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

때묻은 외투, 컵라면... 그녀는 왜 거리에 내몰렸나

[여성의 날] 존재가 지워진 여성 노숙자, 대책이 필요하다

등록 2017.03.08 14:07수정 2017.03.0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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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 멀쩡한 사람이 왜 저러고 있어?"

노숙인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제 호황기에 누구나 일하고 싶으면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던 60대 이상의 세대들에게 노숙인이란 이해하기 힘든 존재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학력 고스펙의 젊은이들조차도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이 시대에 노숙인을 그렇게 비난할 수는 없지요.

사회 먹이 피라미드 가장 아래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마침내 거리로 나앉은 이들입니다. 누가 '성실하지 못한 사람들'이라 비난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흔히 노숙인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인가요? 중년의 남성? 흔히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화창한 주말 오후, 슬픈 표정으로 걸어가던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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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굴레에 여성이라는 굴레가 더해지면 그 고통은 몇배가 됩니다 ⓒ 픽사베이


지난 토요일 우연히 남대문 시장 근처를 지나가다가 여성 노숙인을 보았습니다. 30대 초반 즈음 되었을까? 고운 인상이었습니다. 겨울 외투는 때가 묻어 꾀죄죄했고, 손에는 컵라면 몇 개를 담은 봉지를 들고 있었습니다. 진짜 노숙인일까 몇 번 확인하였고, 옷차림이며 모든 모습이 거리에서 먹고 자는 사람 같았습니다.

햇볕 화창한 거리, 길을 걸어가는 그녀의 표정은 슬퍼 보였습니다. 툭 건드리면 울어버릴 듯한 처연한 표정이던 그녀는 토요일,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를 홀로 걷고 있었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무슨 사연으로 저렇게 되었을까 궁금했습니다.

교보문고 근처나 서울역에서 많은 노숙인을 봅니다. 흔히 노숙인이라고 하면 남성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여성 노숙인의 경우는 정신질환을 앓는 경우를 많이 보았는데 이 여성은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깨끗이 씻고 슈트를 차려입으면 바로 전문직 여성처럼 보일 것 같았습니다.

며칠 동안 젊은 여성 노숙인의 슬픈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여성 노숙인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오랫동안 노숙인 다시 서기 센터에 기부하고 관련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성 노숙인의 존재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거리의 여성 노숙인, 정책입안자의 눈에 보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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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따뜻한 밥한끼와 차한잔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 픽사베이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한국에서 노숙인을 위한 시설은 남성 위주로 만들어졌습니다. 대책을 세우기 위한 현황파악조차 미흡합니다. 전국 노숙인 현황을 관리하는 보건복지부는 여성 노숙인과 남성 노숙인을 따로 구분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합산한 수만 관리한다고 합니다.

그나마 나름대로 통계를 관리하는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남성 노숙인은 5676명으로 집계됐고 여성 노숙인은 1347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여성 노숙인은 남성 노숙인의 약 24% 수준인 셈입니다. 그렇지만 1300여 명의 거리 여성 노숙인을 재워줄 수 있는 여성용 노숙인 일시보호 시설은 서울 시내에 단 한 군데에 그칩니다. 이마저도 수용 정원은 35명에 불과한 현실입니다(참고 기사 : 노컷뉴스, 화장실에 숨어 지내는 女노숙인…한파 속 벼랑끝 내몰려).

위험 피해 숨어다니는 여성노숙인

제가 가끔 지나다니는 교보문고 입구 지하에는 남성 노숙인이 몇 명 있습니다. 지하 전시장 근처에 침낭을 깔고 지내는 것 같습니다. 추울 때는 어떻게 하나 걱정도 했는데, 그나마 이분들의 처지는 여성 노숙인보다는 나은 것이었습니다. '자기 자리'가 있었으니까요.

남성 노숙인은 지하철역 등지에서 상자를 깔고 자지만, 여성 노숙인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아다닙니다. 노출이 되면 폭행, 성폭력 등으로부터 무방비 상태가 됩니다. 여성 노숙인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해보세요. 연관어가 무엇이 나오는지. 성폭행을 당해도 신고도 제대로 못한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거리 생활을 한 탓에 무기력이 생활화돼있고, 피해를 잘 설명하거나 증명하기도 어렵죠.

성폭행 등을 피해 여성 노숙인이 주로 노숙하는 곳은 공중화장실, 시장의 문 닫은 상점 등이라고 합니다. 여성 노숙인은 항상 숨어있기에 통계를 잡아내는 게 쉽지 않고 그래서 대책도 미흡한 것 같습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는 74곳(2011년 현재)이지만, 대부분 남성 중심의 노숙인 쉼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빅이슈 판매자, 여성 노숙인은 왜 없나?

여성 노숙인의 자활과 자립을 돕는 시설도 서울 내 2~3곳에 불과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노숙인의 자립을 위한 잡지 '빅이슈'도 판매원이 여성 노숙인인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빅이슈는 최근 여성 노숙인을 상대로 '빅이슈 위드 허(with her)'라는 사업을 시작했지만 잡지를 포장하는 업무에 그칠 뿐, 여성 노숙인을 직접 판매원으로 두고 있는 외국과는 다른 모습이라고 합니다.

똑똑히 세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빅이슈 구입자는 여성이 많은 것 같습니다. 구매자 가운데 여성이 많은데, 어떻게 판매자는 남성 노숙인 위주로 생각했을까요? 여성은 노숙인이 되어서도 제 2의 존재가 되는 것 같습니다.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입니다. 생의 가장 막다른 골목, 노숙의 현장에 이르러서도 여성은 더 힘겨운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이날을 맞아 여성 노숙인에 대해 관심을 모두 가져줬으면 합니다. 여성 노숙인에 대한 통계도 제대로 잡고, 특히 아이를 동반한 채 노숙하는 여성에 대해서는 특별한 보호가 필요할 것입니다.

노숙인도 이 나라의 시민입니다. 이 나라의 시민은 모두가 법의 범위 안에서 보호받고 존엄을 지킬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는 여성 노숙인의 상태는 이 나라에서 약하고 힘없는 존재가 어떻게 대우받는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여성 노숙인이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는 정책 입안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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