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광장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없는 탄핵은 시작일 뿐

등록 2017.03.12 17:21수정 2017.03.1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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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인용을 축하하며 세월호광장에 모인 인파 ⓒ 박찬희


3월 10일, 탄핵이 인용된 지 채 30분이 지나지 않은 시간부터 광화문 세월호 광장은 북적거렸다. 수많은 인파가 끊임없이 밀려 왔다. 아들과도 천막카페 안과 밖의 경계에서 눈인사나 슬쩍 해야 할 정도였다. 금요일 광화문 천막카페에서는 커피를 갈아 핸드드립과 믹스커피를 제공했다. 원두는 모두 동났고, 믹스커피도 김장독 비닐봉투 두 개가 넘는 분량의 쓰레기가 나올 정도로 창고 저장분이 동났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광화문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왔다. 나는 탄핵이 인용된 다음 날 토요일, 촛불집회에 나가지 않았다. 전날의 커피내리기가 초래한 몸의 불균형 때문만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기 전에는 아직 폭죽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더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금요일엔 평균 냉온수기용 물통 서너 개를 쓰는데, 탄핵 당일엔 열서너 통이 사용됐을 정도니 몸에 파스를 붙이고 오후 내내 방바닥에 등짝을 붙이고 있어야만 했다. 토요일 광장행을 접고 눈을 붙인 지 몇 시간, 눈을 뜨니 내 책상 위에 포스트잇이 붙은 상자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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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세월호합동분향소 입구를 밝히고 있는 노란리본 ⓒ 박찬희


"탄핵 축하! 다시 시작합시다.  -장남-"

내가 잠든 사이 큰 아들이 슬며시 와서 올려놓은 선물이다. 넥타이 하나와 양말 세 개. 박근혜는 '탄핵'을 선물 받았고 나는 '시작'을 선물 받았다.

그래 다시 시작해야지! 아들이 내 맘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 기특하기만 하다. 우선은 아들이 준 넥타이 매고 근사한데 앉아 스파게티 먹는 아들 모습을 지긋이 봐야겠다.

대통령 탄핵은 끝이 아니다. 이제부터 시작이어야 한다. 파면된 후에도 여전히 남의 집을 불법 점유하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하고, 거부했던 특검의 대면조사와 압수수색을 즉시 시행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막은 명백한 불법부터 징치하기 위해 304명의 이름으로 즉시 체포하고 수사해야 한다. 구 집권당과 정권의 책임자들도 모조리 소환조사 하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방해한 자들의 여죄를 물어야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는 독일에 부역했던 비시정권에 부역한 자들을 단호하게 처리했다. 약 35만 명의 부역 혐의자가 법원에 의해 기록이 검토되었고, 그 중 12만 명 이상이 재판에 회부되었으며 11만 명 이상이 법정에 섰다. 부역자재판소와 공민재판부에서 재판받은 9만 8436명이 유죄선고를 받았고, 그 중 약 3만 8000명이 유·무기 징역이나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부역자재판에서만 총 6763명이 사형선고를 받았고 '부역자재판소, 최고재판소, 군사재판소를 거쳐 1500명이 처형되었다. 약 5만 명은 공민권박탈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한국이 일제에서 해방된 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는 이승만에 의해 철저히 유린 해체되었고, 이어진 일제와 독재의 부역자들은 친일의 맥을 타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들 중 최종 단죄된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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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의 노란리본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미수습자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 ⓒ 박찬희


그러나 이제 때가 왔다. 지금이 기회다. 철저히 단죄하되 속죄하는 자는 양형을 고려하고 후안무치한 자는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 반민특위라도 재설치하여 특별법에 따라 엄벌함으로써 다시는 국민을 개돼지로 치부하는 자들이 이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하고 후세를 위한 경계로 삼아야한다.

특별히, 세월호 진상규명 없는 탄핵은 마른 논에 우선 물고를 튼 시작일 뿐이다. 세월호 광장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박근혜가 탄핵되었든 아니되었든, 나의 광화문 행을 멈출 수 없는 명확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나의 일상에서 바뀔 것은 아직 하나도 없다.
#대통령 탄핵 #세월호 진상규명 #광화문 천막카페 #미수습자 귀환 #박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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