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가슴 드러낸 엠마 왓슨, 그는 정말 '역겨운 위선자'인가?

[주장] <배너티 페어> '토플리스' 화보로 논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17.03.08 16:12최종업데이트17.03.08 16:15
원고료로 응원

▲ '토플리스' 사진을 촬영한 엠마 왓슨 미국 유명 연예패션잡지 <배너티 페어(Vanity Fair)>가 논란이 된 엠마 왓슨 커버 스토리 전문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당시 논란이 됐던 이미지는 왼쪽의 '토플리스' 사진이다. <배너티 페어> 기사 화면 갈무리. ⓒ VanityFair


배우 엠마 왓슨은 페미니즘 진영을 배반한 위선자일까. 아니면 당당한 페미니스트일까.

엠마 왓슨은 지금 이 사회에서, 여성주의를 말하는 사람 중 자신이 서 있는 위치와 영향력을 잘 알고, 또 그 영향력을 가장 잘 행사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지난 2014년 9월 UN의 성 평등 캠페인 <HeforShe>의 홍보대사로 위촉되며 성 평등은 단순히 여성의 문제뿐만 아니라 남성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페미니즘 사회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한 인터뷰에서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사이트 OMGyes.com의 유료회원이라는 점을 고백했다. 여성의 성생활이 더 많이, 더 공개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녀는 페미니즘 도서를 읽는 북클럽 <Our Shared Shelf> 을 조직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페미니즘 도서들을 추천하기도 했으며, 런던 지하철역 곳곳에 자신이 추천한 페미니즘 도서들을 숨겨놓는 이벤트를 벌이는 등의 행보를 보였다. 지난 몇 년간 엠마 왓슨은 가장 적극적인 페미니즘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러던 그녀에게 "역겨운 위선자"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미국 유명 연예패션잡지 <배너티 페어(Vanity Fair)> 3월호에 실린 그녀의 화보 중 아무것도 입지 않은 가슴을 작은 재킷으로만 가린 사진이 한 장 있었기 때문이다. 한 칼럼니스트는 그녀를 두고 "커리어를 위해 가슴을 보여주면서 성차별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비판했고, 이를 기점으로 그녀의 행동이 진정한 페미니스트로서는 걸맞지 않는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논박이 줄을 이었다.

이에 대해 엠마 왓슨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대단히 격분하며 "페미니즘은 자유이고, 해방이며, 평등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지, 다른 여성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고 일축했다.

페미니즘이 곧 성엄숙주의는 아니다

▲ 뉴욕 제71차 UN 총회 UN 성평등 캠페인 'HeForShe' 홍보 대사인 영국 배우 에마 왓슨이, 지난 2016년 9월 2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1차 UN 총회에 나섰다.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EPA


엠마 왓슨이 자신의 가슴을 드러낸 것이 문제가 되는가? 페미니즘은 여성의 젖가슴을 가리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의 가슴이나 성기는 여성의 팔, 발목, 배꼽 등과 같이 몸의 자연스러운 일부이며, 그것을 성적인 것, 음란한 것으로 강제하는 시선이야말로 문제라고 말한다. 수많은 페미니스트가 공공장소에서 여성도 상의를 탈의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토플리스 시위에 나선다. 온라인에서 여성의 가슴이 음란물로 검열당하는 것에 반대해 'Free the Nipple' 캠페인을 벌인다.

물론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시위에 나서며 윗옷을 벗는 것과 상업 잡지에서 자신의 가슴을 노출하는 건 결이 다르다. 이제까지 상업 잡지 화보들은 꾸준히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상품화해 왔다. 애초에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 화보는 어떤 방식의 대상화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설령 화보가 가슴을 꽁꽁 싸매거나 슈트를 입은 엠마 왓슨의 모습을 담았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다른 형태의 '아름다움'이라고 여겨지는 다른 방식의 대상화일 뿐이다.

그런데 영향력 있는 연예인이 상업 잡지에서 자신의 가슴을 드러내며 스스로 '성 상품화'에 나섰으니, 이에 대한 우려의 시선은 어쩌면 당연하였다. 특히나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는 엠마 왓슨은 이제까지 여성의 성 상품화를 여러 번 비판해 온 당사자이다. 그렇기에 엠마 왓슨을 향한 다른 페미니스트의 비판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토플리스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논란은, 해당 화보가 실린 '엠마 왓슨, 혁명가 벨(Emma Watson, Rebel Belle)'이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 전문이 업로드되면서 양상이 바뀌었다. 가능하다면, 일단 이를 직접 읽고 판단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하지만 혹여 시간적 여유가 없는 독자가 있을 수 있기에, 아래에 일부 인용·번역하여 해설해보고자 한다.

엠마 왓슨, 엄마가 보던 것과는 다른 디즈니 공주님

▲ 드레스를 입은 벨 영화 <미녀와 야수>의 한 장면. 엠마 왓슨은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코르셋'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녀다운 선택이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배너티 페어>는 이전에도 정치·사회적인 이슈와 엮어서 유명 연예인을 조망하는 기사를 종종 쓰고는 했다. 엠마 왓슨의 삶과 커리어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담은 이 기사 역시, UN 여성 홍보대사로서의 그녀의 역할을 높은 비중으로 다룬다. "저는 '페미니즘', '가부장제', '제국주의자' 등의 단어들을 두려워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또한, 그녀는 영화 <미녀와 야수>를 찍을 때,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조언을 얻었다고도 말했다.

"나는 내가 오스카상을 타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보다, 이 영화가 '내가 사람들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지가 더 신경 쓰였어요." 엠마 왓슨은 말했다. 특히나 그녀는 자신이 영화에서 그리는 디즈니 공주의 모습이 페미니스트의 이상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보증을 얻길 바랐다.

엠마 왓슨이 <미녀와 야수>를 찍으며, 그녀가 연기한 벨이 전형적인 공주님의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게 하려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도 읽을 수 있다.

이 새로운 '벨'은 상당 부분 왓슨의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중략) 디즈니의 원작에서 벨은 발명가 아버지의 조수일 뿐이지만, 여기서 벨은 스스로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현대적인 세탁기를 발명"한다. 왓슨은 의상 디자이너와도 함께 작업해 벨의 의상에 (공구를 매달아 놓는) "작업복 벨트처럼" 주머니를 달아놓게 했다. 한 가지 더: 원작 애니메이션에서 벨은 비단 구두와 긴 치마를 입고 말을 타는데, 왓슨에게는 이것이 편하지 않았다. 벨을 위한 첫 번째 승마 부츠와 블루머 바지(여성복을 간소화하여 남성복과 비슷하게 만들자는 운동의 일환으로, 미국의 아멜리아 블루머가 고안한, 품이 넓은 여성용 바지)가 만들어졌다. "원래 디자인에서 벨은 발레 슈즈를 신고 있었어요." 왓슨은 말했다. "물론 사랑스럽지만,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서 그런 발레 슈즈를 신고서는 어떠한 실용적인 일도 할 수 없었을 거라고요."

▲ 시골 마을의 벨 엠마 왓슨은 영화 속 벨 캐릭터를 만들 때 자신의 의견을 적극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영화 속에서 그녀가 입는 의상의 경우에 그렇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심지어 기사는 첫머리부터 기자와 뉴욕의 지하철역에서 만난 엠마 왓슨이 마야 안젤루의 <엄마, 나 그리고 엄마(Mom & Me & Mom)>(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심했던 시대에 태어난 흑인 여성이 어떻게 세계인의 멘토이자 희망의 상징으로 성장했는지, 그녀와 그녀 엄마의 관계를 다룬 자전 수필)을 역 여기저기에 -파이프 사이나 벤치, 비상전화 박스 위- 올려놓았다고 전한다.

"우리는 지금 사랑을 퍼트리고 있는 거예요." 그녀는 말했다. 그녀가 마지막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열차가 역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열차에 뛰어들어 책을 의자에 놓고 나왔고, 문이 닫힌 후 한 남성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그것을 집어 드는 모습을 플랫폼에서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가 런던의 지하철에서 해 왔던 것처럼 말이다. 이에 대해 스타이넘은 영화에서 벨이 독서를 통해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는 모습이 엠마 왓슨의 활동을 잘 반영한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미녀와 야수의 마음을 이어주는 첫 번째 계기는 문학에 대한 열정이고, 그것이 전체 줄거리를 이끌어 가죠."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벨의 아버지 역할을 맡은 배우 케빈 클라인은 말한다. "누가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 우리는 그 사람이 전혀 재미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페미니스트는 '여성스러울' 수도 있고, 섬세할 수도, 나약할 수도, 다정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말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요."

때로 누군가에게 페미니스트이면서 가슴을 드러내는 것, 페미니스트이면서 상업 잡지 화보를 촬영하는 것, 페미니스트이면서 디즈니 공주님을 연기하는 것은 모순되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엠마 왓슨은 가슴을 드러내고, 상업 잡지에 실리고, 디즈니 영화를 찍으면서도 충분히 좋은 페미니스트일 수 있다는 것을 아주 근사한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발렌시아가, 디오르, 버버리를 입은 엠마 왓슨이 머리카락을 틀어 올리고 무표정하게 서 있는 화보들은 그녀의 당당한 아름다움을 아주 멋지게 드러내며, 그녀가 연기한 새로운 벨은 디즈니의 공주님이면서 동시에 "수동적인 캐릭터는 아니며, 자신의 운명을 책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고 싶은 걸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걸 하지 않는 것

▲ 런던서 영화 '미녀와 야수' 론칭 행사 영국 배우 에마 왓슨이 지난 2월 2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미녀와 야수> 론칭 쇼에 도착했다. 영화는 오는 16일 전세계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 연합뉴스/EPA


<배너티 페어>의 기사가 공개됨으로 인해, 엠마 왓슨이 자신을 "성 상품화했다"는 비판은 무용해졌다. 여전히 근본적인 질문들은 남는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이제까지 상업 잡지에서 여성들을 다뤄왔던 방식을 탈피해 다른 방식의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여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다른 방식의 가능성이 엠마 왓슨 덕분에 더 커졌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목표는 여성을, 더 나아가 모든 젠더의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는 데 있다. 어떤 이들은 누군가가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면서 동시에 소위 '여성적' 특성을 가지는 게 모순이라고 비판한다. 페미니스트이면서 마른 몸을 가지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거나, 페미니스트이면서 분홍색을 좋아하거나, 페미니스트이면서 비키니를 입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에게 '여성성'을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를 주어야 하며, 동시에 그녀가 원한다면, 소위 '여성적이라고 인식되는 것'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자유도 주어야 한다.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 분홍색 물건을 피하고 파란색 물건만을 사거나, 긴 생머리를 자르고 사내아이 같은 숏 커트를 하거나, 다리 선이 드러나지 않는 펑퍼짐한 바지만 입을 필요는 없다.

▲ 레드카펫 위의 엠마 왓슨 지난 2016년 5월 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마누스 x 마키나: 테크놀로지 시대의 패션' 전시회 오프닝 레드카펫 행사가 열렸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배우 엠마 왓슨이 도착했다. ⓒ 연합뉴스/EPA


나는 외출할 때마다 공들여 화장하고, 짧은 치마와 가슴이 깊이 파인 원피스를 즐겨 입는다. 나 역시도 때로는 '사회의 강요된 여성성에 맞추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당당하게,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다. 나는 내가 원하지 않을 때 이런 것들을 그만둘 수 있다고 믿으며, 그렇기에 이런 것들을 나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나에게는 내가 원하지 않을 때 화장하지 않은 민낯을 드러낼 자유가 있고, 하고 싶지 않을 때 브래지어를 하지 않고 외출할 자유가 있다. 동시에 나는 아이라인을 짙게 그리고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는" 쥐 잡아먹은 듯한 빨간 립스틱을 바를 자유가 있으며, "남들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가슴이 깊이 파인 옷을 입을 자유도 있다. 페미니즘은 내게 오직 내가 원하거나 원치 않을 때만, 그렇게 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엠마 왓슨이 보여주는 다른 가능성, 그리고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위치에서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해내는 그녀의 당당함이 나에게도 용기를 주었다.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이며, 내가 그리고 우리가 엠마 왓슨의 목소리에 여전히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 <미녀와 야수> '벨' 포스터 영화 <미녀와 야수> '벨' 버전 포스터. 그녀의 언행은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쳤고, 내가 '페미니스트'로 살 수 있도록 용기를 줬다. 그녀가 나를 응원했듯, 나 역시 그녀를 응원한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엠마 왓슨 배너티 페어 토플리스 페미니즘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