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미 '그러나' 선고문에 세월호 유족들 철렁

아쉬움 남는 박근혜 탄핵 인용... "다음 정부만 믿는다"

등록 2017.03.10 16:38수정 2017.03.10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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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인용' 눈물 흘리는 세월호유가족들 10일 오전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만장일치’로 인용했으나, 세월호참사 관련 ‘생명권 보호 위반’이 탄핵 소추 사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안국역 부근에서 선고장면을 지켜본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탄핵인용이 발표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권우성


"어제 잠을 거의 못 잤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하다 아침을 맞이했다. 아침도 못 먹었다. 아직 어두운 터널 안에 있는 기분이다. 탄핵이 인용된다면 밝은 빛을 볼 것 같다. 솔직히 걱정된다."

10일 오전 서울 안국역 인근에서 열린 '탄핵 인용을 위한 2차 헌재 앞 긴급행동'에 참석한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기각' 가능성에 대한 걱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날 세월호 유가족 60여 명은 오전 8시 30분 버스를 대절해 경기 안산 분향소를 출발, 오전 10시쯤 서울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다. 헌법재판소 주변이 모두 경찰 차벽에 둘러싸여 있어 유가족들은 광화문에 버스를 주차하고 안국역까지 걸어갔다.

안국빌딩이 보이는 인사동 초입에 도착하자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국가, 군가를 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전인숙 4.16세월호가족대책협의회 대외협력분과장은 "3.1절 때도 무수히 들었던 애국가와, 군가가 들린다"며 "마음이 너무 안 좋다"라고 말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래가 들리는 안국역 1번 출구 앞에 도착하자 비로소 유가족들의 표정이 풀렸다. 유가족들을 본 시민들의 마음도 풀어졌다. 현장에 있던 한 시민은 캔커피 30개를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안국역 근처 학원에서 근무한다는 이주영(36)씨는 "실제로 유가족분들을 보는 건 처음이지만, 세월호 사고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몸을 녹이시라고 따뜻한 캔커피를 샀다"고 말했다.

"탄핵 인용 순간, 아이 얼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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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 입장 밝히는 퇴진행동과 세월호유가족들 10일 오전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만장일치’로 인용한 가운데, 안국역 부근에서 탄핵선고를 지켜본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대표자와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박근혜 탄핵 촛불 승리' 손팻말을 집어든 유가족은 담담한 표정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선고를 기다렸다. 그러나 선고가 예정된 11시가 가까워 올수록 떨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홍진씨는 "탄핵 인용이 나오는 순간 아이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며 "(아이를 잃은) 3년 전 그 날, 아이가 물에서 올라왔을 때, 수학여행 가기 전 마지막으로 웃었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읊조렸다.


정면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가던 오씨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당연히 8:0으로 탄핵이 인용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자리에 앉아 결정문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유가족들은 옆 사람과 손을 잡고 대형스크린을 바라봤다. 손을 모아 기도를 하느라 스크린을 바라보지 못한 유가족도 있었다. 50여 미터 떨어진 탄핵반대 집회에서 외치는 '탄핵 각하'소리에 헌재의 최종선고가 잘 들리지 않자 휴대폰을 꺼내 선고를 시청했다.

이 권한대행이 "세월호 구조대응 성실 수행 여부는 탄핵소추 심판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히자 유가족들이 술렁였다. 답답함에 가슴을 치며 "지금 무슨 말을 한 거냐"며 옆 사람에게 다시 묻는 유가족도 있었다. 안주현 군의 어머니 김정해씨는 더 이상 중계를 보지 못하겠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탄핵 사유 중에서 공무원 임면권 남용, 언론의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의무와 직책성실의무 위반은 탄핵사유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성실의무 위반은 세월호 참사와 직결된 탄핵 사유다. 유가족들은 이 부분이 탄핵사유로 인정되면 세월호 참사의 이유에 대해 보다 상세히 밝혀질 것으로 기대해왔다.

"왜 우리만 안 돼요 왜, 좀 제발 알려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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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인용' 불구 세월호 유가족은 '오열' 10일 오전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만장일치’로 인용했으나, 세월호참사 관련 ‘생명권 보호 위반’이 탄핵 소추 사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안국역 부근에서 선고장면을 지켜본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왜 세월호만 안됩니까! 왜 우리 애들만 안 됩니까! 우리 애들 왜 죽였는지, 그거 하나만 알려달라는데.”라며 오열했다. ⓒ 권우성


유경근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결국 눈물을 쏟았다. 그는 "왜 우리만 안돼요 왜. (세월호 참사 원인) 좀 제발 알려달라"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인근에 있던 시민은 "세월호만 다 피해가고 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유가족들은 가슴을 치며 연신 눈물을 닦았다. 세월호 아이들의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을 들고 있던 한 시민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는 "세월호는 왜 끝까지 냉대를 받느냐"며 혼잣말을 했다.

여러 개의 '그러나'로 구성된 선고문은 유가족들의 마음을 몇 번씩 쥐었다 내려놨다. 마침내 이 권한 대행이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말하자 유가족들 사이에서 "이제 됐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세명씩 모여 서로를 얼싸 안고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던 유가족은 "아직 정의가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면서도 "그래도 세월호는 아쉽다. 우리 아이들의 진실, 세월호의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도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성실의무 위반이 탄핵사유로 인정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퇴진행동은 세월호 유가족과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박 전 대통령 구속해서 철저하게 세월호 진실 밝혀내야할 과제가 남았다"며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날 8명의 헌재 재판관 중 김이수·이진성 재판관은 박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성실 의무를 어겼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진정한 국가 지도자는 국가 위기의 순간에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고 피해자 및 그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국민에게 어둠이 걷힐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한다. 국정 최고책임자의 지도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은 일상적인 상황이 아니라, 국가위기가 발생하여 그 상황이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이를 통제, 관리해야 할 국가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이다.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2014년 4월 16일이 바로 이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중략)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가위기 상황에서 직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하여도 무방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우리의 유산으로 남겨져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상실되고 안전이 위협받아 이 나라의 앞날과 국민의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불행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므로 피청구인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 위반을 지적하는 것이다."

헌재의 탄핵인용 발표 후 유가족들은 청와대를 거쳐 정부서울청사로 행진했다. 유가족은 정부서울청사 앞을 지나며 헌재의 판결을 곱씹었다. 자신을 '큰 건우' 엄마라고 밝힌 유가족은 "탄핵이 되었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고 아이들의 억울함 풀어주지 못해 섭섭하다"며 "뇌물죄에 생명이 밀렸다"고 지적했다.

이날 행진을 마친 세월호 유가족은 광화문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분향소에 머물며 이날 저녁에 열릴 촛불집회에 참석할 계획이다.


#세월호 #탄핵인용 #세월호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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