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 날자, 나비로 날자꾸나!'

탈핵퍼레이드가 '나비행진'이 된 까닭은?

등록 2017.03.08 11:24수정 2017.03.0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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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퍼레이드라고 하면 너무 직접적이지 않을까요? 뭔가 다른 이름이 필요해요."
"친근하면서도 자연적인 이름이 필요해요.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운 이름이면 좋겠어요."
"왜 탈핵을 해야 하고, 탈핵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그런 뜻을 다 품으면 좋겠는데...,"
"나비행진 어때요?"
"나비요?"
"일본의 생태평화운동가인 마사키 다카시 선생님이 쓴 나비문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한그루 나무가 있었습니다. 봄이 와 애벌레들이 한꺼번에 태어났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이파리를 먹어치우면 분명 나무가 죽어버릴 거야.'

애벌레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잎을 다 먹으면 나무가 말라서 결국 아무도 살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나무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너는 곧 나비가 될 거야. 나비가 되면 누구도 잎을 먹지 않는단다. 꽃에 있는 꿀을 찾게 되지. 그리고 꿀의 달콤함에 취해 춤도 춘단다. 그러면 꽃이 열매를 맺지.'


여름이 되었습니다. 나무에는 꽃이 피고 달콤한 향기가 피어올랐습니다. 나비가 된 애벌레는 투명하고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꽃과 놀았습니다. 가지는 언제부턴가 다시 푸르러졌고 꽃에서는 열매가 부풀어 올랐습니다.


"와우, 멋진데요. 세월호의 노란리본도 연상되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노란나비도 연상되고. 우리가 함께하고자 하는 세상을 다 아우르는 것 같아 좋네요."
"그럼 후쿠시마원전사고 6주기 3.11 탈핵퍼레이드는 '나비행진'입니다. 다들 나비가 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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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행진 포스터 생태평화운동가인 마사키 다카시선생이 쓴 '나비문명'에서 '나비행진'의 의미를 뽑아냈다. ⓒ 권미강


후쿠시마원전사고 6주기를 맞아 핵없는 사회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311탈핵퍼레이드'를 준비 중이었다. 핵없는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이 주최하고 후쿠시마6주기 나비행진 기획단이 주관하는 '나비행진'은 이렇게 시작됐다.

하자작업장학교 교장선생님이신 히옥스(김희옥, 52세. 하자작업장학교는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 별칭, 아이디를 부른다. 교장선생님도 예외는 아니다)의 제안이었다.

'나비문명'은 2010년에 출간된 책이다. 저자인 마사키 선생은 농부이면서 철학자이기도 하다. 규슈의 산 속에서 아내의 병 치유를 위해 나무를 심고 숲을 만들면서 자연과 인간이 하나임을 깨달았다. 이제 세상은 인간중심이 아닌 자연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로의 생명이 순환하는 자연의 이치를 담은 '나비문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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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문명 생태평화운동가인 마사키 다카시선생이 쓴 '나비문명' 2010년 출간됐다. 마사키선생은 일본허법 9조를 지키는 운동도 펼치고 있다. 일본헌법 9조는 평화헌법으로 전쟁을 다시 일으키지 않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 권미강


'나비문명'은 애벌레처럼 갉아먹는 생각을 바꾸고 나비로서 살아가듯, 지구를 착취해서 자원을 고갈시키는 인류의 생각 바꾸고, 나비처럼 '꽃을 피우고 꿀을 따고 열매를 맺는' 자연친화적 인류문명으로 가야 한다는 문명전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생태적 삶에 무게를 두고 교육을 펼쳐온 하자작업장학교는 과거 100일 평화순례를 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다카시 선생을 만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나비문명' 내용에는 실제로 후쿠시마에 대한 우려도 나와 있는데 다카시 선생을 만나고 얼마 되지 않아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하자작업장학교 학생들은 당시 좌절했다고 한다. 이미 핵에 대해 공부할수록 놀랍고, 화가 나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데도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있다가 원전사고가 터져버린 현실에 분노를 느낀 것이다. 2011년 일본에서 반핵집회가 있었는데 3개월간 침묵을 한 후에 시민들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핵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동참을 이끌어내는 활동이 지속되는 동안 하자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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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가면을 만들자 311탈핵퍼레이드에서 사용할 가면과 소품을 직접 만들고 있는 하자작업장학교 학생들 ⓒ 권미강


여러 단체를 초대해 탈핵집회를 하고 핵에 대한 공부도 했다. 환경단체와도 연계하고 학교공부도 탈핵공부와 인류학적 공부로 전환했다. 원전사고 1주기 때에 핵없는사회공동행동에서 주관하는 퍼레이드에 참가했는데 1주기 때 3천 명 정도가 참여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5주기가 되자 5백 명 정도 밖에 참여하지 않았단다. 다른 변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같은 맘을 가진 사람들을 모으고 6주기를 새로운 시작점으로 만들기 위한 핵없는사회공동행동의 노력에 힘을 보탰다.

그중 하나가 나무닭연구소 장소익 연출가가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퍼레이드와의 만남이었다. 탈핵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재미있고 즐거운 카니발 같은 퍼레이드로 펼치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고 탈핵에 대한 관심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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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탈핵퍼레이드 대마왕 하자작업장학교 학생이 311탈핵퍼레이드에 참가할 대마왕캐릭터를 직접 만들고 시연하고 있다 ⓒ 권미강


이번 '나비행진'의 가장 중요한 점은 참가하는 사람들의 자발성과 주체성이다. 하자작업장학교학생들과 탈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퍼레이드 가면과 의상을 만들며 자연스럽게 핵의 위험성을 자신 뿐 아니라 주변인에게 알려가는 것이다.

이것이 책상 앞에서 하는 탈핵공부가 아닌 현장에서 하는 실질적인 교육이라는 것이 밀양송전탑 현장과 경주, 울진 등 원진지역 현장을 방문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도시농업과 관련된 새로운 인문학을 공부하며 생태적 집짓기, 자기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난방기기를 통해 탄소를 덜 배출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적정기술 등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들을 고민하는 하자작업장학교 학생들은 3월 11일,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는 또 한 번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녹색연합에서 만든 '탈핵나비 만들기' 영상이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

#탈핵하자 #나비행진 #후쿠시마원전사고 #311탈핵퍼레이드 #하자작업장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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