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은 됐지만..." 서울대공원 셔틀버스 기사의 한숨

서울대공원 동물원 운전기사 최은희씨, 공무직 전환 뒤에 생긴 일

등록 2017.03.09 09:59수정 2017.03.17 10:25
1
원고료로 응원
a

서울대공원 운전기사 최은희씨가 셔틀버스를 운전하며 안내방송을 하고 있다. ⓒ 서울대공원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직이 되면 백발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평생 승객들을 셔틀버스에 태우고 동물원 구석구석을 누비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 와서 운전을 할 수 없다니 말이 됩니까?"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최은희씨(40)의 직업은 서울대공원 셔틀버스 운전기사.

그는 서울대공원 동물원 구내를 이동하면서 승객들을 내려주고 태워주는 일을 한다. 거기까지만 하면 남들과 다를 게 없지만, 동물 우리를 지날 때마다 타조, 기린, 하마, 사자 등 동물들의 특성을 설명해주는 안내방송을 한다.

"저기, 설표 보이시죠. 설표는 표범이지만 털이 회색빛이라 설표라고 부르는데, 긴 꼬리를 목도리처럼 감아서 체온을 유지한답니다."

자신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에 빠져드는 승객들을 보면 최씨의 입꼬리가 자연히 올라간다.

그가 '셔틀버스 큐레이터'라는 별명을 얻은 사연

공무직이란?
지난 2012년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 및 산하기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겠다며 도입한 제도. 공무직은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매년 재계약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덜어줬다는 평을 듣고 있고 박 시장도 "재임중 가장 보람있었던 일"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적은 월급과 제한된 승진기회 등은 아직 개선과제로 남아 있다.


최씨가 서울대공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09년부터. 벌써 9년차다. 일이 험해 남자들만 하던 운전기사직을 지원한 것은 공공기관의 운전기사 경력이 당시 그가 준비하던 경찰관 시험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활달한 성격을 살려 경찰관이 된 뒤 약한 자를 돕고 남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대공원 셔틀버스를 몰고 정해진 코스를 다니며 승객들을 태우고 내려주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동물 우리를 지나며 방송으로 설명해주면 어린이와 가족들이 더 즐거워할 거란 생각을 했다.

대공원측의 허락이 떨어지자 사육사들을 찾아다니며 동물들의 특징을 설명 듣고 내용을 정리해 안내방송을 시작했다. 그 결과 최씨의 안내방송은 대공원의 명물이 됐고 최씨에게는 '셔틀버스 큐레이터'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그리고 비정규직이었던 최씨의 신분은 서울시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올 1월부터 정규직인 '공무직'으로 전환돼 정년까지 일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엔 꼭 경찰이 되어야만 남들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도 남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보람을 찾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운전을 하면 정말 행복했고, 그래서 천직이라 생각했어요."

이같은 얘기를 담은 최씨의 페이스북 글을 읽은 박원순 서울시장은 작년 6월 30일 최씨를 직접 자신의 페이스북 생방송인 <원순씨 X파일>에 초청했고, 뒤이어 <연합뉴스>에는 그의 이야기를 담은 '재밌는 동물 이야기 실은 서울대공원 '명물 셔틀버스''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기도 했다.

a

서울대공원 버스기사 최은희씨 부부가 작년 6월 30일 박원순 시장의 페이스북 생방송 <원순씨 X파일>에 출연한 모습. 최씨는 이 자리에서 "서울대공원 큐레이터를 정년때까지 계속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 페북캡처


"운전 그만 하고 매표소로 가라"... 이전 경력도 제대로 인정 못 받아

그러나 할머니 때까지 셔틀버스 기사로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희망은 얼마 가지 못했다.

최씨가 공무직으로 전환된 올 1월 1일자로 대공원측은 운전기사들을 매표소에서 표를 팔고 끊어주는 매수표직과 함께 '대민종사원'으로 분류해 버렸다. 운전기사가 매표소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전문 셔틀버스 운전기사는 없고 셔틀버스도 멈춰버렸다. 대공원 측은 "지금의 셔틀버스는 덩치가 커서 사고 위험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작은 전기카트로 바꾸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원 내에서 시속 20킬로미터 이하로 다니는 셔틀버스는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

대공원측은 또 "최씨가 운전을 했지만, 소속은 원래 매수표직이었고 '운전직'이란 건 없었다"며 "최씨도 앞으로는 운전만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입사할 때부터 운전기사로 채용됐고, 지금도 대형면허수당을 받고 있는데 '운전직'이 없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 공무직이 된 뒤 근무경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게 됐다고 한다.

대공원 근무 만8년이 지난 최씨. 그러나 그는 현재 공무직 3호봉의 월급을 받고 있다. 정식 공무직으로 전환되기 전 2년간의 준공무직 경력만 인정해줬기 때문이다.

최씨는 "어차피 서울대공원에서 일한 건 마찬가진데 비정규직일 때의 경력은 인정해줄 수 없다는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며 "20년 이상 근무해도 월급 200만원이 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운전기사직 경력을 '스펙'으로 삼아 9급 공무원으로 지원하려던 계획도 차질이 생겼다"고 말했다.

a

자신이 운전하는 서울대공원 셔틀버스 앞에 선 최은희씨. ⓒ 서울대공원


AI로 휴원하니 집에서 쉬고 월급 70%만 받아라?

서울대공원측은 작년말 AI가 기승을 부리자 지난해 12월 17일부터 동물원에 한해 임시 휴원에 들어갔다. 이어 올 1월 5일부터는 휴업자 신청서를 받았다.

휴업자들에 대해서는 ▲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한 여행 자제 ▲ 개장 전까지 자진출근 금지 ▲ 임금의 70%만 수령 등의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동의서를 받았다.

최씨를 비롯해 대민종사원 26명 가운데 전화 안내에 필요한 10명 정도만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은 이에 따라 현재 출근하지 않고 쉬고 있다. 동의서대로 임금은 70%만 지급돼, 지난 2월 최씨의 경우 급여 실수령액은 101만 여원(정상적인 대민종사원의 봉급 3호봉은 163만여원)에 불과했다.

최씨는 "AI가 우리의 잘못도 아니고 정부나 대공원측이 전염병 관리를 잘못 해서 일어난 일인데, 왜 우리가 피해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과연 우리가 공무직이 아니고 일반 공무원이었다고 해도 이런 부당한 조치를 내렸겠냐"고 말했다.

그는 또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공무직)으로 전환됐다고 좋아했는데, 결국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고 경력마저 인정받지 못하게 됐다"며 "운전직이 부활돼 다시 예전처럼 대공원 셔틀버스를 운전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호봉 산정시 비정규직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서울시 지침에 따른 것"이라며 "다만 다른 직장에 지원할 때 경력증명이 필요하다면 공문 형식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무직들의 휴업에 대해 "AI감염을 우려한 노조가 요구해서 동의서를 받고 실시하고 있는 것"이라며 대공원측이 강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휴업시 월급을 70%만 지급하는 것에 대해서는 "원래 무노동무임금이 원칙이지만, 노무법인 등의 자문을 받은 결과 그래도 70%는 지급해야 생활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의견이 많아 그렇게 결정했다"며 "그렇지만 정상적으로 출근해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집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에게 100%를 다 지급하는 것은 형평상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겠냐"고 물었다.
#최은희 #서울대공원 #셔틀버스기사 #버스큐레이터 #박원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