 대표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추가로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재 전집의 완성을 보는 것이 소원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묻는 기자에게 그는 "건강만 허락한다면 앞으로도 평전을 20권 정도 더 써보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그는 이미 서재필, 최현배, 김삼규, 정약용에 대한 평전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그에게 소원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미완성인 단재 신채호의 전집 완성을 보는 것이 꿈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북한의 인민대학습당에는 단재의 유고가 많다고 합니다. 제가 독립기념관장을 지낼 때, 남한의 소장자료와 북한의 소장자료를 모아서 남북한이 공동으로 단재 전집을 내자고 제의를 한 적이 있었어요. 실제로 남과 북의 연구원들이 베이징에서 합의도 했습니다. 계약을 위해 막상 평양에 갔더니 출장 중이라는 이유로 인민대학습당 원장이 만나주질 않았습니다. 결국 단재 전집은 미완의 상태로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북관계가 풀리면 완전한 전집으로 다시 내는 걸 보고 싶습니다."

그는 "남북관계가 갈수록 악화돼서 지금 상태로는 어떻게 될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한평생 민주화와 통일을 위해 앞장서왔던 원로 지식인의 옆모습에서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묻어나오는 듯했다.

김 전 관장과의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돌아오는 길, 지하철역 스크린도어 앞에 붙어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이 눈에 들어왔다.

"흔히 사람들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지만 기회는 기다리는 사람에게 잡히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기 전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어쩌면 도산의 말씀과 '춘면불각효'의 뜻이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잠에서 깨어나야 할 이들이 어찌 정치인들 뿐일까. 우리 모두가 봄잠에 취해서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었다.
#김삼웅 #독립기념관 #박근혜 #인물열전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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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사 전공) / 독립로드 대표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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