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방

요즘 핫한 북촌 한옥마을, 누가 지었나 했더니

[서평] 일제강점기 북촌을 지킨 조선인 이야기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

등록 2017.03.17 20:48수정 2017.03.17 20:48
4
a

책표지 ⓒ 이마

서울 종로에 갈 때마다 낡은 기와지붕을 한 한옥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닥다닥하게 모여 있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동네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들리곤 한다.

근래 젊은 상인들이 찾아와 하나둘 가게를 여는 등 적막했던 한옥 골목길이 한결 활기차게 변하고 있어서다. 골목 담벼락에 동네 지도가 그려져 있는 안내판이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소개돼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익선동은 물론 북촌 지역의 한옥들을 지었다는 정세권 선생(1888~1965).

북촌 한옥마을이 조선시대가 아니라 일제강점기 때 지었다고? 처음 듣는 얘기라 그런지 몹시 관심이 갔다. 가까운 관광안내센터와 북촌문화센터까지 가서 정세권이라는 사람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중 이 책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을 만나게 돼 참 반가웠다. 경성은 일제강점기 당시 서울의 명칭이다.

하버드 대학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한 후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2012년부터 조사해 쓴 이 책은, 일제강점기 북촌을 지킨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민족주의자 정세권의 삶이 담겨 있다. 오래전이지만 당시의 자료와 기사, 증언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좋은 역사공부가 되었다.

조선인 서민을 위한 도시형 한옥마을의 탄생 

'그는 주로 종로 이북 조선인 거주 지역에 작은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인 한옥집단지구를 건설했다. 1920년대 일제가 계획적으로 북촌 진출을 시도하면서 조선인들의 주거 공간을 위협할 때, 그의 대규모 한옥집단지구 개발은 조선인이 살 수 있는 집을 지어 조선인들의 주거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조선인을 위한 주택을 조선인 회사가 설계해 조선인들이 살게 한 것이다. 이는 주택 부문의 물산장려운동이었고, 이를 통해 조선인의 북촌이 건재할 수 있었다.' - 본문 가운데

익선동을 포함한 북촌 일대의 한옥들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조성된 근대식 한옥마을이다. 일본인이 경성에 일본식 가옥을 올리며 하루가 다르게 도시 풍경을 점령해 나갈 때 나타난 사람이 '건양사'라는 건설개발회사를 운영했던 정세권 선생이다.

북촌지역에 도시 서민들을 위한 한옥마을을 지은 것이다. 근대식 한옥 혹은 보급형 한옥인 셈이다. 이를 통해 많은 조선인이 북촌에 거주할 수 있었고, 조선인의 북촌을 그나마 지켜낼 수 있었다(당시의 '북촌' 지역은 현재의 삼청동, 가회동 일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대문 안 청계천 종로 북쪽 지역을 뜻한다).

a

건축왕 정세권이 설립한 건양사가 근대식 한옥주택을 지은 지역. ⓒ 이마


우리가 현재 삼청동, 가회동, 익선동에서 볼 수 있는 근대적 한옥집단지구가 탄생했다. 카페나 가게로 겉모습을 바꾼 익선동 한옥 안으로 들어가면 근대식 한옥을 실감할 수 있다. 정세권 선생은 소형 한옥에서 살기 위해 최적의 구조를 생각해냈다.

기존의 대형 한옥이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들어선 '중정식'이라면, 그는 마루 개념의 거실을 중심으로 방들이 모여 둘러싸는 '중당식'을 구현했다. 지금의 한국인이 살고 있는 집 구조 그대로다. 화장실이 한옥의 내부로 들어오고, 부엌이 입식구조로 바뀌었다. 대청마루는 외부 덧문을 추가해 내부 공간인 거실로 바꾸었다.

많은 시민들이 북촌 한옥마을을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정세권 선생을 모르듯, 당시에도 선생에 대한 평가는 매우 박했다. 그는 그저 '집장사'로 불렸고, 그의 한옥들은 20세기 후반까지 대중의 관심 밖에 머물렀다. 도시의 다른 낡고 오래된 것들처럼 헐려야 할 대상이었다. 다행히 외국인들이 서울에 오면 들르는 명소가 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저자는 이를 두고 "건양사의 경성 개발은 시대를 앞서간 뉴타운 건설이었다"고 평가했다.

1920년대 북촌 지역에 근대식 한옥집단지구를 건설하지 않았다면 아니 못했다면 지금 우리가 북촌에서 볼 수 있는 주택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조선인보다 경제력이 월등히 우월한 일본인들이 북촌의 토지를 매입하고 자신의 거주를 위한 주택 건설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 북촌 지역은 적산가옥으로 가득한 동네가 아니었을까.

나라와 민족을 사랑했던 건축왕의 삶 

a

1935년 조선어학회 위원들 사진. 앞 줄 맨 왼쪽이 정세권 선생. ⓒ 이마


'정세권은 재산을 민족운동에 쏟아 부었다. 그는 1928년 침체에 빠져 있던 조선물산장려회에 막대한 재정적 도움을 주었다. 회관을 건립하고 조직 운영비를 댔으며 물산장려운동을 전담하는 장산사를 설립했다. 이를 지켜본 한용운은 "백난중(百難中) 분투하는 정세권씨에게 감사하라"고 했다. 그는 또 조선어사전 편찬을 추진하던 학회도 회관을 지어주는 등 적극 후원했다. 이 때문에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이 발발하자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재산의 상당 부분을 강탈당했다.' - 본문 가운데 

일제강점기 경성에는 세 명의 왕이 있었다고 한다. 유통왕, 광산왕, 그리고 건축왕. 유통왕은 1930년대 화신백화점 소유주이며 조선 최대 갑부였던 박흥식(1903~1994년)이다. 알려졌다시피 반민특위 1호로 체포된 친일 기업가 중 한 사람이다. 광산왕은 삼성광산을 경영했던 최창학(1891~1959년). 유통왕 못지않은 갑부 중 갑부였던 그 역시 비행기와 각종 무기를 일제에 갖다 바친 친일분자였다.

'경성 3왕'의 마지막 한 사람은 건축왕 정세권이다. 그는 여느 갑부들과 달랐다. 경성 전역으로 한옥집단지구를 건설해 대자본가로 올라선 그는 박흥식, 최창학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당시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성공한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민족자본가로서 독립운동가 못지않은 공을 세운다.

신간회, 조선물산장려운동, 조선어학회 등에 참여하며 운동을 이끌고 후원했다. 조선어학회에 회관과 토지를 기증하며 조선어사전 발간에 깊숙이 개입한다. 사업하는 사람이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정부와 협조하기는커녕 오히려 등진다는 건 사실 자살행위와 같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선생의 마음과 독립정신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막는 큰 불치병 가운데 하나가, 자본가 혹은 재벌이 부리는 탐욕과 이기심, 뇌물이 당연시된 게 아닐까 싶다. 정세권이라는 근대사의 인물은 진정한 갑부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소중한 본보기가 돼주었다.

덧붙이는 글 김경민 (지은이) | 이마 | 2017년 02월 01일
제 블로그에도 송고했습니다 : sunnyk21.blog.me

19대 대통령선거 '알고뽑자' 바로가기

19대 대선톡 '그것이 묻고 싶다' 바로가기

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권력과 자본앞에 당당한!

AD

AD

인기기사

  1. 1 [모이] 대선 토론 끝난 밤, 실검 1위는 '손석희'
  2. 2 '잘 나가던' 문재인, 왜 그랬을까
  3. 3 죽 쑤는 보수 후보들, 결국 하나 터뜨렸구나
  4. 4 [오마이포토] 웃음 터진 문재인과 '문재수'
  5. 5 안철수 측 "고용정보원 특혜채용자는 권양숙의 9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